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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반복해서-말씀하시는-이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함없이 말씀하신 신실하신 분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은 제 삶 가운데 오랜 시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결같이
    말씀하셨는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출처 : 페이스북 저장 글



    2015년 겨울
    잊을 수 없는 한 꿈


    2015년 12월 19일

    며칠 전에 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땅 위에서 보니 맨홀 같은 웅덩이가 있어서 내려다 보니
    그 곳은 아주 커다랗고 넓고 깊은 구덩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마치 해발 고도가 832m에 이르고 총 고개의 연장 길이가 13km 이며
    99개의 고개의 굽이가 있는 대관령 고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봤을 때와 같은..

    그런 깊은 곳 아래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던 시간 때 부터 엄청나게 큰 구렁이가 빠른 속도로 땅 위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비록 꿈 속이었지만 너무 놀라서 지금도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깊은 아래에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구렁이가 쉭쉭 소리를
    내며 올라오고 있었는데,
    두 바퀴 정도면 곧 땅 위로 올라올 기세였습니다.

    꿈속에서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꿈 속이었지만 그 구렁이가 머지않아 땅 위까지 올라 오면
    모두가 죽는다 라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순간
    제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절박하게 주님을 찾아야 할 때다.”

    꿈의 내용보다
    제 마음에 남겨 주신 이 한 문장이
    더 강하게 기억되었습니다.


    출처 : 페이스북 저장 글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계속 같은 방향으로 말씀하셨습니다.

    2016년에는 또 다른 꿈을 통해 여러 가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 꿈 속에서는

    • 지휘권을 넘겨주지 말라는 의미
    • 연약한 사람을 돌아보라는 마음
    • 언제나 말씀하시는 분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라는 말씀
    • 사람을 부풀려 말하지 말라는 교훈

    등이 제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을 미리 아시고
    제게 꿈으로 알려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의미를 모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말씀하신 내용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분별력이 있는 자들은 본질을 추구합니다 – 현상이 아닌 진실을 바라보는 성경적 분별력의 원리



    *왜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즉시 해결하지 않으실까? 기다림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


    출처 : 페이스북 저장 글




    그리고 2026년…

    올해 1월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성령께서 제 마음에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라!”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라!”

    다시 한번,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라!”

    그 순간 제 마음에는 한 가지 확신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주님께서 하실 일의 목적은
    어떤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시는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35738

    하나님은 언제나 일관되게 말씀하십니다

    뒤돌아보면 단 한 번도 서로 다른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말씀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그림처럼 연결되었습니다.

    성경도 그렇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두 번의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알았습니다.

    사무엘은 여러 번 들려오는 음성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았습니다.

    선지자들도 같은 메시지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도하시며 때가 되면 깨닫게 하시는 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사건과 뉴스를 접합니다.

    사회도 흔들리고,
    정치도 흔들리며,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게 오랫동안 가르쳐 주신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꿈의 마지막에 남겨진 마음도,

    성령께서 주신 말씀도,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더욱 찾으라.”

    그리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라.”

    이것이 제게 계속해서 말씀하신 핵심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고 믿습니다.

    때로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장 정확한 때에 일하십니다.

    그리고 뒤돌아보면,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말씀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맺음말

    저는 앞으로도 사람을 드러내기보다
    주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을 바라보게 하지만,

    성령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라.”

    그 이름만이 소망이며,

    그 이름만이 영광을 받으실 이름입니다.

    신실하신 예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 함께 묵상할 말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영원하도다.”
    (시편 100:5)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그는 미쁘시니 그 약속하신 이를 생각하라.”
    (히브리서 10:23)

  • 진실을 외면하는 삶의 본질

    진실을 외면하는 삶의 본질

    자기 정당화가 반복될 때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


    사람은 진실을 원하지만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실수를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10대에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20대에는 열정이 앞서 판단을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30대와 40대, 심지어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크고 작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배우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실수를 했는가?”가 아니라 “실수를 어떻게 대하는가?”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어떤 사람은 그것을 성장의 계기로 삼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56436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성장합니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결코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사과할 줄 알고, 책임질 줄 알며, 다시 배우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성숙해집니다.

