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저는 믿음의 가정을 꿈꾸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제 마음속에는 한 가지 분명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죽어서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가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이 점점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하여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소망도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을 함께 믿고, 함께 기도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가정을 꿈꾸었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의 저는 그런 가정이라면 갈등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면 서로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실제 삶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갈등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같은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모든 가치관이 같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같은 말씀을 듣고 같은 예배를 드려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하는 방식은 서로 다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의 모양은 있지만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를 먼저 생각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답답했습니다.
왜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이렇게 다를까?
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상대방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왜 나는 이것이 너무 분명하게 보이는데 상대방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반복되면서 마음이 힘들어졌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이 조금만 달라지면 우리 가정이 훨씬 평안해질 텐데…”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남편의 마음을 바꾸어 주세요.”
“하나님, 남편이 이것을 깨닫게 해주세요.”
저는 하나님께서 상대방을 먼저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상대방보다 먼저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남편을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께서는 남편의 문제가 아니라 제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 생각을 주장하기 전에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할까?”
를 먼저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상대방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문제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조금씩 다른 질문을 하게 하셨습니다.
“네 생각이 맞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냐?”
“아니면 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냐?”
그 질문 앞에서 제 마음이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왜 저럴까?”라는 질문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보면 답답함과 분노가 먼저 올라왔습니다.
“왜 저렇게 하지?”
“왜 저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다루시면서 조금씩 질문이 달라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이렇게 묻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 사람은 왜 저럴까요?”
같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질문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상대방을 판단하기 위한 질문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 이해를 구하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 묻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상대방의 행동 뒤에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상처가 보이고,
두려움이 보이고,
자라온 환경이 보이고,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의 모든 행동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동의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무조건 옳다고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신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마음의 방향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1508
하나님은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가르쳐 주신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상대방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너 자신을 살펴보아라.”
상대방의 문제는 정말 쉽게 보입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잘 보입니다.
그 사람의 말투도 보이고,
습관도 보이고,
부족한 점도 보이고,
고쳐야 할 부분도 너무나 잘 보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문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 시선을 상대방에게서 제 자신에게로 돌리게 하셨습니다.
“나는 이 문제에서 정말 자유로운가?”
“나에게는 이런 모습이 전혀 없는가?”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정직한가?”
이 질문 앞에 서면 상대방을 함부로 판단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상대방에게 요구했던 것이 사실은 나에게도 필요한 것이었음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인내하라고 말하면서 나는 인내하지 못하고 있었고,
상대방에게 사랑으로 말하라고 하면서 나는 정작 내 말 속에 사랑이 부족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 앞에서 제 마음이 낮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옳은가”보다 “어떤 마음인가”를 보게 하셨습니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우리는 쉽게 누가 옳은지를 따집니다.
“누가 잘못했는가?”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
“누가 사과해야 하는가?”
물론 잘잘못을 분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너의 마음은 어떠하냐?”
내가 옳다고 하더라도 교만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내 말이 맞더라도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바른 것을 이야기하고 있어도 사랑 없이 말한다면 그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닫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게 옳은 말을 하는 것보다 옳은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무엇을 말할까?”보다 “어떻게 말할까?”
그 후부터 저는 하나님께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라고만 묻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주님,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라고 묻게 되었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상처를 주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을 열게 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말하기 전에 기도하고,
감정이 올라올 때 바로 말하지 않고,
내가 정말 해야 할 말인지 하나님께 먼저 묻고,
필요한 말이라면 어떤 마음과 어떤 태도로 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아무리 설명하고 설득해도 하나님께서 만지시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는 노력보다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문제를 중보기도의 제목으로 바꾸게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부족한 모습을 보면 마음속으로 불평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다루시면서 그것을 기도의 제목으로 바꾸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왜 저 사람은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 때,
그 사람을 판단하는 대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 사람의 마음을 만져 주세요.”
“주님, 제가 보지 못하는 그 사람의 아픔을 알게 해주세요.”
“주님, 제가 그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놀랍게도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제 마음부터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상대방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는데 내가 달라집니다.
상대방의 행동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달라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갈등을 통해서도 우리를 빚으십니다
우리는 어려운 관계가 생기면 그 관계가 빨리 끝나거나 상대방이 빨리 변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 그 관계를 통해 나를 빚어 가십니다.
인내를 배우게 하시고,
용서를 배우게 하시고,
경청을 배우게 하시고,
겸손을 배우게 하시고,
사랑을 배우게 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십니다.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관계가 힘들고 마음이 상할 때는 우리의 진짜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쉽게 판단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내 생각을 주장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상대방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는지를 말입니다.
그래서 갈등은 힘든 시간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보여주시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
내가 옳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한 가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항상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진리는 중요합니다.
잘못된 것을 옳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관계를 무너뜨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닫게 만든다면, 과연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문제를 바라볼 때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
보다
“하나님께서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원하실까?”
를 생각하려 합니다.
이 질문 하나가 제 마음을 많이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은 상대방을 통해서도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힘들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하나님께서 제 삶에 허락하신 하나의 배움의 자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의 부족함을 통해 나의 부족함을 보게 하셨고,
그 사람의 연약함을 통해 나의 연약함을 보게 하셨으며,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사람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을 조금씩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은 내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잘못한 부분을 회개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필요한 말을 지혜롭게 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제 마음에도 조금씩 자유가 생겼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갈등이 없는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어릴 때 꿈꾸었던 믿음의 가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믿음의 가정이라면 갈등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갈등이 없는 가정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가정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살아가면서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이 생겼을 때 하나님을 제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 감정만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님께 변화받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오랜 시간 관계를 통해 배우고 있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상대방이 아닌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가장 큰 가르침은 이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기 전에 먼저 네가 나에게 변화받아라.”
저는 처음에는 상대방의 변화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해 제 마음부터 만지셨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상대방의 상처를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중보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자신을 먼저 살피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관계의 문제를 만날 때 예전과 같은 질문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 저 사람은 저럴까?”
에서 멈추지 않고,
“주님, 이 일을 통해 제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라고 묻고 싶습니다.
그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지금도 하나님께 배우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글을 쓴다고 해서 제가 모든 관계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 역시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때로는 감정이 먼저 올라오기도 하고,
상대방의 말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며,
내 생각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돌아보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합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보여 주세요.”
“제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제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합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부터 고치려고 합니다.
상대방이 먼저 변해야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
그것이 제가 지금도 배우고 있는 신앙의 길입니다.
마무리하며
어릴 적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만나 믿음의 가정을 이루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게 더 깊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단순히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함께 배워가는 자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방을 먼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상대방의 부족함을 발견했을 때 나의 부족함도 함께 돌아보는 것,
상대방의 상처를 발견했을 때 정죄하기보다 기도하는 것,
말하고 싶을 때 먼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변화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만났던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들은 저를 힘들게만 했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를 가르치고 빚어 가셨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상대방의 문제를 통해서도 일하셨지만,
무엇보다 먼저 제 안을 다루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배우고 있습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상대방의 잘못을 찾는 것보다 내 마음을 살피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내 생각을 관철시키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혹시 지금 관계의 문제로 힘든 시간을 지나고 계신가요?
상대방이 변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하나님께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하나님, 상대방에게 무엇을 하시려는지보다 먼저 제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신지 보여주세요.”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일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상대방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교만을 내려놓게 하시고,
상대방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듣는 법을 가르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오히려 우리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며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만 가르치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나를 먼저 가르치고 계셨구나.”
오늘도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상대방만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 이 상황을 통해 먼저 저를 가르쳐 주세요.”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환경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때로는 어려운 관계 속에서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실을 믿으며 오늘도 하나님께 배우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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