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사랑으로 걷는 길

가정의 회복과 사랑, 용서와 관계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 갈등-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시작된 우리 가족의 갈등

    갈등-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시작된 우리 가족의 갈등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족의 갈등 상황이 시작됐습니다.

    결혼하고 8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친정 부모님과 생활을 합쳐야만 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부모님과 생활을 합치는 것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아이들의 교육과 우리 가정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결혼할 때부터 한 가지 소망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서로 사랑하며,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가정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하게 해 달라고 어릴때 부터 기도해 왔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 것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큰 갈등 없는 환경에서 가정을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당시 하나님을 알지 못하셨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습니다.

    부모님 두 분 사이에는 갈등이 참 많았습니다.
    서로 골이 깊은 갈등을 극복해 나가기 보다 상대방을 탓하고 비난하는 모습으로 일관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부모님의 관계가 참 많이 싫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모습을 보아 왔던 저에게 부모님의 생활은 그리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부모님의 생활 방식에 특별한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함께 생활한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과 생활을 합치는 것에 대해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남편은 맏사위로서 부모님을 외면할 수 없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모두가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결국 남편의 뜻에 따라 저희는 부모님과 생활을 합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왜 꼭 함께 살아야 할까?’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환경이 되면 어떻게 하지?’

    여러 가지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의 상황을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부모님의 형편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아버지는 페인트 기술을 가지고 계셨으나 소득이 일정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어머니 역시 생활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우셨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생활은 두 분에게 큰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1998년,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그것도 암 중기 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미 경제적으로 힘겨운 상황에서 어머니의 병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IMF라는 큰 경제적 어려움까지 닥쳤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은 부모님에게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아버지에게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 익숙하게 살아오던 공간을 떠나, 술을 마시지 않는 점잖은 사위가 있는 딸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신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정말, 아버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는 59세였습니다.

    오랫동안 자신만의 생활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삶의 공간과 방식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점점 더 술에 의존하셨습니다.

    술을 드시는 빈도도 날마다 높아졌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참 힘들었고, 가족 간에도 갈등이 생겼지만, 누구 하나 갈등을 표출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아버지를 판단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저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술을 찾으시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암 진단.

    경제적인 어려움.

    IMF로 인한 사회 전체의 불안.

    자신이 평생 살아온 공간을 떠나야 했던 상황.

    그리고 사위와 함께 살아가면서 느꼈을 여러 가지 불편함과 자존심의 상처까지.

    어쩌면 아버지는 그런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술로 잠시 잊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을 의지하는가? 술을 의지하셨던 친정아버지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08142



    물론 술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저는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것이 싫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그렇게밖에 자신의 힘겨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그 시간이 앞으로 제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말입니다.

    당시에는 그저 원하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염려했고, 우리 가정의 평안이 깨질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인생에는 내가 원하지 않았던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우리 가정에 생겼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단순히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많은 상황 속에서 흔들릴 수 있는지 보게 되었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아픔을 감당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그 시간을 지나면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술을 드시는 아버지의 모습만 보면 답답하고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아버지의 삶을 조금씩 생각해 보게 되면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아버지만의 무거운 인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제가 여러 가지 삶의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그때의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인생은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을 통해서도 나를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훗날 제가 부모님을 바라보는 마음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환경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가족의 연약함을 함께 바라보고, 힘든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도 삶의 중요한 교육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언제나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갈등도 있었고, 마음이 힘든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생각과 계획대로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길이라도 그 길을 지나면서 배우게 되는 것이 있고,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이 훗날 돌아보면 하나의 의미로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때를 생각할 때 단순히

    ‘나는 부모님과 살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살게 되었다.’

    라고만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는 부모님의 아픔이 있었고, 우리 가정의 고민이 있었으며,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내가 원하지 않았던 그 시간에도 나와 함께 걷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저는 가족을 바라보는 마음을 조금씩 배워 갔습니다.

    그때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편이 아립니다.

    술에 기대어 힘겨운 시간을 견디셨던 아버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던 딸.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함께 지나야 했던 우리 가족.

    지나고 보니 그 시간도 제 인생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시간이 아니라, 오래 기억하고 싶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안에 아픔도 있었지만, 그 아픔을 통해 배운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가장 힘겨운 순간에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연약함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께서 조금씩 다듬어 가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 네 고집으로 순순히 남편을 따르겠느냐?

    네 고집으로 순순히 남편을 따르겠느냐?

    남편과의 갈등이 심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주님 앞에 주저앉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속상해서 한참을 울다가, 그때도 주님께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제발 남편에게 직접 말씀해 주세요.”

    “제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으니, 주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세요.”

    “남편이 주님의 뜻을 알게 해 주세요.”

    저는 어떻게 해야 남편이 변할까? 라는 생각과 함께 넋두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직접 말씀해 주셔서 남편이 깨닫고 달라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속에 있는 이야기를 주님께 다 쏟아 놓았습니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었습니다.

