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는 참 많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책임감 있는 딸이고 싶었습니다.
남편에게는 지혜로운 아내이고 싶었고,
자녀들에게는 좋은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형제들에게는 어려울 때 도움을 줄 줄 아는 언니이고 싶었고,
동기간에는 갈등보다 화평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살아오면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마음속에 꽤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어릴 때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정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따라 내 삶을 돌아보다 보니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부모님에게는 책임감 있는 딸이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친할머니와 함께 생활했습니다.
할머니는 내게 참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말이 있습니다.
“아빠 엄마에게는 아들이 없으니 네가 아들 역할을 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말이 좋지 않았습니다.
책임감이 싫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부담스러웠고,
무언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이 말을 한두 번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싫은 마음으로 들었던 그 말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서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원해서 마음에 품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반복해서 들었던 말이
어느새 내 생각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이 언제부터 내 안에 자리 잡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보니
가족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부모님이 힘드시면 내가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가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다시 나에게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싫었던 책임감인데,
어른이 된 나는 오히려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는
책임감 있는 딸이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이 힘드실 때 외면하지 않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연약해지셨을 때는
내가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두 분 모두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와서 돌아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부모님에게 어떤 딸이었을까?’
더 잘해드릴 걸.
조금 더 이해해 드릴 걸.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드릴 걸.
그때는 왜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까.
이제는 아무리 잘해드리고 싶어도
다시 해드릴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생각하면
아쉬움도 남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부모님을 위해 애쓰며 살아왔던 나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했기 때문에
잘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돌아보니
그 사랑 안에는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자리 잡은 책임감도 함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니까 내가 해야 하고,
가족이니까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내가 조금 더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에게는 지혜로운 아내이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에게만 그런 마음을 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남편에게도 좋은 아내이고 싶었습니다.
내 생각만 주장하기보다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고,
가정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지혜롭게 대처하는 아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주고,
서로의 부족함을 감싸면서 함께 걸어가는 아내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아내가 되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요.
내 마음이 상하면 지혜보다 감정이 먼저 나왔고,
내 생각이 옳다고 여겨질 때는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아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 마음만으로 언제나 좋은 아내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좋은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좋은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힘들 때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엄마,
실수했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엄마,
아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훗날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했어.’
그렇게 기억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나 역시 완벽한 엄마는 아니었습니다.
지쳐 있을 때는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내가 힘든 상황에서는 아이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아쉬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좋은 엄마로 살아내지 못했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을 사랑했던 마음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습니다.
형제들에게는 도움을 줄 줄 아는 언니이고 싶었습니다
형제들에게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외면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언니이고 싶었습니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나 역시 힘든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 역시 모든 것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때로는 나 자신 하나를 돌보는 것조차 버거운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면서
다른 사람의 연약함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동기간에는 화평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동기간에
화평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겼을 때
누군가의 편에 서기보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불씨를 더 크게 만들기보다
조금이라도 가라앉힐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말해도
내 뜻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고,
내가 화평을 만들려고 했던 일이
오히려 또 다른 갈등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을 내가 화해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먼저 상처 주는 말을 내려놓고,
상대를 존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진실하게 대하는 것까지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의 일까지
내가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마음의 방향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2918
돌아보니 나는 내가 생각했던 사람과 많이 달랐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돌아보니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과
실제로 살아온 나의 모습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나는 좋은 딸이고 싶었습니다.
좋은 아내이고 싶었습니다.
좋은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도움을 줄 줄 아는 언니이고 싶었습니다.
화평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제의 나는
때로는 화를 냈고,
상처를 주었고,
참지 못했고,
내 생각을 앞세웠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돌아보면
예전 같았으면 나 자신에게 실망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이렇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왜 또 이렇게 되었을까?’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결심만으로는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이렇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더 잘해야지.
조금 더 참아야지.
조금 더 이해해야지.
사랑해야지.
화평을 만들어야지.
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결심한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도
내 안에는 여전히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사랑하고 싶어도
내 마음이 상하면 사랑하기 어려웠고,
참고 싶어도
어느 순간 감정이 먼저 튀어나왔습니다.
용서하고 싶어도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고,
화평을 만들고 싶어도
내 안의 상처 때문에 오히려 갈등을 키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예전에는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것을 깨닫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결심만으로 변화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나를 하나님께 맡기고 싶습니다
이제는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내 힘으로 만들어 가려고 애쓰기보다
하나님께 맡기고 싶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결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님, 저는 제 결심만으로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을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내가 참아야 할 때 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내가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려고 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몫과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먼저 묻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넘어졌을 때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라고 나를 책망하기보다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여전히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여전히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책임감 있는 딸이고 싶었습니다.
남편에게는 지혜로운 아내이고 싶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좋은 엄마이고 싶습니다.
형제들에게는 어려울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언니이고 싶습니다.
동기간에는 갈등보다 화평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보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릴 때 할머니가 내게 하셨던
“네가 아들 역할을 해야 한다.”
는 말은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말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어린 나에게는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들었던 그 말은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내 생각과 삶의 태도 속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그 흔적을 조금씩 바라봅니다.
나는 오랫동안
사랑과 책임을 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니까 내가 해야 하고,
사랑하니까 내가 참아야 하고,
사랑하니까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돕고,
내가 해야 할 몫을 다한 뒤에는
나머지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는 것을.
부모님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부모님을 사랑하며 살아왔던 시간과
그 안에서 배운 것들은 여전히 내 삶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조금씩 흘려보내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모든 것을 내 책임으로 짊어지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나의 결심보다
나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의지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내가 원했던 모습으로 완벽하게 살아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는 고백하고 싶습니다.
“나는 부족했습니다.
내 결심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조금씩 나를 빚어 가셨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만 이제는
내 힘으로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도록
나 자신을 맡겨드리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