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간증 이야기

삶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기록합니다.

  • 예배가 살아나니 삶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가 살아나니 삶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은 제게 여러 의미가 있는 해였습니다.

    요양보호사로 일한 지 어느덧 5년이 되었고, 그 일을 마무리할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제 능력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고 섬기면서 때로는 기쁨도 있었고, 때로는 이별의 아픔도 있었습니다.

    5년 동안 만난 어르신들은 스무 분 정도였습니다.

    그중에는 먼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들도 계셨고, 요양원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 소식을 전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일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자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르신들을 돌보며 일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그분들이 제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동안 잘 방문드리며 해왔던 요양보호사 일을 내려놓게 되니 제 마음이 생각보다 많이 붙들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매이지 않도록 인도하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기에 다시 주님만 바라보기를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요양보호사 일을 정리하고 주님을 찾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드리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하게 사회복지사로 근무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라는 마음이 들어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또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계셨던 것은 직업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예배의 회복이었습니다.

    특히 남편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루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예배는 자동으로 드려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와 직결되어 있었고, 말씀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말씀으로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주셨고, 회개하게 하셨으며,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살아 있는 예배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신기한 것은 예배가 살아나기 시작하자 삶도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남편도 점점 더 사모함으로 예배에 참여하게 되었고, 저 역시 예배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의 예배가 한 주를 살아갈 힘이 되었고, 예배를 기다리는 마음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예배는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말씀으로 인도받고, 성령님의 다루심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배를 향한 영적 전쟁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피곤함이 찾아오고, 바쁜 일이 생기고,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사소한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갈등이 있는 상태에서는 예배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갈등을 해결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원수는 예배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그래서 예배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하는 믿음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를 변화시킨 것은 우리의 결심이나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영적 전쟁 가운데서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도록 붙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부족함을 경험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예배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을 지나며 우리의 삶에도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 드리기 전에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차분히 하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비추시고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요양보호사로 보낸 5년의 시간도 감사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예배를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주님께 더 가까이 이끌어 주신 은혜가 감사합니다.

    돌이켜보면 2020년은 직업의 변화보다도 예배의 회복이 더 큰 의미로 남아 있는 해였습니다.

    예배가 생명임을 잊지 말자.

    그리고 어떤 영적 전쟁이 찾아오더라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며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2018년도, 예영이가 중학교 2학년 무렵 친구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을 기억하다가 문득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한 학급의 인원도 적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학교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예영이는 초등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좋아했고,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하고, 2학년이 되면서 어려운 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일부 친구들의 따돌림과 집요한 태도와 왜곡된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수업 시간조차 숨 막히고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으로 결국 학교생활 자체가 힘들어졌습니다.

    예영이는 당시 친구들의 행태에 맞서며 당당하게 위클래스 상담 교사를 찾아서 상담을 하며 그 상황을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부모로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왜 우리 아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상처를 받고, 관계 때문에 울고, 학교 가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내야 하나 하는 문제로 주님을 절박하게 찾았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위클래스 상담으로 극복해 주길 원했으나, 상담하는 선생님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학교로 직접 찾아가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선생님들은 제게 무조건 예영이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음을 알기에 예영이 전학을 추진해 달라고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폭으로 인해 전학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또한 전학은 예영이가 해야 할 부분이 아니었음에도 예영이가 너무도 학교 생활이 싫어서 전학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은 예영이에게 단순한 상처의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예영이는 원래 모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힘들게 해도 참고 넘어가려고 했고, 갈등이 생기는 것 자체를 불편해했습니다.

    그런데 관계 속에서 아픔을 겪으며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반드시 건강한 관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줄도 알아야 하고,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그것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며, 필요할 때는 갈등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대를 미워하거나 공격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신을 존중하면서 상대도 존중하는 건강한 관계의 기준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당시에는 왜 그런 아픔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예영이를 다루시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현재 예영이는 대학 진학 대신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하여 관련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 초년생이지만 밝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으며,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전보다 훨씬 안정감 있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학창 시절의 아픔이 있었기에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관계를 바라보는 건강한 기준도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때는 힘들고 억울한 일처럼만 보였던 시간들이었지만, 지금은 하나님께서 예영이를 보호하시고 준비시키시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제는 고백합니다.

    “주님,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감사합니다.”

    우리의 눈물과 상처조차 헛되게 사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전히 선한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이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이름

    얼마 전 오래된 기록들을 정리하다가 참 귀한 메모 한 장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태어날 아기를 위해 기도하던 중, 큰아이가 방언으로 기도했고 그 내용을 통변하여 적어 놓은 기록이었습니다.

    오래된 노트에 적혀 있는 내용은 지금 읽어도 놀랍습니다.

    “그 아이는 내가 가장 귀하게 쓸 것이며…”

    “내가 특별히 그 아이의 이름을 지을 것이며…”

    “너의 영향력 안에 살 아이가 아니라 내 백성 안에 있다…”

    “그 아이가 네 안에 있을 때에도 나의 사랑을 보게 될 것이고…”

    “세상에 나갈 때까지 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당시에는 그 말씀의 의미를 모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영이를 낳기 하루 전, 가족들이 함께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위해 기도하던 중 성령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딸을 원하지 않았느냐?”

    그 순간 제 마음속에서 한 고백이 흘러나왔습니다.

