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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고집으로 순순히 남편을 따르겠느냐?

    네 고집으로 순순히 남편을 따르겠느냐?

    남편과의 갈등이 심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주님 앞에 주저앉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속상해서 한참을 울다가, 그때도 주님께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제발 남편에게 직접 말씀해 주세요.”

    “제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으니, 주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세요.”

    “남편이 주님의 뜻을 알게 해 주세요.”

    저는 어떻게 해야 남편이 변할까? 라는 생각과 함께 넋두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직접 말씀해 주셔서 남편이 깨닫고 달라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속에 있는 이야기를 주님께 다 쏟아 놓았습니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었습니다.

    그저 힘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이 조금씩 잠잠해졌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72414



    주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남편에게 직접 얘기해 주고, 너에게는 일러 주지 않았을 때 네 고집으로 순순히 순종하겠느냐?”

    순간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었는데, 울던 마음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아… 그러네.’

    사실 저는, 남편이 하나님께 직접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에는

    제가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제 중심을 아셨던 것이지요.

    사실 매번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분별하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쉽고 편안한 삶을 구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아주 간단한 질문 하나를 던지셨습니다.

    “그런데 네가 정말 남편의 말에 순순히 따르겠느냐?”

    그 질문 앞에서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남편이 무엇을 말 하느냐 보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더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저는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먼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설령 저의 그 생각이 맞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먼저 저를 변화시키기로 작정하신 듯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제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다른 마음을 주셨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자다.”

    그 말씀이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말씀이었습니다.

    아내의 역할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을 돕는다 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무조건 순종하고 또 무조건 도와야 하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수없이
    몰려들었습니다.

    남편이 잘 몰라서 헤매고 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옆에서 기도하고, 필요한 말을 지혜롭게 전하면서,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제가 알고 있었던 아내의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 제 마음속에는 아주 솔직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남편이 좀 온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말 그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 하필이면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사람을 만나게 하셨을까요?’
    그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네가 나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가 변화하기를 기다리기보다, 네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먼저 돌아보아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여 주셨습니다.

    기도하는 것.

    중보하는 것.

    사랑으로 돕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 있는 고집과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내려놓는 것.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기를 원하셨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돌이켜 보면,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 중보하는 것, 사랑으로 돕는 것 그 한 부분 한 부분을 모두 주님께로 부터 배워야 했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네 고집으로 순순히 따르겠느냐?”

    그 한마디에 저는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가장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을 먼저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마음부터 만지기도 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저는 그 질문을 기억합니다.

    “네 고집으로 순순히 따르겠느냐?”

    그 질문 앞에서는 여전히 제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갈등 때문에 주님 앞에 주저앉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제 고집을 내려놓게 하시고, 아내로서의 자리를 다시 가르쳐 주신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하십니다.
    연약한 자를 위해서 중보기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 실제를 알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요.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중보 기도로 배우자를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안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 이라고요.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의 모든 면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가치관의 변화!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일 입니다.
    사람의 설득이나 지혜로운 말로 되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도 성령님의 역사가 제 삶 가운데서 충만하게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오늘도 새롭게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 순종이 가장 어려웠던 자리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

    순종이 가장 어려웠던 자리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순종을 배웠습니다.

    말씀을 읽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는 것도 순종이었고, 내 생각과 다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도 순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가장 어려웠던 순종 중 하나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말이 조금 낯설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 문제가 단순히 부부 사이의 갈등이나 성격 차이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문제였고, 하나님 앞에서 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아프고 긴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하면 모든 것이 다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제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기대가 있었습니다.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함께 말씀을 배우고, 함께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습니다.

    신앙 안에서 서로를 세워 주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가정을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기대했던 모습과 현실 사이에는 점점 큰 간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결혼생활과는 다른 모습이 나타났고, 제가 기대했던 신앙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제 마음속에 있던 기대가 하나씩 무너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힘들었던 것은 신앙을 바라보는 방향까지 서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무엇보다 신앙의 본질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저의 신앙 생활에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오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저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사역에 더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말씀의 기준을 배우려고 했고, 남편은 사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는 마치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는데 현실에서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참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현실을 바라보면 도무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데, 주님은 제 마음에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라.”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을 믿어라.”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변할 가능성도 없어 보였고, 제가 무엇인가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

    목놓아 울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말할 힘조차 없어서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기도를 해야 하는데 기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주님! 남편에게 말씀해 주세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마음속에는 수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입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제게 십자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님께서 제 마음에 십자가를 비추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때는 참 이상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말을 하고 싶었는데,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제가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제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따지고 싶었던 것들,

    그 모든 말들이 십자가 앞에서는 잠잠해졌습니다.

