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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정적인 생각과 싸우며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믿음

    부정적인 생각과 싸우며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믿음

    부정적인 생각과 싸우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 좋은 사람을 생각하면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 하고, 전도하고,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섬기는 모습입니다.

    물론 이런 모습도 믿음의 아름다운 열매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조금씩 해 가면서 한 가지를 더 깨닫게 됩니다.

    믿음의 적극성은 반드시 사람의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말씀을 붙들며, 잘못된 생각과 싸우는 것이 더 치열한 믿음의 모습일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조용해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보다 부정적인 생각과 싸우며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까지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는지,

    마음속에 어떤 감정이 올라왔는지,

    부정적인 생각과 함께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다른 사람이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내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주님을 의식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며,

    내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올 때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믿음의 가장 치열한 싸움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싸우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속으로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안 될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힘들면 어떡하지?’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을까?’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한 번 시작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

    특히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있을 때는 생각이 더 커지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싸우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대신 싸워 줄 수도 없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생각과 씨름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믿음으로 반응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랐다고 해서 내가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생각을 그대로 붙들고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것인지​입니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 기도하고,

    절망적인 생각이 들 때 말씀을 붙들고,

    마음이 자꾸 어두운 곳으로 향할 때 다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 싸우는 적극적인 믿음의 행동입니다.


    생각을 다스리는 것도 믿음의 훈련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떠올리는 것 자체를 항상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계속 붙들고 있을 것인지, 하나님께 가져갈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두려운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두려움만 계속 바라볼 수도 있고,

    “주님, 제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을 붙들어 주세요.”

    라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일이 떠올랐을 때 계속 상대방을 원망할 수도 있고,

    “주님, 제 마음에 있는 이 감정을 주님께 맡깁니다.”

    라고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미래가 불안할 때 최악의 상황을 계속 상상할 수도 있지만,

    “오늘 하루를 주님과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다시 현재의 자리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선택들이 쌓여 우리의 믿음을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믿음은 단지 교회 안에서 무엇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결정할 때 마음이 쫓기고 불안한 가운데서 하면 안 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73185

    때로는 하지 않는 것이 믿음의 행동이 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나 무언가를 더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하지 않는 것이 믿음의 행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화가 나지만 즉시 말하지 않는 것,

    상처를 받았지만 그대로 되갚지 않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내 주장을 밀어붙이지 않는 것,

    조급하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

    겉으로 보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선택이 있습니다.

    내 감정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내가 원하는 결과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멈추는 것도 적극적인 믿음일 수 있습니다.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은 결코 수동적인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무엇이라도 해야 마음이 놓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다리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기도하면서 기다릴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성실하게 하되,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결과를 억지로 만들어 내려고 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내가 앞당기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기다림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 내 마음을 붙들고 있는 적극적인 시간입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려놓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려놓는다고 해서

    “이제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진정한 내려놓음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결과까지 내가 만들어 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것은 기도하고,

    행동할 것은 행동하고,

    순종할 것은 순종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것이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적극성과 내려놓음의 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작은 선택이 믿음을 만들어 갑니다

    신앙은 특별한 순간에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작은 선택을 통해 조금씩 만들어집니다.

    화가 났을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을 때 말씀을 떠올리는 것,

    기도하기 싫은 날에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을 때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정직을 선택하는 것.

    이런 모습은 사람들에게 크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선택을 보고 계십니다.

    사람의 눈에는 사소한 일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순간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적극성은 ‘얼마나 많이 했는가’에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믿음이 약할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믿음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믿음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잠시 멈추는 것이 믿음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말하는 것이 순종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침묵하는 것이 순종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 순간 누구를 바라보고 있었느냐​일 것입니다.

    내 감정만 바라보고 있었는지,

    사람의 반응만 바라보고 있었는지,

    눈앞의 상황만 바라보고 있었는지,

    아니면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말입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점 깨닫게 됩니다.

    믿음은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곳에서만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주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찾아올 때 다시 말씀을 붙들고,

    두려움이 밀려올 때 기도하며,

    화가 날 때 내 감정을 다스리고,

    조급할 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성실하게 감당하면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결코 안일한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행동보다 더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싸움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십니다.

    내가 오늘 어떤 생각과 싸웠는지,

    어떤 감정을 내려놓았는지,

    어떤 유혹을 이겨 냈는지,

    어떤 순간에 다시 주님을 바라보았는지를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린 기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택한 순종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눈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정적인 생각과 싸우며 지켜 낸 마음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저는 그런 믿음을 배우고 싶습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더 많이 움직이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바르게 살아가려는 믿음.

    내 뜻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내 마음을 다스리는 믿음.

