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 믿음의 성장, 기도와 말씀을 통해 배우는 신앙의 여정을 나눕니다.

  • 천국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 |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

    천국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 |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

    얼마 전 아는 지인에게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정말 잘됐다.”
    “부럽다.”
    “축하해.”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함께 기뻤습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곳에서 살아온 시간과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그곳에서 살아가겠다는 삶의 방향과도 연결되어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미국 시민권을 그렇게 부러워할까?”

    그리고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조금 다른 질문에 닿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시민인가?”


    미국 시민권보다 더 귀한 시민권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신분을 갖게 됩니다.

    어느 나라의 국민인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것을 이루었는지에 따라 자신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직장을 얻거나, 좋은 집을 마련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을 이루면 그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미국 시민권 역시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것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제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마음에 떠오른 것은 아주 분명했습니다.

    천국 시민권입니다.

    미국 시민권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그것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의 신분입니다.

    그러나 천국 시민권은 다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난 이후에도 이어지는 영원한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 빌립보서 3:20

    이 말씀을 생각하면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가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상관없습니다

    물론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좋은 집도 감사하고,
    좋은 직장도 감사하고,
    경제적인 여유도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안하게 살아가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진정한 평안을 누리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환경이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그곳에서 견딜 힘을 얻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시는 곳이라면 그곳이 좋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더 좋은 곳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평범한 하루도 은혜가 되고,

    하나님과 함께라면 어려운 길에서도 걸어갈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큰 복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하고,
    환경이 바뀌기를 기도하고,
    좋은 것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물론 그런 기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문제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더 중요하고,

    환경이 바뀌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도 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 가운데 평안을 얻기도 하고,

    막막한 가운데 한 걸음을 내딛기도 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기보다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이 블로그를 시작하고 글을 하나씩 써 내려가면서 저에게도 한 가지 마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이곳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아는 사람인지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어떻게 만나 주셨는지,

    어떻게 기다려 주셨는지,

    어떻게 다시 일으켜 주셨는지,

    그리고 힘든 순간에도 어떻게 함께 걸어 주셨는지를 기록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때로는 믿음이 흔들리고,

    때로는 걱정하고,

    때로는 하나님보다 눈앞의 상황을 더 크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붙잡은 것 같지만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먼저 저를 붙들고 계셨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이야기는 결국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머물러 있는 블로그가 아니라

    저는 이 블로그가 단순히 글이 많이 쌓여 있는 공간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좋은 글을 많이 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을 찾아온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힘든 하루를 보내다가 우연히 이곳에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왔지만 너무 지쳐서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곳에 들어와 글 하나를 읽다가

    “하나님이 나를 잊지 않으셨구나.”

    그렇게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긴 글을 다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한 문장만 마음에 남아도 괜찮습니다.

    한 구절의 말씀만 기억해도 괜찮습니다.

    그 한 문장이 누군가에게 다시 하나님을 바라볼 힘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내 결심만으로는 살아지지 않았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91694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은 우리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은 또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야 합니다.

    내가 위로받았다면 누군가를 위로하고,

    내가 용서받았다면 누군가를 용서하고,

    내가 하나님의 기다리심을 경험했다면 나도 누군가를 기다려 주고,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다면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완벽하게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작은 사랑이라도 괜찮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누군가를 위해 드리는 기도 한 번,

    상처 입은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마음 하나,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삶에서 하신 일을 솔직하게 나누는 것.

    그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곳에서 누군가가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블로그에 저의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합니다.

    잘된 이야기만 기록하지 않고,

    힘들었던 이야기도 기록하고,

    넘어졌던 이야기도 기록하고,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도 기록하고,

    그런 가운데 결국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도 기록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기다림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멈추게 하심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았던 길을 걷게 하심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알게 됩니다.

    그 모든 순간에도 하나님은 함께 계셨다는 것을.

    그래서 이곳의 글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하나님을 바라봐야겠다.”

    “하나님께 다시 기도해 봐야겠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어봐야겠다.”

    그런 마음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라도 생긴다면 저는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할 것 같습니다.


    나는 천국 시민입니다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시작된 작은 생각이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시민권도 있지만,

    내게는 그보다 더 귀한 시민권이 있습니다.

    천국 시민권입니다.