    십자가는 제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걸어가신 길이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사랑 때문에 자신을 내어주신 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제가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은 단순히 남편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자아와 내 뜻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본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자다”

    어느 날 주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자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제 마음은 참 복잡했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돕는 자’라는 말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돕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무조건 남편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일까?

    내 생각은 내려놓고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일까?

    많은 질문이 생겼습니다.

    남편에게는 도울 방법이 없었습니다.
    정확히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 말씀을 가르쳐 가셨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돕는 자’는 내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생각도 없애고,

    내 감정도 무시하고,

    내가 받은 상처도 없는 것처럼 만들고,

    무조건 상대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제게 먼저 내가 누구의 사람인가를 다시 묻게 하셨습니다.

    나는 남편의 사람이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남편을 돕는 것도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 안에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사람을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하나님 앞에서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제 안에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순종은 상대가 완벽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사람을 바라보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상대가 완벽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대의 모든 행동이 옳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상대를 인정하기 때문에만 순종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주님, 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는 붙들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순종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님은 남편보다 먼저 제 마음을 다루셨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저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남편의 신앙이 달라져야 하고,

    남편의 행동이 달라져야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남편을 먼저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을 먼저 만지셨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기대를 내려놓게 하셨고,

    사람을 바라보며 실망했던 마음을 내려놓게 하셨고,

    제가 옳다는 생각에 붙들려 있던 마음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제게 하나씩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내 몫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서야 할 자리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6641


    순종은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배운 또 하나의 순종은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무언가를 말해서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

    내 힘으로 상황을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않는 것.

    때로는 이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다림 속에서도 일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서는 것이었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씀드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씀드리고,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제가 배워간 순종이었습니다.


    순종은 아픔이 사라진 뒤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는 순종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순종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순종하면 상황도 곧 좋아지고,

    순종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제가 경험한 순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픈 가운데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었고,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말씀을 놓지 않는 것이었고,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마음에 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가 제게 순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쉽게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순종은 책에서 배운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순종은 십자가 앞에서 내가 내려놓아야 했던 수많은 것들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돕는 자’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예전에는 ‘돕는 자’라는 말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도와야 하는데, 돕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돕는다는 것은 상대의 모든 것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가 잘못한 것까지 옳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니며,

    내 존재를 없애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때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말해야 할 것도 있고,

    때로는 기다려야 할 것도 있고,

    때로는 내려놓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준을 내 감정이나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찾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에도 주님은 함께 계셨습니다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몰랐습니다.

    왜 이런 시간을 지나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주님께서 왜 제게 그렇게 어려운 순종을 요구하시는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울었습니다.

    말할 힘이 없어서 가만히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알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주님은 저를 버려두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울고 있을 때도 함께 계셨고,

    제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도 함께 계셨고,

    제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도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보아라.”

    저는 그 시간을 통해 남편에게 순종하는 법만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고,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법을 배웠고,

    내 뜻을 내려놓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조금씩 배웠습니다.


    순종은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크게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순종을 완전히 다 배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제 안에는 내 생각이 있고,

    내 감정이 있고,

    내가 원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때로는 다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압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붙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기 위해 울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때의 눈물은 하나님께서 모르고 계셨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아픔도 하나님께서 외면하신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은 주님께서 제 안에 있는 많은 것들을 만지시고,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며,

    제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가르쳐 주신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순종을 말할 때 쉽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순종은 때로 눈물로 배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서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도 제가 먼저 순종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다른 사람의 변화를 기다리기 전에

    먼저 제 마음을 돌아보게 하소서.

    제가 옳다는 생각에 붙들리기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이게 하소서.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아픔 가운데에서도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소서.

    제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사랑으로 섬기는 것임을 배우게 하소서.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게 순종하기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제가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앉습니다.

    제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지만,

    한 가지는 믿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리에는

    반드시 주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그때도 주님이 함께 계셨음을

    고백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기도란 무엇인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으로

    기도란 무엇인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으로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기도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이것을 이루어 주세요.”

