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간증 이야기

삶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기록합니다.

  • 이유를 몰라도 흘러나오는 감사, 그것이 진짜 감사입니다.

    이유를 몰라도 흘러나오는 감사, 그것이 진짜 감사입니다.

    우리는 보통 감사할 이유가 있을 때 감사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감사하고, 기도한 것이 응답되었을 때 감사하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물론 이런 감사도 귀한 감사입니다.

    하지만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 다른 감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유를 다 알지 못하는데도 마음에서 감사가 흘러나오는 감사입니다.

    무언가 특별히 좋은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속에서 감사가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감사할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저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고백이 흘러나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경험하게 되는 참된 감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감사할 이유가 있을 때의 감사

    우리는 대부분 눈에 보이는 이유를 가지고 감사하는 데 익숙합니다.

    건강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감사하고,

    기도했던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감사하고,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감사하고,

    좋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감사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감사하기도 합니다.

    이런 감사는 자연스럽습니다.

    좋은 일이 생겼는데 감사하지 않는 것보다 감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조금 더 깊어지면 한 가지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감사할 수 있는가?”

    기도했지만 아직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상황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까요?

    저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감사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좋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

    참된 감사는 상황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좋으면 감사하고 상황이 나쁘면 감사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감사는 결국 상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감사는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지금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앞날을 볼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앞날을 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왜 이런 일을 지나고 있는지 알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주님, 지금은 제가 왜 이런 상황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이것이 믿음에서 나오는 감사가 아닐까요?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58559



    이유를 몰라도 감사가 흘러나올 때가 있습니다

    살다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분명 힘든 상황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마음속에서 감사가 올라올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특별히 감사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하나님 앞에 앉아 있으면 마음에서 감사가 흘러나옵니다.

    저는 그런 감사가 참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감사의 근거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변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보다 더 귀한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 기도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믿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할 때 그 안에는 사실 이런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모든 것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저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제 앞길을 보고 계십니다.”

    “저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보다 더 크신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감사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드릴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감사가 기도보다 먼저 나오기도 합니다.

    “주님, 이것을 해결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다가 어느 순간

    “주님, 그래도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이 조금 달라집니다.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감사한다고 해서 아픔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감사한다고 해서 힘든 일이 힘들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눈물이 나는 상황에서 억지로 웃을 필요도 없습니다.

    아픈데 아프지 않은 척할 필요도 없습니다.

    힘든데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일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픔도 아십니다.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껏 울면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 너무 힘듭니다.”

    “주님,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다 내려놓고 나면, 이상하게 마지막에는 감사의 고백이 남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그 감사가 귀한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문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앞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일을 내가 알 필요가 없다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내가 알지 못하는 내일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가 신뢰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보다 앞서 가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직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직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응답의 결과보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몰라도 흘러나오는 감사

    어쩌면 우리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감사의 이유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이 함께 계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면,

    나중에는 좋은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특별한 이유를 찾지 않아도 마음에서 감사가 흘러나옵니다.

    그저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감사하고,

    오늘도 나와 함께 계시기에 감사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길을 알고 계시기에 감사하고,

    내 삶을 붙들고 계시기에 감사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참된 감사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는 환경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감사할 이유를 찾아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게 좋은 일이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 가운데서도 감사할 이유를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응답되지 않은 기도 때문에 낙심하고 있다면,

    “그래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믿기에 감사합니다.”

    앞날이 보이지 않아 두렵다면,

    “내가 보지 못하는 길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에 감사합니다.”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고백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는 상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을 없던 것으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그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직 답을 얻지 못했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직 이유를 알지 못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내가 지금 상황을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있구나.”


    이유를 몰라도 흘러나오는 감사

    저는 그런 감사가 제 삶에 더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힘든 날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

    응답을 받았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

    모든 이유를 이해한 후에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유를 알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쩌면 진짜 감사는

    “주님, 이것이 좋아서 감사합니다.”

    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 이것이 왜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기에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아무런 이유를 찾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어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어도,

    아직 기다려야 하는 응답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으며 감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를 몰라도 흘러나오는 감사,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진짜 감사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상황을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유를 다 알지 못해도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 예배가 살아나니 삶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가 살아나니 삶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은 제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해였습니다.

