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좋아하세요?”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아주 평범한 질문입니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여행하고 싶은 곳이나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없어서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제 마음속에는 늘 다른 질문들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찾기보다 알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많은 책을 갖고 싶었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알고 싶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형이나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물어볼 사람이 있었고, 함께 이야기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싶은 것이 많아도 마음껏 배우고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한편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왜 이렇게 살아갈까?”
어쩌면 그때부터 저는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보다 알고 이해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제게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쉽게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보다 알고 싶은 것을 찾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질문은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어느 순간 질문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질문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계실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정말 내 마음을 아실까?”
“내가 혼자 중얼거리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실까?”
“기도는 꼭 교회에 가서 해야 하는 걸까?”
“하나님은 정말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까?”
“순종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진짜 순종일까?”
“예수님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을 믿는데 왜 내 마음에는 기쁨과 감사가 없는 걸까?”
이 질문들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 분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설명하는 것만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을 실제 삶에서 만나고 싶었습니다.
기도가 정말 하나님과의 대화인지 알고 싶었고,
하나님께서 정말 나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시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순종이 단순히 명령에 따르는 행위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신뢰하며 함께 걸어가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신앙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이 질문이 더 중요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마음속 갈증은 남아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성경도 배웠고, 설교도 들었고, 다른 사람들의 간증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삶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형식은 있는데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었고,
말씀을 알고 있는데 삶에서는 평안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도하면서도 마음이 답답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교회에 가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을 정말 알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신앙인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질문했습니다.
“왜 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평안하지 않을까?”
“왜 말씀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왜 기도하면서도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까?”
“하나님은 정말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일까?”
그때의 저는 사람들에게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답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이 믿음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한때는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 자체가 믿음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과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쏟아놓았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자신의 두려움과 고통을 숨기지 않았고,
욥도 이해되지 않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계속 질문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저도 그것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질문에 즉시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제 모든 질문에 한 번에 답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답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알고 계시다면 왜 바로 알려주시지 않을까?”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실까?”
“왜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해 주시지 않을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답을 주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답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계셨던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문제의 답을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 문제의 답보다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모두 보여주시기보다 오늘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시기보다 그 시간을 지나가는 동안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제 질문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라고 물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님, 이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신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제가 지금 무엇을 순종해야 합니까?”
라고 묻게 되었습니다.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질문의 방향이 달라진 것입니다.
답을 찾는 사람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으로
저에게 가장 큰 변화는 이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답을 얻어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이유를 알아야 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아야 했으며,
기도하면 어떤 방식으로 응답될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조금씩 쌓이면서 한 가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모든 계획을 이해하지 못해도 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답보다 하나님을 더 찾고 싶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을 기다리기보다,
문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만을 바라기보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질문 속에서도 우리를 만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질문하시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모르셔서 물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질문을 통해 아담이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생각을 모르셔서 질문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질문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던지시는 질문도 다르게 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도록 질문하시는 분입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느냐?”
“무엇을 의지하고 있느냐?”
“정말 나를 신뢰하고 있느냐?”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런 질문 앞에 서다 보면 내가 하나님보다 문제를 더 크게 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평가를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응답 자체를 하나님보다 더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질문은 때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데려갑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4541
기도의 응답보다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처음 배울 때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건강을 구하고,
문제의 해결을 구하고,
필요한 것을 구하고,
원하는 결과를 구합니다.
물론 그것도 기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기도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이것을 주세요.”
에서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로,
그리고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로 조금씩 나아가게 됩니다.
기도의 목적이 단순히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응답이 늦어도 하나님을 놓지 않게 됩니다.
응답이 아직 보이지 않아도 기도를 계속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하나님께 다시 묻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응답만이 아니라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하나님과 친밀해진다는 것이 특별한 신비한 경험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평범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일 앞에서도 하나님께 묻고,
마음이 흔들릴 때 하나님께 나아가고,
잘못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말씀을 통해 내 생각을 돌아보고,
순종해야 할 것을 깨달았을 때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 내 뜻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하나님과 함께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순간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기도하는 시간에도 계시고,
일하는 자리에도 계시고,
혼자 있는 시간에도 계시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함께 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직도 저는 질문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께 묻고 싶은 것들도 많습니다.
때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기도했는데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답을 얻지 못하면 불안했습니다.
지금도 불안할 때가 있지만, 그 불안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것을 이해해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문제의 해결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지금은 문제의 해결뿐 아니라 그 문제를 지나가는 동안 하나님을 놓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제가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믿음입니다.
모든 답을 알지 못해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답을 찾습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누구와 결혼할지,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우리가 끝까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모든 질문에 답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는 이제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모든 답을 알아야 평안한 것이 아니라, 답을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 평안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일을 알지 못해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내가 앞으로의 길을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내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붙드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질문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도 질문 때문에 무너지지는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답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참 많은 질문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이 옳은지 알고 싶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었으며,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보다 삶의 의미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질문에 완벽한 답을 얻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질문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답을 얻었다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답을 얻지 못했을 때도 하나님을 찾고 싶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보일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싶습니다.
길이 선명할 때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밖에 보이지 않을 때도 하나님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모든 답을 알게 되었다.”
라고 말하기보다,
“나는 많은 질문을 가지고 살았지만, 그 질문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갔다.”
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제 마음에는 여전히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질문들이 반드시 두려움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은 기도가 될 수 있고,
기다림은 믿음이 될 수 있으며,
알 수 없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하나님 앞에 머뭅니다.
답보다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합니다.
문제의 해결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더 원합니다.
내가 원하는 길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걷기 원합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모든 질문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답을 찾기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주어진 한 걸음을 하나님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답보다 하나님을 찾는 삶.
어쩌면 이것이 제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수많은 질문들이 결국 저를 데려온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하나님을 더 알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모든 답을 알게 해달라는 것보다 주님을 더 알게 해주세요.”
그것이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