    “하나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주님 뜻을 알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때로는 기도를 많이 했는데도 응답을 확인하지 못해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기도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것을 요청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의 마음과 상황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1.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를 잘 하려면 먼저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 들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도에는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이 함께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기쁨도 말할 수 있고,

    슬픔도 말할 수 있고,

    두려움도 말할 수 있고,

    억울함도 말할 수 있고,

    원하는 것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두려우면 두렵다고 말했고,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럽다고 말했으며,

    억울할 때에는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는 다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의 뜻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말씀은 기도의 중요한 본질을 보여줍니다.

    기도는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라고 구하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2. 기도의 대상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해야 할까요?

    기도의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이렇게 시작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는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면 기도는 결국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이시며,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시며,

    나의 삶을 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기도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나는 하나님께 나의 원하는 것을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3.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은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기도를 경고하시면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말이 아닙니다.

    기도의 길이나 형식도 본질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긴 기도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짧은 기도 하나가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눈물만 흘리며 하나님 앞에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나의 상황을 아뢰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나의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는 나의 원하는 것을 말하기보다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세요.

    제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것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기도입니다.


    4. 왜 기도하고도 응답을 기다리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기도는 하지만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기도하면서 이미 답을 정해 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것을 해 주세요.”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때로는 예라고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아니오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때로는 기다리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기다리기보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기준으로 응답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응답이 늦어지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

    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기다림은 믿음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시간을 하나님께 맡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고, 기다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는 사람, 다윗 | 성경 속 인물 이야기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75948


    5. 하나님의 응답은 반드시 내가 원하는 형태로 오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응답을 너무 좁게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만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상황이 바뀔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을 통해 도움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원했던 문이 닫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상황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과 생각이 먼저 바뀌기도 합니다.

    전에는 견딜 수 없었던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전에는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 가운데 일하시는 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는가?”

    만으로 기도의 응답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6. 그렇다면 기도의 응답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분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내 생각일 수도 있고,

    내 감정일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믿는 것이 있다면 먼저 성경의 말씀과 일치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죄라고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셨다.”

    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다시 분별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원하는 것이 너무 강하면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답을 찾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말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있는 것입니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7.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도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기다리는 것만이 믿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면,

    현재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을 알고 있다면,

    용서하는 삶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한다는 말씀을 알고 있다면,

    정직한 삶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듯 이미 알고 있는 용서하는 삶과 정직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면 먼저 이미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음성을 찾으면서

    이미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8. 기도의 목적은 문제 해결만이 아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일까요?

    물론 우리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목적이 문제 해결에만 있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의 믿음도 함께 흔들릴 수 있습니다.

    기도의 더 깊은 목적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웁니다.

    기도하면서 우리의 교만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기도하면서 우리의 욕심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기도하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께 무엇을 얻어내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가 변화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9. 기도했는데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때가 오히려 믿음이 필요한 순간일 수 있습니다.

    기도하기 전과 기도한 후의 상황이 똑같을 수 있습니다.

    문제도 그대로이고,

    사람도 그대로이고,

    환경도 그대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두려움 가운데 있던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원망하던 사람이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되고,

    조급했던 사람이 기다릴 수 있게 됩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기도의 응답일지도 모릅니다.


    10.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다

    기도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는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면서 말씀을 살펴야 합니다.

    말씀을 살피면서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길이 있다면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는 한 번의 요청으로 끝나는 행위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 걷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만 기도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원하는 답을 정해 놓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시기만 기다리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해 주세요.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 주세요.

    제가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리게 하시고,

    순종해야 할 때 순종하게 하시고,

    내 뜻을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게 해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해 주세요.

    제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해 주세요.”

    기도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말하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내딛는 믿음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내딛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때로는 아주 거창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마음에 조용히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지나치지 않고,
    그 말씀 앞에 자신의 마음을 내어놓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한 걸음씩 옮겨가는 것.

    저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네 동생 선옥이를 불쌍히 여겨라.”

    몇 년 전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동생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 마음에 아주 부드러운 감동이 찾아왔습니다.

    “네 동생 선옥이를 불쌍히 여겨라.”

    그 말씀은 제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남았습니다.