    나는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이 땅에만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어디에 살든,

    어떤 환경에 있든,

    어떤 상황을 지나가든,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미국이든 한국이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시는 곳이라면 그곳이 좋습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만 간직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이 블로그를 찾아오는 한 사람에게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는 길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

    이 이름처럼 이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록하고,

    지금 걷고 있는 길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보고,

    앞으로 걸어갈 길도 하나님께 맡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길에서 받은 하나님의 사랑이

    저에게서 멈추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게 흘러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머물러 있는 블로그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는 블로그.

    그것이 제가 이곳에 바라는 가장 큰 소망입니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이 땅을 살아가지만
    나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나는 천국 시민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걷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우리는 교회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믿는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막연하게 대답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훌륭한 성인이나 사랑을 가르치신 위대한 스승이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구원자라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아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믿느냐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방식과 구원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 마태복음 3:17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이러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을 잘 섬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마태복음 16:16

    여기서 ‘그리스도’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곧 메시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역사 속에 우연히 등장한 한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매우 깊이 있게 설명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요한복음 1:1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요한복음 1:14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요한복음 14:9

    예수님의 삶과 말씀과 행동을 바라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로마서 3:23

    죄는 단순히 우리가 저지른 몇 가지 잘못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근본적인 상태까지 포함합니다.

    그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누가복음 19:10

    예수님은 길을 잃은 사람을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 이사야 53:5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단순한 비극적인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대신한 희생이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대가를 예수님께서 담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요한복음 1:29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선포합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 마태복음 28:6

    부활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 주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도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소망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요한복음 11:25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사람은 자신의 선행이나 노력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요한복음 14:6

    예수님은 여러 가지 구원의 방법 가운데 하나를 제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 사도행전 4:12

    구원의 중심에는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중보자이십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디모데전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 디모데전서 2:5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시는 중보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삶이 조금 더 평안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복음의 핵심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교회에 다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면 이제는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내 감정과 판단을 따라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고린도후서 5:17

    예수님은 우리의 겉모습만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삶의 방향을 바꾸어 가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에게는 회개와 순종과 변화의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분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십자가와 부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요한복음 14:3

    예수님은 다시 오실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단지 과거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계시며 우리와 함께하시고, 장차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단순히 알고 있는 데서 그치지 말고 믿고 영접하라고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요한복음 1:12

    결국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게 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고 싶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요한복음 14:15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쉽게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는 분으로만 예수님을 생각할 수도 있고, 힘들 때 도움을 주시는 분 정도로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구주이십니다.

    또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으며 지금도 살아 계시고, 장차 다시 오실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중심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이유도 예수님을 더 알기 위해서이고, 기도하는 이유도 주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이며, 말씀에 순종하는 이유도 나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수많은 소리와 가치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기준으로 무엇이 옳은지 말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모든 소리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히브리서 12:2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내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주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길과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때 믿음은 결국 선택의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우리의 삶도 조금씩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종교생활을 위한 분이 아닙니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붙드시는 분이며, 죄에서 건지시는 구원자이시고,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길이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시는 목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요한복음 10:11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천국에 가기 위한 수단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며,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그렇다면 다시 한번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예수님을 정말 누구라고 믿고 있는가?”

    예수님을 단지 성경 속의 인물로 알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도 마음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마태복음 16:16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그분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 진실을 외면하는 삶의 본질

    진실을 외면하는 삶의 본질

    자기 정당화가 반복될 때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


    사람은 진실을 원하지만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실수를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10대에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20대에는 열정이 앞서 판단을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30대와 40대, 심지어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크고 작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배우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실수를 했는가?”가 아니라 “실수를 어떻게 대하는가?”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어떤 사람은 그것을 성장의 계기로 삼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56436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성장합니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결코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사과할 줄 알고, 책임질 줄 알며, 다시 배우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성숙해집니다.

    주변 사람들도 그를 신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보다 진실한 사람을 더 믿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실수보다 더 큰 문제는 거짓된 태도입니다.

    실수는 시간이 해결할 수 있지만, 신뢰를 잃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지키고 있는 걸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반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잘못은 언제나 상황 탓으로 돌립니다.

    경제가 어려워서, 상대방이 먼저 그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다고 말합니다.

    둘째, 타인의 작은 실수는 오래 기억합니다.

    자신은 용서를 원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셋째, 자신의 거짓말은 정당화합니다.

    “그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면 쉽게 비난합니다.

    넷째, 사과보다 변명이 먼저 나옵니다.

    잘못을 설명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쓰지만 인정하는 데는 인색합니다.