    요양보호사로 일한 지 어느덧 5년이 되었고, 그동안 정들었던 일을 내려놓아야 할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5년의 시간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제 능력이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고 섬길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5년 동안 제가 만난 어르신들은 스무 분 정도였습니다.

    그중에는 먼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들도 계셨고, 요양원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다는 소식을 전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했던 시간에는 기쁨도 있었고, 때로는 이별의 아픔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정리할 시점이 되어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르신들을 돌보며 일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그분들이 제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고, 식사를 돕고, 몸을 살피고, 이야기를 나누던 일상이 갑자기 끝나게 되니 생각보다 마음이 많이 붙들려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만, 사람에게 지나치게 마음이 매이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시는 분도 주님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하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요양보호사 일을 정리하고 주님을 찾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사회복지사로 근무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제 생각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제 삶에 또 다른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에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계셨던 것은 직업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키고 계셨던 것은 예배였습니다.


    예배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남편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씩 다루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배는 단순히 정해진 시간에 자리에 앉는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몸은 예배의 자리에 있어도 마음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고, 입술로는 찬양하면서도 마음속에는 해결되지 않은 감정과 갈등이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말씀을 통해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잘못한 것을 인정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서로의 마음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살아 있는 예배는 형식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예배라는 사실입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때로는 용서해야 했고, 때로는 내려놓아야 했고, 때로는 내가 옳다는 생각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보다 앞서 있던 내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예배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배가 살아나기 시작하자 삶도 함께 변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3194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예배가 삶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도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남편도 점점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예배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전보다 더 깊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배가 단순히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시간이 아니라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고, 마음을 어렵게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이 바뀌기 전에 내 마음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기다리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이 기다려졌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실지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믿는 사람에게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배는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말씀으로 우리의 방향을 다시 세우며, 성령님의 다루심을 경험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예배를 단순히 ‘드리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시 세워 가시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예배를 지키는 것도 믿음의 싸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를 향한 영적 전쟁 역시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피곤함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기기도 하고, 마음이 흐트러지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일로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특히 마음에 갈등이 생기면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화해하고, 내려놓고, 다시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하는 믿음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방해하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지치고, 넘어지고,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예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를 변화시킨 것은 우리의 결심이나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예배의 자리로 부르시고, 그 자리에서 우리를 변화시키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삶도 회복됩니다

    돌이켜보면 2020년은 제게 단순히 직업이 바뀐 해가 아니었습니다.

    요양보호사로 5년을 살아온 시간을 내려놓게 하셨고, 새로운 길도 열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제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예배의 회복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만지셨고, 우리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셨으며,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시간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요양보호사로 보냈던 5년의 시간도 감사합니다.

    그동안 만났던 어르신들과 함께했던 시간도 감사합니다.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던 것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그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예배의 자리로 다시 이끌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배가 살아나니 삶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환경이 먼저 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먼저 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이 먼저 변화되기 시작했고, 그 변화가 우리의 삶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마음에 새기고 싶습니다.

    예배가 생명입니다.

    삶이 힘들수록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싶습니다.

    마음이 흔들릴수록 말씀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관계가 어려울수록 하나님 앞에서 먼저 마음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떤 영적 싸움이 찾아오더라도 예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

  •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2018년도, 예영이가 중학교 2학년 무렵 친구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기억하다가 문득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갑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참 길게 느껴졌는데, 어느덧 여러 해가 지나고 그 시절을 조금은 객관적인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그 일이 왜 우리 아이에게 일어나야 했는지, 왜 하필 그 시기에 그런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는지,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선생님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혹시 혼자 힘들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모는 늘 마음 한구석으로 염려하게 됩니다.

    요즘은 한 학급의 인원도 예전보다 적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학교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학교는 단순히 공부만 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친구를 만나고, 관계를 배우고, 때로는 갈등을 경험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때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예영이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을 좋아했고, 나름대로 학교생활에도 열심이었습니다.