    그저 힘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이 조금씩 잠잠해졌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72414



    주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남편에게 직접 얘기해 주고, 너에게는 일러 주지 않았을 때 네 고집으로 순순히 순종하겠느냐?”

    순간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었는데, 울던 마음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아… 그러네.’

    사실 저는, 남편이 하나님께 직접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에는

    제가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제 중심을 아셨던 것이지요.

    사실 매번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분별하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쉽고 편안한 삶을 구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아주 간단한 질문 하나를 던지셨습니다.

    “그런데 네가 정말 남편의 말에 순순히 따르겠느냐?”

    그 질문 앞에서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남편이 무엇을 말 하느냐 보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더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저는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먼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설령 저의 그 생각이 맞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먼저 저를 변화시키기로 작정하신 듯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제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다른 마음을 주셨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자다.”

    그 말씀이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말씀이었습니다.

    아내의 역할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을 돕는다 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무조건 순종하고 또 무조건 도와야 하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수없이
    몰려들었습니다.

    남편이 잘 몰라서 헤매고 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옆에서 기도하고, 필요한 말을 지혜롭게 전하면서,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제가 알고 있었던 아내의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 제 마음속에는 아주 솔직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남편이 좀 온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말 그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 하필이면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사람을 만나게 하셨을까요?’
    그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네가 나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가 변화하기를 기다리기보다, 네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먼저 돌아보아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여 주셨습니다.

    기도하는 것.

    중보하는 것.

    사랑으로 돕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 있는 고집과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내려놓는 것.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기를 원하셨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돌이켜 보면,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 중보하는 것, 사랑으로 돕는 것 그 한 부분 한 부분을 모두 주님께로 부터 배워야 했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네 고집으로 순순히 따르겠느냐?”

    그 한마디에 저는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가장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을 먼저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마음부터 만지기도 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저는 그 질문을 기억합니다.

    “네 고집으로 순순히 따르겠느냐?”

    그 질문 앞에서는 여전히 제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갈등 때문에 주님 앞에 주저앉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제 고집을 내려놓게 하시고, 아내로서의 자리를 다시 가르쳐 주신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하십니다.
    연약한 자를 위해서 중보기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 실제를 알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요.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중보 기도로 배우자를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안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 이라고요.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의 모든 면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가치관의 변화!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일 입니다.
    사람의 설득이나 지혜로운 말로 되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도 성령님의 역사가 제 삶 가운데서 충만하게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오늘도 새롭게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믿는 법을 배웠고, 성경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한편에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떠올랐고, 어떤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질문은 다른 사람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교회에 다니는 것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같은 것일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정말 같은 것일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습니다.
    함께 교회에 가고,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신앙생활의 중요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정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손해를 보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부딪힐 때 무엇을 선택하는지.

    그런 순간마다 내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가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을 어느 날 남편에게 꺼냈습니다.

    결혼한 지 약 13년이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요?”

    아마 제 질문은 남편에게 너무 갑작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화를 냈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그때는 저도 당황했습니다.

    왜 그 질문 하나가 그렇게 큰 감정을 불러일으켰을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질문이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던져지는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다고 해서 자동으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
    기도를 많이 하는 것,
    봉사를 많이 하는 것,
    예배를 빠지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은 소중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는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이루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이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길이라면 걸어가는 것.

    내 감정과 자존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하나님 앞에서 다시 나를 돌아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닐까요?

    남편의 좌절을 바라보며

    지금 남편은 자신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깊은 좌절감을 표현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오히려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하나님을 향해 가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지 못하는 사람보다,

    “나는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가?”

    라고 고민하는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 더 진지하게 서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부족함이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내딛는 믿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내 뜻을 먼저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감정에 끌려갈 때가 있습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서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걸음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부족함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는 것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7894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완벽함의 길이 아니라 순종의 길입니다

    저 역시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 앞에서 나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삶을 살아갈수록 그 질문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단지 마음속에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갑니다.


    사랑은 선택이고, 순종이며, 삶의 방향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늘 한마디를 참을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 저 자신에게 질문해 봅니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조심스럽게 건네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그 사랑은 우리의 말보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고 있습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아직 걸어가는 중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바라보고, 다시 하나님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저도 오늘 다시 그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며,
    그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삶을 살아가는 길.

    그 길을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열매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열매

    믿음의 열매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흔들리지 않고, 항상 기도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이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는 아직 믿음이 부족한가 보다.”

    하지만 믿음의 열매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다음 날 바로 열매가 열리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고 해서 우리의 성품과 삶이 한순간에 완전히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씨앗으로 시작하여 자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은 삶의 방향을 바꾸어 갑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화가 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며, 때로는 두려움과 염려에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내 힘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하나님께 맡기기 시작하고, 미워했던 사람을 조금씩 용서하려 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살아가려 합니다.

    예전에는 어려움을 만나면 원망부터 했다면 이제는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게 됩니다.

    완전히 달라진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사랑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삶에서 사랑을 매우 중요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사랑 역시 저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대할 때입니다.

    상처를 주었던 사람을 용서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쌓이면 조금씩 변화가 나타납니다.

