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사랑으로 걷는 길

가정의 회복과 사랑, 용서와 관계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2018년 요양보호사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하며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기도 제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를 드리고, 봉사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가정 안에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부부가 서로 존중하며,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는 일.

    이것은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 역시 많은 기회를 놓치며 살아왔고,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도 말씀이 지식으로만 머무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2018년, 제가 방문하던 한 어르신 가정에서도 그런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 가정은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가정이었습니다.

    가족 모두 하나님을 믿고 있었고, 교회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갈등이 생겼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자녀 교육 문제와 앞으로의 삶을 위해 미국으로 잠시 나가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사실 그 자체는 특별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정에는 한 가지 중요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경추 장애로 인해 오랜 세월 침상 생활을 하고 계셨고, 돌봄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어머님의 입장에서는

    “결국 나를 두고 떠나는구나.”

    라는 서운함과 외로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자녀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며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입장이 너무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상대방이 아닌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한 가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에 가느냐, 가지 않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님의 마음이 충분히 존중받고 있지 않다고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옳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상대방의 마음은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해보다 주장,
    배려보다 판단,
    사랑보다 서운함이 자리 잡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믿는 가정도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어느 날 며느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미국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머님의 마음이 존중받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자녀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서운함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녀들을 축복하며 보내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물론 저는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그 가정 가운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조금씩 정리되었습니다.

    어머님 명의로 임대 아파트를 마련하게 되었고,

    아드님은 한국에 남아 어머님과 함께 생활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의 계획은 무엇을 기준으로 세워져야 할까요?

    그리고 진정한 믿음은 언제 드러나는 것일까요?

    믿음은 예배당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과 선택의 순간 속에서 드러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도,
    자녀를 이해하는 일도,
    서로를 존중하는 일도,

    모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열매일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종종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교회보다 먼저 우리의 가정을 다스려 주십시오.

    말씀을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가정이 되게 하십시오.

    우리의 생각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시고,

    우리의 주장보다
    주님의 사랑이 먼저 흘러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

  • 관계는 작은 배려 속에서 자라납니다

    관계는 작은 배려 속에서 자라납니다

    2018년의 일입니다.

    둘째가 운전면허를 취득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당분간은 형의 차를 번갈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근무 파트가 달라
    출퇴근 시간이 서로 겹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부모의 마음은 늘 같습니다.

    혹시나 늦지는 않을까,
    차량 이용에 불편함은 없을까,

    남편과 저는 아직도 노파심에
    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둘째를 걱정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 몸에 열이 많고 추위를 잘 타지 않는 남편과 달리,
    아이들은 저를 닮아 추위를 많이 타는 편입니다.

    아이들이 거실 온도를 조금 높여 놓았는데,
    남편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말투도 평소보다 부드럽지 못했고,
    아이들은 그런 분위기를 금방 느꼈습니다.


    사실 가족은 그렇습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에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그 일이 오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질문하실까요?

    다음 날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어제 저녁에 거실이 너무 펄펄 끓어서
    내가 순간적으로 마음이 안 좋았나 봐.”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며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저는 답장으로 이렇게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당신의 표정과 말투에 민감하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러자 남편은 짧지만 진심이 담긴 답을 보냈습니다.

    “알았시유~~”

    그 한마디가 참 고마웠습니다.

    변명하지 않고,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관계란
    서로 실수하지 않는 관계가 아닙니다.

    서운함이 생겼을 때
    다시 돌아와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

    잘못을 깨달았을 때
    겸손하게 인정할 수 있는 관계,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대해 주십니다.

    실수하고 넘어질 때마다 정죄하기보다,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시고
    회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가정 안에서도 조금씩 용서하고,
    조금씩 이해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날의 작은 일상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관계는 거창한 사건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돌아보는 작은 배려와
    진심 어린 한마디가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성숙해져 가는 것임을 말입니다. 😊🙏🏻

  • 부모도 연약한 사람입니다

    부모도 연약한 사람입니다

    몇 년 전, 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하며 있었던 일입니다.

