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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다림-왜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즉시 해결하지 않으실까?

    기다림-왜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즉시 해결하지 않으실까?

    기다림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


    문제는 왜 빨리 해결되지 않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만 빨리 해결해 주세요.”

    질병이 낫기를 원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끝나기를 바라며,
    가정의 갈등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 다를 때가 많습니다.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상황은 그대로이고,
    시간은 흘러가는데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질문합니다.

    “왜 하나님은 내 기도에 바로 응답하지 않으실까?”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라, 가장 선한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환경보다 사람을 먼저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는 대부분 환경이 바뀌기를 원합니다.

    문제가 사라지고,
    형편이 좋아지고,
    고통이 끝나는 것을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관심을 두시는 것은 우리의 환경보다 우리의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환경은 언젠가 다시 변하지만,
    변화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문제를 그대로 두신 채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십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은혜이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는 것은 더 큰 은혜입니다.


    *회개하는 죄인과 끝까지 악을 붙드는 사람의 차이

    *잘하던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방법이 아닌 중심을 새롭게 빚으십니다



    성경 속 인물들도 모두 기다림을 경험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은 후 오랜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꿈을 받았지만 노예 생활과 감옥을 거친 후에야 총리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받았고,

    다윗 역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뒤에도 오랜 시간 사울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기다림은 하나님의 침묵이 아니라 하나님의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상황보다 그들의 내면을 먼저 다듬고 계셨던 것입니다.


    기다림이 우리에게 어려운 이유

    현대 심리학에서는 사람은 즉각적인 보상(Instant Gratification) 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스마트폰으로 몇 초 만에 원하는 정보를 찾고,
    온라인 주문으로 하루 만에 물건을 받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기다림에 점점 익숙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우리의 신앙에도 영향을 줍니다.

    기도하면 바로 응답받기를 원하고,
    노력하면 즉시 결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조급함에 맞추어 일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기다림을 통해 인내를 배우게 하시고,
    인내를 통해 성숙한 믿음을 만들어 가십니다.

    성경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씀합니다.

    기다림은 시간을 허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가장 깊이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닙니다

    기도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씨앗은 땅속에서 조용히 자라고,

    아기는 어머니의 태중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성장하며,

    다이아몬드는 오랜 시간의 압력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더 깊은 신뢰를 배우게 하십니다.

    지금의 기다림은 하나님의 외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일 수 있습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57717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기다림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다림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맡겨진 삶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를 멈추지 않고, 말씀을 붙들며, 작은 순종을 이어가는 사람은 비록 환경은 변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 안에서 조금씩 변화되어 갑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변화시키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마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

    기다림 끝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결코 쉬운 시간이 아닙니다.

    오늘 답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은 가장 선한 방법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급함보다 신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언제나 가장 정확한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결론: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나 가장 정확합니다

    우리의 시계는 오늘만 바라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계는 우리의 인생 전체와 영원까지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장 좋은 때를 아십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되지 않아도,
    오늘의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늦게 해결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선한 것을 주시기 위해 가장 완전한 때를 준비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조급함으로 하나님의 시간을 앞서기보다, 오늘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걸어가십시오.

    언젠가 뒤돌아보는 날,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늦게 들으신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응답하고 계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

    혹시 지금 해결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낙심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세 가지를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1.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응답이 늦어진다고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2. 결과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지키십시오.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3. 작은 감사 하나를 기록해 보십시오.

    감사는 문제가 없어졌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도 함께하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감사를 기록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이미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루고 계셨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질문하실까요?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질문하실까요?

    우리는 하나님께 묻는 데 익숙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왜 기도 응답이 더딥니까?”

    “왜 제 삶은 이렇게 힘듭니까?”

    하지만 성경을 읽다 보면 의외의 장면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묻는 분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왜 사람들에게 물으실까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심은 심문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우리를 정죄하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기 위한 초대에 가깝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9)

    하나님께서 아담의 위치를 모르셔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 물음은 아담이 자신의 영적 상태를 보도록 하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죄는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숨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물음은 숨어 있는 인간을 다시 하나님 앞으로 부르시는 음성이었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도 하나님은 질문하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창세기 4:9)

    하나님은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물음은 심판 이전에 주어지는 마지막 은혜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물음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초대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물음은 언제나 사람을 변화의 자리로 이끄는 초대였습니다.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을 때도,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물으셨을 때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셨을 때도
    목적은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죄하기 위해 묻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고 다시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사랑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물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읽다가 마음이 찔리기도 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의 욕심과 두려움을 깨닫기도 합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통해 삶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 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신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만지고 계시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물음 앞에서 우리의 태도

    하나님의 물음을 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며 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감출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완벽한 대답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입니다.

    회개는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의 물음 앞에서 마음을 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중심을 드러내기 위해 조용히 물으십니다.

    “지금 무엇을 가장 사랑하고 있느냐?”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느냐?”