    다섯째, 진실보다 체면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실이 밝혀지는 것보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더 두려워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입니다.

    자신에게 적용하는 기준과 타인에게 적용하는 기준이 전혀 다릅니다.


    자기 정당화는 처음에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합리화(Self-Justification) 또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줄이려는 행동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자신을 보호하던 이 습관이 반복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위험해집니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합니다.

    한 번 잘못을 부인하면 그 잘못을 끝까지 숨기기 위해 더 많은 변명이 따라옵니다.

    결국 사람은 진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지키기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출처 :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반복되는 자기 정당화는 양심을 무디게 만듭니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양심이 둔해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하지만 계속 반복하면 불편함조차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삶의 방식이 됩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변화입니다.

    사람은 갑자기 악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자기 정당화가 반복되면서 점점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진실을 외면하면 현실도 왜곡해서 보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현실까지 왜곡해서 해석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무시하고,

    유리한 정보만 받아들이며,

    결국 객관적인 판단 능력까지 약해집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 온 자기 정당화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됩니다.


    성경은 진실 앞에 서는 사람을 귀하게 말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죄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이키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반대로 마음이 완고해져 끝까지 자신을 의롭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눈물을 흘리는 행위가 아니라, 진실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용기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진실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실수의 크기가 아닙니다.

    실수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자기 정당화는 순간의 자존심을 지켜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신뢰를 잃고 관계를 무너뜨리며 자신의 성장까지 멈추게 만듭니다.

    반대로 진실을 인정하는 용기는 처음에는 아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고, 신뢰를 회복하게 하며,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는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실은 때로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리지만, 결국 우리의 삶을 바로 세워 줍니다.

    그래서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 앞에 설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진짜 두려운 것은 죄가 아니라 ‘인정’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죄 자체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죄보다 ‘인정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자존심이 무너질 것 같고, 체면을 잃을 것 같으며, 지금까지 쌓아 온 이미지가 흔들릴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실을 부정하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려 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작은 변명이었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결국 진실보다 자존심을 지키는 삶이 되어 버립니다.

    성경에서도 인간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죄를 짓는 행위보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일임을 보여 줍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했기에 회복될 수 있었지만, 사울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며 백성과 상황을 탓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죄를 지었지만, 결국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 것은 죄의 크기가 아니라 진실 앞에 서려는 태도였습니다.

    죄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는 마음은 회개의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립니다.

    그래서 진짜 두려운 것은 죄 자체보다, 죄를 인정하지 못하는 완고한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변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시간이 아닙니다.

    시간은 단지 우리가 어떤 선택을 반복했는지를 드러낼 뿐입니다.

    같은 10년을 살아도 어떤 사람은 더욱 겸손해지고, 어떤 사람은 더욱 완고해집니다.

    같은 실패를 경험해도 어떤 사람은 더 지혜로워지고, 어떤 사람은 더 많은 변명만 늘어놓습니다.

    시간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아니라, 반복된 태도를 굳어지게 만드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매일 진실을 선택한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정직한 사람이 됩니다.

    매일 자기 정당화를 선택한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거짓을 스스로도 믿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다고 반드시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살았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로운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성숙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진실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인정하는 횟수만큼 자라납니다.

    오늘 인정하지 못한 작은 잘못은 내일 더 인정하기 어려워지고, 몇 년이 지나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부정해야 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진실을 선택하는 작은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닙니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도 시간이 아닙니다.

    매일 진실을 선택하는 태도입니다.

    진실은 때로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겸손이 세워질 때, 비로소 사람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진실 앞에 서기를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진실을 인정하는 용기가 회복의 시작이며, 그 용기가 한 사람의 인생을 새롭게 만듭니다.

  • 하나님을 믿는다고 모두 사역자가 되어야 할까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모두 사역자가 되어야 할까요?

    신앙과 현실의 균형 사역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한 번쯤은 이런 고민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목회자나 선교사가 될 것은 아닌데, 그렇다면 나는 현실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또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면 세상의 일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신앙과 현실을 서로 분리해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같은 역할로 부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목회자나 선교사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 속 인물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 아담은 에덴동산을 경작했습니다.
    •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 아브라함은 목축업을 했습니다.
    • 요셉은 애굽의 행정을 맡았습니다.
    • 다니엘은 바벨론과 메대·바사의 고위 관리였습니다.
    • 느헤미야는 왕의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 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직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예배가 살아나니 삶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마음,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보시는 가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삶의 구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을 매우 질서 있게 창조하셨습니다.