    그 어르신은 오랜 세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기신 분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술은 끊으셨지만, 통풍과 치매까지 찾아와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어느 날 어르신의 두 아드님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은 자녀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해 겪었던 아픔,
    가정 안에서 경험했던 수많은 상처,
    실망과 분노의 기억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아버지가 연약해지고 병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쉽게 이해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며 제 마음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부모도 결국 연약한 사람일 뿐이구나.’


    *하나님은 먼저 상대방이 아닌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를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부모는 강해야 하고,
    부모는 책임져야 하고,
    부모는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알게 됩니다.

    부모도 부족한 사람이었고,
    부모도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고,
    부모도 자신의 연약함과 싸우며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가 상처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해는 용서의 문을 열어 주고,
    용서는 우리의 마음을 자유롭게 해 줍니다.

    그날 한 아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코 변화되시길 기대하는 마음은 없고, 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찾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오랜 세월의 아픔과 갈등, 그리고 자녀로서의 책임감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어쩌면 가족 관계의 회복은 상대방이 완전히 변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사랑의 몫을 다시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되는지 모릅니다.

    그날 대화를 마친 후 저는 오히려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 앞에서 수없이 결심하고 약속했지만 넘어졌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주님께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했지만 결국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상대방의 잘못만 바라보면 마음은 점점 굳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미워하던 사람 속에서도 연약함을 보게 되고, 정죄하던 사람 속에서도 긍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날 저는 어르신의 아드님들보다 오히려 제 자신의 마음을 더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종종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얼마나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려 주신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기다려 줄 수 있는가?

  •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알지 못하고 하는 신앙생활은 종교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수록 주님을 묵상하지 않고는,
    그분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삶으로 나타내며 살아간다는 것이
    제게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람의 열심과 의지로는 잠시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님과의 관계가 없다면 결국 사랑도, 순종도, 섬김도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이 섬기고,
    더 많이 양보하고,
    더 많이 이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의지로 시작한 사랑은
    내 마음이 지치면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 돌아오지 않을 때 마음이 상하고,
    내가 베푼 만큼 인정받지 못하면 서운해지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불평이 올라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안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지금 주님 때문에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먼저,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는 어렵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이 단순히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한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은 제 마음의 방향을 다시 주님께 돌려놓는 시간이었습니다.

    내 생각이 앞서 있을 때 말씀 앞에 서고,
    내 감정이 앞서 있을 때 기도로 내려놓고,
    내 뜻을 주장하고 싶을 때 주님의 뜻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을 바라보다 보면
    조금씩 제 안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내가 손해 보는 것을 먼저 생각했다면
    어느 순간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고,

    예전에는 ‘왜 저 사람은 저럴까?’라고 생각했다면
    조금씩 ‘저 사람에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한순간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마음을 그대로 붙들고 있기보다
    주님 앞에 가지고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연약함 속에서도 일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제가 연약하고 부족했던 시간에도
    한 걸음씩 인도해 주셨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는 필요한 일터를 허락하셨고,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보내셔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당장 필요한 일을 해야 했고,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경험했던 일들이
    그냥 지나간 시간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일은 제게 인내를 가르쳐 주었고,
    어떤 일은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어떤 일은
    제가 얼마나 쉽게 판단하고,
    얼마나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때는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저를 빚어 가시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만
    우리를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배우게 하시는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 같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9137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과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고 싶어 하시는 곳이 다르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아마 신앙의 길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

    내가 편한 자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마음을 두고 계신 곳을 바라보는 것.

    그런데 주님을 묵상하다 보면
    조금씩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의 편안함만을 위해 사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면받는 사람에게 다가가셨고,
    아픈 사람을 돌아보셨으며,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마음을 기울이셨습니다.

    주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이라면 이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실까?’

    ‘주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실까?’

    ‘내가 지금 해야 할 순종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방향과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다를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필요한 것이
    내 뜻을 관철하는 열심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순종이라는 것도 배워 갑니다.


    섬김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같은 행동을 하고 있어도
    그 마음의 동기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칭찬받기 위해 섬길 수도 있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섬길 수도 있습니다.

    또 내가 섬겼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섬길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는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몰라줄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섬김은 내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보다
    누구의 마음으로 그 일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을 배워 갑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섬김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으로 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하는 것.

