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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통로로 부를 허락하시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통로로 부를 허락하시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어떤 통로로 부를 허락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부를 생각하면 먼저 돈을 떠올립니다.

    얼마를 벌었는지,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얼마나 좋은 투자를 했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앙 안에서도 부에 대한 생각은 쉽게 두 극단으로 나뉩니다.

    한쪽에서는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물질적인 복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다른 한쪽에서는 “돈과 부를 가까이하는 것은 신앙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성경이 말하는 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반드시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증거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어떻게 얻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의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의 궁극적인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열심히 일했고, 공부했고, 기술을 익혔고, 좋은 기회를 잡았고, 투자해서 수익을 냈으니 모두 내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의 노력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노력할 수 있는 건강과 능력도 내가 처음부터 만들어 낸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재능과 지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환경, 그리고 때를 따라 찾아오는 기회 역시 모두 내가 계획해서 만들어 낸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부를 만들어 냈다고 자랑하지 않도록 경고합니다.

    신명기 8장 18절은 하나님께서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이 말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돈을 보내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할 능력과 생각할 지혜, 기회를 활용할 힘과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를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돈에 대한 우리의 관점입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벌었는가?”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맡기셨는가?”로 시선을 옮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통로를 사용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어떤 통로를 통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방법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직장을 통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기술과 재능을 통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면서 소득을 얻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 공부하고 전문성을 쌓은 뒤 그 능력을 통해 더 넓은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대가 변하면서 투자와 자산 관리 역시 우리가 경제생활을 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통로인가보다 그 통로를 누가 열었고, 나는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사용하고 있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방식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 이미 존재하는 여러 통로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일할 기회를 주시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하기도 하며, 생각하지 못했던 공부의 기회를 열어 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를 알게 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훗날 돌아보면 당시에는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갔던 일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길을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부의 통로 가운데 하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일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일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소득을 얻는 과정 역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질서 안에 있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그렇고, 자신의 기술로 일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며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를 이야기할 때 단순히 “얼마를 벌 것인가?”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도 함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왜 같은 말씀을 여러 번 하실까?



    재능과 전문성도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재능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글을 잘 쓰고, 어떤 사람은 손재주가 뛰어나며, 어떤 사람은 사람을 잘 돌봅니다.

    어떤 사람은 숫자에 강하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발견하는 데 능숙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 한 분야를 공부하여 전문적인 지식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재능과 지식은 단순한 개인의 자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잘 사용하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동시에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소득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단순히 성공하기 위한 노력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을 잘 관리하는 청지기의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사업과 투자도 무조건 배척할 대상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사업과 투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돈과 투자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나 투자라는 행위 자체가 선하거나 악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안에 들어 있는 탐욕과 욕심, 정직하지 못한 방법, 지나친 위험 감수와 돈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투자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탐욕스러운 것도 아니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돈을 바라보는 마음과 그것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투자는 미래를 위해 자산을 관리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투자에는 언제나 위험이 존재합니다.

    수익을 얻을 수도 있지만 손실을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투자하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수익을 보장받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이런 생각은 믿음이라기보다 때로는 자신의 욕심을 신앙으로 포장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위험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위험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도 지혜롭게 판단하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61074

    하나님이 주시는 부와 내가 원하는 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부와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시는 부가 반드시 같지는 않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많은 돈을 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절제를 배우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나는 더 큰 수익을 원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손실을 통해 욕심을 돌아보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나는 빠른 성공을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랜 시간 성실함을 배우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돈을 얻는 것보다 돈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해할 때는 결과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벌었는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부는 축복이면서 동시에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신다면 그것은 단순히 더 편안하게 살라는 의미만은 아닐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에게는 더 큰 책임도 따릅니다.

    내가 가진 돈으로 가족을 돌볼 수 있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부의 개념에는 나눔과 책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돈이 많다는 사실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얼마나 정직하고 지혜롭게 관리했는지가 중요합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라도 돈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소유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를 허락하실 때 우리가 배워야 할 것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경제적인 기회를 열어 주실 때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먼저 감사를 배워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모두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별을 배워야 합니다.