    그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하나님을 사랑한다.

    모든 삶의 출발점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②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한다.

    학생이라면 공부를, 직장인이라면 맡은 업무를, 사업가라면 정직한 경영을, 부모라면 가정을 책임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사명입니다.

    ③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제공한다.

    사회는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제공합니다.

    • 의사는 건강 문제를 해결합니다.
    • 교사는 배움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 개발자는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합니다.
    • 농부는 먹거리를 제공합니다.
    • 사업가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결합니다.

    결국 직업은 돈을 버는 수단 이전에 세상을 섬기는 통로입니다.

    ④ 경제적인 열매를 얻는다.

    성실한 노동의 결과로 얻는 소득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 가운데 하나입니다.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한 결과입니다.

    ⑤ 받은 것을 다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

    성경은 축복이 자신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요?

    같은 직업을 가져도 삶의 목적은 달라집니다.

    세상은 먼저 이렇게 질문합니다.

    “얼마나 많이 벌 수 있을까?”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먼저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어떻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가 되고, 성공은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책임을 잘 감당한 열매가 됩니다.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

    오늘날 AI는 많은 직업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쉽게 대체되지 않는 가치들이 있습니다.

    • 문제의 원인을 찾는 능력
    •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
    • 신뢰를 쌓는 태도
    • 정직함과 책임감
    • 협력하는 능력
    • 지혜롭게 판단하는 능력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까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38752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 교회 안에서 하는 봉사나 사역만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정을 돌보는 부모의 사랑, 맡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직장인의 책임감, 이웃을 배려하는 작은 친절,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섬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서 일하는지를 먼저 보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사역보다 먼저 세워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혹시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큰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면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기 전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함께 머물며 배우게 하신 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우리의 섬김도 더욱 건강해지고,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사역은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맺는 열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고, 어떤 사람은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며 섬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순종을 귀하게 받으십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삶

    우리가 모두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직장에서 정직을 선택하는 것, 가정에서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것, 힘든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것,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은 모두 하나님을 나타내는 귀한 사역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화려한 직분이 아니라 충성된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맡기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도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귀한 사역이 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을 믿는다고 모두가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재능과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신앙을 가진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실천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교회 안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하는 직장, 운영하는 사업, 돌보는 가정, 그리고 사회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향해 정직과 사랑, 책임과 섬김을 실천할 때 신앙은 비로소 삶과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람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십니다.

  •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집니다.

    혼자 있을 때와 누군가가 곁에 있을 때의 모습이 다르고, 존경하는 사람이 함께 있을 때는 말과 행동이 더욱 신중해집니다.

    그렇다면 만일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깊이 인식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할까요?

    분명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삶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신다는 의식이 살아 있을 때 우리의 생각은 달라지고, 말은 달라지고, 선택은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좋은 리더는 무엇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능력보다 중요한 책임의 리더십


    *잘하던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방법이 아닌 중심을 새롭게 빚으십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집니다

    하나님이 인식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조심스러움’입니다.

    죄를 짓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마음속에 올라오는 교만과 욕심을 경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심스러움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변화입니다.

    삶의 작은 부분까지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은 큰 일뿐 아니라 작은 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정직하려고 합니다.

    남들이 알지 못해도 선한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려 합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도, 작은 친절을 베푸는 일도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은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모세는 떨기나무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을 만난 후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 후 자신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한 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삶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은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이 참된 신앙입니다

    신앙은 교회에 있는 시간만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자연스럽게 거룩함을 향해 나아갑니다.

    억지로 착하게 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은 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만 하나님을 찾고, 예배 시간에만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과 분리된 존재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인식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에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도,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도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행동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 그리고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인지를 깨달을수록 우리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향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늘 생각하게 되듯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도 관계 속에서 깊어지는 것입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39690

    하나님을 인식하면 삶의 기준이 바뀝니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인식되기 전에는 세상의 평가와 성공이 삶의 기준이 되기 쉽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에 기뻐하고 비난에 쉽게 흔들리며, 환경이 좋아지면 감사하고 어려워지면 낙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삶의 중심이 되면 기준이 달라집니다.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결과보다 순종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눈앞의 손해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용기를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믿음은 더욱 견고해지고, 우리의 생각과 말, 행동까지도 조금씩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이 경험하는 가장 큰 변화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삶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은 어느 한순간의 감동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하며,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성숙해집니다.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수록 하나님을 향한 신뢰도 더욱 커집니다. 미래가 불확실해 보여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수 있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들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은 환경이 바뀌어서 행복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맺음말

    하나님 그분이 우리 마음속에 분명하게 인식되어질 때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집니다.