    “왜 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고 있느냐?”

    이런 물음들은 우리를 책망하기 위한 음성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욱 깊은 관계로 초대하는 사랑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물음에 솔직하게 응답하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만 해결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믿음은 성숙해지고 삶은 조금씩 하나님의 뜻을 닮아 가게 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87747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장)

    주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모르셔서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 물음은 실패한 제자를 회복 시키기 위한 사랑의 물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물음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회개하는 죄인과 끝까지 악을 붙드는 사람의 차이



    오늘도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질문하고 계십니다.

    “정말 나를 신뢰하느냐?”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느냐?”

    “내 뜻보다 네 생각을 앞세우고 있지는 않느냐?”

    “지금도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의 물음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더 깊은 믿음으로 이끄시기 위한 물음입니다.

    우리는 물음 앞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게 됩니다.

    맺음말

    우리는 늘 하나님께 답을 구합니다.

    하지만 신앙의 성장은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던지시는 물음에 답하는 과정 속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물음에 귀를 기울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묻고 계십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우리를 하나님께로 부르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하나님은 우리의 답을 몰라서 물으시지 않으십니다. 물음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비추시고, 진실을 마주하게 하시며,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물음을 들을 때 두려워하기보다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물음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더 깊은 믿음으로 자라도록 이끄시는 은혜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끝까지 머무는 신앙

    하나님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끝까지 머무는 신앙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끝까지 주님 안에 머무를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질문은 믿음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나오는 물음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질문하기도 전에 이미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그 마음 자체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십자가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도움을 구합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을 찾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문제의 해답보다 하나님 자신을 원하는 것입니다.

    상황이 바뀌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내 생각과 판단보다 주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하는 태도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온 마음’**입니다.

    모든 것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 편에 서기를 선택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의지하는 법을 배워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머무는 신앙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한복음 15:4)

    우리는 종종 이 말씀을 들으며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거함’은 완벽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흔들릴 때도 떠나지 않고, 이해되지 않을 때도 등을 돌리지 않으며, 넘어졌을 때 다시 돌아오는 관계의 지속성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머무는 신앙은 완벽한 신앙이 아니라 떠나지 않는 신앙입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7936

    끝까지 머무르기 위해 필요한 것

    1. 하나님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기

    하나님을 형통의 도구나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마음이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목적이 되면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관계는 계속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보다, 주님과 함께 걷는 것 자체를 기뻐하는 믿음이 오래 갑니다.

    2. 감정보다 방향을 붙들기

    신앙생활에는 뜨거운 날도 있지만 메마른 날도 있습니다.

    기도가 잘되지 않을 때도 있고,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믿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삶의 방향입니다.

    마음이 따라오지 않아도 주님 쪽을 향해 서 있으려는 선택, 그것이 바로 머무름입니다.

    3. 자신의 힘으로 버티려 하지 않기

    오래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특별히 강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가져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가는 이유는 강해서가 아니라 붙들어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4. 기다림을 실패로 해석하지 않기

    하나님의 응답이 늦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기도했지만 변화가 보이지 않고, 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실 수는 있어도 우리를 버리시는 분은 아닙니다.

    주님 안에 머무는 사람은 기다림을 버림받음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며 걸어갑니다.

    하나님께 붙잡히는 신앙

    돌아보면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붙들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게 나를 붙들고 계시는가의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힘들어도 다시 기도하게 되고, 넘어져도 다시 주님께 돌아오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놓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신앙은 하나님을 붙잡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잡히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머무는 사람은 특별히 잘해서가 아니라, 오늘도 다시 주님께 돌아오기를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고백이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주님, 저는 여기 있습니다.”

    그 한마디를 들으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 곁에 계십니다. 🙏💙

  • 답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답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가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좋아하세요?”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아주 평범한 질문입니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여행하고 싶은 곳이나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없어서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제 마음속에는 늘 다른 질문들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찾기보다 알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많은 책을 갖고 싶었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알고 싶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형이나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물어볼 사람이 있었고, 함께 이야기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싶은 것이 많아도 마음껏 배우고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한편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왜 이렇게 살아갈까?”

    어쩌면 그때부터 저는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보다 알고 이해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제게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쉽게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보다 알고 싶은 것을 찾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질문은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어느 순간 질문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질문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계실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정말 내 마음을 아실까?”

    “내가 혼자 중얼거리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실까?”

    “기도는 꼭 교회에 가서 해야 하는 걸까?”

    “하나님은 정말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까?”

    “순종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진짜 순종일까?”

    “예수님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을 믿는데 왜 내 마음에는 기쁨과 감사가 없는 걸까?”

    이 질문들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 분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설명하는 것만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을 실제 삶에서 만나고 싶었습니다.

