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현실

  • 욕심이 없는 것과 믿음으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욕심이 없는 것과 믿음으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이야.”

    “많이 벌고 싶은 생각도 없어.”

    “그냥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살면 되지.”라고 말 한다고 해서 욕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도 우리에게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가르치며,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자족하는 삶을 귀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욕심이 없는 것과 책임이 없는 것은 다릅니다.

    자족하는 것과 안일한 것은 다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현실을 외면하는 것도 다릅니다.

    때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은 채 “나는 욕심이 없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게으름이나 안일함, 책임 회피, 두려움 때문에 필요한 수고를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욕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전혀 다른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난의 원인이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닙니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게으른 것은 아닙니다.

    질병이나 사고, 실직, 경제적인 환경, 가족의 어려움, 사회적인 구조 등 사람이 자신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로 가난해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가난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모든 가난을 환경의 문제로만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반복되는 무책임과 게으름, 지나친 안일함, 현실을 회피하는 태도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보다는

    “나는 돈에 욕심이 없어.”

    “나는 물질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에게 필요한 변화까지도 거부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과 성장하기 위한 수고를 포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족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 빌립보서 4:11

    바울은 자족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삶을 보면 그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안일함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수고했고, 자신의 삶을 책임졌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자족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이 많든 적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내게 맡겨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겠다.”

    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자족하면서도 일할 수 있습니다.

    자족하면서도 더 배우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자족하면서도 더 나은 삶을 위해 계획할 수 있습니다.

    자족하면서도 자신의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땀 흘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족과 성실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과 돈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다릅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는 것만 경계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돈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돈을 두려워하는 것도 우리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평안할 때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돈이 뭐 그렇게 중요해?”

    “나는 돈 욕심 없어.”

    “하나님만 의지하면 되지.”

    그런데 막상 예상하지 못했던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오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통장 잔액이 줄어들고,

    수입이 끊기고,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발생하고,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해지면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의지하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돈이 충분히 있을 때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일까?


    어려움은 우리의 중심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사람은 평안할 때 자신의 믿음을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나는 믿음이 있어.”

    “나는 돈에 연연하지 않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

    하지만 실제적인 어려움이 닥치면 마음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먼저 올라옵니다.

    원망이 생깁니다.

    불안해집니다.

    사람을 붙잡고 싶어집니다.

    돈이 없다는 사실 자체보다 돈이 없으면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어려운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믿음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 찾아왔을 때 결국 누구를 붙드는가입니다.

    두려움이 생겼지만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가?

    불안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는가?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가?

    그리고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까지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가?

    그 과정에서 믿음은 더욱 실제적인 것이 됩니다.


    믿음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믿음이 없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믿음으로 살면 되지.”

    물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내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믿음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일해야 한다면 일하고,

    배워야 한다면 배우고,

    잘못된 소비 습관이 있다면 돌아보고,

    재정 계획이 필요하다면 계획을 세우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면 책임을 다하고,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내가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나의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과 책임이 함께 가는 모습이 아닐까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수고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일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삶을 맡기셨고, 각자에게 감당해야 할 책임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욕심을 버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성실함도 필요합니다.

    절제도 필요합니다.

    지혜도 필요합니다.

    책임감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정말 욕심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것인가?

    나는 정말 자족하는 것인가?

    아니면 변화하기 싫어서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나는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인가?

    아니면 현실적인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은 다른 사람에게 하기 전에 나 자신에게 먼저 해야 하는 질문일 것입니다.


    *문제 앞에서 이론이 멈출 때, 하나님을 경험하는 믿음이 시작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05967

    어려움이 왔을 때 믿음의 중심이 드러납니다

    어쩌면 평안할 때의 믿음보다 어려울 때의 믿음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지도 모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내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가장 붙들고 싶은지,

    누구를 원망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결국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보면

    내 마음의 중심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어려움이 찾아왔다고 해서

    “내 믿음이 없었구나.”

    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이 내 믿음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발견하고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어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다시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돈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돈을 사랑하지 않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돈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돈이 많아도 하나님을 잊을 수 있고,

    돈이 없어도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자신의 삶을 바로 세워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핵심은 단순히

    “나는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이야.”

    라는 말에 있지 않습니다.

    더 깊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돈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있는가?”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이유로 내가 해야 할 수고와 책임을 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두 질문을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음의 중심입니다

    돈이 많고 적은 것이 믿음의 기준은 아닙니다.

    가난하다고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니고,

    부유하다고 믿음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가는가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현실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어려운 이유를 외부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하지 않은 수고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욕심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정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 보고 있었는지 보여주세요.”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깨닫게 해주세요.”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보다 돈을 더 붙들고 있었다면 그것도 깨닫게 해주세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믿음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우리는 흔히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탐욕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진 돈도,

    내가 하는 일도,

    내가 얻는 수입도,

    내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계획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마음도 무조건 욕심이라고 정죄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가족을 위해 더 안정적인 삶을 만들고 싶은 마음,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싶은 마음,

    성실하게 일해서 더 나은 삶을 만들고 싶은 마음까지 모두 욕심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돈을 얻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욕심이 없는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믿음은 욕심과 안일함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면서 내가 맡은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말보다 중심이 드러납니다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야.”