    동생은 바로 제 아래 동생으로 나이가 있지만, 미혼으로 경제력 없이 건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 만으로 힘겹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후에 동생은 친정 어머니가 돌아 가시기 전 임대 아파트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친정 어머니는 저희와 함께 몇 년을 같이 생활하시다가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시기 시작하셨는데, 어릴 적부터 할머니가 아픈 모습을 보며 자란 막내 어린 딸이 할머니를 걱정하여 할머니랑 생활했습니다.

    어린 딸의 말이
    “할머니가 많이 아프면, 내가 엄마, 아빠한테 전화 할 수 있잖아!~”
    “그러면, 엄마, 아빠가 빨리 올 수 있고”
    6살 딸의 말이 지금도 생각하면 기특합니다.

    다행히 친정 어머니가 거주 하시고 계신 임대 아파트는 저희가 새로 이사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위에 두 오빠들은 어떻게 어린 동생만 할머니하고 생활하느냐며, 두 아들들도 할머니하고 생활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동생이 늦게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동생으로 인하여 가족 간에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동생으로 인하여 아픈 할머니를 걱정하는 아이들 마음에도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친정 어머니와 나는 동생으로 인하여 가족 간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을 보고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부모의 가난으로 인하여 제대로 된 보호와 가르침을 받지 못하며 상처투성이인 동생의 아픔을 알기에, 저는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동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라고요.

    그러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생은 또 따로 생활하게 되었지요.
    저희는 저희대로 다시 아이들과 함께 생활 할 수 있는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제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속 동생에 대한 부담감을 부어 주셔서 위해서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들려 온 말씀이었습니다.

    “네 동생 선옥이를 불쌍히 여겨라.”

    저도 동생을 불쌍히 여기고 있었기에 계속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주님의 감동의 말씀이 마음에서 울리니,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에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동생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때부터 또 다른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모를 마음에서 부터 받아 들여져야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렇듯 말씀에 순종 한다는 것은, 저 한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순종은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해서
    그 순간 모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함께 살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제가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한 후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마음을 움직이셨고, 남편에게 얘기한 다음
    그 말씀에 순종 할 수 있도록 한 걸음 내딛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동생은 저희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직장도 얻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어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안정되었고,
    이제는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신기합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한 걸음 말씀에 순종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많은 일들은
    제가 계획하고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74714


    순종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더 흐른 후
    저는 뜻밖의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내가 동생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동생을 돕고 있었던 것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동생을 통해 나와 우리 가정도 돌보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생을 품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제가 오히려 많은 위로와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도 무언가를 채워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때로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은혜의 자리로
    내가 말씀에 순종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순종의 결과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 말씀의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이 어디로 가게 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에 순종하며 떠났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한 다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며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때
    동생과 함께 살게 될 미래를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정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마음에 주신 말씀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순종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셨다는 것을 조금씩 보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항상 큰 결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주 작은 마음의 움직임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용서하라는 마음이 들었을 때
    한 걸음 다가가는 것.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작은 손길을 내미는 것.

    내려놓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내 뜻을 내려놓는 것.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 앞에서
    내 감정보다 말씀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제가 이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마음을 정하는 것입니다.

    순종한다고 해서
    모든 결과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순종의 자리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일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순종 후에야 알게 되는 하나님의 뜻

    돌이켜보면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던 것은
    단순히 동생을 불쌍히 여기라는 말씀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제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하셨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하셨으며,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세밀하게 돌보고 계시는지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배웠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순종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 자신을 빚어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종의 또 다른 은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런데 때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부터 순종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순종.

    어쩌면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 큰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이미 들은 말씀에 대한 우리의 순종일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그때 모든 것을 알았던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마음에 주어진 한 말씀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한 걸음 뒤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서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십니다.
    지금 동생은 조금씩 신앙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다시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내 마음에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말씀 앞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모든 것을 이해한 후에 순종하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이미 알고 있는 말씀 앞에서도
    내 생각과 상황을 이유로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결과를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내딛는 믿음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때 배웠습니다.

    순종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이루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자리에 나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순종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어 가실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될 때가 많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말씀 앞에서 한 걸음 내딛어 봅니다.

    “주님, 제가 이해하지 못해도
    말씀하신다면 순종하겠습니다.”

    그 한 걸음의 끝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어 가실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함께 묵상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그 말씀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세요.