    학교에 가는 것을 즐거워 했고,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비교적 밝게 지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밝게 인사를 해서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중학교에 진학하고 2학년이 되었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운 시간이 찾아왔을 때, 저 역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듣고 있으면 부모로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 주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아이가 이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을까?’

    ‘혹시 이 일로 아이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남으면 어떻게 하지?’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힘들어하면 대신 그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어집니다.

    아이 대신 싸워 주고 싶기도 하고, 아이를 힘들게 하는 상황을 당장 없애 주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모든 관계를 대신해 줄 수도 없고,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모든 어려움을 부모가 대신 경험해 줄 수도 없습니다.

    결국 아이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관계를 만나고, 어떤 어려움을 통과하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 가는지를 지켜보아야 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내가 대신 아파 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도 아이의 인생에서 필요한 시간이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물론 어려움을 겪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당연한 것도 아니며, 잘못된 관계를 무조건 참고 견뎌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지나온 모든 시간이 반드시 편안하고 순탄해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힘든 시간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때로는 관계의 소중함을 알게 되며,
    때로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욥,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10668


    그리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도 알게 되고, 반대로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도 배우게 됩니다.

    어쩌면 그것이 성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좋은 일만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일을 통과하면서도 조금씩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예영이에게는 그 시간이 참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저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돌아보니 그 시간 속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고,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그때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구나.’
    하는 고백이 나옵니다.


    우리의 삶에는 그때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시간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상황이 금방 달라지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도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나를 다듬고 계셨다는 것,
    내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아이를 지켜보고 계셨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우리 가족에게도 새로운 것을 가르치고 계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지나간 그 시간을 생각하며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힘들었다고 해서 헛된 시간이 아니었고,
    눈물이 있었다고 해서 실패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이었고,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조금 더 관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조금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인 저 자신도 많이 배웠습니다.

    아이의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부터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조금씩 배워 갔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고, 들어주고, 기도하고, 필요한 때에 손을 내미는 것까지일 수 있습니다.

    그 너머의 삶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부모인 내가 세운 계획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자녀를 바라보며 걱정하고 있는 부모님들이 계실 것입니다.

    아이에게 친구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고, 학교생활이 힘들 수도 있으며,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너무 쉽게
    ‘이 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어려움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흘리는 눈물이 언제 어떤 열매가 될지 알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도 일하십니다.

    그리고 언젠가 뒤돌아보게 될 때,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그 시간도 헛되지 않았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자녀의 삶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아이의 삶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며 기도합니다.

    그 시간도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시간 역시
    하나님 안에서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생각해 봅니다.

    특별히 자녀가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을 떠올리면
    부모로서 마음이 아팠던 순간들이 생각납니다.

    아이 대신 아파 주고 싶었고,
    아이 대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었으며,
    힘든 상황에서 아이를 당장 꺼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고백합니다.

    부모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자녀의 모든 삶을 제가 책임질 수 없으며,
    자녀의 인생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가 지나온 힘든 시간들을 돌아볼 때
    그 시간 때문에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그 안에서도 일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당장 눈앞의 상황만 바라보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더 큰 그림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가면서
    좋은 관계도 만나게 하시고,
    때로 어려운 관계를 만날 때에도
    그 속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지혜와
    자신을 지키는 지혜를 배우게 하옵소서.

    상처를 받았다고 마음을 닫지 않게 하시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도 되지 않게 하옵소서.

    어려움을 통해 더욱 성숙하게 하시고,
    사람의 인정에 흔들리기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정체성을 붙들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부모들에게도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자녀의 삶을 내 힘으로 붙들려고 하기보다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기도해도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때에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게 하옵소서.

    지나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믿게 하시고,
    지금 지나고 있는 시간도 헛되지 않음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의 눈에는 실패처럼 보이는 시간도
    하나님께서는 성장의 시간으로 사용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상처로만 보이는 시간도
    하나님께서 회복과 성숙의 통로로 사용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의 자녀들을 우리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립니다.

    그들의 학교생활을 지켜 주시고,
    그들의 관계를 지켜 주시며,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옵소서.