    주변 사람들도 그를 신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보다 진실한 사람을 더 믿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실수보다 더 큰 문제는 거짓된 태도입니다.

    실수는 시간이 해결할 수 있지만, 신뢰를 잃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지키고 있는 걸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반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잘못은 언제나 상황 탓으로 돌립니다.

    경제가 어려워서, 상대방이 먼저 그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다고 말합니다.

    둘째, 타인의 작은 실수는 오래 기억합니다.

    자신은 용서를 원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셋째, 자신의 거짓말은 정당화합니다.

    “그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면 쉽게 비난합니다.

    넷째, 사과보다 변명이 먼저 나옵니다.

    잘못을 설명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쓰지만 인정하는 데는 인색합니다.

    다섯째, 진실보다 체면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실이 밝혀지는 것보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더 두려워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입니다.

    자신에게 적용하는 기준과 타인에게 적용하는 기준이 전혀 다릅니다.


    자기 정당화는 처음에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합리화(Self-Justification) 또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줄이려는 행동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자신을 보호하던 이 습관이 반복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위험해집니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합니다.

    한 번 잘못을 부인하면 그 잘못을 끝까지 숨기기 위해 더 많은 변명이 따라옵니다.

    결국 사람은 진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지키기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출처 :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반복되는 자기 정당화는 양심을 무디게 만듭니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양심이 둔해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하지만 계속 반복하면 불편함조차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삶의 방식이 됩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변화입니다.

    사람은 갑자기 악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자기 정당화가 반복되면서 점점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진실을 외면하면 현실도 왜곡해서 보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현실까지 왜곡해서 해석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무시하고,

    유리한 정보만 받아들이며,

    결국 객관적인 판단 능력까지 약해집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 온 자기 정당화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됩니다.


    성경은 진실 앞에 서는 사람을 귀하게 말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죄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이키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반대로 마음이 완고해져 끝까지 자신을 의롭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눈물을 흘리는 행위가 아니라, 진실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용기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진실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실수의 크기가 아닙니다.

    실수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자기 정당화는 순간의 자존심을 지켜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신뢰를 잃고 관계를 무너뜨리며 자신의 성장까지 멈추게 만듭니다.

    반대로 진실을 인정하는 용기는 처음에는 아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고, 신뢰를 회복하게 하며,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는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실은 때로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리지만, 결국 우리의 삶을 바로 세워 줍니다.

    그래서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 앞에 설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진짜 두려운 것은 죄가 아니라 ‘인정’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죄 자체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죄보다 ‘인정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자존심이 무너질 것 같고, 체면을 잃을 것 같으며, 지금까지 쌓아 온 이미지가 흔들릴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실을 부정하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려 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작은 변명이었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결국 진실보다 자존심을 지키는 삶이 되어 버립니다.

    성경에서도 인간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죄를 짓는 행위보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일임을 보여 줍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했기에 회복될 수 있었지만, 사울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며 백성과 상황을 탓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죄를 지었지만, 결국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 것은 죄의 크기가 아니라 진실 앞에 서려는 태도였습니다.

    죄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는 마음은 회개의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립니다.

    그래서 진짜 두려운 것은 죄 자체보다, 죄를 인정하지 못하는 완고한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변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시간이 아닙니다.

    시간은 단지 우리가 어떤 선택을 반복했는지를 드러낼 뿐입니다.

    같은 10년을 살아도 어떤 사람은 더욱 겸손해지고, 어떤 사람은 더욱 완고해집니다.

    같은 실패를 경험해도 어떤 사람은 더 지혜로워지고, 어떤 사람은 더 많은 변명만 늘어놓습니다.

    시간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아니라, 반복된 태도를 굳어지게 만드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매일 진실을 선택한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정직한 사람이 됩니다.

    매일 자기 정당화를 선택한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거짓을 스스로도 믿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다고 반드시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살았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로운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성숙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진실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인정하는 횟수만큼 자라납니다.

