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가정과 사랑

가정의 회복과 사랑, 용서와 관계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 엄마도 몰라서 묻는다

    엄마도 몰라서 묻는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얼마 전 힘들어하는 큰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아이는 답답해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제쯤 이 시간이 지나갈지 알 수 없어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제 입에서 한마디가 나왔습니다.

    “엄마도 몰라서 하나님께 묻는단다.”

    아이에게는 짧은 말이었지만, 돌아보니 그 안에는 제 인생의 많은 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언제나 길을 물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도 몰랐고, 가정을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도 몰랐고, 자녀를 키우면서도 몰랐습니다.
    그럴 때 마다 제 힘으로 제 지혜로 하려고 했습니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지금 하는 결정이 맞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던 날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다 제 힘과 지혜라는 것이 얼마나 한없이 부족한 것인 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께 묻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주님은 보고 계시니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돌아보면 제 인생은 제가 답을 잘 찾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모를 때마다 하나님께 물으며 걸어온 시간이 쌓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그 말을 해 주고 난 후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과거의 간증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엄마도 몰라서 하나님께 묻는단다.”

    이 말은 사실 지금의 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여전히 모르는 길 앞에 서 있습니다.

    여전히 기다려야 하는 문제들이 있고, 여전히 답이 보이지 않는 시간들을 지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믿음이 깊어지면 모든 것이 분명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것은 믿음이란 모든 답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믿음은 답을 모르면서도 하나님께 묻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스스로 답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계산하고, 더 많이 준비하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잠언은 말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저는 이 말씀을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모든 상황을 이해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아도 그분께 길을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예전과 같은 질문입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제가 알지 못하니 주님께서 인도해 주십시오.”

    아이에게 했던 말이 다시 제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엄마도 몰라서 하나님께 묻는단다.”

    그리고 그 말 뒤에 이제 한 문장을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엄마는 지금도 하나님께 물어보고 있단다.”

    어쩌면 믿음의 사람은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길을 아시는 분께 계속 묻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압니다.

    제가 모르더라도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십니다.
    그러니 오늘도 제 손을 잡고 한 걸음만 인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 재롱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재롱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작년 6월, 뜨거운 여름날이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어린 길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동생이 급히 구조했고, 가족들은 정성껏 치료와 돌봄을 시작했습니다. 작은 생명이 다시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돌보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프고 힘없던 새끼 고양이는 건강을 회복했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고양이로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좋은 어르신 가정에 입양되어 지금은 많은 사랑을 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양이의 이름을 ‘해피’라고 지었지만, 어르신은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의 이름이 떠올랐다며 ‘재롱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지금의 재롱이는 이름처럼 온 가족에게 재롱을 부리며 웃음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재롱이를 살린 것이 아니라, 재롱이가 우리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사랑의 기쁨을 가르쳐 준 것 같습니다.

    건강하게 자라 준 재롱이에게 고맙고, 사랑으로 품어 주신 어르신께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재롱아,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가렴.
    🍀😽😀

  • 하나님의 음성이 만든 가족의 자리

    하나님의 음성이 만든 가족의 자리

    결혼하지 않은 바로 아래 동생이 지금은 저희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작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주님은 제 마음에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동생 선옥이를 불쌍히 여겨라.”

    당시에도 저는 동생을 돕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은 제 마음을 더욱 깊이 움직였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하나님은 저희 가정을 동생을 맞이할 수 있는 자리로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이후 동생은 저희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고 가까운 곳에 직장도 얻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자신의 몫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생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저 역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과 가정 생활을 함께 책임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함께 생활하며 여러 부분을 도와주다 보니 가정의 일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생각합니다.

    “서로 협력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처음에는 제가 동생을 돌보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동생에게 필요한 가정을 준비해 주셨고, 동시에 저희 가정에도 필요한 도움을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언제나 한쪽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한 사람을 살리시면서 또 다른 사람도 함께 세우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주님의 음성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 음성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이어 주며, 서로를 살리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가족의 자리를 감사함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시작에 있었던 주님의 한마디를 다시 떠올립니다.

    “네 동생 선옥이를 불쌍히 여겨라.”

    그 음성은 결국 동생뿐 아니라 저희 가정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

    지난 페이스북 글을 살펴보다가 오래전 기록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예영이가 큰오빠 방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고 받은 용돈이 7만 원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큰아이는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치울 수가 있지?”

    그 말을 보며 웃음이 났습니다.
    어쩌면 예영이는 저를 닮은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저는 집안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기는지 모르게 가구를 옮기고 정리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남편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낮에 불시에 들어와 볼 거야!”

    “대체 어떤 사람이 와서 도와주는지~

    집에 돌아와 달라진 모습을 보면 정말 누군가 와서 도와준 것처럼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몇 년 뒤 남편은 또 다른 말을 하게 됩니다.

    “나 이제 돈 없어서 이사 못 가!”

    “이제 이사 가자고 하지 마!”