    그리고 부모인 우리에게
    자녀를 사랑하되 지나치게 붙들지 않는 지혜를 주시고,
    필요할 때는 기다리고,
    필요할 때는 말해 주며,
    필요할 때는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지나온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고백합니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지나갈 시간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자녀와 가정을 선하게 인도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이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이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이름 ‘예영’

    얼마 전 오래된 기록들을 정리하다가 참 귀한 메모 한 장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우리 가족은 태어날 아기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품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큰아이가 방언으로 기도했고, 가족들은 그 기도의 내용을 통변하여 기록해 두었습니다.

    오래된 노트에 적혀 있던 그 내용을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다시 읽어 보니 마음이 참 묘했습니다.

    당시에는 그 말씀의 의미를 모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태어날 아이를 위해 기도하던 중 받은 말씀이라고 생각했고, 혹시 잊어버릴까 기록해 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읽어 보니 그 내용이 너무나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아이는 내가 가장 귀하게 쓸 것이며…”

    “내가 특별히 그 아이의 이름을 지을 것이며…”

    “너의 영향력 안에 살 아이가 아니라 내 백성 안에 있다…”

    “그 아이가 네 안에 있을 때에도 나의 사랑을 보게 될 것이고…”

    “세상에 나갈 때까지 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이 말씀이 앞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기록해 두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기록을 다시 읽으면서 오래전 한 장면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바로 예영이를 낳기 하루 전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신 이름

    예영이를 낳기 하루 전, 가족들이 함께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딸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아이의 성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 딸이 될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 제 마음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네가 딸을 원하지 않았느냐?”

    그 순간 제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고백이 흘러나왔습니다.

    “주님, 이 아이가 정말 딸이라면 이 아이는 예수님께 영광입니다.”

    그 고백을 하는 순간 제 마음에 한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예영’

    그 이름이 어디에서부터 떠올랐는지 설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제 마음에는 분명하게 그 이름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는 딸로 태어났습니다.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의 이름을 예영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때는 그저 감사했습니다.

    기도 가운데 딸을 주신 것도 감사했고, 마음에 떠오른 이름을 아이에게 붙일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몰랐습니다.

    그 이름을 생각하게 된 일이 몇 달 전 기록해 놓았던 통변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내가 특별히 그 아이의 이름을 지을 것이며…”

    세월이 흘러 오래된 기록을 다시 발견했을 때 가장 마음에 깊이 들어온 문장이 있었습니다.

    “내가 특별히 그 아이의 이름을 지을 것이며…”

    저는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짓기 전부터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이 기록 하나만으로 하나님의 뜻을 모두 해석하거나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 삶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돌아보면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의 성별조차 알지 못하던 때에 아이를 위해 기도했고, 그 기도 가운데 이름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출산 하루 전, 기도하는 가운데 제 마음에 한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그 후 실제로 딸이 태어났고 그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그 오래된 기록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제게는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6190

    그때는 몰랐지만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제가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 그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떤 삶을 살아갈지, 어떤 일을 경험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예영이를 임신했을 당시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기도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아이가 되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제가 알지 못했던 시간에도 그 아이의 삶을 알고 계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오늘만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내일을 보십니다.

    저는 한 장면만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장면 앞뒤에 있는 모든 시간을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한순간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 일은 어느 한 날에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2003년에는 가족들이 함께 아이를 위해 기도했고, 방언 통변을 통해 아이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출산 직전에는 기도하는 가운데 아이의 이름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2016년에는 그 일을 다시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오래된 노트를 정리하다가 그 기록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당시에는 각각의 사건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2003년에는 2003년의 시간을 살았고, 출산할 때는 출산의 순간을 살았으며, 2016년에는 그때의 기억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모든 시간을 한꺼번에 돌아보니 조금씩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시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한 걸음만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한 걸음을 믿음으로 걸어가면 또 다른 한 걸음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도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내 기도를 들으시는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눈앞의 상황만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그것이 나를 다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간 것 같았던 작은 사건이 훗날 아주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이번에 발견한 오래된 메모가 그랬습니다.