    오늘 인정하지 못한 작은 잘못은 내일 더 인정하기 어려워지고, 몇 년이 지나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부정해야 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진실을 선택하는 작은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닙니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도 시간이 아닙니다.

    매일 진실을 선택하는 태도입니다.

    진실은 때로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겸손이 세워질 때, 비로소 사람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진실 앞에 서기를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진실을 인정하는 용기가 회복의 시작이며, 그 용기가 한 사람의 인생을 새롭게 만듭니다.

  • 옳은 일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르지만, 그 끝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옳은 일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르지만, 그 끝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최근 국제사회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갈등이 이어지고,
    국가들은 서로를 비난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악을 막기 위해서는 강한 조치가 필요하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수많은 사람들과 생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한쪽의 말만 쉽게 맞다고 하기도 어렵고,
    반대로 틀렸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현실은 복잡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바라보며 한 가지 분명하게 떠오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반드시 옳은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옳은 일을 망설이는가?

    사실 사람들은 대부분 무엇이 옳은 일 인지 전혀 몰라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옳은 일을 선택했을 때 따라올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말하면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정의를 세우려 하면 반발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면 관계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종종 진리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그 진리를 외면할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나 하나 행동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그렇게 합리화가 시작됩니다.

    합리화는 우리의 마음을 잠시 편안하게 만들지만,
    진실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출처 :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대가가 두렵다고 옳은 일을 포기할 수 있는가?

    성경 속 하나님의 사람들은 늘 이 질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노아는 조롱을 감수해야 했고,

    모세는 바로와 맞서야 했으며,

    다니엘은 사자굴의 위협 앞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조차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그 길은 가장 옳은 길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큰 대가를 요구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단순히 옳은 것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옳은 일을 위해 어떤 대가를 감당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공의를 말하면서 생명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균형을 배워야 합니다.

    때로 사람들은 공의를 이야기하면서
    그 과정에서 상처 입는 사람들의 아픔을 너무 쉽게 지나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피해와 고통만 바라보다가
    결국 불의에 대한 판단 자체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분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죄라고 말씀하시지만,
    동시에 죄인 한 사람의 생명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것을 보여 줍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있습니다.

    죄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동시에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죄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그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타협이 반복될 때 하나님의 공의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많은 사람들은 묻습니다.

    “타협하며 살아도 당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나타난다고 말씀합니다.

    다만 그것이 언제나 즉각적인 심판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무서운 일은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이 있었지만,

    합리화가 반복되면 양심이 무뎌지고,

    양심이 무뎌지면 결국 자신이 옳다고 믿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스스로를 속이는 가장 위험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심은 것은 결국 거두게 됩니다.

    진리를 외면한 선택 역시 언젠가 그 열매를 맺게 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04622


    하나님의 뜻은 결과보다 과정 속에서 드러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눈에 보이는 성공이나 좋은 결과로만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까지도 소중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노예가 되었고 감옥에 갇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니엘은 신앙을 지키다가 사자 굴에 던져졌으며, 초대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직을 선택하면 손해를 볼 수 있고, 진실을 말하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선택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당장은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순종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시며 가장 좋은 때에 그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옳은 길을 걷는 동안 결과가 더디게 보인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충성, 인내,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까지도 사용하여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하시고, 결국 자신의 선한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도 눈앞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선택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걸음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길을 걷는 사람과 함께하시며, 그 여정을 통해 우리와 주변 사람들까지도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보다 정직한 사람을 찾으신다

    다행인 것은 하나님께서 완벽한 사람만 찾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대가가 부담스러워 진리를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지만 다시 일어섰고,

    다윗은 큰 죄를 범했지만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회개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무리

    세상에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습니다.

    전쟁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우리의 일상 속 선택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옳은 일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릅니다.

    그 대가가 두렵다고 진리를 포기하면 결국 타협이 시작됩니다.

    반대로 공의를 말하면서 사람의 아픔과 생명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대가가 두렵더라도,
    합리화로 진리를 포기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옳은 일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모든 것을 공의롭게 판단하시며 동시에 사랑으로 품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