    결혼 초에는 어렵게 집을 마련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대출을 안고 시작한 삶이었고, 적은 월급으로 이자를 감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제가 끊임없이 변화를 이야기했으니 그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수많은 변화를 지나왔습니다.
    원해서가 아니라 삶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을 만나야 했고, 많은 시간들을 통과해 왔습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가구를 옮기고 집안을 뒤집어 놓을 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정리해야지.
    청소해야지.

    생각은 하지만 몸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분명하게 생기는 순간,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겨나는지 저도 모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동생도 말합니다.

    “언니가 한 번 움직일 때는 나도 놀라.”

    “평소에는 힘이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저렇게 하지?”

    저 역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분명 평소에는 지치고 힘이 없는데,
    어떤 순간에는 집중력이 생기고,
    일이 정리되기 시작하고,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의지력이 강해서 그렇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제 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마음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움직일 힘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평소의 저는 연약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 공급하시는 힘으로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예영이가 방을 정리한 이야기는 단순한 청소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모습을 보며 예전의 저를 떠올렸고,
    또 하나님께서 제 삶을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제 힘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힘이 필요한 순간마다,
    주님은 언제나 부족함 없이 채워 주셨습니다. 😊🙏🏻✨

  • 가족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 이야기

    가족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 이야기

    오늘 아침, 블로그에 30번째 글을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어떻게 일하셨는지 정리해 보고 싶었고, 잊고 싶지 않은 깨달음들을 남겨 두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30개의 글이 되었습니다.

    신앙 이야기, 가족 이야기, 삶 속에서 배우고 깨달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이 글들을 누구보다 먼저 가족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내가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글을 정리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가족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는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세상의 방법보다 먼저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품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가족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저 자신을 향한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과연 가족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고 있는가?”

    저는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고 있지만, 실제 삶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쓴 글보다도 제 삶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 속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수했을 때 어떻게 인정하는지,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는지를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30개의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제 자신을 비춰 보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너는 네가 기록한 믿음을 실제로 살아가고 있느냐?”

    저는 아직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사람이 되기보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도 함께 하나님을 찾는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정리한 글들은 제가 잘해서 남긴 기록이 아니라, 넘어지고 실패하면서도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려고 했던 과정의 기록입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시간 될 때 천천히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들을 통해 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한 사람과 한 가정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함께 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찾고 의지하는 가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30개의 글을 채우며 얻은 가장 큰 열매는 글의 개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삶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우리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찾는 가족이 되기를 더욱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이번에 정리한 블로그는 제게 특별한 생일 기념품이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하시고, 그 은혜를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기록해 가려고 합니다.

    사랑합니다.^^

  • 남편을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남편을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결혼을 하면 남편이 모든 것을 잘 알고,
    가정을 완벽하게 이끌어 줄 것이라고 기대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됩니다.

    남편도 모르는 것이 많고,
    두려운 것도 많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일지 몰라도
    마음속에서는 방향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아내가 해야 할 일은
    실망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부를 경쟁자가 아니라
    동역자로 세우셨습니다.

    남편은 홀로 모든 짐을 지는 사람이 아니고,
    아내는 그 곁에서 지혜와 사랑으로 돕는 배필입니다.

    돕는다는 것은
    무조건 남편의 말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함께 기도하고,
    때로는 지혜로운 조언을 하고,
    때로는 격려하며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것입니다.

    남편도 연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아내의 역할이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완벽한 남편을 기대하기보다
    함께 성장해 가는 부부가 될 때
    가정은 더욱 건강해집니다.

    결국 좋은 가정은
    한 사람이 잘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며
    하나님 안에서 함께 자라갈 때 세워지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남편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부족함을 보며 답답해했던 순간들만큼, 저 역시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도 함께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로를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정은 조금씩 더 건강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한 줄 묵상

    “완벽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품고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2018년 요양보호사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하며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기도 제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를 드리고, 봉사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가정 안에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부부가 서로 존중하며,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는 일.

    이것은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 역시 많은 기회를 놓치며 살아왔고,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도 말씀이 지식으로만 머무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2018년, 제가 방문하던 한 어르신 가정에서도 그런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 가정은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가정이었습니다.

    가족 모두 하나님을 믿고 있었고, 교회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갈등이 생겼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자녀 교육 문제와 앞으로의 삶을 위해 미국으로 잠시 나가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사실 그 자체는 특별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정에는 한 가지 중요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경추 장애로 인해 오랜 세월 침상 생활을 하고 계셨고, 돌봄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어머님의 입장에서는

    “결국 나를 두고 떠나는구나.”

    라는 서운함과 외로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자녀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며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입장이 너무 달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한 가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에 가느냐, 가지 않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님의 마음이 충분히 존중받고 있지 않다고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옳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상대방의 마음은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해보다 주장,
    배려보다 판단,
    사랑보다 서운함이 자리 잡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믿는 가정도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어느 날 며느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미국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머님의 마음이 존중받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자녀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서운함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녀들을 축복하며 보내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물론 저는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그 가정 가운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조금씩 정리되었습니다.

