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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면의 치유 ① | 치유-상처로 얼룩진 내면

    내면의 치유 ① | 치유-상처로 얼룩진 내면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와 치유를 경험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들었던 말 한마디,
    친구에게 받은 배신,
    가족과의 갈등, 가난
    직장에서의 무시와 억울함, 따돌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그리고 사별,
    실패와 좌절….

    이러한 경험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마음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면 오래전에 받았던 상처가 다시 떠올라서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같은 말에도 쉽게 마음이 무너지고,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화가 나거나,
    사람을 믿지 못하는 편견이 생기기도 합니다.

    상처는 단순히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움직이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상처가 시간만으로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인 상처의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상처는 치유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보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바라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아픔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그 정도는 별것 아니야.”라고 말하기도 하고,
    오히려 상처를 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더욱 힘들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 한 방울도 헛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상한 마음을 가까이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밤에 흘린 눈물도 알고 계시고

    말하지 못한 아픔도 알고 계십니다.

    감추어진 상처도 알고 계시며

    그리고 그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상처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려 합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점점 우리의 삶을 지배합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며,

    늘 비교하고 탓 하게 만들며, 변명하고 합리화 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열등감과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게 합니다.

    또한 분노와 미움은 또 다른 상처를 만들기도 합니다.

    상처 받은 사람이 그 상처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환경만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의 방향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https://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132541/20260803/%EC%95%84%EB%B2%84%EC%A7%80%EA%B0%80-%EC%82%B4%EC%95%84%EC%95%BC-%EA%B0%80%EC%A0%95%EC%9D%B4-%EC%82%B0%EB%8B%A4-%EB%91%90%EB%9E%80%EB%85%B8-%EC%95%84%EB%B2%84%EC%A7%80%ED%95%99%EA%B5%90-%EC%8B%9C%EC%95%A0%ED%8B%80-51%EA%B8%B0-%EC%B0%B8%EA%B0%80%EC%9E%90-%EB%AA%A8%EC%A7%91.htm

    치유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 번 기도하면 모든 상처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시간을 통해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말씀으로,

    기도로,

    예배로,

    성령님의 위로로,

    좋은 공동체를 통해,

    조금씩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마치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이,

    회복도 하나님의 때를 따라 찾아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상처를 맡길 때 진정한 자유가 시작됩니다

    우리 힘으로는 모든 상처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용서도 쉽지 않고,

    잊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솔직히 내어드릴 때 치유는 시작됩니다.

    기도는 상처를 숨기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시간입니다.

    눈물도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침묵도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가장 잘 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상처까지 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죄만 담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조롱받으셨고,

    버림받으셨으며,

    배신당하셨고,

    고통과 슬픔을 몸소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이해하십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용서뿐 아니라 회복의 시작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둘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받은 치유와 회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함께 말씀을 묵상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공동체를 표현한 이미지

    우리의 회복은 또 다른 사람을 살리는 통로가 됩니다

    치유를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받은 위로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헛되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회복된 마음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믿음이 되며,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됩니다.


    맺음말

    혹시 지금도 오래된 상처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도 마음 한편이 무너져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두 손을 내밀며 말씀하십니다.

    “내게 나오라.”

    우리의 상처는 하나님께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맡겨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메마른 우리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며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함께 묵상할 말씀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36:26)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상처를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사람에게 받은 아픔과 스스로를 정죄했던 마음까지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메마른 제 영혼에 주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미움 대신 사랑을, 두려움 대신 평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제 삶이 치유의 은혜를 경험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에필로그

    상처는 우리의 인생을 정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상처는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내면의 치유 ② | 용서하지 못한 마음,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를 통해 용서와 회복의 실제적인 여정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 진실을 외면하는 삶의 본질

    진실을 외면하는 삶의 본질

    자기 정당화가 반복될 때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


    사람은 진실을 원하지만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실수를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10대에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20대에는 열정이 앞서 판단을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30대와 40대, 심지어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크고 작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배우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실수를 했는가?”가 아니라 “실수를 어떻게 대하는가?”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어떤 사람은 그것을 성장의 계기로 삼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56436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성장합니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결코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사과할 줄 알고, 책임질 줄 알며, 다시 배우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성숙해집니다.

    주변 사람들도 그를 신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보다 진실한 사람을 더 믿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실수보다 더 큰 문제는 거짓된 태도입니다.

    실수는 시간이 해결할 수 있지만, 신뢰를 잃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지키고 있는 걸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반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잘못은 언제나 상황 탓으로 돌립니다.

    경제가 어려워서, 상대방이 먼저 그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다고 말합니다.

    둘째, 타인의 작은 실수는 오래 기억합니다.

    자신은 용서를 원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셋째, 자신의 거짓말은 정당화합니다.

    “그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면 쉽게 비난합니다.

    넷째, 사과보다 변명이 먼저 나옵니다.

    잘못을 설명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쓰지만 인정하는 데는 인색합니다.

    다섯째, 진실보다 체면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실이 밝혀지는 것보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더 두려워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입니다.

    자신에게 적용하는 기준과 타인에게 적용하는 기준이 전혀 다릅니다.


    자기 정당화는 처음에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합리화(Self-Justification) 또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줄이려는 행동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자신을 보호하던 이 습관이 반복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위험해집니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합니다.

    한 번 잘못을 부인하면 그 잘못을 끝까지 숨기기 위해 더 많은 변명이 따라옵니다.

    결국 사람은 진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지키기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출처 :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반복되는 자기 정당화는 양심을 무디게 만듭니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양심이 둔해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하지만 계속 반복하면 불편함조차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삶의 방식이 됩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변화입니다.