    “저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들고,

    “하나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셨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마음으로 용서하기 어려워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믿음의 열매가 자라는 과정입니다.

    어려움 속에서 믿음의 뿌리가 깊어집니다

    평안할 때의 믿음보다 어려움 가운데서 드러나는 믿음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기고, 아무리 기도해도 상황이 쉽게 바뀌지 않을 때는 우리의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경험을 통해 믿음의 뿌리가 깊어집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것은 믿습니다.”

    이런 고백이 조금씩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59239


    *깨달음 -민사소송 진행 가운데 가장 크게 얻은 것

    넘어졌다고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화낼 수도 있고,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면서도 마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넘어졌을 때 어디로 돌아가느냐입니다.

    믿음이 자라면 넘어졌을 때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 제가 또 넘어졌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납니다.

    어쩌면 믿음의 성숙이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열매는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자라면 그 변화는 결국 삶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말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어려움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나에게 손해가 되는 일을 무조건 피하려 했다면 이제는 옳은 일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잘못만 보였다면 이제는 나 자신의 부족함도 돌아보게 됩니다.

    예전에는 받은 상처를 오래 붙잡고 있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 맡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이 그 변화를 알아보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예전과 조금 달라졌네.”

    바로 이런 변화가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열매가 아닐까요?

    하나님은 열매가 완성되기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빨리 변하고 싶어 합니다.

    기도하면 곧바로 믿음이 깊어지기를 원하고, 말씀을 읽으면 곧바로 삶이 달라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장을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어린 나무에게 열매를 빨리 맺으라고 재촉하지 않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면서 한 걸음씩 인도하십니다.

    오늘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인내할 수 있었다면 그것도 은혜입니다.

    넘어졌지만 다시 하나님께 돌아왔다면 그것 역시 믿음의 한 걸음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빨리 변화했느냐가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느냐입니다.

    믿음은 결국 삶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은 말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나타나고, 용서로 나타나며, 정직함으로 나타납니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길을 선택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묵묵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아직 내 삶에 부족한 것이 많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열매가 아직 작다고 해서 나무가 죽은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 있고, 자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려고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용서하려고 한다면, 그곳에서 이미 믿음의 열매가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열매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긴 시간 속에서 조금씩 자랍니다.

    그리고 어느 날 뒤돌아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변화시킨 것 같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열매를 바라볼 때 우리가 해야 할 고백은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저를 여기까지 자라게 하셨군요.”

    그 고백 안에 믿음의 열매가 있습니다.

  • 엄마도 몰라서 주님께 묻는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엄마도 몰라서 주님께 묻는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주님께 묻는 길

    얼마 전에 큰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금의 선택이 맞는 것인지,
    언제쯤 이 막막한 시간이 지나갈지 알 수 없어 힘들어 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저 역시 쉽게 답을 해 줄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부모라면 자녀에게 분명한 길을 알려 주고 싶지만, 인생에는 부모도 대신 답해 줄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한동안 아이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던 순간,
    제 입에서 자연스럽게 한마디가 흘러나왔습니다.

    “엄마도 몰라서 주님께 묻는단다.”

    그 짧은 한마디에 아이는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말은 아들 만을 위한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길을 잃었던 지난날의 제 이야기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주님께 길을 묻고 있는 제 삶의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출처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엄마도 몰라서 주님께 묻는단다.”

    아이에게는 짧은 말이었지만,
    돌아보니 그 안에는 제 인생의 많은 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언제나 길을 물었던 사람은 아닙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도 몰랐고,
    가정을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도 몰랐고,
    자녀를 키우면서도 몰랐습니다.
    그럴 때 마다 제 힘으로 제 지혜로 하려고 했습니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지금 하는 결정이 맞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던 날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다 제 힘과 지혜라는 것이 얼마나 한없이 부족한 것인 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됐습니다.

    주님께 묻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주님은 보고 계시니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돌아보면 제 인생은 제가 답을 잘 찾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모를 때마다 하나님께 물으며 걸어온 시간이 쌓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그 말을 해 주고 난 후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과거의 간증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엄마도 몰라서 주님께 묻는단다.”

    이 말은 사실 지금의 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여전히 모르는 길 앞에 서 있습니다.

    여전히 기다려야 하는 문제들이 있고,
    여전히 답이 보이지 않는 시간들을 지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믿음이 깊어지면 모든 것이 분명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것은 믿음이란?
    모든 답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믿음은 답을 모르면서도 주님께 묻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179605

    세상은 스스로 답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계산하고,
    더 많이 준비하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잠언은 말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저는 이 말씀을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모든 상황을 이해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아도 그분께 길을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주님께 묻습니다.

    예전과 같은 질문입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제가 알지 못하니 주님께서 인도해 주십시오.”

    아이에게 했던 말이 다시 제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엄마도 몰라서 주님께 묻는 단다.”

    그리고 그 말 뒤에 이제 한 문장을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엄마는 지금도 하나님께 물어보고 있단다.”

    어쩌면 믿음의 사람은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길을 아시는 분께 계속 묻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압니다.