    말씀을 듣고,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
    그것이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 하나님께 묻는 사람, 다윗 | 성경 속 인물 이야기

    하나님께 묻는 사람, 다윗 | 성경 속 인물 이야기

    하나님께 묻는 사람, 다윗

    성경 속 인물 가운데 다윗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어린 목동이었던 다윗이 거대한 골리앗 앞에 나아가 싸웠던 이야기,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야기,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많은 시편을 남긴 사람.

    우리는 흔히 다윗을 믿음이 강한 사람, 용감한 사람, 하나님께 사랑받은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삶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에게서 아주 중요한 한 가지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묻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각보다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사무엘상 23장을 보면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공격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군사들과 함께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곧바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하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시자 다윗은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자 다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였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다윗은 경험이 있어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을 경험했고, 사울에게 쫓기는 긴 시간을 보냈으며, 수많은 위기 속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왕이 된 후에는 더 많은 경험과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자신의 경험과 판단만으로 결정해도 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하 5장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왔을 때도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블레셋 사람들이 또 공격해 왔을 때 다윗은 이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이유로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 모습이 참 중요합니다.

    어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가
    오늘 하나님께 묻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은혜가 오늘의 순종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의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단순한 지식 -믿음에 대한 이해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72029



    다윗은 하나님께 묻고, 들은 후 움직였습니다

    다윗에게서 또 하나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하나님께 질문만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묻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함께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놓고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면 내 뜻대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께 묻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다윗의 삶에는 이런 흐름이 반복됩니다.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움직입니다.



    다윗도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을 완벽한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에서 큰 죄를 범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따라 행동했고, 그 결과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빼앗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다윗의 삶에는 분명한 실패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다윗을 보여주는 이유는
    “다윗처럼 완벽하게 살아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윗의 삶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보게 됩니다.

    다윗은 죄를 지었지만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거나 변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가지고 나아갑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의 중요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묻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도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물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의 삶에도 결정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할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때로는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너무 쉽게 자신의 경험과 감정과 계산을 먼저 앞세웁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맞아.”

    “사람들이 다 이렇게 하니까.”

    “이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니까.”

    그러나 다윗의 삶은 우리에게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하나님께 먼저 묻고 있는가?”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모든 결정을 신비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시기를 기다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내 마음의 욕심을 살피고,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성경의 말씀에 비추어 내가 가야 할 길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

    다윗을 바라보면서 저는 이런 질문을 마음에 담아보고 싶습니다.

    “나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누구에게 먼저 묻는가?”

    사람에게 먼저 묻습니까?

    내 경험에게 먼저 묻습니까?

    내 감정에게 먼저 묻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먼저 묻습니까?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일 것입니다.

    다윗은 많은 실수를 했고 큰 죄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하나님을 향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따라가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저는 이것을 마음에 새겨보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도,

    내 경험이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에도,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에도,

    먼저 하나님께 묻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도
    바로 이런 모습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 제 생각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해주세요.”

    다윗의 이야기는 골리앗을 이긴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진짜 이야기는
    하나님 앞에서 묻고, 듣고, 때로는 넘어지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을 통해 한 사람의 위대한 업적보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믿음의 모습을 배워가고자 합니다.

  • 내면의 치유 시리즈 ②

    내면의 치유 시리즈 ②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도 치유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용서하지 못할까요?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모두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원망이 되고, 분노가 되고, 마음속에 단단한 벽을 만들기도 합니다.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왜 나를 그렇게 대했을까?”
    “나는 아직도 그 일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이러한 기억은 우리의 마음을 계속 괴롭히고 무겁게 붙잡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용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상처가 깊을수록, 배신이 클수록, 억울함이 클수록 우리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단순히 “용서하라”고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의 상처, 상한 감정을 치유하시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새롭게 만들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감정보다 먼저 믿음에서 시작되는 일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마음이 풀리면 하겠다.”

    하지만 성경은 조금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감정이 모두 해결된 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은 아직 아플 수 있습니다.