    내가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
    주님께서 아신다는 사실로 만족하는 것.

    그것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의 섬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 간다는 것

    아버지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특별한 일을 많이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에게 한마디 더 참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과 상황 속에서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는 것.

    그렇게 한 번 더 주님을 바라보고
    한 번 더 내 마음을 내려놓는 것.

    어쩌면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는 과정은
    그렇게 아주 작은 순종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해야 할 때 마음에 붙들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생각과 감정 때문에 머뭇거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저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 주시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말씀을 통해 돌이키게 하시며,
    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시간을 통해 하나씩 보여 주십니다.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하나님의 손길

    돌이켜보면 제 삶에는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때는 답을 알 수 없었습니다.

    왜 이곳으로 보내셨는지,
    왜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는지,
    왜 내가 원하지 않았던 일을 경험하게 하셨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금씩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이해하게 만들고,
    그때 배운 것이 지금의 누군가를 섬기는 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당장 이해되지 않는 일 앞에서도
    조금은 다르게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라고 묻기보다

    ‘주님, 이 일을 통해 제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라고 묻게 됩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상황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조금씩 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역시
    주님께서 제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제는
    내가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주님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마음에 얼마나 순종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마음 아파하시는 곳에서
    나도 함께 마음 아파하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나도 조금 더 사랑하고,

    주님께서 돌아보시는 사람을
    나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제 힘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을 묵상하고,
    말씀 앞에 서고,
    기도하며,
    내 마음을 주님께 내어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해 주세요.
    제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을 바라보게 해 주세요.
    사람의 열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주님께 받은 사랑으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제 힘으로 순종하려 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함으로 순종하게 해 주세요.’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제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저를 인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했지만
    그 자리에서부터 한 걸음씩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걸어가고 싶습니다.

    오늘 제가 서 있는 그곳이
    제가 원해서 온 자리인지,
    예상하지 못했던 자리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마음을 두신 곳에
    저의 마음도 머물게 하시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저도 사랑하게 하시며,

    주님께서 맡겨 주신 작은 자리에서
    묵묵히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훗날 다시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을 때
    ‘그때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셨구나.’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을 바라봅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저의 마음도 있게 하소서.

    아멘.

  • 반석 위에 세워지는 가정

    반석 위에 세워지는 가정

    우리의 가정은 반석 위에 세워져 있을까요?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외관이 아니라 기초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큰 집이라도 기초가 약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균열이 생기고, 큰 비바람이 불어오면 결국 그 약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가정이라도 그 기초가 무엇으로 세워져 있는지에 따라 어려움을 만났을 때 전혀 다른 모습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두 집 모두 처음에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차이는 집을 지은 후 폭풍이 찾아왔을 때 나타났습니다.

    모래 위에 세운 가정

    모래 위에 세운 집은 겉으로는 견고해 보일 수 있습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가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겉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정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자신의 열심과 노력, 자신의 의와 세상의 지혜만으로 가정을 세워가고 있다면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그 연약함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차이가 갈등이 되고, 갈등이 반복되면서 상처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상대방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하나씩 떠올립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가정 안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불편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함께 살고 있지만 마음은 멀어지고,

    대화는 줄어들고,

    사랑은 메말라 가며,

    가족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납니다.

    상처는 쌓이고 서로를 향한 원망과 불평은 이어집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가정은 함께 존재하지만 하나 되지 못하는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모래 위에 세워진 가정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가정에도 폭풍은 찾아옵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반석 위에 세운 집이라고 해서 폭풍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사람에게도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며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믿음의 가정이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가 갈등할 수도 있습니다.

    자녀 때문에 마음 아파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질병이나 사고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의 선택 때문에 마음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서로 사랑하는 가족인데도 말 한마디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석 위에 세워진 가정과 모래 위에 세워진 가정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폭풍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폭풍이 왔을 때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엄마도 몰라서 주님께 묻는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69084

    반석 위에 세운 가정은 무엇이 다를까요?

    반석 위에 세운 가정은 주님의 은혜 위에 세워진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믿음과 신뢰를 배우며,

    사랑과 인내를 선택하고,

    기도로 가정을 세워가는 가정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힘만으로 가정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도 우리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용서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오래된 상처를 내려놓는 것도 그렇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기다리는 것도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만져 주셔야 합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상대방을 정죄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셔야 합니다.