    제가 모르더라도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십니다.
    그러니 오늘도 제 손을 잡고 한 걸음만 인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질문하실까요?

  • 재롱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재롱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작년 6월, 뜨거운 여름날 재롱이와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어린 길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작고 여린 몸으로 혼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아직 세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어린 생명이 차가운 아파트 단지 한편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습니다.

    길고양이는 흔히 볼 수 있고, 우리가 모든 생명을 다 돌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동생이 급히 구조했고, 가족들은 정성껏 치료와 돌봄을 시작했습니다.

    작은 생명이 다시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돌보았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과 재롱이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의 재롱이는 참 작고 약했습니다

    처음 발견했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의 재롱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작은 몸,

    힘없는 움직임,

    아직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눈.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재롱이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먹을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곳이 필요했고,

    아픈 몸을 치료해 줄 사람이 필요했고,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 줄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경험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재롱이에게 가족들이 해 준 것은 아주 작은 것들이었습니다.

    먹을 것을 챙겨 주고,

    몸을 살펴주고,

    아플 때 치료해 주고,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돌봄이 한 생명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랑을 받으면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약하고 불안해 보이던 재롱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회복되면서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사람을 대하는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을 놓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고,

    배고플 때 먹을 것이 있고,

    아플 때 돌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안정되어 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것을 받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구나.

    사랑을 받으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고,

    다른 존재를 대하는 모습도 달라집니다.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던 존재가 안전함을 경험하면 조금씩 경계심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재롱이를 바라보면서 정서가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받는 경험은 마음의 기초가 됩니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자라면서 가장 먼저 경험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너는 소중한 아이야.”

    “네가 있어서 기뻐.”

    “네가 잘하지 못해도 나는 너를 사랑해.”

    이런 경험을 충분히 한 아이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안정감을 배워갑니다.

    반대로 사랑받아야 할 시기에 충분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인정받아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평가에 지나치게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정서는 단순히 기분이 좋은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것,

    어려움이 찾아와도 완전히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을 갖는 것,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마음의 힘을 갖는 것도 건강한 정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서 기록했던 것처럼 정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생각과 선택, 인간관계와 삶의 방향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재롱이를 보면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재롱이를 돌보면서 문득 사람의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몸만 먹고 자라는 존재가 아닙니다.

    마음도 먹고 자랍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먹고,

    관심을 먹고,

    격려를 먹고,

    사랑을 먹으며 자랍니다.

    반대로 차가운 말과 무관심,

    반복되는 거절과 상처,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경험이 마음에 쌓이면 정서가 지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자리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금 더 따뜻한 말을 건넬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가족에게는 더 그렇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고 표현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마음속에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표현되어야 전달됩니다.

    “사랑해.”

    “고마워.”

    “네가 있어서 참 좋아.”

    “힘들었지?”

    “괜찮아.”

    이런 짧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은 존재를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재롱이가 처음부터 특별히 용감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처음부터 사람을 믿었던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저 작은 생명으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재롱이에게 가족의 돌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재롱이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랑에는 참 신비한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랑은 단순히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행위가 아닙니다.

    “너는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야.”

    “너는 버려진 존재가 아니야.”

    “네가 여기 있어도 괜찮아.”

    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메시지를 반복해서 경험하면 마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한 존재의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의 삶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먼저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재롱이를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는 재롱이처럼 연약한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어려움이 찾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마음이 무너지고,

    때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때로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릴 만큼 힘든 시간을 지나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잘해서 사랑하시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많이 이루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사랑하십니다.

    이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내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내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정서-보이지 않지만 인생을 움직이는 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

    재롱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롱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구나.”

    처음에는 버려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작은 길고양이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눈에 발견되었고,

    누군가의 손에 구조되었고,

    가족의 사랑과 돌봄을 받으며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실패를 경험하고,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진짜 가치가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는 다른 사람의 평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재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귀합니다.


    상처받은 마음에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마음속에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가족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힘들어하고,

    누군가는 반복되는 실패 때문에 자신을 믿지 못합니다.

    또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평생 애쓰면서 살아갑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때로 충고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마음을 강하게 먹어.”

    “다 지나간 일이잖아.”

    라는 말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많이 힘들었구나.”

    라는 따뜻한 공감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상처를 단번에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상처 입은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곁에 있어 주고,

    정답을 알려 주지는 못하더라도 들어 주고,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품어 주는 사람 말입니다.


    사랑받은 존재는 다시 사랑을 흘려보냅니다

    재롱이가 건강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또 하나의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을 받은 존재는 사랑을 다시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돌봄을 받은 아이가 다른 존재를 돌볼 줄 알게 되고,

    충분히 존중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알게 되며,

    충분히 용서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에 무엇이 채워져 있느냐에 따라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깊이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존재라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사랑받은 경험이 또 다른 사랑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작은 생명을 통해 배운 하나님의 마음

    재롱이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아팠는지 설명할 수도 없고,

    우리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살아 있고,

    먹고,

    움직이고,

    가끔 우리 곁에 와 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재롱이를 사랑합니다.

