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순종을 배웠습니다.
말씀을 읽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는 것도 순종이었고, 내 생각과 다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도 순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가장 어려웠던 순종 중 하나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말이 조금 낯설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 문제가 단순히 부부 사이의 갈등이나 성격 차이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문제였고, 하나님 앞에서 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아프고 긴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하면 모든 것이 다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제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기대가 있었습니다.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함께 말씀을 배우고, 함께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습니다.
신앙 안에서 서로를 세워 주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가정을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기대했던 모습과 현실 사이에는 점점 큰 간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결혼생활과는 다른 모습이 나타났고, 제가 기대했던 신앙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제 마음속에 있던 기대가 하나씩 무너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힘들었던 것은 신앙을 바라보는 방향까지 서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무엇보다 신앙의 본질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저의 신앙 생활에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오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저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사역에 더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말씀의 기준을 배우려고 했고, 남편은 사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는 마치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는데 현실에서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참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현실을 바라보면 도무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데, 주님은 제 마음에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라.”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을 믿어라.”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변할 가능성도 없어 보였고, 제가 무엇인가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
목놓아 울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말할 힘조차 없어서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기도를 해야 하는데 기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주님! 남편에게 말씀해 주세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마음속에는 수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입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제게 십자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님께서 제 마음에 십자가를 비추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때는 참 이상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말을 하고 싶었는데,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제가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제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따지고 싶었던 것들,
그 모든 말들이 십자가 앞에서는 잠잠해졌습니다.
십자가는 제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걸어가신 길이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사랑 때문에 자신을 내어주신 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제가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은 단순히 남편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자아와 내 뜻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본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자다”
어느 날 주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자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제 마음은 참 복잡했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돕는 자’라는 말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돕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무조건 남편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일까?
내 생각은 내려놓고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일까?
많은 질문이 생겼습니다.
남편에게는 도울 방법이 없었습니다.
정확히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 말씀을 가르쳐 가셨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돕는 자’는 내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생각도 없애고,
내 감정도 무시하고,
내가 받은 상처도 없는 것처럼 만들고,
무조건 상대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제게 먼저 내가 누구의 사람인가를 다시 묻게 하셨습니다.
나는 남편의 사람이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남편을 돕는 것도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 안에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사람을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하나님 앞에서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제 안에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순종은 상대가 완벽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사람을 바라보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상대가 완벽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대의 모든 행동이 옳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상대를 인정하기 때문에만 순종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주님, 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는 붙들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순종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님은 남편보다 먼저 제 마음을 다루셨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저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남편의 신앙이 달라져야 하고,
남편의 행동이 달라져야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남편을 먼저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을 먼저 만지셨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기대를 내려놓게 하셨고,
사람을 바라보며 실망했던 마음을 내려놓게 하셨고,
제가 옳다는 생각에 붙들려 있던 마음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제게 하나씩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내 몫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서야 할 자리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6641
순종은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배운 또 하나의 순종은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무언가를 말해서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
내 힘으로 상황을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않는 것.
때로는 이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다림 속에서도 일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서는 것이었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씀드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씀드리고,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제가 배워간 순종이었습니다.
순종은 아픔이 사라진 뒤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는 순종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순종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순종하면 상황도 곧 좋아지고,
순종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제가 경험한 순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픈 가운데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었고,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말씀을 놓지 않는 것이었고,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마음에 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가 제게 순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쉽게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순종은 책에서 배운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순종은 십자가 앞에서 내가 내려놓아야 했던 수많은 것들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돕는 자’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예전에는 ‘돕는 자’라는 말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도와야 하는데, 돕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돕는다는 것은 상대의 모든 것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가 잘못한 것까지 옳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니며,
내 존재를 없애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때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말해야 할 것도 있고,
때로는 기다려야 할 것도 있고,
때로는 내려놓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준을 내 감정이나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찾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에도 주님은 함께 계셨습니다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몰랐습니다.
왜 이런 시간을 지나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주님께서 왜 제게 그렇게 어려운 순종을 요구하시는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울었습니다.
말할 힘이 없어서 가만히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알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주님은 저를 버려두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울고 있을 때도 함께 계셨고,
제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도 함께 계셨고,
제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도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보아라.”
저는 그 시간을 통해 남편에게 순종하는 법만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고,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법을 배웠고,
내 뜻을 내려놓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조금씩 배웠습니다.
순종은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크게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순종을 완전히 다 배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제 안에는 내 생각이 있고,
내 감정이 있고,
내가 원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때로는 다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압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붙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기 위해 울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때의 눈물은 하나님께서 모르고 계셨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아픔도 하나님께서 외면하신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은 주님께서 제 안에 있는 많은 것들을 만지시고,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며,
제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가르쳐 주신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순종을 말할 때 쉽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순종은 때로 눈물로 배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서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도 제가 먼저 순종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다른 사람의 변화를 기다리기 전에
먼저 제 마음을 돌아보게 하소서.
제가 옳다는 생각에 붙들리기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이게 하소서.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아픔 가운데에서도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소서.
제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사랑으로 섬기는 것임을 배우게 하소서.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게 순종하기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제가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앉습니다.
제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지만,
한 가지는 믿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리에는
반드시 주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그때도 주님이 함께 계셨음을
고백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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