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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내 결심만으로는 살아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내 결심만으로는 살아지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 많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책임감 있는 딸이고 싶었습니다.

    남편에게는 지혜로운 아내이고 싶었고,
    자녀들에게는 좋은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형제들에게는 어려울 때 도움을 줄 줄 아는 언니이고 싶었고,
    동기간에는 갈등보다 화평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살아오면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마음속에 꽤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어릴 때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정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따라 내 삶을 돌아보다 보니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부모님에게는 책임감 있는 딸이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친할머니와 함께 생활했습니다.

    할머니는 내게 참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말이 있습니다.

    “아빠 엄마에게는 아들이 없으니 네가 아들 역할을 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말이 좋지 않았습니다.

    책임감이 싫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부담스러웠고,
    무언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이 말을 한두 번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싫은 마음으로 들었던 그 말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서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원해서 마음에 품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반복해서 들었던 말이
    어느새 내 생각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이 언제부터 내 안에 자리 잡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보니
    가족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부모님이 힘드시면 내가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가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다시 나에게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싫었던 책임감인데,
    어른이 된 나는 오히려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는
    책임감 있는 딸이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이 힘드실 때 외면하지 않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연약해지셨을 때는
    내가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두 분 모두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와서 돌아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부모님에게 어떤 딸이었을까?’

    더 잘해드릴 걸.

    조금 더 이해해 드릴 걸.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드릴 걸.

    그때는 왜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까.

    이제는 아무리 잘해드리고 싶어도
    다시 해드릴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생각하면
    아쉬움도 남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부모님을 위해 애쓰며 살아왔던 나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했기 때문에
    잘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돌아보니
    그 사랑 안에는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자리 잡은 책임감도 함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니까 내가 해야 하고,
    가족이니까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내가 조금 더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에게는 지혜로운 아내이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에게만 그런 마음을 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남편에게도 좋은 아내이고 싶었습니다.

    내 생각만 주장하기보다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고,
    가정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지혜롭게 대처하는 아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주고,
    서로의 부족함을 감싸면서 함께 걸어가는 아내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아내가 되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요.

    내 마음이 상하면 지혜보다 감정이 먼저 나왔고,
    내 생각이 옳다고 여겨질 때는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아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 마음만으로 언제나 좋은 아내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좋은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좋은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힘들 때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엄마,
    실수했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엄마,
    아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훗날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했어.’

    그렇게 기억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나 역시 완벽한 엄마는 아니었습니다.

    지쳐 있을 때는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내가 힘든 상황에서는 아이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아쉬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좋은 엄마로 살아내지 못했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을 사랑했던 마음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습니다.


    형제들에게는 도움을 줄 줄 아는 언니이고 싶었습니다

    형제들에게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외면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언니이고 싶었습니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나 역시 힘든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 역시 모든 것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때로는 나 자신 하나를 돌보는 것조차 버거운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면서
    다른 사람의 연약함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동기간에는 화평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동기간에
    화평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겼을 때
    누군가의 편에 서기보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불씨를 더 크게 만들기보다
    조금이라도 가라앉힐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말해도
    내 뜻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고,

    내가 화평을 만들려고 했던 일이
    오히려 또 다른 갈등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을 내가 화해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먼저 상처 주는 말을 내려놓고,
    상대를 존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진실하게 대하는 것까지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의 일까지
    내가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마음의 방향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2918


    돌아보니 나는 내가 생각했던 사람과 많이 달랐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돌아보니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과
    실제로 살아온 나의 모습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나는 좋은 딸이고 싶었습니다.

    좋은 아내이고 싶었습니다.

    좋은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도움을 줄 줄 아는 언니이고 싶었습니다.

    화평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제의 나는
    때로는 화를 냈고,
    상처를 주었고,
    참지 못했고,
    내 생각을 앞세웠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돌아보면
    예전 같았으면 나 자신에게 실망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이렇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왜 또 이렇게 되었을까?’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결심만으로는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이렇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더 잘해야지.

    조금 더 참아야지.

    조금 더 이해해야지.

    사랑해야지.

    화평을 만들어야지.

    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결심한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도
    내 안에는 여전히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사랑하고 싶어도
    내 마음이 상하면 사랑하기 어려웠고,

    참고 싶어도
    어느 순간 감정이 먼저 튀어나왔습니다.

    용서하고 싶어도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고,

    화평을 만들고 싶어도
    내 안의 상처 때문에 오히려 갈등을 키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예전에는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것을 깨닫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결심만으로 변화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나를 하나님께 맡기고 싶습니다

    이제는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내 힘으로 만들어 가려고 애쓰기보다
    하나님께 맡기고 싶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결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님, 저는 제 결심만으로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을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내가 참아야 할 때 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내가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려고 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몫과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먼저 묻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넘어졌을 때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라고 나를 책망하기보다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여전히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여전히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책임감 있는 딸이고 싶었습니다.

    남편에게는 지혜로운 아내이고 싶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좋은 엄마이고 싶습니다.

    형제들에게는 어려울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언니이고 싶습니다.

