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알지 못하고 하는 신앙생활은 종교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수록 주님을 묵상하지 않고는,
그분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삶으로 나타내며 살아간다는 것이
제게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람의 열심과 의지로는 잠시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님과의 관계가 없다면 결국 사랑도, 순종도, 섬김도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이 섬기고,
더 많이 양보하고,
더 많이 이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의지로 시작한 사랑은
내 마음이 지치면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 돌아오지 않을 때 마음이 상하고,
내가 베푼 만큼 인정받지 못하면 서운해지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불평이 올라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안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지금 주님 때문에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먼저,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는 어렵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이 단순히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한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은 제 마음의 방향을 다시 주님께 돌려놓는 시간이었습니다.

내 생각이 앞서 있을 때 말씀 앞에 서고,
내 감정이 앞서 있을 때 기도로 내려놓고,
내 뜻을 주장하고 싶을 때 주님의 뜻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을 바라보다 보면
조금씩 제 안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내가 손해 보는 것을 먼저 생각했다면
어느 순간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고,

예전에는 ‘왜 저 사람은 저럴까?’라고 생각했다면
조금씩 ‘저 사람에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한순간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마음을 그대로 붙들고 있기보다
주님 앞에 가지고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연약함 속에서도 일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제가 연약하고 부족했던 시간에도
한 걸음씩 인도해 주셨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는 필요한 일터를 허락하셨고,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보내셔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당장 필요한 일을 해야 했고,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경험했던 일들이
그냥 지나간 시간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일은 제게 인내를 가르쳐 주었고,
어떤 일은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어떤 일은
제가 얼마나 쉽게 판단하고,
얼마나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때는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저를 빚어 가시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만
우리를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배우게 하시는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 같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9137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과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고 싶어 하시는 곳이 다르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아마 신앙의 길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

내가 편한 자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마음을 두고 계신 곳을 바라보는 것.

그런데 주님을 묵상하다 보면
조금씩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의 편안함만을 위해 사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면받는 사람에게 다가가셨고,
아픈 사람을 돌아보셨으며,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마음을 기울이셨습니다.

주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이라면 이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실까?’

‘주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실까?’

‘내가 지금 해야 할 순종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방향과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다를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필요한 것이
내 뜻을 관철하는 열심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순종이라는 것도 배워 갑니다.


섬김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같은 행동을 하고 있어도
그 마음의 동기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칭찬받기 위해 섬길 수도 있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섬길 수도 있습니다.

또 내가 섬겼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섬길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는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몰라줄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섬김은 내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보다
누구의 마음으로 그 일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을 배워 갑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섬김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으로 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하는 것.

내가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
주님께서 아신다는 사실로 만족하는 것.

그것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의 섬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 간다는 것

아버지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특별한 일을 많이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에게 한마디 더 참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과 상황 속에서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는 것.

그렇게 한 번 더 주님을 바라보고
한 번 더 내 마음을 내려놓는 것.

어쩌면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는 과정은
그렇게 아주 작은 순종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해야 할 때 마음에 붙들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생각과 감정 때문에 머뭇거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저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 주시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말씀을 통해 돌이키게 하시며,
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시간을 통해 하나씩 보여 주십니다.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하나님의 손길

돌이켜보면 제 삶에는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때는 답을 알 수 없었습니다.

왜 이곳으로 보내셨는지,
왜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는지,
왜 내가 원하지 않았던 일을 경험하게 하셨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금씩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이해하게 만들고,
그때 배운 것이 지금의 누군가를 섬기는 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당장 이해되지 않는 일 앞에서도
조금은 다르게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라고 묻기보다

‘주님, 이 일을 통해 제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라고 묻게 됩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상황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조금씩 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역시
주님께서 제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제는
내가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주님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마음에 얼마나 순종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마음 아파하시는 곳에서
나도 함께 마음 아파하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나도 조금 더 사랑하고,

주님께서 돌아보시는 사람을
나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제 힘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을 묵상하고,
말씀 앞에 서고,
기도하며,
내 마음을 주님께 내어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해 주세요.
제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을 바라보게 해 주세요.
사람의 열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주님께 받은 사랑으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제 힘으로 순종하려 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함으로 순종하게 해 주세요.’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제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저를 인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했지만
그 자리에서부터 한 걸음씩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걸어가고 싶습니다.

오늘 제가 서 있는 그곳이
제가 원해서 온 자리인지,
예상하지 못했던 자리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마음을 두신 곳에
저의 마음도 머물게 하시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저도 사랑하게 하시며,

주님께서 맡겨 주신 작은 자리에서
묵묵히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훗날 다시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을 때
‘그때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셨구나.’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을 바라봅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저의 마음도 있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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