    2003년의 한 장의 기록이 2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다시 제 앞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기록을 통해 지나온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도 일하고 계셨구나.”

    이 생각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만 보고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작도 아시고 끝도 아십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아셨고,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미래도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기도했지만 아직 응답되지 않은 일도 있고, 왜 그런 과정을 지나야 했는지 알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영이의 이름을 통해 지나온 시간을 다시 돌아보면서 한 가지를 배웁니다.

    지금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방법으로 일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20년이 지나 다시 발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

    2003년에 기록했던 말씀을 다시 읽으면서 저는 과거의 한 사건만 떠올린 것이 아닙니다.

    그 시간을 지나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에는 방언 통변을 통해 말씀하셨고,

    출산 직전에는 이름을 생각나게 하셨으며,

    2016년에는 그 일을 다시 기록하게 하셨고,

    지금은 오래된 기록을 다시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각각의 순간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깨닫기 전부터 일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때에도 알고 계셨고,

    우리가 보지 못할 때에도 보고 계셨으며,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주 오래된 기록 한 장을 통해 그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합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으신가요?

    오랫동안 기도하고 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 있으신가요?

    자녀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마음이 답답하신가요?

    그렇다면 오늘의 상황만 바라보며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의미를 알 수 없는 한 장면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뒤돌아보면 하나님께서 그때부터 준비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예영이의 이름을 통해 그것을 다시 배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기 전부터 알고 계셨고, 우리가 보기 전부터 준비하고 계셨으며,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삶 가운데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다시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하는 길도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시고,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며,

    내가 아직 답을 얻지 못한 기도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저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그때도 주님이셨고 지금도 주님이십니다.
    제가 알지 못했던 순간에도 주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예영이의 이름을 통해 제게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앞으로의 삶 가운데서도 계속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향해서도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고 계신 것이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은 보이지 않아도,

    아직 이해되지 않아도,

    아직 응답이 오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으며 한 걸음씩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

    17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문득 생각납니다.

    특별히 아버지를 떠올릴 만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오래된 자료를 정리하다가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17년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갑니다.

    그때는 앞으로도 아버지와 함께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아버지는 제 곁을 떠나셨고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딸만 넷이었던 우리 집

    우리 집은 딸만 넷이었습니다.

    아들이 한 명도 없었던 집에서 아버지는 장녀였던 저에게 유난히 마음속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버지가 말씀하시니 듣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때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들이 하나씩 다시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시대에는 여자도 장관이 되고 대통령도 된다.”

    어린 저에게는 참 먼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여성이 국가의 중요한 자리에 오르는 일이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말 그럴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마거릿 대처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당시 어린 제게 마거릿 대처라는 이름은 그저 외국의 유명한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 정도로만 들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통해 단순히 한 여성 정치인을 소개하고 계셨던 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앞으로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자라는 이유로 기회를 얻고,

    여자라는 이유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세상이 점점 변해갈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딸들에게도 남자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어린 딸에게 미래를 이야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여자니까 여기까지만 할 수 있다.”

    그렇게 한계를 정해 주신 것이 아니라,

    “너희 시대에는 여자도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 속에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와 믿음이 담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버지의 말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이 실제 현실이 된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가 그때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것이 정말 현실이 되었구나.’

    세상은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도 크게 확대되었고,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자리에도 여성들이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일이 실제 현실이 된 것을 보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지켜보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첫 여성 대통령의 등장은 분명 우리 사회에서 의미 있는 변화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희망을 품었습니다.

    저 역시 우리 사회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역사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여러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기대했던 모습도 있었고,

    실망스러운 모습도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면서 생각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성별이나 직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남자냐 여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어떤 자리에 있느냐보다 그 자리를 어떻게 감당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얼마나 높은 위치에 올라갔느냐보다,

    그 위치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것은 정치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이 원리는 정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도 그렇습니다.

    부모라는 직책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이나 아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좋은 배우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치느냐도 중요하지만, 부모가 실제 삶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자녀들은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말로 사랑한다고 하는 것보다 실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서하라고 말하는 것보다 부모가 먼저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큰 가르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각자의 직분과 역할은 분명 소중합니다.