    무언가를 해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 드렸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자격보다 먼저 찾아온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증명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미 사랑받고 있는 존재입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해 보면 좋겠습니다

    재롱이를 돌보는 작은 일에서 시작된 생각이 여기까지 이어졌습니다.

    한 생명을 살리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따뜻한 공간을 마련해 주고,

    먹을 것을 챙겨 주고,

    아픈 곳을 치료해 주고,

    곁에 있어 주는 것.

    어쩌면 사랑은 이렇게 작은 모습으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 보십시오.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보십시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내가 기도하고 있어.”라고 말해 주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게도 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사람들의 사랑이 부족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까지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모르시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내가 작고 연약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작게 여기시는 것도 아닙니다.


    재롱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처음 재롱이를 보았을 때는 작은 길고양이 한 마리였습니다.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되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재롱이는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었습니다.

    작은 생명을 돌보는 기쁨을 알게 해 주었고,

    사랑이 한 존재를 얼마나 달라지게 하는지 보여 주었으며,

    무엇보다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롱이를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그리고 이 말을 재롱이에게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들려주고 싶습니다.

    당신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세상이 당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못해도,

    사람들이 당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도,

    지금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당신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알게 될 때,

    상처받은 정서도 조금씩 회복되고,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지며,

    삶을 바라보는 방향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앞서 나누었던 것처럼 정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생각과 관계와 삶의 방향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마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관계, 말씀과 기도 가운데 조금씩 회복되어 갑니다.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통해 배운 사랑.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생명을 통해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도 내가 사랑하는 아이란다.”

    오늘도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사랑을 다시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랑받은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깊이 아는 사람은 사랑을 흘려보내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재롱이가 사랑받으며 건강하게 자라난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를 바라보는 누군가가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은 참 사랑받고 자란 사람 같아.”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아름다운 흔적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요.


  • 하나님의 음성이 만든 가족의 자리

    하나님의 음성이 만든 가족의 자리

    결혼하지 않은 바로 아래 동생이 지금은 저희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작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주님은 제 마음에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동생 선옥이를 불쌍히 여겨라.”

    당시에도 저는 동생을 돕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은 제 마음을 더욱 깊이 움직였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하나님은 저희 가정을 동생을 맞이할 수 있는 자리로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이후 동생은 저희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고 가까운 곳에 직장도 얻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자신의 몫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생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저 역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직장 생활과 가정 생활을 함께 책임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함께 생활하며 여러 부분을 도와주다 보니 가정의 일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생각합니다.

    “서로 협력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처음에는 제가 동생을 돌보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동생에게 필요한 가정을 준비해 주셨고, 동시에 저희 가정에도 필요한 도움을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언제나 한쪽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한 사람을 살리시면서 또 다른 사람도 함께 세우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주님의 음성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 음성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이어 주며, 서로를 살리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가족의 자리를 감사함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시작에 있었던 주님의 한마디를 다시 떠올립니다.

    “네 동생 선옥이를 불쌍히 여겨라.”

    그 음성은 결국 동생뿐 아니라 저희 가정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

    지난 페이스북 글을 살펴보다가 오래전 기록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예영이가 큰오빠 방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고 용돈으로 7만 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큰아이가 감탄하며 말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치울 수가 있지?”

    그 말을 보며 저도 웃음이 났습니다.

    어쩌면 예영이가 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저는 집안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기는지 모르게 가구를 옮기고, 물건을 정리하고, 집 안을 뒤집어 놓곤 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힘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마음먹으면 이상할 정도로 몸이 움직였습니다.

    가구를 옮기고 청소를 하고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집 안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웃으며 말하곤 했습니다.

    “내가 낮에 불시에 들어와 볼 거야.”

    “대체 어떤 사람이 와서 도와주는지~”

    제가 혼자 그렇게 많은 일을 해놓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정말 누군가 와서 도와준 것처럼 집 안의 모습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말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나 이제 돈 없어서 이사 못 가!”

    “이제 이사 가자고 하지 마!”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지만, 그 말 속에는 우리 가족이 지나온 시간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결혼 초에는 어렵게 집을 마련했습니다

    결혼 초에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어렵게 집을 마련했습니다.

    대출을 안고 시작한 삶이었고, 많지 않은 월급으로 이자를 감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제가 끊임없이 집을 바꾸고 환경을 바꾸자는 이야기를 했으니, 남편 입장에서는 정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변화를 지나오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원해서 움직였던 때도 있었지만, 원하지 않았는데도 새로운 환경을 만나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변화는 기대를 품고 시작했고, 어떤 변화는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 지나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은 한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변화와 선택의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마음만 먹으면 집 안의 가구를 옮기고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정리해야지.

    청소해야지.

    마음으로는 생각하지만 몸이 예전처럼 쉽게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이 이제는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예전과 같지 않구나.’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조금씩 알아갑니다.

    예전에는 힘이 있는 것이 당연했고, 내가 움직이면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됩니다.

