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요양보호사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하며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기도 제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를 드리고, 봉사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가정 안에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부부가 서로 존중하며,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는 일.
이것은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 역시 많은 기회를 놓치며 살아왔고,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도 말씀이 지식으로만 머무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2018년, 제가 방문하던 한 어르신 가정에서도 그런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 가정은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가정이었습니다.
가족 모두 하나님을 믿고 있었고, 교회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갈등이 생겼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자녀 교육 문제와 앞으로의 삶을 위해 미국으로 잠시 나가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사실 그 자체는 특별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정에는 한 가지 중요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경추 장애로 인해 오랜 세월 침상 생활을 하고 계셨고, 돌봄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어머님의 입장에서는
“결국 나를 두고 떠나는구나.”
라는 서운함과 외로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자녀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며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입장이 너무 달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한 가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에 가느냐, 가지 않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님의 마음이 충분히 존중받고 있지 않다고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옳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상대방의 마음은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해보다 주장,
배려보다 판단,
사랑보다 서운함이 자리 잡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믿는 가정도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어느 날 며느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미국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머님의 마음이 존중받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자녀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서운함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녀들을 축복하며 보내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물론 저는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그 가정 가운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조금씩 정리되었습니다.
어머님 명의로 임대 아파트를 마련하게 되었고,
아드님은 한국에 남아 어머님과 함께 생활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의 계획은 무엇을 기준으로 세워져야 할까요?
그리고 진정한 믿음은 언제 드러나는 것일까요?
믿음은 예배당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과 선택의 순간 속에서 드러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도,
자녀를 이해하는 일도,
서로를 존중하는 일도,
모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열매일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종종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교회보다 먼저 우리의 가정을 다스려 주십시오.
말씀을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가정이 되게 하십시오.
우리의 생각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시고,
우리의 주장보다
주님의 사랑이 먼저 흘러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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