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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우리는 교회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믿는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막연하게 대답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훌륭한 성인이나 사랑을 가르치신 위대한 스승이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구원자라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아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믿느냐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방식과 구원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 마태복음 3:17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이러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을 잘 섬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마태복음 16:16

    여기서 ‘그리스도’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곧 메시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역사 속에 우연히 등장한 한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매우 깊이 있게 설명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요한복음 1:1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요한복음 1:14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요한복음 14:9

    예수님의 삶과 말씀과 행동을 바라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로마서 3:23

    죄는 단순히 우리가 저지른 몇 가지 잘못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근본적인 상태까지 포함합니다.

    그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누가복음 19:10

    예수님은 길을 잃은 사람을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 이사야 53:5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단순한 비극적인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대신한 희생이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대가를 예수님께서 담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요한복음 1:29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선포합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 마태복음 28:6

    부활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 주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도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소망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요한복음 11:25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함께 읽어보면 좋은 글

    「사도 바울이 전도자들에게 줬던 4가지 단순한 지침」 — 최덕성 칼럼, 크리스천투데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분명히 아는 것은 복음의 출발점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했던 복음의 중심에도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는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바울의 복음 사역의 핵심이었습니다.

    이 글은 바울이 전도자들에게 무엇을 전하도록 가르쳤는지를 살펴보면서, 결국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 사람의 지혜나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복음에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조금 더 깊이 묵상하고 싶은 분이라면 함께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8191


    *천국은 어떤 곳인가? 누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가|성경이 말하는 천국과 구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사람은 자신의 선행이나 노력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요한복음 14:6

    예수님은 여러 가지 구원의 방법 가운데 하나를 제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 사도행전 4:12

    구원의 중심에는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중보자이십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디모데전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 디모데전서 2:5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시는 중보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삶이 조금 더 평안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복음의 핵심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교회에 다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면 이제는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내 감정과 판단을 따라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고린도후서 5:17

    예수님은 우리의 겉모습만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삶의 방향을 바꾸어 가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에게는 회개와 순종과 변화의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분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십자가와 부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요한복음 14:3

    예수님은 다시 오실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단지 과거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계시며 우리와 함께하시고, 장차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단순히 알고 있는 데서 그치지 말고 믿고 영접하라고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요한복음 1:12

    결국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게 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고 싶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요한복음 14:15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쉽게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는 분으로만 예수님을 생각할 수도 있고, 힘들 때 도움을 주시는 분 정도로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구주이십니다.

    또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으며 지금도 살아 계시고, 장차 다시 오실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중심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이유도 예수님을 더 알기 위해서이고, 기도하는 이유도 주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이며, 말씀에 순종하는 이유도 나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수많은 소리와 가치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기준으로 무엇이 옳은지 말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모든 소리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히브리서 12:2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내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주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길과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때 믿음은 결국 선택의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우리의 삶도 조금씩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종교생활을 위한 분이 아닙니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붙드시는 분이며, 죄에서 건지시는 구원자이시고,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길이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시는 목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요한복음 10:11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천국에 가기 위한 수단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며,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그렇다면 다시 한번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예수님을 정말 누구라고 믿고 있는가?”

    예수님을 단지 성경 속의 인물로 알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도 마음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마태복음 16:16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그분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사형을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사형을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사형을 쉽게 말하는 사람

    십자가를 안다 하고 사형을 너무도 쉽게 말하는 최근 사회를 바라보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정치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비난합니다.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가장 강한 형벌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던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까지도 누군가를 향해 너무 쉽게 사형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죄는 죄입니다. 법을 어겼다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사회의 정의도 반드시 세워져야 합니다. 신앙은 불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세상과 다른 한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는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기에 오늘 우리가 용서받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사람의 생명을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많아졌는데, 왜 우리의 정서는 메말라가고 있을까요?

    *인식이 바뀌면 삶의 의미가 보인다 – 의미는 발견하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출처 :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 앞에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뜻은 죄를 용납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심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돌아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 죄였는지를 압니다. 그리고 그 죄를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았음을 알기에 다른 사람을 향한 말도 신중해집니다.

    죄는 미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인을 향한 긍휼까지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법은 법대로 판단해야 하고, 재판은 증거와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재판관이 아닙니다. 감정과 분노로 누군가의 생명을 쉽게 단정하는 것은 십자가 앞에 선 사람의 태도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긍휼을 말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와 긍휼이 함께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십자가는 죄의 무게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동시에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도 않고, 생명 또한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혹시 오늘 우리의 말 속에는 분노가 은혜를 이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정의를 구하면서도 긍휼을 잃지 않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왜 생명을 소중히 여길까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닙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신 사건이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드러난 구원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쉽게 비난하고 정죄했던 사람도, 이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한 영혼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누군가의 실패를 보며 “벌을 받아야 한다.”라고 먼저 말하기보다 “회개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도하게 됩니다.

    물론 죄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져야 합니다. 정의는 반드시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는 언제나 회개의 문을 닫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향해 죄를 죄가 아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돌을 들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죄를 돌아보게 하셨고, 여인에게는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76593

    우리가 쉽게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누군가를 너무 쉽게 판단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지 못하면서도 댓글 하나로 사람을 정죄하고,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처럼 낙인찍기도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 서면 우리는 먼저 자신의 죄를 보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지금 어디에 있었을까?’

    이 질문 앞에서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심판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정의를 말하면서도 긍휼을 잃지 않습니다. 진리를 말하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

    혹시 오늘 누군가를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누군가의 과거를 붙잡고 계속 정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먼저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 용서를 받았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 기억은 다른 사람을 향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어 놓습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회개의 가능성을 믿으며, 하나님의 긍휼을 닮아 가는 삶. 그것이 십자가를 아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에필로그

    십자가는 단순히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는 상징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를 진심으로 경험한 사람은 생명을 쉽게 판단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죄를 미워하지만 죄인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닮아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십자가 앞에 머문다면, 심판보다 긍휼을, 분노보다 사랑을, 정죄보다 회복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어 갈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가장 아름다운 변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