    사람은 갑자기 악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자기 정당화가 반복되면서 점점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진실을 외면하면 현실도 왜곡해서 보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현실까지 왜곡해서 해석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무시하고,

    유리한 정보만 받아들이며,

    결국 객관적인 판단 능력까지 약해집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 온 자기 정당화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됩니다.


    성경은 진실 앞에 서는 사람을 귀하게 말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죄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이키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반대로 마음이 완고해져 끝까지 자신을 의롭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눈물을 흘리는 행위가 아니라, 진실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용기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진실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실수의 크기가 아닙니다.

    실수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자기 정당화는 순간의 자존심을 지켜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신뢰를 잃고 관계를 무너뜨리며 자신의 성장까지 멈추게 만듭니다.

    반대로 진실을 인정하는 용기는 처음에는 아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고, 신뢰를 회복하게 하며,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는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실은 때로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리지만, 결국 우리의 삶을 바로 세워 줍니다.

    그래서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 앞에 설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진짜 두려운 것은 죄가 아니라 ‘인정’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죄 자체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죄보다 ‘인정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자존심이 무너질 것 같고, 체면을 잃을 것 같으며, 지금까지 쌓아 온 이미지가 흔들릴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실을 부정하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려 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작은 변명이었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결국 진실보다 자존심을 지키는 삶이 되어 버립니다.

    성경에서도 인간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죄를 짓는 행위보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일임을 보여 줍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했기에 회복될 수 있었지만, 사울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며 백성과 상황을 탓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죄를 지었지만, 결국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 것은 죄의 크기가 아니라 진실 앞에 서려는 태도였습니다.

    죄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는 마음은 회개의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립니다.

    그래서 진짜 두려운 것은 죄 자체보다, 죄를 인정하지 못하는 완고한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변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시간이 아닙니다.

    시간은 단지 우리가 어떤 선택을 반복했는지를 드러낼 뿐입니다.

    같은 10년을 살아도 어떤 사람은 더욱 겸손해지고, 어떤 사람은 더욱 완고해집니다.

    같은 실패를 경험해도 어떤 사람은 더 지혜로워지고, 어떤 사람은 더 많은 변명만 늘어놓습니다.

    시간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아니라, 반복된 태도를 굳어지게 만드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매일 진실을 선택한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정직한 사람이 됩니다.

    매일 자기 정당화를 선택한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거짓을 스스로도 믿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다고 반드시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살았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로운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성숙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진실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인정하는 횟수만큼 자라납니다.

    오늘 인정하지 못한 작은 잘못은 내일 더 인정하기 어려워지고, 몇 년이 지나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부정해야 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진실을 선택하는 작은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닙니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도 시간이 아닙니다.

    매일 진실을 선택하는 태도입니다.

    진실은 때로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겸손이 세워질 때, 비로소 사람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진실 앞에 서기를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진실을 인정하는 용기가 회복의 시작이며, 그 용기가 한 사람의 인생을 새롭게 만듭니다.

  • 문제를 피하지 않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납니다

    문제를 피하지 않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를 만납니다.

    가정, 건강, 관계, 경제, 그리고 마음 깊은 곳의 고민 들 까지 삶은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먼저 피하려고 합니다.

    변명을 하기도 하고, 상황을 합리화하기도 하며,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려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문제를 허락하실까요?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해결책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문제를 통해 우리를 더 깊은 자리로 이끄십니다.

    평소에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 앞에서는 인간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내 지혜로도 안 되고,
    내 경험으로도 안 되고,
    내 능력으로도 안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자 하는 것은 사건 자체보다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엄마도 몰라서 하나님께 묻는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리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면 될 것 같고,
    조금 더 버티면 괜찮아질 것 같고,
    조금 더 지혜를 짜내면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정직해질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이 고백은 패배의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강함을 자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변명과 합리화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보다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환경 때문이라고 말하고,
    상황 때문이라고 말하며,
    누군가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그런 이유들이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설명을 늘어놓아도 사건의 본질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변명은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합리화는 잠시 마음을 편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우리를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벽한 사람이라서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사람이라서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변명보다 진실한 고백이 더 중요합니다.


    서로 네 탓을 하는 자세도 답이 아닙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책임질 사람을 찾습니다.

    가정에서는 배우자를 탓하고,
    직장에서는 동료를 탓하며,
    사회에서는 상대방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서로를 향한 비난은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상처를 더 깊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이것은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도 죄를 지은 후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셨을 때 아담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보다 하와를 가리켰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와 역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보다 뱀을 가리켰습니다.

    결국 죄는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 아니라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찾으셨던 것은 변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위치를 묻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라는 초청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건의 원인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 사람 때문입니다.”

    라는 말보다

    “주님, 제 안에 무엇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묻는 사람이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75797

    사건은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종종 문제를 통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광야가 없었다면 모세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수 없었고,
    폭풍이 없었다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생의 어려움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의 교만을 내려놓게 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게 하며,
    하나님을 더욱 찾게 만드는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사건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건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입니다.

    간절히 주님 알기를 열망하십시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알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보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선물보다 하나님을,
    문제 해결보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더 갈망했습니다.

    간절함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엽니다.

    주님을 알고 싶고,
    주님의 뜻을 깨닫고 싶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싶은 갈망이 있을 때 신앙은 이론을 넘어 실제가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손길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맺음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면 문제를 피하지 마십시오.

    변명과 합리화 뒤에 숨지 마십시오.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책임만 돌리지도 마십시오.

    오히려 문제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십시오.

    “주님, 저는 부족합니다.

    주님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더 알기 원합니다.”

    그 고백이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무능이 끝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됩니다.

    남을 탓하는 사람은 사람만 보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문제 너머에서 일하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