    좋은 기회처럼 보인다고 해서 모두 붙잡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절제를 배워야 합니다.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기다림도 배워야 합니다.

    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경우보다 오랜 시간 성실하게 쌓이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눔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이미 길을 열고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삶에는 이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시간이 지난 후 돌아보니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된 일,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 일, 예상하지 못했던 공부를 하게 된 일, 새로운 금융상품을 알게 된 일, 투자라는 세계를 접하게 된 일도 그렇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인지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때부터 나를 어떤 길로 인도하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물론 모든 일이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었다고 섣불리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선택과 실수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택과 부족함까지도 사용하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성숙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나온 모든 일을 억지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셨는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돈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결국 부에 대한 신앙적인 질문은 이것으로 모아집니다.

    “하나님은 나를 얼마나 부자로 만들어 주실 것인가?”

    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을 나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돈은 우리의 삶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때로는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돈 자체를 죄악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돈이 하나님보다 앞서게 되는 순간 우리는 돈을 섬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돈을 갖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가지고도 돈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려 합니다

    이제부터 나는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부를 허락하시는 통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나에게도 하나의 특별한 통로가 열렸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거창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식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남편이 어느 날 주식이 꼭 나쁜 것 만은 아닌 것 같다며 아주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냅니다. 아이들 결혼 준비도 해야 하는 부담감에 조금이라도 투자를 해서 돈을 모으고 싶은 마음에서 주식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전 부터 주식을 부정적으로 바라 보지 않았으나, 남편이 부정적이었고 또 투자를 할 만한 상황이 못되었기에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식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 남편과 아주 조금 투자를 해 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본격적으로 자연스럽게 주식이라는 금융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과정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을 지나면서 나는 투자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돈에 대한 나의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상하지 못했던 큰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반대매매였습니다.

    그 사건은 나에게 단순한 투자 손실이 아니었습니다.

    돈을 바라보는 시선, 금융회사를 바라보는 시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질문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주식을 접하도록 길을 여셨다면, 왜 그 길의 끝에서 이런 어려움을 만나게 하셨을까?”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번에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하나씩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돈을 많이 벌었던 이야기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투자를 잘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한 사람이 돈과 투자, 손실과 고난을 지나오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그 과정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를 허락하시는 가장 중요한 통로는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다듬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하시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이제 다음 글부터 하나씩 꺼내 보려고 합니다.

  • 하나님이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 꼭 축복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 꼭 축복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우리는 그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응답은 은혜이며 사랑입니다.

    오랫동안 기도하던 일이 이루어지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문제가 풀리고, 간절하게 바라던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저 역시 기도한 일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것을 은혜라고 고백했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다른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사실 자체가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셨거나 오랫동안 응답하지 않으셨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외면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아니오’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응답​일 수 있고,

    때로는 하나님의 ‘기다리라’는 말씀이 우리를 더 깊은 곳으로 인도하는 응답​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것을 생각하게 하는 놀라운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던 때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만나를 먹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애굽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생각하며 고기를 달라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신 놀라운 구원보다 자신들이 원하는 음식에 대한 욕구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추라기를 보내셨고, 그들이 원하는 고기를 먹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분명 기도 응답처럼 보입니다.

    원하는 것을 구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이 사건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파리하게 하셨도다”

    시편 106편 15절

    이 말씀은 우리의 기도생활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영혼은 건강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혼이 파리해졌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었는데도 영혼은 메말라 갔던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는 것과 영혼이 건강해지는 것은 다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나에게 좋은 것을 얻는 것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도했는데 이루어졌으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구나.”

    물론 실제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좋은 것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우리에게 반드시 유익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위험한 물건을 달라고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아이가 간절하게 원한다고 해서 부모가 그것을 그대로 내어 주는 것이 사랑일까요?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왜 안 주세요?”