    어머님 명의로 임대 아파트를 마련하게 되었고,

    아드님은 한국에 남아 어머님과 함께 생활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의 계획은 무엇을 기준으로 세워져야 할까요?

    그리고 진정한 믿음은 언제 드러나는 것일까요?

    믿음은 예배당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과 선택의 순간 속에서 드러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도,
    자녀를 이해하는 일도,
    서로를 존중하는 일도,

    모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열매일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종종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교회보다 먼저 우리의 가정을 다스려 주십시오.

    말씀을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가정이 되게 하십시오.

    우리의 생각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시고,

    우리의 주장보다
    주님의 사랑이 먼저 흘러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

  • 관계는 작은 배려 속에서 자라납니다

    관계는 작은 배려 속에서 자라납니다

    2018년의 일입니다.

    둘째가 운전면허를 취득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당분간은 형의 차를 번갈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근무 파트가 달라
    출퇴근 시간이 서로 겹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부모의 마음은 늘 같습니다.

    혹시나 늦지는 않을까,
    차량 이용에 불편함은 없을까,

    남편과 저는 아직도 노파심에
    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둘째를 걱정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 몸에 열이 많고 추위를 잘 타지 않는 남편과 달리,
    아이들은 저를 닮아 추위를 많이 타는 편입니다.

    아이들이 거실 온도를 조금 높여 놓았는데,
    남편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말투도 평소보다 부드럽지 못했고,
    아이들은 그런 분위기를 금방 느꼈습니다.

    사실 가족은 그렇습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에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그 일이 오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음 날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어제 저녁에 거실이 너무 펄펄 끓어서
    내가 순간적으로 마음이 안 좋았나 봐.”

    신의 감정을 인정하며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저는 답장으로 이렇게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당신의 표정과 말투에 민감하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러자 남편은 짧지만 진심이 담긴 답을 보냈습니다.

    “알았시유~~”

    그 한마디가 참 고마웠습니다.

    변명하지 않고,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관계란
    서로 실수하지 않는 관계가 아닙니다.

    서운함이 생겼을 때
    다시 돌아와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

    잘못을 깨달았을 때
    겸손하게 인정할 수 있는 관계,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대해 주십니다.

    실수하고 넘어질 때마다 정죄하기보다,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시고
    회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가정 안에서도 조금씩 용서하고,
    조금씩 이해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날의 작은 일상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관계는 거창한 사건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돌아보는 작은 배려와
    진심 어린 한마디가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금씩 성숙해져 가는 것임을 말입니다. 😊🙏🏻

  • 부모도 연약한 사람입니다

    부모도 연약한 사람입니다

    몇 년 전, 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하며 있었던 일입니다.

    그 어르신은 오랜 세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기신 분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술은 끊으셨지만, 통풍과 치매까지 찾아와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어느 날 어르신의 두 아드님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은 자녀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해 겪었던 아픔,
    가정 안에서 경험했던 수많은 상처,
    실망과 분노의 기억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아버지가 연약해지고 병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쉽게 이해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며 제 마음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부모도 결국 연약한 사람일 뿐이구나.’

    우리는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를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부모는 강해야 하고,
    부모는 책임져야 하고,
    부모는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알게 됩니다.

    부모도 부족한 사람이었고,
    부모도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고,
    부모도 자신의 연약함과 싸우며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가 상처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해는 용서의 문을 열어 주고,
    용서는 우리의 마음을 자유롭게 해 줍니다.

    그날 한 아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코 변화되시길 기대하는 마음은 없고, 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찾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오랜 세월의 아픔과 갈등, 그리고 자녀로서의 책임감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어쩌면 가족 관계의 회복은 상대방이 완전히 변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사랑의 몫을 다시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되는지 모릅니다.

    그날 대화를 마친 후 저는 오히려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 앞에서 수없이 결심하고 약속했지만 넘어졌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주님께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했지만 결국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상대방의 잘못만 바라보면 마음은 점점 굳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미워하던 사람 속에서도 연약함을 보게 되고, 정죄하던 사람 속에서도 긍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날 저는 어르신의 아드님들보다 오히려 제 자신의 마음을 더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종종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얼마나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려 주신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기다려 줄 수 있는가?

  •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를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주님을 묵상하지 않고는,
    그분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삶으로 나타내며 살아간다는 것이
    제게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열심과 의지로는 잠시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님과의 관계가 없다면 결국 사랑도, 순종도, 섬김도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제가 연약하고 부족했던 시간에도
    한 걸음씩 인도해 주셨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는 필요한 일터를 허락하셨고,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보내셔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얻게 하셨습니다.

    때로는 새벽 근무가 있는 공장에서,
    때로는 물류센터에서,
    때로는 산후조리원에서 일하며
    제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시간들을 지나왔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한 번도 저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다시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가장 큰 은혜는
    문제가 없는 삶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알아가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다시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보다,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저의 마음도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며,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에 작은 통로로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길은 때로 낮아지는 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되고,
    그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는 통로가 되어 갑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신실하신 주님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처음 주님을 사랑했던 그 마음,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했던 그 초심을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내일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 신실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함으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