    그러나 직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의 인격과 삶입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그 사람을 보여줄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가 제게 남겨준 것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제게 남겨주신 것은 단순히 어떤 지식이나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미래를 바라보는 눈을 조금씩 심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너희 시대에는 여자도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된다.”

    그 말씀을 들을 당시에는 그저 아버지의 생각이라고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말씀은 제게

    “너도 할 수 있다.”

    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세상이 정해 놓은 한계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라는 뜻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능성을 바라보라는 의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어쩌면 딸들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제가 아버지의 나이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을 그저 부모님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나이를 먹고 부모님이 살아가셨던 시간을 돌아보게 되면 조금씩 다르게 보입니다.

    아버지도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었습니다.

    기쁜 날도 있었을 것이고,

    힘든 날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말하지 못한 고민도 있었을 것입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가 어린 딸에게 미래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주고 싶었던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희는 더 넓은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00942


    17년이 지나도 기억나는 말

    사람은 떠나도 말은 남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17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어린 시절 들었던 아버지의 목소리는 아직도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특히 어떤 순간에는 아주 오래전의 말 한마디가 다시 떠오릅니다.

    그때는 아무 의미 없이 들었던 말이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안에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

    그때 조금 더 물어볼 걸.

    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오셨는지 조금 더 물어볼 걸.

    아버지가 살아오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물어볼 걸.

    이제는 물어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억을 통해 아버지를 다시 만납니다.


    사람의 자리는 결국 그 사람을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제게 들려주셨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오늘 다시 생각합니다.

    사람은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고 해서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직책과 명예는 언젠가 내려놓아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모습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자리에 있느냐보다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누군가를 지배하는 사람이 아니라 섬길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

    약한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생각나는 오늘

    오늘 문득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지금의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셨을까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말씀하시던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여성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있고,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직책이나 성별이나 능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떤 자리에 있든 그 자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아버지도 그것을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딸들이 단순히 성공하기를 바라셨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17년이 지난 오늘,

    문득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린 딸에게 미래를 이야기해 주셨던 것,

    가능성을 이야기해 주셨던 것,

    세상이 변할 것이라고 알려주셨던 것.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말들이 제 마음 한구석에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아버지가 남겨주신 말은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통해 저는 지금도 사람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입니다.

    오늘은 오래전 아버지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씀드립니다.

    “아버지, 그때 하셨던 말씀처럼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어요.”

    “그리고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아버지가 제게 말씀하셨던 것은 단순히 여성이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미래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너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지 말아라.”

    “세상이 정해 놓은 한계보다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아라.”

    라고 말씀하고 계셨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아버지가 제게 남겨주신 소중한 유산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많이 생각납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 26년 전 주님이 주셨던 말씀을 26년 후 다시 읽다

    26년 전 주님이 주셨던 말씀을 26년 후 다시 읽다

    최근 오래된 자료를 정리하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록 하나를 다시 발견했습니다.

    2000년 5월에 기록했던 글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따라 약 10일 동안 글을 기록했습니다. A4 용지로 무려 40장에 이르는 분량이었습니다.

    26년이 지난 지금 그 기록을 다시 펼쳐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기록했던 것일까?’

    그리고 한 장 한 장 다시 읽어 내려가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많은 내용 속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성령을 의지하라.”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가정을 회복하라.”

    26년 전, 주님께서 주셨던 말씀

    당시의 글을 다시 읽어 보니 지금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글에는 사탄이 가장 먼저 무너뜨리려고 하는 곳이 가정이며, 성도들이 하나 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을 일으킨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말씀인지 충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6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온 지금 다시 읽어 보니 그 말씀의 의미가 조금씩 다르게 다가옵니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습니다.

    사람들의 생활 방식도 달라졌고, 소통하는 방법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가정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가정이 깨어지고 관계가 무너지는 아픔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26년 전의 기록을 읽으면서 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을 의지하라”

    그때 기록했던 글에는 성령 충만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해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제 마음에 다시 들어온 말씀이 있습니다.