    내가 받은 상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부터 가정의 회복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반석 위의 가정은 먼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쉽게 상대방을 바라봅니다.

    “당신이 변해야 해.”

    “아이들이 말을 들어야 해.”

    “왜 나만 노력해야 해?”

    “저 사람이 먼저 사과해야 해.”

    이런 마음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루시기 시작하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합니까?”

    “제가 먼저 용서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가족에게 잘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먼저 사랑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이것이 반석 위에 세워지는 가정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석 위에 세운 가정이라고 해서 모든 가족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가정입니다.

    잘못했을 때 사과할 수 있고,

    상처를 주었을 때 용서를 구할 수 있으며,

    상처를 받았을 때 용서하기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가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정입니다.

    사랑은 감정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사랑을 선택하는 것은 때로 매우 어렵습니다.

    내 마음을 몰라줄 때도 사랑해야 하고,

    상대방이 내 기대와 다르게 행동할 때도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할 때도 한 걸음 물러설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말이 마음에 상처를 줄 때도 즉시 같은 말로 되갚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성품만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정에는 성령의 열매가 필요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우리의 가정 안에 나타나야 합니다.

    가정의 회복은 단순히 가족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타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폭풍이 올 때 기초가 드러납니다

    평온할 때는 어떤 집이 반석 위에 세워졌는지 쉽게 알 수 없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잘될 때는 믿음이 있는 가정인지 아닌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폭풍이 찾아오면 기초가 드러납니다.

    어려움이 왔을 때 서로를 탓하는지,

    아니면 함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관계를 끊으려고 하는지,

    아니면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지.

    상처를 붙들고 살아가는지,

    아니면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지.

    그 차이가 가정의 기초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저는 폭풍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폭풍을 통해 우리가 무엇 위에 서 있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어려움이 우리의 가정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믿음 위에 세우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26년 전 주님께서 주셨던 말씀

    얼마 전 오래된 자료를 정리하다가 2000년 5월에 기록했던 글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당시 저는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따라 약 10일 동안 A4 용지 40장 분량의 글을 기록했습니다.

    그 글을 26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 보니 반복해서 등장하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성령을 의지하라.”

    그리고 또 하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가정을 회복하라.”

    당시에는 그 말씀의 깊이를 충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6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다시 그 기록을 읽으니 두 말씀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가족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먼저 나를 변화시키시도록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가족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을 먼저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가정의 기초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무엇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오늘 우리 가정의 기초를 한번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가정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까요?

    돈입니까?

    성공입니까?

    자녀의 성취입니까?

    사람들의 인정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우리의 가정 안에 기도가 있습니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상처를 받았을 때 하나님께 먼저 가져가고 있습니까?

    가족에게 잘못했을 때 먼저 사과하고 있습니까?

    서로의 부족함을 품어주고 있습니까?

    무엇보다 우리의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져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을 행복하게 만드는 수많은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모든 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반석 위에 세워지는 가정

    반석 위에 세운 가정도 울고,

    반석 위에 세운 가정도 갈등합니다.

    반석 위에 세운 가정도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러나 그 가정에는 다시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기도로 돌아갑니다.

    십자가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 앞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무너지지 않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후에도 다시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상처가 있었지만 용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눈물이 있었지만 다시 웃을 수 있습니다.

    무너질 것 같았던 가정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단단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반석 위에 세워지는 가정의 모습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의 가정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입니다.

    혹시 지금 우리 가정에 폭풍이 불고 있다면,

    먼저 가족을 바라보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내가 먼저 주님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우리 가정을 반석 위에 세워 주옵소서.”

    “우리의 힘이 아니라 성령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사랑과 용서와 화해가 흘러가게 하옵소서.”

    “어떤 폭풍이 불어와도 주님 안에서 하나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이 세상의 기준 위에 세워진 가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가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비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며 삶의 수많은 폭풍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가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가정을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주님, 제가 아니라 성령을 의지하게 하소서.”

    “우리의 가정을 주님의 말씀 위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