    동기간에는 갈등보다 화평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보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릴 때 할머니가 내게 하셨던

    “네가 아들 역할을 해야 한다.”

    는 말은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말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어린 나에게는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들었던 그 말은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내 생각과 삶의 태도 속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그 흔적을 조금씩 바라봅니다.

    나는 오랫동안
    사랑과 책임을 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니까 내가 해야 하고,
    사랑하니까 내가 참아야 하고,
    사랑하니까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돕고,
    내가 해야 할 몫을 다한 뒤에는
    나머지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는 것을.

    부모님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부모님을 사랑하며 살아왔던 시간과
    그 안에서 배운 것들은 여전히 내 삶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조금씩 흘려보내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모든 것을 내 책임으로 짊어지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나의 결심보다
    나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의지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내가 원했던 모습으로 완벽하게 살아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는 고백하고 싶습니다.

    “나는 부족했습니다.
    내 결심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조금씩 나를 빚어 가셨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만 이제는
    내 힘으로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도록
    나 자신을 맡겨드리고 싶습니다.

  • 골리앗 앞에 선 다윗, 민사소송을 시작하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 민사소송을 시작하다

    골리앗과의 싸움! 민사소송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걱정한 사람들은 가족이었습니다.

    제가 소송을 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가족들이 가장 먼저 물었던 것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변호사 비용은 어떻게 하려고?”

    그 말을 듣고 보니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상대방은 개인이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증권사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변호사를 선임해야 할 것 같았고,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또다시 큰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의 걱정은 당연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정말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얼마나 강하게 나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닌데 혼자 소송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갔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저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겪은 일이 정말 잘못된 일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끝까지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정말 사실인지, 내가 가진 증거가 법정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이 사건을 법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나 홀로 민사소송을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앞에는 하나의 거대한 산이 놓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골리앗과 다윗

    성경을 읽다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골리앗은 거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모습만 보아도 상대방의 마음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반면 다윗은 전쟁의 전문가도 아니었고, 거대한 무기를 가진 장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골리앗을 보면서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크기만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민사소송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가족들은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걱정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피고인 증권사에서 준비서면을 보내왔고, 재판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내세운 것은 대형 로펌이었습니다.

    변호인은 무려 네 명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혼자 소송하는데 상대방은 변호사가 네 명이나 된다고?”

    그 말을 듣고 있으면 누구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상대방은 거대한 증권사였고, 그 뒤에는 대형 로펌과 여러 명의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혼자였습니다.

    객관적으로만 보면 너무나 불리해 보였습니다.

    마치 거대한 골리앗 앞에 작은 다윗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오히려 담담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86421

    상대가 커질수록 마음은 더 담담해졌다

    가족들은 상대방의 규모를 보면서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때부터 더 차분해졌습니다.

    왜였을까요?

    아마도 처음부터 제가 이 싸움을 사람과 사람의 힘겨루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일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증거를 하나씩 정리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사실관계가 맞는지 살펴보고,
    법원에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성실하게 설명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일이었습니다.

    상대방에게 변호사가 몇 명인지, 얼마나 큰 로펌인지, 얼마나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되었습니다.

    저는 제 사건을 하나씩 공부했습니다.

    문서를 다시 읽고, 날짜를 확인하고, 증거를 살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법률 용어 하나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하니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송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주장을 얼마나 사실과 증거로 설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싸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법률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조심했습니다.

    모르는 것은 찾아보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나는 혼자다”라는 생각을 내려놓다

    상대방이 대형 로펌을 선임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저도 잠시 생각했습니다.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질문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은 포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이 소송을 끌고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저는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정말 혼자였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준비할 때도, 상대방의 준비서면을 읽을 때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할 때도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알게 해 주세요.”

    “제가 감정적으로 판단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리고 결과가 어떠하든 이 과정을 통해 제가 하나님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해 주세요.”

    저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방보다 더 큰 힘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다윗에게도 골리앗보다 더 큰 무기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거대한 상대 앞에서 내가 배운 것

    돌이켜보면 상대방이 대형 로펌을 내세웠던 순간은 오히려 제게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상대방의 크기를 바라보기보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변호사가 네 명이다.”

    “대형 로펌이다.”

    “상대방은 거대한 증권사다.”

    이런 사실들이 처음에는 크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실들이 제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얼마나 큰지는 제가 할 일을 대신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하나였습니다.

    끝까지 진실을 확인하고, 제가 가진 증거를 성실하게 제시하는 것.

    그리고 결과는 법원에 맡기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시는 또 하나의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골리앗처럼 거대한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문제 앞에서 자신이 너무 작아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크기가 우리의 믿음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대한 문제를 만났을 때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결과를 알지 못합니다.

    8월 18일, 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크기가 보였습니다.

    그다음에는 제 자신의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혼자 싸우는 것처럼 보였던 그 길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커 보여도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골리앗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누구를 바라보고 있느냐였습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대한 증권사와 대형 로펌, 네 명의 변호인단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정직하게 제 길을 걸어갈 수는 있었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해야 할 몫은 끝까지 감당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제가 민사소송을 통해 배우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골리앗이 커질수록 다윗이 더 위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야말로,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다시 확인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