    부정적인 생각이 밀려와도 그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다시 말씀으로 돌아오고,

    다시 기도로 돌아오고,

    다시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적극적인 믿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사람의 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조금씩 변화되고,

    내 생각이 말씀 앞에서 다듬어지고,

    내 감정이 하나님께 맡겨지고,

    내 뜻이 조금씩 내려놓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주님을 믿으며,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며,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충실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순종이 가장 어려웠던 자리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

    순종이 가장 어려웠던 자리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순종을 배웠습니다.

    말씀을 읽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는 것도 순종이었고, 내 생각과 다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도 순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가장 어려웠던 순종 중 하나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말이 조금 낯설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 문제가 단순히 부부 사이의 갈등이나 성격 차이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문제였고, 하나님 앞에서 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아프고 긴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하면 모든 것이 다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제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기대가 있었습니다.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함께 말씀을 배우고, 함께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습니다.

    신앙 안에서 서로를 세워 주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가정을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기대했던 모습과 현실 사이에는 점점 큰 간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결혼생활과는 다른 모습이 나타났고, 제가 기대했던 신앙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제 마음속에 있던 기대가 하나씩 무너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힘들었던 것은 신앙을 바라보는 방향까지 서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무엇보다 신앙의 본질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저의 신앙 생활에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오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저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사역에 더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말씀의 기준을 배우려고 했고, 남편은 사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는 마치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는데 현실에서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참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현실을 바라보면 도무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데, 주님은 제 마음에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라.”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을 믿어라.”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변할 가능성도 없어 보였고, 제가 무엇인가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

    목놓아 울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말할 힘조차 없어서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기도를 해야 하는데 기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주님! 남편에게 말씀해 주세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마음속에는 수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입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제게 십자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님께서 제 마음에 십자가를 비추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때는 참 이상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말을 하고 싶었는데,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제가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제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따지고 싶었던 것들,

    그 모든 말들이 십자가 앞에서는 잠잠해졌습니다.

    십자가는 제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걸어가신 길이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사랑 때문에 자신을 내어주신 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제가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은 단순히 남편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자아와 내 뜻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본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자다”

    어느 날 주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자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제 마음은 참 복잡했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돕는 자’라는 말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돕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무조건 남편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일까?

    내 생각은 내려놓고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일까?

    많은 질문이 생겼습니다.

    남편에게는 도울 방법이 없었습니다.
    정확히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 말씀을 가르쳐 가셨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돕는 자’는 내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생각도 없애고,

    내 감정도 무시하고,

    내가 받은 상처도 없는 것처럼 만들고,

    무조건 상대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제게 먼저 내가 누구의 사람인가를 다시 묻게 하셨습니다.

    나는 남편의 사람이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남편을 돕는 것도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 안에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사람을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하나님 앞에서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제 안에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순종은 상대가 완벽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사람을 바라보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상대가 완벽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대의 모든 행동이 옳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상대를 인정하기 때문에만 순종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주님, 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는 붙들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순종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님은 남편보다 먼저 제 마음을 다루셨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저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남편의 신앙이 달라져야 하고,

    남편의 행동이 달라져야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남편을 먼저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을 먼저 만지셨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기대를 내려놓게 하셨고,

    사람을 바라보며 실망했던 마음을 내려놓게 하셨고,

    제가 옳다는 생각에 붙들려 있던 마음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제게 하나씩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내 몫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서야 할 자리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6641


    순종은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배운 또 하나의 순종은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무언가를 말해서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

    내 힘으로 상황을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않는 것.

    때로는 이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다림 속에서도 일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서는 것이었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씀드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씀드리고,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제가 배워간 순종이었습니다.


    순종은 아픔이 사라진 뒤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는 순종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순종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순종하면 상황도 곧 좋아지고,

    순종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제가 경험한 순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픈 가운데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었고,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말씀을 놓지 않는 것이었고,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마음에 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가 제게 순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쉽게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순종은 책에서 배운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순종은 십자가 앞에서 내가 내려놓아야 했던 수많은 것들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돕는 자’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예전에는 ‘돕는 자’라는 말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도와야 하는데, 돕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돕는다는 것은 상대의 모든 것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가 잘못한 것까지 옳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니며,

    내 존재를 없애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때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말해야 할 것도 있고,

    때로는 기다려야 할 것도 있고,

    때로는 내려놓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준을 내 감정이나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찾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에도 주님은 함께 계셨습니다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몰랐습니다.

    왜 이런 시간을 지나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주님께서 왜 제게 그렇게 어려운 순종을 요구하시는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울었습니다.

    말할 힘이 없어서 가만히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알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주님은 저를 버려두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울고 있을 때도 함께 계셨고,

    제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도 함께 계셨고,

    제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도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보아라.”

    저는 그 시간을 통해 남편에게 순종하는 법만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고,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법을 배웠고,

    내 뜻을 내려놓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조금씩 배웠습니다.


