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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면의 치유 시리즈 ②

    내면의 치유 시리즈 ②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도 치유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용서하지 못할까요?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모두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원망이 되고, 분노가 되고, 마음속에 단단한 벽을 만들기도 합니다.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왜 나를 그렇게 대했을까?”
    “나는 아직도 그 일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이러한 기억은 우리의 마음을 계속 괴롭히고 무겁게 붙잡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용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상처가 깊을수록, 배신이 클수록, 억울함이 클수록 우리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단순히 “용서하라”고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의 상처, 상한 감정을 치유하시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새롭게 만들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감정보다 먼저 믿음에서 시작되는 일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마음이 풀리면 하겠다.”

    하지만 성경은 조금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감정이 모두 해결된 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은 아직 아플 수 있습니다.

    눈물이 날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아시며, 우리와 함께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한 걸음 씩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도
    함께 치유해 가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힘으로 순종이 어려워 힘들어 하는 자들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의 상한 감정을 치유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억압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 제작: (ChatGPT)AI 생성 지이미지

    하나님을 깊이 알수록 은혜는 커집니다

    우리는 모두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하나님 앞에 잘못했고, 넘어졌으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수 없는 은혜를 베푸셨고, 갚을 수 없는 사랑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나도 이렇게 복음에 빚진 자인데…’

    이 깨달음은 억지로 참는 마음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내 마음을 붙잡고 있던 미움과 원망을 하나님께 맡기는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임재 안에서 주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게 되면 부정적인 마음에 자신을 내 맡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상한 감정을 맡겼을 때 누리게 되는 참 평안을 알게 되면
    오히려 주님의 사랑을 더욱 알고 싶은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정의와 심판을 맡기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영혼은 왜 중요할까요?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57717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나 자신을
    더 아프게 합니다

    원망은 상대방보다 먼저 내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미움은 생각을 지배하고,

    분노는 평안을 빼앗으며,

    복수심은 우리의 영혼을 지치게 만듭니다.

    겉으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과거의 상처를 반복해서 떠올리며 스스로를 괴롭히게 됩니다.

    용서하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대를 위한 일이기 전에 나 자신의 자유를 위한 일 입니다.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회복시키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까지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 마음부터 변화 시켜 주십니다.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상처,

    오랫동안 품어 왔던 원망,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눈물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어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아픔을 내려놓을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조금씩 부드럽게 하십니다..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순종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새롭게 변화 시켜 주십니다.


    용서는 치유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용서는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닙니다.

    과거의 상처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치유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 뿐 아니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치유하시고 억압에서 자유 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솔직히 내어 드려 보십시오.

    “하나님, 제 안에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 주십시오.”

    하나님은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자유하게 하시며,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함께 묵상해 보세요

    • 지금도 내 마음속에 놓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해 보세요!

    마무리하며

    용서는 인간의 의지 만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조금씩 배워 가는 삶의 과정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키시는 치유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 성경적 경제관, 하나님의 사람은 경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성경적 경제관, 하나님의 사람은 경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성경적 경제관,
    그리스도인은 돈과 경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경제를 이야기하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불편함을 느낍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는 돈이나 투자, 저축, 부동산과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면 세속적이라는 시선을 받기도 합니다.

    반대로 세상은 돈이 인생의 성공을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은 경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성경은 경제를 무시하지도 않고, 돈을 인생의 목적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경제를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이해하고 관리하기를 원하십니다.



    경제는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부터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노동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였습니다.

    경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씨를 뿌리면 거두고, 수고하면 열매를 맺으며, 지혜롭게 관리하면 삶이 안정되는 원리는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 허락하신 질서입니다.

    경제를 이해하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경제를 배우되 경제를 섬겨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경제를 멀리하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돈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경제는 배워야 합니다.


    • AI 생성 이미지 (제작: ChatGPT)
    하나님이 주인이신 경제 청지기의 삶

    야곱에게 배우는 경제의 지혜

    야곱은 라반과의 계약 속에서 자신의 품삯을 지혜롭게 관리했습니다.

    아롱지고 점 있는 가축을 구별하여 자신의 몫으로 삼았고, 오랜 목축 경험과 지혜를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성공을 자신의 능력으로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야곱은 계획했지만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노력했지만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경제활동과 믿음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37927


    성경적 경제관을 오해할 때 세상은 교회를 바라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생활 역시 세상이 바라보는 신앙의 한 모습이 됩니다.

    안타깝게도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 경제관을 오해하여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으면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경제생활은 무질서하게 살아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청지기”를 말하면서도 맡겨진 재정을 계획 없이 사용합니다.

    반대로 교회 밖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며 “말과 삶이 다르다.”는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하면서 무리하게 값을 깎아 달라고 요구하거나, 상대방의 형편은 고려하지 않은 채 ‘교회 다니는 사람이니까 조금 더 싸게 해 달라’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성경적 경제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성경은 정직한 거래와 공정한 저울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상대를 힘들게 해서 내가 이익을 얻는 것은 청지기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더 많이 얻는 사람이 아니라, 더 신뢰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경제생활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예배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비와 거래, 약속을 지키는 태도까지도 함께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적 경제관은 돈을 적게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청빈과 빈곤은 다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물질에 욕심이 없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 자체는 아름다운 가치입니다.

    그러나 청빈과 빈곤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청빈은 하나님이 주인이신 삶입니다.

    빈곤은 삶의 선택권을 잃고 경제적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성경은 청빈을 귀하게 여기지만 빈곤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미화하지 않습니다.

    잠언 30장에서 아굴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이 기도는 성경적 경제관의 균형을 잘 보여 줍니다.



    우리는 선한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단지 돈만이 아닙니다.

    시간도,

    재능도,

    가정도,

    건강도,

    경제도 모두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제를 배우는 것은 탐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청지기 정신을 배우는 것입니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기 위한 도구입니다.



    맺음말

    오늘날 우리는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한쪽은 돈이 모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한쪽은 경제를 말하는 것 자체를 세속적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습니다.

    경제는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재물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관리하도록 부름받은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경제를 이해하지만 경제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돈을 사용하지만 돈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것을 지혜롭게 관리하며, 모든 공급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끝까지 신뢰하는 사람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청지기입니다.


    핵심 말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24)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잠언 30:8~9)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창세기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