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십자가를 생각하면 용서와 사랑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정작 십자가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새롭게 하기 전에 먼저 우리를 벗겨 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써 감추고 있던 모습,
스스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모습,
사람들에게는 물론 하나님께도 숨기고 싶었던 모습까지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은혜의 자리인 동시에 수치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바로 그 수치의 자리를 통해 우리에게 새 옷을 입히십니다.
변명할 말이 사라지는 순간
처음에는 누구나 자신을 변호하려고 합니다.
“이건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하지만 십자가 앞에 오래 머물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변명이 힘을 잃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고백이 흘러나옵니다.
“주님,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은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을 붙들고 있던 마지막 손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은 비로소 우리를 붙드시기 시작하십니다.
주님의 시선이 정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 자신도 모르게 재판관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실망한 아버지,
엄격한 검사,
잘못을 지적하는 심판자의 모습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십자가 앞에서는 다른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모습을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실패도,
넘어짐도,
감추어진 마음도,
상처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수치의 성질이 달라집니다.
숨고 싶은 마음이 내려놓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주님께 머물고 싶은 마음으로 바뀝니다.
수치가 은혜로 변화되는 순간입니다.
벗겨졌는데도 버려지지 않았다는 경험
인간은 누구나 두려워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났을 때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꾸미고,
포장하고,
증명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합니다.
모든 것이 드러났는데도
주님이 떠나지 않으시는 경험입니다.
벗겨졌는데도 품어 주시고,
연약함이 드러났는데도 사랑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이래도 사랑받는구나.”
은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입히시는 새 옷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 옷을 더 훌륭한 모습으로 생각합니다.
성공한 사람,
흠 없는 사람,
실수하지 않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입히시는 새 옷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의의 옷
의의 옷은 완벽함의 옷이 아닙니다.
“이제 너는 절대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약속이 아니라,
“실수해도 너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
라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이 옷을 입은 사람은 남을 쉽게 정죄하지 않습니다.
자신 또한 은혜로 덮인 존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겸손의 옷
진짜 겸손은 자기비하가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이미 나를 아신다.”
라는 평안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조용해집니다.
목소리는 낮아지지만,
존재감은 더 깊어집니다.
긍휼의 옷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본 사람은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못합니다.
자신도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왔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별은 하지만 냉혹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지만 잔인하지 않으며,
선을 지키지만 우월감을 갖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입히시는 긍휼의 옷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벗지 않아도 되는 옷
하나님이 입히시는 새 옷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옷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벗지 않아도 되는 옷입니다.
이 옷을 입은 사람은 더 이상 사람들의 인정에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박수에 취하지도 않고,
오해에 쉽게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깊은 곳에서 이미 하나님께 덮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먼저 벌거벗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벗겨진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의의 옷과 겸손의 옷, 그리고 긍휼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목적은 수치가 아닙니다.
수치를 지나 은혜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마침내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이제는 숨지 않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이미 덮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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