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족의 갈등 상황이 시작됐습니다.
결혼하고 8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친정 부모님과 생활을 합쳐야만 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부모님과 생활을 합치는 것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아이들의 교육과 우리 가정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결혼할 때부터 한 가지 소망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서로 사랑하며,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가정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하게 해 달라고 어릴때 부터 기도해 왔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 것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큰 갈등 없는 환경에서 가정을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당시 하나님을 알지 못하셨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습니다.
부모님 두 분 사이에는 갈등이 참 많았습니다.
서로 골이 깊은 갈등을 극복해 나가기 보다 상대방을 탓하고 비난하는 모습으로 일관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부모님의 관계가 참 많이 싫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모습을 보아 왔던 저에게 부모님의 생활은 그리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부모님의 생활 방식에 특별한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함께 생활한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과 생활을 합치는 것에 대해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남편은 맏사위로서 부모님을 외면할 수 없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모두가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결국 남편의 뜻에 따라 저희는 부모님과 생활을 합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왜 꼭 함께 살아야 할까?’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환경이 되면 어떻게 하지?’
여러 가지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의 상황을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부모님의 형편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아버지는 페인트 기술을 가지고 계셨으나 소득이 일정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어머니 역시 생활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우셨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생활은 두 분에게 큰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1998년,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그것도 암 중기 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미 경제적으로 힘겨운 상황에서 어머니의 병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IMF라는 큰 경제적 어려움까지 닥쳤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은 부모님에게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아버지에게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 익숙하게 살아오던 공간을 떠나, 술을 마시지 않는 점잖은 사위가 있는 딸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신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정말, 아버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는 59세였습니다.
오랫동안 자신만의 생활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삶의 공간과 방식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점점 더 술에 의존하셨습니다.
술을 드시는 빈도도 날마다 높아졌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참 힘들었고, 가족 간에도 갈등이 생겼지만, 누구 하나 갈등을 표출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아버지를 판단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저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술을 찾으시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암 진단.
경제적인 어려움.
IMF로 인한 사회 전체의 불안.
자신이 평생 살아온 공간을 떠나야 했던 상황.
그리고 사위와 함께 살아가면서 느꼈을 여러 가지 불편함과 자존심의 상처까지.
어쩌면 아버지는 그런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술로 잠시 잊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을 의지하는가? 술을 의지하셨던 친정아버지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08142
물론 술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저는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것이 싫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그렇게밖에 자신의 힘겨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그 시간이 앞으로 제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말입니다.
당시에는 그저 원하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염려했고, 우리 가정의 평안이 깨질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인생에는 내가 원하지 않았던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우리 가정에 생겼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단순히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많은 상황 속에서 흔들릴 수 있는지 보게 되었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아픔을 감당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그 시간을 지나면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술을 드시는 아버지의 모습만 보면 답답하고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아버지의 삶을 조금씩 생각해 보게 되면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아버지만의 무거운 인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제가 여러 가지 삶의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그때의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인생은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을 통해서도 나를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훗날 제가 부모님을 바라보는 마음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환경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가족의 연약함을 함께 바라보고, 힘든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도 삶의 중요한 교육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언제나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갈등도 있었고, 마음이 힘든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생각과 계획대로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길이라도 그 길을 지나면서 배우게 되는 것이 있고,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이 훗날 돌아보면 하나의 의미로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때를 생각할 때 단순히
‘나는 부모님과 살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살게 되었다.’
라고만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는 부모님의 아픔이 있었고, 우리 가정의 고민이 있었으며,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내가 원하지 않았던 그 시간에도 나와 함께 걷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저는 가족을 바라보는 마음을 조금씩 배워 갔습니다.
그때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편이 아립니다.
술에 기대어 힘겨운 시간을 견디셨던 아버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던 딸.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함께 지나야 했던 우리 가족.
지나고 보니 그 시간도 제 인생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시간이 아니라, 오래 기억하고 싶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안에 아픔도 있었지만, 그 아픔을 통해 배운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가장 힘겨운 순간에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연약함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께서 조금씩 다듬어 가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