    기도가 정말 하나님과의 대화인지 알고 싶었고,

    하나님께서 정말 나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시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순종이 단순히 명령에 따르는 행위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신뢰하며 함께 걸어가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신앙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이 질문이 더 중요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마음속 갈증은 남아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성경도 배웠고, 설교도 들었고, 다른 사람들의 간증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삶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형식은 있는데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었고,

    말씀을 알고 있는데 삶에서는 평안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도하면서도 마음이 답답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교회에 가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을 정말 알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신앙인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질문했습니다.

    “왜 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평안하지 않을까?”

    “왜 말씀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왜 기도하면서도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까?”

    “하나님은 정말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일까?”

    그때의 저는 사람들에게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답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이 믿음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한때는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 자체가 믿음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과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쏟아놓았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자신의 두려움과 고통을 숨기지 않았고,

    욥도 이해되지 않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계속 질문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저도 그것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질문에 즉시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제 모든 질문에 한 번에 답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답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알고 계시다면 왜 바로 알려주시지 않을까?”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실까?”

    “왜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해 주시지 않을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답을 주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답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계셨던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문제의 답을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 문제의 답보다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모두 보여주시기보다 오늘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시기보다 그 시간을 지나가는 동안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제 질문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라고 물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님, 이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신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제가 지금 무엇을 순종해야 합니까?”

    라고 묻게 되었습니다.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질문의 방향이 달라진 것입니다.


    답을 찾는 사람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으로

    저에게 가장 큰 변화는 이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답을 얻어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이유를 알아야 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아야 했으며,

    기도하면 어떤 방식으로 응답될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조금씩 쌓이면서 한 가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모든 계획을 이해하지 못해도 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답보다 하나님을 더 찾고 싶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을 기다리기보다,

    문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만을 바라기보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질문 속에서도 우리를 만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질문하시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모르셔서 물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질문을 통해 아담이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생각을 모르셔서 질문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질문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던지시는 질문도 다르게 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도록 질문하시는 분입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느냐?”

    “무엇을 의지하고 있느냐?”

    “정말 나를 신뢰하고 있느냐?”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런 질문 앞에 서다 보면 내가 하나님보다 문제를 더 크게 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평가를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응답 자체를 하나님보다 더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질문은 때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데려갑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4541

    기도의 응답보다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처음 배울 때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건강을 구하고,

    문제의 해결을 구하고,

    필요한 것을 구하고,

    원하는 결과를 구합니다.

    물론 그것도 기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기도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이것을 주세요.”

    에서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로,

    그리고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로 조금씩 나아가게 됩니다.

    기도의 목적이 단순히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응답이 늦어도 하나님을 놓지 않게 됩니다.

    응답이 아직 보이지 않아도 기도를 계속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하나님께 다시 묻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응답만이 아니라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하나님과 친밀해진다는 것이 특별한 신비한 경험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평범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일 앞에서도 하나님께 묻고,

    마음이 흔들릴 때 하나님께 나아가고,

    잘못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말씀을 통해 내 생각을 돌아보고,

    순종해야 할 것을 깨달았을 때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 내 뜻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하나님과 함께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순간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기도하는 시간에도 계시고,

    일하는 자리에도 계시고,

    혼자 있는 시간에도 계시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함께 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직도 저는 질문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께 묻고 싶은 것들도 많습니다.

    때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기도했는데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답을 얻지 못하면 불안했습니다.

    지금도 불안할 때가 있지만, 그 불안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것을 이해해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문제의 해결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지금은 문제의 해결뿐 아니라 그 문제를 지나가는 동안 하나님을 놓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제가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믿음입니다.


    모든 답을 알지 못해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답을 찾습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누구와 결혼할지,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우리가 끝까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모든 질문에 답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는 이제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모든 답을 알아야 평안한 것이 아니라, 답을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 평안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일을 알지 못해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내가 앞으로의 길을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내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붙드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질문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도 질문 때문에 무너지지는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답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참 많은 질문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이 옳은지 알고 싶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었으며,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보다 삶의 의미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질문에 완벽한 답을 얻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질문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답을 얻었다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답을 얻지 못했을 때도 하나님을 찾고 싶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보일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싶습니다.

    길이 선명할 때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밖에 보이지 않을 때도 하나님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모든 답을 알게 되었다.”

    라고 말하기보다,

    “나는 많은 질문을 가지고 살았지만, 그 질문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갔다.”

    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제 마음에는 여전히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질문들이 반드시 두려움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은 기도가 될 수 있고,

    기다림은 믿음이 될 수 있으며,

    알 수 없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하나님 앞에 머뭅니다.

    답보다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합니다.

    문제의 해결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더 원합니다.

    내가 원하는 길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걷기 원합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모든 질문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답을 찾기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주어진 한 걸음을 하나님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답보다 하나님을 찾는 삶.

    어쩌면 이것이 제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수많은 질문들이 결국 저를 데려온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하나님을 더 알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모든 답을 알게 해달라는 것보다 주님을 더 알게 해주세요.”

    그것이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