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민사소송의 과정에서 기도와 자료 발견, 금융감독원 민원, AI를 통한 질문과 소송 결정까지 한 걸음씩 인도하신 하나님의 흔적을 표현한 이미지

신실하신 하나님

반대매매가 일어나기 사흘 전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자리에 앉아 준비하고 있는데, 마음에 아주 강하게 들어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살려 달라고 기도해라.”

얼마나 강하게 마음에 와닿았는지 조금은 당황스러웠습니다.

당시에도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말씀을 현재의 상황과 연결해서 생각했습니다. 주식과 관련된 말씀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나 혼자 가지고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반대매매가 일어났습니다.

너무 놀랐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 불과 사흘 전에 기도하게 하셨던 그 말씀을 오히려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때 나에게 살려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을까?”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반대매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반대매매가 이루어진 과정이었습니다.

담보부족이 발생했고, 반대매매가 이루어질 수 있는 T+2 기준에 따라 나는 자기매도상환을 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담보부족을 해소하고 담보비율도 맞추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기록을 하나씩 살펴보니 이상한 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매도상환을 통해 담보부족이 해소되고 담보비율이 충족된 과정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기록에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종목까지 반대매매가 강행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증권사의 소비자보호부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방문했을 때는 내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한 번 찾아갔습니다.

소비자 보호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증권사 담당자의 입장에서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소비자 보호부로 부터 한 장의 자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자료가 그렇게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한 장의 종이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료에는 담보부족과 T+2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기록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내가 자기매도상환을 통해 담보부족을 해소하고 담보비율을 맞추었던 과정과 실제 기록 사이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씩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하나를 찾으면 또 하나가 보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부터 모든 증거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의 자료를 찾다 보면 그 안에서 또 다른 단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을 확인하다 보면 또 다른 자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자료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또 다른 단서가 발견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왜 여기에서 발견되었을까?”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를 확인하다 보니 다음 것이 보였고, 그것을 확인하다 보니 또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하나씩 확인해 나갔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일이 정말 어디까지 가게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민사소송의 과정에서 기도와 자료 발견, 금융감독원 민원, AI를 통한 질문과 소송 결정까지 한 걸음씩 인도하신 하나님의 흔적을 표현한 이미지

금융감독원에 두 번 민원을 넣다

그래서 금융감독원에도 두 번이나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나는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의 민원을 거치면서 오히려 답답함이 더 커졌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기보다 증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답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정말 막막했습니다.

내가 가진 의문은 풀리지 않았고, 내가 확인한 자료와 설명 사이에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비용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많은 시간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뜻밖의 한마디

그러던 어느 날 큰아이가 말했습니다.

“맨날 네이버 검색만 하지 말고, 제미나이를 활용해 봐!”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머리가 복잡한데 새로운 것을 배워서 해보라는 말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속으로 그 말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결국 제미나이를 사용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ChatGPT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궁금한 것들을 하나씩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왜 이런가?”

“이 기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부분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다시 물었습니다.

답을 들으면 또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게 질문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계속되었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95405

질문하기 시작하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를 물으면 하나를 알게 되었고, 하나를 알게 되면 또 다른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 질문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확인하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준 것은 아닙니다.

ChatGPT가 나를 대신해 소송을 한 것도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한 사람은 나였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확인해야 할지 막막했던 나에게 질문할 수 있는 도구가 생겼다는 것은 큰 변화였습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고, 필요한 내용을 하나씩 확인하고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홀로 민사소송을 시작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혼자 시작한 민사소송

그렇게 소장을 준비했습니다.

준비서면을 작성하고, 하나씩 증거를 정리했습니다.

처음부터 법률을 잘 알았던 것도 아닙니다.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도 하나씩 알아가야 했습니다.

때로는 막막했고, 때로는 내가 과연 이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자료를 펼쳐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물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기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내가 놓친 것은 없는가?”

그렇게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합니다.

반대매매가 일어나기 사흘 전에는 “살려 달라고 기도해라”​라는 말씀이 마음에 강하게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반대매매가 일어난 뒤에는 너무 놀라 그 말씀조차 잊었습니다.

증권사에 찾아갔을 때는 답답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방문에서 받은 한 장의 종이가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두 번 민원을 넣었지만 내가 원하는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뒤에는 뜻밖에도 큰 아이의 한마디를 통해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조차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말이 마음에 남았고,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질문하면서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하나하나의 사건은 별개처럼 보입니다.

기도했던 일,

반대매매가 일어난 일,

두 번째 방문에서 자료를 받은 일,

그 자료에서 단서를 발견한 일,

금융감독원에 두 번 민원을 넣은 일,

1년이 넘도록 답을 찾지 못했던 시간,

그리고 큰아이의 한마디.

당시에는 어느 것 하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일이 하나의 길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나는 길을 알고 걸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과정을 지나면서 한 가지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길을 알고 걸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그때 다음 한 걸음만 알았습니다.

기도했고,

기다렸고,

찾았고,

발견했고,

또 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한 걸음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모두 보여주셨다면 아마 나는 덜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주셨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답을 보여주시기보다 그때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셨습니다.
한 번에 다 보여주셨더라면, 어쩌면 저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잘 아시기에, 한 걸음 씩 인도해 주셨습니다.

다음 한 걸음을 걸으면 또 다른 길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단순히 민사소송의 과정으로만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 이 소송의 최종 결과도 알 수 없습니다.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분명히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답을 한꺼번에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다음 한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하나씩 길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엄마도 몰라서 묻는다」와 이어지는 이야기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내가 이전에 썼던 **「엄마도 몰라서 묻는다」**라는 글과도 연결됩니다.

나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물었고,

내가 가진 자료를 찾아보았고,

궁금한 것을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모르는 것이 부족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묻기 시작했을 때, 다음 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질문한다고 해서 모든 답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질문하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무조건 두려워하기보다 먼저 묻습니다.

그리고 확인합니다.

다시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또 질문합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다음 한 걸음을 찾습니다.

아직 마지막 장면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이 길의 마지막은 모릅니다.

민사소송의 결과도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내가 바라는 결과가 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나는 혼자 걸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매매가 일어나기 사흘 전의 그 기도도,

뜻밖에 손에 들어온 한 장의 자료도,

그 자료에서 발견된 단서도,

두 번의 민원도,

2년이 넘는 기다림도,

큰아이의 뜻밖의 한마디도,

그리고 질문을 통해 하나씩 길을 찾아간 시간도,

지금의 나에게는 모두 하나의 과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왜 이렇게 많은 자료를 찾아야 하는지,

왜 내가 직접 이 모든 것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길 전체를 볼 수 있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다음 한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하셨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또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길의 마지막을 억지로 알려고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한 걸음을 걸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한 걸음이 보이면 또 걸으려고 합니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나는 길을 다 알고 걸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그때 다음 한 걸음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음 길을 볼 수 있도록 조금씩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믿고 싶습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하는 길에도 하나님은 이미 계신다고.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나는 하나님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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