    내가 가진 힘도 영원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움직일 수도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이상하게 힘이 생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삶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지치고 힘이 없는데,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분명하게 생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그런 힘이 생겨나는지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하나씩 손을 대기 시작하면 일이 정리됩니다.

    생각보다 많은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저와 함께 생활하는 동생도 그런 모습을 보며 말합니다.

    “언니가 한 번 움직일 때는 나도 놀라.”

    “평소에는 힘이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저렇게 하지?”

    저 역시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평소의 제 모습만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막상 해야 할 일이 생기면 힘이 생깁니다.

    집중할 마음이 생기고,

    움직일 힘이 생기고,

    끝까지 해낼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갑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5946

    내 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사람들은 그것을 의지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부지런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고,

    성격이 강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 안에 그런 부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삶을 오래 돌아보면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때에도 해야 할 일을 감당하게 하셨고,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다시 일어날 힘을 주셨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루를 살아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전과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내가 힘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힘조차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몸도,

    생각할 수 있는 마음도,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의지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 힘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때에 힘을 공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힘을 미리 주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날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을 그때그때 공급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힘은 오늘 주시고,

    내일의 힘은 내일 주십니다.

    그래서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힘까지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 이사야 40:31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 단순히 육체적인 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때로는 지친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힘이고,

    때로는 포기하지 않는 힘이며,

    때로는 해야 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입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예영이의 정리에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래전 예영이가 큰오빠 방을 깨끗하게 정리했다는 이야기를 다시 보면서 단순히 ‘참 부지런했구나’라는 생각만 들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통해 예전의 저를 떠올렸고,

    예전의 저를 떠올리면서 다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 속에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내가 힘이 있어서 움직였던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움직일 힘을 주셨고,

    내가 결단해서 시작했던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셨으며,

    내가 끝까지 버텨낸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견딜 힘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아주 특별한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때로는 평범한 하루 속에 있습니다.

    청소할 힘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가족을 돌볼 힘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다시 일어설 힘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늘 하루를 버티는 힘일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용서할 힘일 수도 있고,

    다시 사랑할 힘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갑니다

    이제 저는 예전처럼 제 힘만 믿고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섰다면,

    지금은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이 없을 때도 너무 낙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보며 절망하기보다,

    ‘하나님, 오늘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을 감당할 힘을 주세요.’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한 걸음씩 움직입니다.

    작은 일 하나를 하고,

    또 하나를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생각보다 많은 일을 지나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연약함 가운데 힘을 공급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제 힘을 자랑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나는 지치지만 하나님은 지치지 않으십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힘을 공급하십니다.

    오늘도 저는 그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내일을 미리 걱정하기보다 오늘 주신 힘으로 오늘을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힘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하나님께 구하겠습니다.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은 언제나 내가 생각했던 방식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알게 됩니다.

    그때 내가 어떻게 그 일을 감당했는지 설명할 수 없었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셨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고백합니다.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오늘도 한 걸음 걷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이면 충분합니다. 🙏🏻✨

  • 가족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 이야기

    가족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 이야기

    처음에는 그저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어떻게 일하셨는지 정리해 보고 싶었고, 잊고 싶지 않은 깨달음들을 글로 남겨 두고 싶었습니다.

    살다 보면 분명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이 희미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참 귀한 깨달음이라고 생각했는데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고, 또 몇 년이 지나면 무엇을 깨달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이런 것을 깨닫게 하셨구나.’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구나.’

    그렇게 하나씩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30개의 글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에 관한 이야기,
    가족에 관한 이야기,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깨달은 이야기,
    어려운 시간을 지나면서 배운 것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에 남았던 생각들이 하나둘씩 글이 되었습니다.

    완성된 글들을 다시 읽어 보니 신기했습니다.

    각각 다른 제목을 가지고 있는 글들이지만 그 안에는 결국 하나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삶을 이끌어 오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돌아본 사람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무언가를 전해 주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다 보니 가장 많이 돌아보게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과거의 일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서운했던 기억도 다시 떠올랐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던 순간도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상대방의 잘못만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보니 나에게도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이 참았는가를 생각하기보다,

    나는 얼마나 사랑했는가?

    나는 얼마나 이해하려고 했는가?

    나는 얼마나 용서했는가?

    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열심 안에 나의 욕심이 섞여 있었던 적도 있었고,

    내가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가족이 따라주기를 바랐던 적도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시간이 단순한 기록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족에게 가장 먼저 이 글들을 전하고 싶은 이유

    그렇다면 왜 이 글들을 다른 사람보다 가족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었을까요?

    가족은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보아 온 사람들이고,

    내가 기뻐할 때 함께 기뻐했고,
    내가 힘들 때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다시 마음을 나누기도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가족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면서도 동시에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대로 듣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말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나중에 이야기하면 되겠지.’

    ‘언젠가는 이해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말하지 않은 마음은 저절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글을 통해서라도 제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답이 아닙니다

    제가 쓰는 글이 가족들에게 어떤 정답을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아직 배워 가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실수하고,
    때로는 마음이 흔들리고,
    어떤 상황에서는 무엇이 옳은지 몰라 고민합니다.