    “주님, 이 아이가 정말 딸이라면 이 아이는 예수님께 영광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고백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예영’ 이라는 이름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때는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후 오래된 통변 기록을 다시 읽어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아이의 이름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2003년에 기록해 두었던 방언 통변 내용 일부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는 한순간에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2004년에는 방언 통변을 통해 말씀하셨고,

    출산 직전에는 이름을 주셨으며,

    2016년에는 그 일을 다시 기억하게 하셨고,

    지금은 또 그 기록을 꺼내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만약 이 사건을 2004년의 한 장면으로만 보았다면 그저 특별한 경험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다시 바라보니 하나님께서 한 생명을 향해 얼마나 세밀하게 일하고 계셨는지가 보입니다.


    또 한 가지 마음에 깊이 남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름을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중요한 순간마다 이름을 바꾸시거나 직접 이름을 주셨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부르셨습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담긴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특별히 그 아이의 이름을 지을 것이다”라는 통변의 내용과 훗날 주어진 ‘예영’이라는 이름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무엇보다도 제 마음에 가장 크게 남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너의 영향력 안에 살 아이가 아니라 내 백성 안에 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자녀를 붙잡고 싶고, 좋은 길로 인도하고 싶고, 때로는 자신의 기대를 품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는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이 말씀은 예영이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부모인 저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생명이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길을 걸어갈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부모는 그 길을 위해 기도하며 함께 걸어가는 동역자일 뿐입니다.


    또 한 가지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잊어버린 은혜까지도 다시 기억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래된 노트 한 장,

    몇 줄의 통변 기록,

    그리고 2016년에 남겨 두었던 짧은 페이스북 글이 오늘 다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때가 되면 다시 기억하게 하시고,

    그 기억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 기록은 단순히 예영이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너희 가정을 이렇게 인도해 왔단다.”

    오늘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붙들고 계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이름을 준비하시고, 한 사람의 인생을 계획하시며, 우리가 잊어버린 은혜까지도 다시 기억나게 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

  •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

    17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문득 생각납니다.

    딸만 넷이었던 우리 집에서 아버지는 유난히 장녀였던 저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있습니다.

    “너희 시대에는 여자도 장관이 되고 대통령도 된다.”

    그 당시만 해도 제게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 이야기를 하시면서, 앞으로는 남자와 여자라는 이유로 기회가 제한되는 시대가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단순히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능성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우리나라에도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희망을 품었습니다.

    저 역시도 우리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역사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모습도 있었고, 실망스러운 모습도 있었습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시간이 지나며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한 사람의 등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자 대통령이냐 여자 대통령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가치와 어떤 마음으로 나라를 이끌어 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책과 위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의 모습입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여자도 장관이 되고 대통령도 되는 시대”는 단순히 여성의 사회 진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에 따라 꿈을 꿀 수 있는 사회.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혹은 어떤 배경을 가졌기 때문에 기회가 제한되지 않는 사회.

    서로를 존중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노력한 만큼 도전할 수 있는 사회.

    아마도 아버지는 그런 세상을 바라보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다를 수 있겠지만, 지금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며 꿈꿀 수 있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억압과 통제가 강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자라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눈치를 보게 되고, 자신의 생각을 숨기게 되며, 도전하기보다 침묵하는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도전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도 열리게 됩니다.

    건강한 사회는 서로를 억누르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를 세워 주는 사회일 것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듣고, 경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사회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바라셨던 것은 여자도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고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세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옳은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회.

    서로를 인정하고 격려할 수 있는 사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는 사회.

    다음 세대가 더 큰 꿈을 꾸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회.

    어쩌면 아버지가 바라셨던 세상도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월이 흘러도 아버지의 목소리는 여전히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말씀은 제게 작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사람은 떠나도 사랑으로 남겨 준 생각과 가치들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지금의 시대를 보며 어떤 말씀을 하셨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오늘은 유난히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 26년 전 주님이 주셨던 말씀

    26년 전 주님이 주셨던 말씀

    최근 오래된 자료를 정리하다가 2000년 5월에 기록했던 글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따라 약 10일 동안 A4 용지 40장 분량의 글을 기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짧은 기간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내용을 쓸 수 있었는지 놀랍기도 합니다.

    그 글의 중심에는 한 가지 공통된 주제가 있었습니다.

    “성령을 의지하라.”

    그리고 또 하나는,

    “가정을 회복하라.”

    였습니다.

    26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 보니,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당시의 글에는 사탄이 가장 먼저 무너뜨리려 하는 곳이 가정이며, 성도들이 하나 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을 일으킨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대를 돌아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술은 발전했고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들이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아파하고 있으며, 교회 역시 하나 됨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배워가고 있습니다.

    또한 글 곳곳에는 성령 충만에 대한 강조가 반복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칫 경험을 의지하게 되고, 과거의 은혜를 붙잡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제의 은혜가 아니라 오늘의 동행을 원하십니다.

    어제 받은 은혜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래된 글을 다시 읽으며 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때 기록했던 40장의 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글을 기록하게 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동일하게 살아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저를 붙드시던 주님께서 지금도 붙드시고 계십니다.

    그때 말씀하시던 주님께서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는 그 말씀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6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며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왜 주님께서 그토록 반복해서 성령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는지 말입니다.

    사람은 변하고 환경은 변합니다.

    계획도 바뀌고 상황도 달라집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만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활동이 아니라, 2013년에 적어 놓았던 고백처럼

    “더 은밀하고, 더 고요하며, 더 조용하고, 더 한적한 시간”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분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

    그것이 26년 전에도 중요했고, 지금도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들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하나씩 열리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고, 쿠팡 판매도 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만남과 기회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주님보다 앞서 갈 수 없고,

    아무리 바쁜 사역이라도 주님과의 교제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일을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법인 것 같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주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았고,

    성령의 역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고백합니다.

    “주님, 제가 아니라 성령을 의지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