    눈물이 날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아시며, 우리와 함께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한 걸음 씩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도
    함께 치유해 가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힘으로 순종이 어려워 힘들어 하는 자들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의 상한 감정을 치유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억압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 제작: (ChatGPT)AI 생성 지이미지

    하나님을 깊이 알수록 은혜는 커집니다

    우리는 모두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하나님 앞에 잘못했고, 넘어졌으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수 없는 은혜를 베푸셨고, 갚을 수 없는 사랑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나도 이렇게 복음에 빚진 자인데…’

    이 깨달음은 억지로 참는 마음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내 마음을 붙잡고 있던 미움과 원망을 하나님께 맡기는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임재 안에서 주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게 되면 부정적인 마음에 자신을 내 맡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상한 감정을 맡겼을 때 누리게 되는 참 평안을 알게 되면
    오히려 주님의 사랑을 더욱 알고 싶은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정의와 심판을 맡기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영혼은 왜 중요할까요?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57717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나 자신을
    더 아프게 합니다

    원망은 상대방보다 먼저 내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미움은 생각을 지배하고,

    분노는 평안을 빼앗으며,

    복수심은 우리의 영혼을 지치게 만듭니다.

    겉으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과거의 상처를 반복해서 떠올리며 스스로를 괴롭히게 됩니다.

    용서하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대를 위한 일이기 전에 나 자신의 자유를 위한 일 입니다.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회복시키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까지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 마음부터 변화 시켜 주십니다.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상처,

    오랫동안 품어 왔던 원망,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눈물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어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아픔을 내려놓을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조금씩 부드럽게 하십니다..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순종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새롭게 변화 시켜 주십니다.


    용서는 치유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용서는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닙니다.

    과거의 상처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치유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 뿐 아니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치유하시고 억압에서 자유 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솔직히 내어 드려 보십시오.

    “하나님, 제 안에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 주십시오.”

    하나님은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자유하게 하시며,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함께 묵상해 보세요

    • 지금도 내 마음속에 놓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해 보세요!

    마무리하며

    용서는 인간의 의지 만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조금씩 배워 가는 삶의 과정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키시는 치유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최근에 수년 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블로그가 놀라울 정도로 쉽게 개설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떤 내용으로 채워야 할지, 사람들이 과연 읽어 줄지, 앞으로 꾸준히 운영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있었지만 쉽게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준비되면 시작해야지.’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때 시작해야지.’

    ‘시간이 여유로워지면 그때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시간만 길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 마음에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먼저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완벽하게 준비된 후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에 순종하여 먼저 한 걸음을 내딛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시작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쉽게 풀렸습니다.

    하나하나 길이 열렸고, 필요한 것들이 채워졌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면서 저는 이것이 단순히 제가 블로그를 하나 만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전도서에는 모든 일에 때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아직 그때가 아닐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시작할 때를 열어 놓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의 때가 항상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만들고 싶어 했던 블로그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이제는 충분히 준비되었으니 시작해도 되겠다.’

    라는 의미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주신 것은 조금 달랐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늦추다 보면 지금 주시는 은혜와 감동을 놓칠 수도 있으니,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라.’

    는 마음이었습니다.

    어쩌면 순종은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움직이는 사람이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결과를 보고 순종하고 싶어 합니다

    사실 우리는 순종하기 전에 결과를 알고 싶어 합니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알고 싶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데 아무런 결과가 없으면 어떻게 할지도 걱정합니다.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하나님, 먼저 결과를 보여 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과를 먼저 보여 주시기보다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라고 말씀하실 때가 많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든 것을 알고 출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이 먼저 갈라진 후에 발을 내딛은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물에 발을 담갔을 때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는 길이 열리면 걸어가겠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 걸어가면 길을 열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나는 앞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십니다.’

    ‘나는 결과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결과까지 알고 계십니다.’

    이것이 믿음이 아닐까요?

    그래서 순종은 때로 우리의 계산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맞는 것 같고, 내 경험으로는 저 방법이 더 나은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면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순종하고 걸어가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순종하여 한 걸음을 내딛고 나면 그때부터 보이지 않았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막막했습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일까?’

    수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걸음을 내딛고 보니 그다음 길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한 걸음 더 내딛으니 또 다른 길이 열렸습니다.

    그때 깨닫게 됩니다.

    내가 길을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길을 내가 뒤늦게 따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블로그도 그런 과정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었지만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마음을 움직이시고 한 걸음을 내딛게 하시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준비되었습니다.

    글을 쓰게 되었고, 하나의 글이 또 다른 글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제 안에 이런 확신이 생겼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고 계셨구나.’