    순종은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크게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순종을 완전히 다 배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제 안에는 내 생각이 있고,

    내 감정이 있고,

    내가 원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때로는 다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압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붙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기 위해 울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때의 눈물은 하나님께서 모르고 계셨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아픔도 하나님께서 외면하신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은 주님께서 제 안에 있는 많은 것들을 만지시고,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며,

    제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가르쳐 주신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순종을 말할 때 쉽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순종은 때로 눈물로 배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서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도 제가 먼저 순종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다른 사람의 변화를 기다리기 전에

    먼저 제 마음을 돌아보게 하소서.

    제가 옳다는 생각에 붙들리기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이게 하소서.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아픔 가운데에서도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소서.

    제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사랑으로 섬기는 것임을 배우게 하소서.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게 순종하기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제가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앉습니다.

    제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지만,

    한 가지는 믿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리에는

    반드시 주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그때도 주님이 함께 계셨음을

    고백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인식이 바뀌면 삶의 의미가 보인다

    인식이 바뀌면 삶의 의미가 보인다

    의미는 발견하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수많은 선택과 사건들이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직장에서 일하고, 가족과 대화하고, 길을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기쁜 일이 있고, 어떤 날은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바쁜 일상속에서는 하나님을 인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면서도 어떤 사람은 삶 속에서 깊은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반복되는 일상일 뿐이라고 느낍니다. 같은 직장, 같은 가정, 같은 도시에서 살아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마다 전혀 다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많은 사람들은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하고, 좋은 직장을 가지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며, 문제가 없어야 만족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실제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이 좋아도 허무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인식입니다.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진실을 외면하는 삶의 본질, 자기 정당화가 반복될 때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



    우리는 아는 만큼 보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인식한 만큼만 세상을 이해합니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아도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어떤 사람은 그저 지나가는 배경 정도로 생각합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사랑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비난만 기억합니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보이는 대로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믿는 대로 보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마음속에 감사가 있는 사람은 감사할 이유를 발견하고, 불평이 가득한 사람은 어디서든 불평거리를 찾습니다.

    희망을 품은 사람은 가능성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위험만 보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현실보다 인식에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38752

    인식하지 못하면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너무 가까이 두고 살아갑니다.

    매일 함께하는 가족, 건강하게 움직이는 몸, 친구와 나누는 대화, 평범한 하루….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잊어버립니다.

    공기의 소중함은 숨쉬기 어려워질 때 비로소 알게 되고, 건강의 가치는 병을 얻은 후에야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의 사랑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식하지 못하면 의미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삶은 점점 단조롭고 메마르게 변합니다.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삶은 의무만 남은 시간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 :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삶은 다시 살아납니다

    반대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놀라울 만큼 달라집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사명으로 여기면 기쁨이 생기고, 같은 사람을 만나도 하나님이 보내신 만남이라고 생각하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평범한 하루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감사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의미는 우리의 마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의미를 가진 사람은 쉽게 지치지 않습니다.

    왜 이 일을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미를 가진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현재의 고난 너머에 더 큰 목적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을 지탱하는 힘은 환경보다 의미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의미 없는 삶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목적 없이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관심 속에 있으며,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 자랍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은 얼마나 귀한 존재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우연히 세상에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목적과 사명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목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드리지만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면 형식이 되고,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지 못하면 의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예배는 만남이 되고, 기도는 교제가 되며, 말씀은 살아 있는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모든 것은 인식의 차이에서 시작됩니다.


    진정한 변화는 인식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삶을 바꾸기 위해 환경부터 바꾸려고 합니다.

    직장을 바꾸고, 집을 옮기고, 인간관계를 정리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환경의 변화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환경도 곧 익숙해지고, 다시 불평과 허무함이 찾아옵니다.

    반대로 인식이 변화하면 같은 환경 속에서도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감사는 행복을 만들어 내고, 용서는 관계를 회복시키며,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는 사람은 문제 속에서도 성장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는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곧 인식의 변화입니다.


    의미 없는 삶은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삶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큰 성공을 이루고, 누군가는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만, 자신의 삶은 평범하기만 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의미 없는 인생이 없습니다.

    평범한 하루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시고, 작은 친절 하나도 결코 헛되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도, 조용히 드리는 기도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섬김도 하나님은 모두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은 의미가 없어서 공허한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허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오늘 하루를 다시 바라보십시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 속에도, 지나온 시간 속에도, 현재의 어려움 속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배움과 성장의 의미가 있습니다.

    인식이 바뀌면 삶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는 의미 없는 존재가 없듯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의 삶에도 결코 의미 없는 하루는 없습니다. 오직 그 의미를 발견하는 눈을 가질 때, 평범한 일상은 은혜의 시간이 되고, 반복되는 하루는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소중한 여정이 됩니다.