    “너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26년 전에도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하나님보다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을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예전에 받았던 은혜를 붙잡습니다.

    과거에 경험했던 하나님의 역사를 떠올립니다.

    물론 그것은 귀한 간증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셨다고 해서 오늘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했다고 해서 오늘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40장의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

    26년 전 제가 기록했던 40장의 글은 분명 소중한 자료입니다.

    그 글을 다시 발견한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40장의 기록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글을 기록하게 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그때 저를 붙드셨던 주님께서 지금도 붙들고 계십니다.

    그때 말씀하셨던 주님께서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동일하게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2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제 삶에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기쁨도 있었고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일도 있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 다시 26년 전의 기록을 읽어 보니 오히려 한 가지가 선명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도 하나님이셨고, 지금도 하나님이십니다.

    상황은 변했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고, 내가 보지 못했던 곳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주님께서 왜 그렇게 반복해서 성령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6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환경도 변합니다.

    계획도 변합니다.

    내가 세웠던 생각과 목표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다릅니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지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그 길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먼저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를 묻고 싶습니다.

    내가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앞서가시도록 기다리고 싶습니다.

    내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기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상대방이 아닌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8503


    “가정을 회복하라”는 말씀도 다시 생각합니다

    26년 전 주님께서 주셨던 말씀 가운데 또 하나의 중요한 내용은 가정을 회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앞으로의 삶에서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마음에 남게 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정은 단순히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됩니다.

    가정은 사랑을 배우는 곳이고,

    용서를 배우는 곳이며,

    기다림을 배우는 곳입니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가장 큰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회복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회복은 단순히 관계를 좋게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 가시는 회복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6년 전의 기록을 다시 읽으면서 저는 그때 주님께서 왜 ‘성령을 의지하라’는 말씀과 ‘가정을 회복하라’는 말씀을 함께 주셨는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가정을 회복하려 하면 결국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면 달라집니다.

    내가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먼저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보다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회복은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26년 전의 기록을 다시 읽으면서 또 하나 마음에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2013년에 제가 적어 놓았던 고백입니다.

    “더 은밀하고, 더 고요하며, 더 조용하고, 더 한적한 시간.”

    어쩌면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이루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주님 앞에 머무는 시간.

    그곳에서 다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묻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하기 전에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기회보다 중요한 것

    최근 들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하나씩 열리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고, 새로운 일도 경험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만남과 기회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바라보면서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회가 열린다고 해서 반드시 그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원하는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내가 가야 하는 길도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회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 기회를 주신 분이 누구인지 분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주님보다 앞서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의미 있는 사역이라도 주님과의 교제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한다 해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놓친다면 결국 내 힘으로 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제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일을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법인 것 같습니다.


    26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말씀

    2000년 5월.

    그때 저는 40장의 글을 기록하면서 그것이 26년 후의 제게 다시 읽히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지금의 저를 알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시간을 지나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26년 전의 기록을 다시 읽으면서 저는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시간이 지난다고 낡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말씀은 때로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 깊은 곳에 머물러 있다가 하나님의 때에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는 것을.

    26년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말씀이,

    26년의 시간을 지나온 지금에는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다시 그 말씀 앞에 서고 싶습니다.

    성령을 의지하라.

    가정을 회복하라.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 안에 거하라.


    오늘 다시 드리는 고백

    2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어떤 문이 열릴지도 알지 못합니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싶습니다.

    내가 가는 길에 주님이 함께하시는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내 생각과 경험과 능력을 앞세우기보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걸어가고 있는가.

    26년 전 주님께서 주셨던 말씀을 다시 읽은 오늘,

    저는 그 말씀을 과거의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의 고백으로 다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아니라 성령을 의지하게 하소서.”

    내 힘으로 살아가지 않게 하시고,

    내 생각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시고,

    내가 앞서가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게 하소서.

    그리고 26년 전 제게 말씀하셨던 그 주님께서

    앞으로의 남은 삶에서도 변함없이 저를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6년 전에도 주님이셨고,

    오늘도 주님이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주님이실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