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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 묻는 사람, 다윗 | 성경 속 인물 이야기

    하나님께 묻는 사람, 다윗 | 성경 속 인물 이야기

    하나님께 묻는 사람, 다윗

    성경 속 인물 가운데 다윗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어린 목동이었던 다윗이 거대한 골리앗 앞에 나아가 싸웠던 이야기,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야기,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많은 시편을 남긴 사람.

    우리는 흔히 다윗을 믿음이 강한 사람, 용감한 사람, 하나님께 사랑받은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삶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에게서 아주 중요한 한 가지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묻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각보다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사무엘상 23장을 보면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공격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군사들과 함께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곧바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하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시자 다윗은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자 다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였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다윗은 경험이 있어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을 경험했고, 사울에게 쫓기는 긴 시간을 보냈으며, 수많은 위기 속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왕이 된 후에는 더 많은 경험과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자신의 경험과 판단만으로 결정해도 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하 5장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왔을 때도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블레셋 사람들이 또 공격해 왔을 때 다윗은 이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이유로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 모습이 참 중요합니다.

    어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가
    오늘 하나님께 묻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은혜가 오늘의 순종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의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단순한 지식 -믿음에 대한 이해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72029



    다윗은 하나님께 묻고, 들은 후 움직였습니다

    다윗에게서 또 하나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하나님께 질문만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묻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함께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놓고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면 내 뜻대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께 묻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다윗의 삶에는 이런 흐름이 반복됩니다.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움직입니다.



    다윗도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을 완벽한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에서 큰 죄를 범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따라 행동했고, 그 결과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빼앗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다윗의 삶에는 분명한 실패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다윗을 보여주는 이유는
    “다윗처럼 완벽하게 살아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윗의 삶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보게 됩니다.

    다윗은 죄를 지었지만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거나 변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가지고 나아갑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의 중요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묻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도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물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의 삶에도 결정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할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때로는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너무 쉽게 자신의 경험과 감정과 계산을 먼저 앞세웁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맞아.”

    “사람들이 다 이렇게 하니까.”

    “이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니까.”

    그러나 다윗의 삶은 우리에게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하나님께 먼저 묻고 있는가?”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모든 결정을 신비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시기를 기다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내 마음의 욕심을 살피고,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성경의 말씀에 비추어 내가 가야 할 길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

    다윗을 바라보면서 저는 이런 질문을 마음에 담아보고 싶습니다.

    “나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누구에게 먼저 묻는가?”

    사람에게 먼저 묻습니까?

    내 경험에게 먼저 묻습니까?

    내 감정에게 먼저 묻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먼저 묻습니까?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일 것입니다.

    다윗은 많은 실수를 했고 큰 죄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하나님을 향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따라가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저는 이것을 마음에 새겨보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도,

    내 경험이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에도,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에도,

    먼저 하나님께 묻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도
    바로 이런 모습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 제 생각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해주세요.”

    다윗의 이야기는 골리앗을 이긴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진짜 이야기는
    하나님 앞에서 묻고, 듣고, 때로는 넘어지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을 통해 한 사람의 위대한 업적보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믿음의 모습을 배워가고자 합니다.

  • 골리앗 앞에 선 다윗, 민사소송을 시작하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 민사소송을 시작하다

    골리앗과의 싸움! 민사소송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걱정한 사람들은 가족이었습니다.

    제가 소송을 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가족들이 가장 먼저 물었던 것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변호사 비용은 어떻게 하려고?”

    그 말을 듣고 보니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상대방은 개인이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증권사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변호사를 선임해야 할 것 같았고,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또다시 큰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의 걱정은 당연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정말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얼마나 강하게 나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닌데 혼자 소송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갔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저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겪은 일이 정말 잘못된 일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끝까지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정말 사실인지, 내가 가진 증거가 법정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이 사건을 법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나 홀로 민사소송을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앞에는 하나의 거대한 산이 놓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골리앗과 다윗

    성경을 읽다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골리앗은 거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모습만 보아도 상대방의 마음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반면 다윗은 전쟁의 전문가도 아니었고, 거대한 무기를 가진 장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골리앗을 보면서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크기만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민사소송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가족들은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걱정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피고인 증권사에서 준비서면을 보내왔고, 재판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내세운 것은 대형 로펌이었습니다.

    변호인은 무려 네 명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혼자 소송하는데 상대방은 변호사가 네 명이나 된다고?”

    그 말을 듣고 있으면 누구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상대방은 거대한 증권사였고, 그 뒤에는 대형 로펌과 여러 명의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혼자였습니다.

    객관적으로만 보면 너무나 불리해 보였습니다.

    마치 거대한 골리앗 앞에 작은 다윗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오히려 담담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86421

    상대가 커질수록 마음은 더 담담해졌다

    가족들은 상대방의 규모를 보면서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때부터 더 차분해졌습니다.

    왜였을까요?

    아마도 처음부터 제가 이 싸움을 사람과 사람의 힘겨루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일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증거를 하나씩 정리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사실관계가 맞는지 살펴보고,
    법원에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성실하게 설명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일이었습니다.

    상대방에게 변호사가 몇 명인지, 얼마나 큰 로펌인지, 얼마나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되었습니다.

    저는 제 사건을 하나씩 공부했습니다.

    문서를 다시 읽고, 날짜를 확인하고, 증거를 살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법률 용어 하나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하니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송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주장을 얼마나 사실과 증거로 설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싸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법률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조심했습니다.

    모르는 것은 찾아보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나는 혼자다”라는 생각을 내려놓다

    상대방이 대형 로펌을 선임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저도 잠시 생각했습니다.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질문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은 포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이 소송을 끌고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저는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정말 혼자였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준비할 때도, 상대방의 준비서면을 읽을 때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할 때도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알게 해 주세요.”

    “제가 감정적으로 판단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리고 결과가 어떠하든 이 과정을 통해 제가 하나님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해 주세요.”

    저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방보다 더 큰 힘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다윗에게도 골리앗보다 더 큰 무기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거대한 상대 앞에서 내가 배운 것

    돌이켜보면 상대방이 대형 로펌을 내세웠던 순간은 오히려 제게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상대방의 크기를 바라보기보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변호사가 네 명이다.”

    “대형 로펌이다.”

    “상대방은 거대한 증권사다.”

    이런 사실들이 처음에는 크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실들이 제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얼마나 큰지는 제가 할 일을 대신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하나였습니다.

    끝까지 진실을 확인하고, 제가 가진 증거를 성실하게 제시하는 것.

    그리고 결과는 법원에 맡기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시는 또 하나의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골리앗처럼 거대한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문제 앞에서 자신이 너무 작아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크기가 우리의 믿음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대한 문제를 만났을 때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결과를 알지 못합니다.

    8월 18일, 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크기가 보였습니다.

    그다음에는 제 자신의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혼자 싸우는 것처럼 보였던 그 길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커 보여도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골리앗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누구를 바라보고 있느냐였습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대한 증권사와 대형 로펌, 네 명의 변호인단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정직하게 제 길을 걸어갈 수는 있었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해야 할 몫은 끝까지 감당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제가 민사소송을 통해 배우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골리앗이 커질수록 다윗이 더 위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야말로,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다시 확인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