    제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하나님께서 먼저 제 마음에 씨앗을 심으셨고 때가 되었을 때 그것을 꺼내어 시작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보다 순종을 보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글을 잘 써서가 아닙니다.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알아서도 아닙니다.

    그저 제 삶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기록하고, 제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때로는 제 글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표현이 서툴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읽어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해 이 일을 시작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마음에 순종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결과까지 제가 책임지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는 제 열심의 결과라기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드리고 싶어 합니다.

    좋은 예배를 드리고 싶고, 많은 일을 하고 싶고,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부활의 영광만 누리려 할 수는 없습니다.

    희생 없이 헌신을 말할 수 없고, 순종 없이 믿음을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이전에 기록했던 ‘십자가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라는 글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우리의 예배와 신앙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되려면 결국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예배당 안에서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배가 끝난 후 우리의 삶에서 그 고백이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순종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9581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분별하는가?|성경으로 분별하기


    순종은 거창한 일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말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사명을 받아야 하고, 대단한 일을 해야 하며, 많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은 때로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정직하게 하는 것.

    내게 맡겨진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말씀하신 것을 알고도 미루지 않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신 작은 감동을 외면하지 않는 것.

    어쩌면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그런 작은 순종 가운데 하나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열매를 맺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앞으로 이 블로그가 어떻게 사용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게 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일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 과정 또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저는 씨를 뿌릴 뿐입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모든 결과를 만들어 내려고 하면 금방 지치겠지만,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며 걸어간다면 오늘 해야 할 한 걸음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에 너무 흔들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숫자와 결과만 바라보며 낙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잃지 않고, 한 편의 글을 쓰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행하신 일을 진실하게 기록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보다 한 사람에게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전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순종하는 길이 사는 길입니다

    제 삶을 돌아보아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던 순간들은 대부분 제 계획이 완벽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족하고 연약했지만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그때의 순종이 다음 길을 열어 주는 시작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다시 한번 믿고 싶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내가 이루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내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믿으며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순종의 길이 항상 쉽고 편한 길은 아닙니다.

    때로는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을 지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견뎌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라면 그 길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결과만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의 마음과 삶도 함께 빚어 가십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시는 이유는 그 일을 통해 세상에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일을 순종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제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아직 모르는 것도 많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걸음 뒤에 또 다른 한 걸음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혹시 지금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시는 일이 있지만 계속 미루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조금 더 준비되면 하겠습니다.’

    ‘조금 더 상황이 좋아지면 시작하겠습니다.’

    ‘확신이 생기면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물론 신중하게 준비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분명한 마음을 주셨다면, 때로는 완벽한 준비보다 믿음으로 내딛는 한 걸음이 먼저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의 능력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함 가운데 일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순종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더 이상 미루지 않는 것.

    말씀하신 것을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것.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

    그것이 믿음의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그 믿음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루십니다.

    제가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길을 여십니다.

    제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제가 이루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순종하겠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해도 주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을 내딛겠습니다.

    그리고 제 삶을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순종하는 길이 사는 길임을 믿습니다.”

    아멘. 🙏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작은 마음을 소중히 여기며,

    그 마음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순종의 걸음을 시작할 때,

    이미 우리의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주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인격이시기에 교제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작정하면,
    주님은 결코 침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읽을 때 한 구절이 마음에 깊이 새겨지기도 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평안함과 확신을 주시기도 하며,

    예배를 드리는 중에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꿈을 통해 깨우쳐 주시고,

    믿음의 지체들과의 대화를 통해 필요한 답을 얻게 하시기도 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보게 하시고,

    일상 가운데 주시는 작은 깨달음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가시기도 합니다.


    *주님은 인격이십니다

    *https://manna.or.kr/QT/087-%EC%9D%B8%EA%B2%A9%EC%A0%81%EC%9D%B8-%EC%84%B1%ED%92%88%EC%97%90-%EC%9D%98%ED%95%9C-%EB%B9%84%EC%A0%84/


    주님은 단지 우리가 그분에 대해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실제로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주님도 우리와 함께 걸으며 말씀하시고
    우리의 삶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 음성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씀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성경을 기준으로 분별하고,

    기도하며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별된 말씀 앞에서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순종은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말씀을 외면한다면
    진정한 교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을 마음에 품으며,

    삶 속에서 순종으로 응답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귀 기울일 때,

    우리는 날마다 더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