    “나는 돈에 관심이 없어.”

    “나는 하나님만 믿고 살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어려움이 왔을 때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기회가 왔을 때 무엇을 선택하는지,

    실패했을 때 누구를 원망하는지,

    돈이 생겼을 때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누구를 기다리는지를 통해 우리의 중심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단순히 힘든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 안에 있는

    게으름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안일함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탐욕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두려움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무엇보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고 있었던 마음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빨리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라고만 기도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이 어려움 가운데서 제 마음을 보여주세요.”

    “제가 무엇을 붙들고 있었는지 알게 해주세요.”

    “제가 해야 할 수고를 피하고 있었다면 깨닫게 해주세요.”

    “돈을 사랑하거나 돈을 두려워하는 마음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중심을 돌아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믿음의 실제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가난을 미화할 필요도 없고,

    부를 무조건 악하게 볼 필요도 없습니다.

    게으름을 믿음으로 포장해서도 안 되고,

    돈에 대한 두려움을 믿음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수고는 다하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

    필요한 것을 구하되,

    돈이 나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하는 것.

    어려움 속에서 두려워할 수는 있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한 모습이 아닐까요.

  • 문제 앞에서 이론이 멈출 때, 하나님을 경험하는 믿음이 시작됩니다

    문제 앞에서 이론이 멈출 때, 하나님을 경험하는 믿음이 시작됩니다

    머리로 아는 이론 믿음과 삶으로 경험하는 믿음

    살아가다 보면 머리로는 이론은 분명히 알고 있는데 마음은 전혀 따라주지 않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성경도 알고 있습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 말씀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현실의 거대한 문제 앞에 서는 순간, 그동안 붙들고 있던 확신들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질병,
    경제적인 어려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자녀 문제,
    직장에서의 실패,
    인간관계의 상처….

    이러한 현실 앞에서는 알고 있던 말씀이 갑자기 멀게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걸까?’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기도해도 변하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질문은 믿음이 없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경험하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이고, 문제를 이론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 믿음의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엘리야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후에도 두려움에 도망쳤고,
    다윗은 수없이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깊은 절망 속에서 눈물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세례 요한도 감옥에서 예수님께 “오실 그이가 당신이십니까?”라고 물을 만큼 흔들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시며 그 자리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는 시간 | 문제 속에서 만나는 사랑과 지혜의 하나님




    문제는 말씀이 약해서가 아니라 경험이 부족해서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활력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가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말씀의 능력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말씀을 지식 이론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머리에 머물지만,
    믿음은 삶에서 검증됩니다.

    수영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서 이론으로 알아도 물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수영을 배울 수 없습니다.
    운전에 관한 이론을 완벽하게 알아도 실제 운전대를 잡지 않으면 운전할 수 없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고, 순종하며, 응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의 여정입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4386

    하나님은 문제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흔히 문제가 모두 해결되어야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홍해 앞에서 길이 완전히 막혔을 때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거대한 골리앗 앞에서 다윗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크신지를 경험했습니다.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은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했습니다.

    불타는 풀무불 속에 들어간 세 친구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원망 대신 찬양을 선택했고, 하나님은 감옥의 문을 여시는 기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들은 문제가 없어서 믿음이 생긴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믿음이 더욱 깊어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평탄한 길을 걸어서 위대한 믿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성장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떠나셨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려움이 찾아오면 쉽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신 것은 아닐까?’

    그러나 성경은 계속해서 다른 진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어두운 밤에도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떠나신 적은 없습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지만 성경은 반복해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라고 기록합니다.

    제자들이 풍랑 속에서 두려워할 때도 예수님은 같은 배 안에 계셨습니다.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가 절망 가운데 걸어갈 때도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걸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할 때만 함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눈물이 흐를 때도,
    기도가 막힐 때도,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때로는 그 침묵조차 우리를 버리심이 아니라 더 깊은 신뢰를 배우게 하시는 하나님의 교육일 수 있습니다.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성경 지식은 점점 많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살아보는 것입니다.

    기도를 오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정보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가족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안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하나님도 지식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기도 속에서,
    순종 속에서,
    기다림 속에서,
    고난 속에서,
    감사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인격적으로 알아 갑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믿음의 자산이 됩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혹시 지금 해결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까?

    문제만 바라보면 낙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다시 소망을 품게 됩니다.

    현재의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가까이 부르시고, 더 깊이 만나기를 원하시는 초대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크기를 계산하기보다 하나님의 크심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어제도 살아 계셨고,
    오늘도 살아 계시며,
    내일도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삶을 붙드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오늘 우리의 신앙이 머리로만 아는 이론에 머무르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문제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삶의 모든 순간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날마다 그분과 동행하는 믿음으로 자라가기를 소망합니다.

    고난은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하시기 위해 허락되는 때가 있습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이론을 넘어 삶으로 증명되는 믿음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