    그러니 이 글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이런 것을 깨달았다.’

    라는 저의 삶의 기록입니다.

    제가 먼저 살아 보면서 경험한 것들을 가족들과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혹시 그 글 가운데 단 한 문장이라도 가족의 마음에 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글에서는 공감할 수도 있고,
    어떤 글에서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생각이 같을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가족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입니다

    30개의 글을 하나씩 돌아보면 결국 제가 가족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단지 교회 안에서만 만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 가운데 계시고,
    기쁜 순간에도 함께하시며,
    힘든 시간을 지날 때에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이해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알 수 없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내가 원하는 방향과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뒤를 돌아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계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일하고 계셨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나를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족들에게도 이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삶이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신 것은 아니라는 것.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실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행복은 왜 돈 만으로 결정되지 않을까?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6935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것은 물질만이 아닙니다

    살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준비합니다.

    가족을 위해 필요한 것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남겨 주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더 안정된 삶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가족에게 정말 남겨 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물질적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물건이나 재산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기준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
    어려움을 만났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마음,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은 평생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글들이 가족들에게 작은 유산과 같은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단한 지혜를 담은 책은 아니지만,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록한 이야기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가족들이 이 글들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 이런 마음으로 살았구나.’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알아갔구나.’

    하고 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가족들이 이 글을 다시 읽는 날

    지금은 제가 직접 가족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우리의 삶도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아이들도 자라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고,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도 지금보다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가 이 글을 다시 읽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이 글을 읽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았던 문장이 나중에는 이해될 수도 있고,

    지금은 별 의미 없이 지나쳤던 이야기가 어느 날 자신의 삶과 맞닿아 마음에 들어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록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은 내가 쓰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다시 읽는 순간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족에게 남기는 기록은 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생각,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내가 겪었던 어려움과 감사,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삶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기록해 놓는 것.

    그것 자체가 가족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소중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엄마, 완벽한 가족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글을 쓰면서 또 하나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좋은 엄마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고,

    좋은 가족이 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기대했던 적도 있었고,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기를 바랐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가족 모두가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 부족하기 때문에 이해하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배워 가며,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다시 사랑하는 것이 가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금씩 변화시켜 가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글들은 완성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빚어 가고 계시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30개의 글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어느새 30개의 글을 썼습니다.

    처음에는 30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의 이야기를 기록했을 뿐인데 또 다른 이야기가 떠올랐고,

    그 이야기를 기록하다 보니 또 다른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지나온 삶을 하나씩 꺼내어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30개의 글을 쓰고 나니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기록하지 못한 기억도 있고,
    아직 글로 표현하지 못한 깨달음도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글을 더 쓰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기록을 단순히 블로그에 글을 쌓아 가는 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 편 한 편의 글을 통해 제 삶을 다시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이 언젠가는 가족들에게도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 이야기

    그래서 저는 이 글들을 누구보다 먼저 가족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내가 이런 글을 썼으니 읽어 봐.’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런 것들을 깨달았어.’

    ‘나는 이런 시간을 지나왔어.’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셨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어.’

    그 이야기를 가족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혹시 살아가다가 힘든 시간이 찾아오면,

    ‘엄마도 이런 시간을 지나왔구나.’

    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 오더라도,

    ‘지금 당장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니구나.’

    라고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삶이 평안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힘들 때에도 하나님을 찾고,
    기쁠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결정해야 할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넘어졌을 때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가족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을 남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남기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글로 남기고,

    지나가 버릴 것 같은 기억을 붙잡아 기록하고,

    그 순간에는 설명하지 못했던 깨달음을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꺼내어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들을 쓰면서 가족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더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보다,

    가족에게 나의 마음을 더 잘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고맙다고 말하는 것,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함께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

    어쩌면 이런 평범한 말들이 시간이 지나면 가장 소중한 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늦기 전에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하고 싶습니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이 글들이 가족에게 작은 편지가 되기를

    앞으로도 저는 계속 기록하려고 합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현재의 삶을 바라보고,
    앞으로의 시간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글을 써 내려가려고 합니다.

    어쩌면 이 글들은 지금의 저에게는 블로그의 한 편의 글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글들이 가족에게는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창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어떤 일에 감사했는지,
    어떤 순간에 하나님을 경험했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30개의 글을 쓰고 난 지금,

    저는 또다시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바람은 분명합니다.

    제가 남기는 모든 기록이 결국 하나님을 가리키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가족들이 읽으며

    ‘우리 엄마의 삶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셨구나.’

    ‘우리 가족의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셨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것 같습니다.

    30개의 글은 제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시작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행하신 일을 기록하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이야기를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과 먼저 나누고 싶습니다.

    언젠가 이 글들을 다시 읽게 될 가족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시간이 우연만은 아니었다고.

    기쁜 날도, 힘든 날도,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도,
    기다려야 했던 시간도,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시는 과정이었을 수 있다고.