    “저는 그것이 꼭 필요한데요.”

    “다른 친구들은 다 가지고 있는데 왜 저는 안 돼요?”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가 알지 못하는 위험을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눈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와 영혼의 상태까지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향한 사랑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선물을 더 원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원하는 것일까?

    물론 처음부터 완전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기도하기는 어렵습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기면 필요한 것을 채워 달라고 기도하고,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면 상황을 바꾸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좋은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기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아뢰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보다 내가 원하는 결과에 마음을 빼앗길 때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내 뜻대로 해 주시면 감사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문제 해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주님, 이 일이 잘되게 해 주세요.”

    “주님, 제가 원하는 결과를 얻게 해 주세요.”

    그러나 신앙이 조금씩 깊어지면 기도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주님, 이 일을 통해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주님, 제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합니까?”

    “주님, 이 상황에서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주님, 제가 원하는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게 됩니다.

    상황을 바꾸어 달라는 기도에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해 달라는 기도로 조금씩 변화되는 것입니다.

    문제가 없어지는 것만이 기도의 응답이 아니라,

    문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얻게 되는 것 역시 귀한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거절도 응답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가 응답되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외면하시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던 장면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잔을 앞에 두고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적인 고통의 측면에서 보면 그 잔을 피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기도는 우리에게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나의 뜻을 관철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 앞에 내려놓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0265



    때로는 기다리게 하시는 것이 응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면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 합니다.

    “언제 응답해 주실까요?”

    “왜 아직 아무런 변화가 없을까요?”

    “정말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듣고 계실까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기다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준비의 시간일 수 있습니다.

    상황을 변화시키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먼저 변화시키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기 전에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빚어 가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것이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기다리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침묵도 때로는 응답의 한 과정일 수 있습니다.


    응답받지 못한 기도 때문에 감사하게 되는 날도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왜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을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히려 알게 됩니다.

    “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은 것이 나에게는 은혜였구나.”

    당시에는 문이 닫힌 것이 실패처럼 보였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나를 보호하신 하나님의 손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얻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을 얻지 않은 것이 오히려 감사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왜 막으시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나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무엇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계셨는지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그때 제 기도를 그대로 들어주시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기도가 바뀌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신앙이 성숙할수록 기도의 내용도 조금씩 변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 “주님, 이것을 주세요.”
    • “주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 “주님, 제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해 주세요.”

    라는 기도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이런 기도를 하게 됩니다.

    • “주님,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 “제가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 “제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합니까?”
    • “주님을 더 깊이 알게 해 주세요.”
    • “제가 원하는 것보다 주님의 뜻을 더 사랑하게 해 주세요.”

    기도의 초점이 문제에서 하나님께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하나님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원하는 것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 더 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눈물을 아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어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원하는 것을 모두 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주는 분입니다.

    때로는 주시고,

    때로는 막으시고,

    때로는 기다리게 하시며,

    때로는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까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자신에게도 질문해 봅니다.

    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 내 뜻과 다른 길을 보여 주실 때 그 길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아니오”라고 말씀하셔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질문일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응답하시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있지 않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응답이 축복이고,

    때로는 거절이 축복이며,

    때로는 기다림이 축복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께 가까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것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기도할 때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보다 주님께서 제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길을 열어 주시는 것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응답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응답의 모양이 무엇이든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 제가 받은 것보다 주님을 더 귀하게 여기게 해 주십시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성숙한 기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에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하시는 것이 반드시 축복은 아닙니다.

    때로는 주시는 것이 은혜이고,

    때로는 막으시는 것이 은혜이며,

    때로는 기다리게 하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끌어 가신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기도의 응답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주님, 이것을 주세요.”에서

    “주님,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세요.”로

    조금씩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기도가

    “주님,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세요.”가 아니라

    “주님, 무엇을 주시든, 무엇을 거두시든,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 주님을 신뢰하게 해 주세요.”

    라는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기도의 응답보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