  •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알지 못하고 하는 신앙생활은 종교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수록 주님을 묵상하지 않고는,
    그분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삶으로 나타내며 살아간다는 것이
    제게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람의 열심과 의지로는 잠시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님과의 관계가 없다면 결국 사랑도, 순종도, 섬김도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이 섬기고,
    더 많이 양보하고,
    더 많이 이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의지로 시작한 사랑은
    내 마음이 지치면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 돌아오지 않을 때 마음이 상하고,
    내가 베푼 만큼 인정받지 못하면 서운해지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불평이 올라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안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지금 주님 때문에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먼저,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는 어렵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이 단순히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한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은 제 마음의 방향을 다시 주님께 돌려놓는 시간이었습니다.

    내 생각이 앞서 있을 때 말씀 앞에 서고,
    내 감정이 앞서 있을 때 기도로 내려놓고,
    내 뜻을 주장하고 싶을 때 주님의 뜻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을 바라보다 보면
    조금씩 제 안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내가 손해 보는 것을 먼저 생각했다면
    어느 순간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고,

    예전에는 ‘왜 저 사람은 저럴까?’라고 생각했다면
    조금씩 ‘저 사람에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한순간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마음을 그대로 붙들고 있기보다
    주님 앞에 가지고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연약함 속에서도 일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제가 연약하고 부족했던 시간에도
    한 걸음씩 인도해 주셨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는 필요한 일터를 허락하셨고,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보내셔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당장 필요한 일을 해야 했고,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경험했던 일들이
    그냥 지나간 시간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일은 제게 인내를 가르쳐 주었고,
    어떤 일은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어떤 일은
    제가 얼마나 쉽게 판단하고,
    얼마나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때는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저를 빚어 가시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만
    우리를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배우게 하시는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 같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9137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과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고 싶어 하시는 곳이 다르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아마 신앙의 길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

    내가 편한 자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마음을 두고 계신 곳을 바라보는 것.

    그런데 주님을 묵상하다 보면
    조금씩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의 편안함만을 위해 사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면받는 사람에게 다가가셨고,
    아픈 사람을 돌아보셨으며,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마음을 기울이셨습니다.

    주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이라면 이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실까?’

    ‘주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실까?’

    ‘내가 지금 해야 할 순종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방향과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다를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필요한 것이
    내 뜻을 관철하는 열심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순종이라는 것도 배워 갑니다.


    섬김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같은 행동을 하고 있어도
    그 마음의 동기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칭찬받기 위해 섬길 수도 있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섬길 수도 있습니다.

    또 내가 섬겼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섬길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는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몰라줄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섬김은 내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보다
    누구의 마음으로 그 일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을 배워 갑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섬김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으로 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하는 것.

    내가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
    주님께서 아신다는 사실로 만족하는 것.

    그것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의 섬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 간다는 것

    아버지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특별한 일을 많이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에게 한마디 더 참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과 상황 속에서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는 것.

    그렇게 한 번 더 주님을 바라보고
    한 번 더 내 마음을 내려놓는 것.

    어쩌면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는 과정은
    그렇게 아주 작은 순종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해야 할 때 마음에 붙들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생각과 감정 때문에 머뭇거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저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 주시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말씀을 통해 돌이키게 하시며,
    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시간을 통해 하나씩 보여 주십니다.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하나님의 손길

    돌이켜보면 제 삶에는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때는 답을 알 수 없었습니다.

    왜 이곳으로 보내셨는지,
    왜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는지,
    왜 내가 원하지 않았던 일을 경험하게 하셨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금씩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이해하게 만들고,
    그때 배운 것이 지금의 누군가를 섬기는 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당장 이해되지 않는 일 앞에서도
    조금은 다르게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라고 묻기보다

    ‘주님, 이 일을 통해 제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라고 묻게 됩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상황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조금씩 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역시
    주님께서 제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제는
    내가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주님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마음에 얼마나 순종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마음 아파하시는 곳에서
    나도 함께 마음 아파하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나도 조금 더 사랑하고,

    주님께서 돌아보시는 사람을
    나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제 힘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을 묵상하고,
    말씀 앞에 서고,
    기도하며,
    내 마음을 주님께 내어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해 주세요.
    제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을 바라보게 해 주세요.
    사람의 열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주님께 받은 사랑으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제 힘으로 순종하려 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함으로 순종하게 해 주세요.’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제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저를 인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했지만
    그 자리에서부터 한 걸음씩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걸어가고 싶습니다.

    오늘 제가 서 있는 그곳이
    제가 원해서 온 자리인지,
    예상하지 못했던 자리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마음을 두신 곳에
    저의 마음도 머물게 하시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저도 사랑하게 하시며,

    주님께서 맡겨 주신 작은 자리에서
    묵묵히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훗날 다시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을 때
    ‘그때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셨구나.’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을 바라봅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저의 마음도 있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