    그러니 앞으로 어떤 시간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모든 답을 지금 당장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걸어가면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의 모든 순간에 함께 계셨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전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글들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하나씩 기록해 나가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단순히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은혜의 이야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 남편을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남편을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결혼을 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배우자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특히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정을 든든하게 이끌어 주기를 바라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지혜롭게 판단해 주기를 바라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흔들리지 않고 해결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라면 가정을 책임져야 하고, 가장이라면 무엇이든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 다를 때면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왜 저렇게밖에 하지 못할까.

    왜 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까.

    왜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까.

    때로는 이런 생각들이 마음속에 쌓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생활을 오래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도 두려움이 있고, 고민이 있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과 걱정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을 바꾸려고 할 때보다 이해하려고 할 때

    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은 쉽게 보면서도 자신의 부족함은 잘 보지 못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많았지만 정작 나 자신도 완벽한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남편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려고 했을까.

    남편이 나에게 맞춰 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남편의 입장을 얼마나 생각해 보았을까.

    남편의 부족한 모습을 보며 답답해하면서 나는 내 부족함을 얼마나 돌아보았을까.

    이 질문을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 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배우자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배우자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에게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을 무조건 덮어주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배우자의 부족함을 발견했을 때 곧바로 정죄하거나 바꾸려고 하기보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할까?’

    ‘무엇 때문에 저렇게 힘들어할까?’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라고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 작은 차이가 부부 사이의 대화를 바꾸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부를 경쟁자가 아니라 동역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부를 하나로 세우신 것은 서로 누가 더 옳은지를 겨루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남편이 모든 것을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내가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부는 서로 다른 모습과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 채워주기도 하고, 한 사람이 지쳐 있을 때 다른 사람이 그 곁에서 함께 버텨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남편이 아내에게 힘이 되어 주고,

    때로는 아내가 남편에게 힘이 되어 줍니다.

    어떤 때에는 남편이 앞에서 길을 찾고,

    어떤 때에는 아내가 더 지혜로운 생각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요.

    돕는 배필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낮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며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남편을 돕는다는 것은 무조건 남편의 말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남편의 생각을 존중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고,

    때로는 조심스럽게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함께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만든 가족의 자리

    남편의 부족함을 보면서 나의 부족함도 보게 되었습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서로의 부족함을 가까이에서 본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단점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는 하루를 함께 살아갑니다.

    말투도 보고,

    습관도 보고,

    실수도 보고,

    때로는 감추고 싶은 약한 모습까지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배우자의 부족함은 다른 사람의 부족함보다 훨씬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이 나의 부족함을 참아 주고 있다면, 나 역시 남편의 부족함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그때부터 남편의 부족함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오히려 제 자신을 더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너무 쉽게 판단했던 것은 아닌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던 것은 아닌지,

    내 말이 남편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배우자를 이해하려고 했는데 결국 하나님께서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74827

    사랑은 상대를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변하기를 바랍니다.

    조금 더 부지런했으면 좋겠고,

    조금 더 다정했으면 좋겠고,

    조금 더 책임감이 있었으면 좋겠고,

    조금 더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계속 바꾸려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부부 관계가 ‘함께 살아가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고치는 관계’가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고쳐야 하고,

    당신은 나를 고쳐야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기 시작하면 관계가 달라집니다.

    ‘당신이 왜 변하지 않느냐’고 묻기보다,

    ‘나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당신은 왜 이것을 모르느냐’고 말하기보다,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를 더 건강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편을 이해한다는 것이 남편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인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부 사이에도 대화가 필요하고,

    서로 지켜야 할 선이 있으며,

    잘못된 것은 함께 바로잡아 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정죄하기 위한 마음으로 문제를 바라보느냐, 아니면 함께 해결하기 위한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마음의 방향이 다르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당신은 왜 항상 그래?’

    라는 말과

    ‘우리 이 문제를 어떻게 함께 풀어가면 좋을까?’

    라는 말은 비슷한 상황에서 나올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저는 후자의 마음을 배우고 싶습니다.

    결국 가정은 한 사람이 잘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정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남편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아내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부족한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면서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상처받고, 다시 용서하고, 다시 이해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면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나도 부족하고 배우자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면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완벽한 남편을 기대하기보다 하나님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남편을 바라보고, 완벽한 아내가 되기를 요구하기보다 나 자신부터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기를 구하는 것.

    그것이 제가 결혼 생활을 통해 조금씩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을 바꾸려고 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을 때,

    오히려 제 마음이 먼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이 변하니 남편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습니다.

    가정의 모든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부부가 서로를 바꾸려고 애쓰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함께 변화되기를 구할 때, 가정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남편을 바라보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는 남편에게 무엇을 요구하기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삶으로 배워가고 싶습니다.


    한 줄 묵상

    “완벽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품고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배우자의 부족함을 볼 때마다 먼저 나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해주세요.

    남편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고 하기보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때로는 말해야 할 때 말하게 하시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게 하시며,
    무엇보다 우리의 가정이 서로를 향하는 가정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정이 되게 해주세요.

    우리의 부족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를 조금씩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