    그 조심스러움은 우리를 억누르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변화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심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 증상이 아니라 원인을 보라, 해결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증상이 아니라 원인을 보라, 해결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얼마 전 새벽, 아이가 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감기에 걸린 것이라 생각하여 감기약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그렇듯 눈앞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면 가장 먼저 증상을 멈추게 할 방법부터 찾게 됩니다.

    기침을 하면 기침을 멈추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열이 나면 열을 내리려고 하고,
    머리가 아프면 두통을 없애려고 합니다.

    당장 눈앞에서 보이는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천식이야! 감기로 기침하는 거랑 달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평소보다 창문을 많이 열어 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은 날씨가 좋아서 환기를 시킨다고 창문을 오랫동안 열어 두었습니다.

    평소와 다른 환경이 만들어졌고, 그 영향으로 아이에게 기침 증상이 나타났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정확한 원인은 의료적인 판단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 저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증상만 바라보아서는 문제의 본질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증상부터 해결하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컴퓨터가 느려지면 컴퓨터를 껐다 켜고,
    휴대폰이 이상하면 다시 시작해 봅니다.

    집 안에 곰팡이가 생기면 곰팡이를 닦아냅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 다시 곰팡이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는 단순히 곰팡이를 닦아내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습기가 많은 것은 아닌지,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벽이나 배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곰팡이라는 증상을 없애는 것과 곰팡이가 생기는 원인을 해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증상은 눈에 잘 보입니다.

    하지만 원인은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눈에 보이는 증상에 집중하게 됩니다.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사람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누군가가 화를 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화를 냈다는 사실에 집중합니다.

    ‘왜 저렇게 화를 내지?’

    ‘성격이 왜 저럴까?’

    ‘말을 너무 심하게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분노 뒤에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쌓인 서운함이 있었을 수도 있고,
    상처받은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으며,
    지쳐서 더 이상 감당할 힘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상처를 주는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려면 행동이라는 증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 뒤에 있는 마음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단순히 ‘말 안 듣는 아이’라고 판단하기보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무엇이 힘든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 나타난 행동만 고치려고 하면 잠시 조용해질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의 문제도 먼저 원인을 살펴야 합니다

    이 생각은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도 같은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마음이 불편하고 예민해질 때가 있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서운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화가 나며,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칠 일을 크게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예전에는 단순히 ‘오늘 기분이 안 좋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감정의 뒤에 다른 원인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수도 있고,
    며칠 동안 너무 많은 일을 감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마음속에 계속 담아 두었을 수도 있고,
    해결되지 않은 걱정이 마음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지쳐 있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았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의지가 약한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혼자 버티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무조건 나 자신을 책망하기보다 먼저 질문해 보려고 합니다.

    ‘왜 이런 반응이 나타났을까?’

    ‘이 감정의 원인은 무엇일까?’

    ‘내가 정말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하는 순간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집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증상보다 원인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원리는 신앙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기도가 잘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도를 더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잘 읽지 못하면 ‘성경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면 ‘예배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모두 필요한 노력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보다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기도가 나오지 않는가?

    왜 말씀을 읽어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가?

    왜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는가?

    어쩌면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붙들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죄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사람에 대한 미움과 용서하지 못한 마음이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을 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너무 바쁘게 살아가느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볼 여유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기도 시간을 늘려야지’라는 결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먼저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증상을 고치기 전에 원인을 하나님 앞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겉모습만 보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만 바라보지 않으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세리의 행동을 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죄인의 모습을 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찾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은 병든 사람의 병만 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삶과 아픔을 함께 보셨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아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먼저 알고 계실 수 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

    왜 같은 문제를 반복하는지,

    왜 자꾸 넘어지는지,

    왜 사람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리는지,

    하나님께서는 그 원인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분별력이 있는 자들은 본질을 추구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1134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면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같은 사람과 계속 갈등하고 있다면,

    같은 감정으로 계속 힘들어하고 있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면,

    그때는 잠시 멈추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될까?’

    문제 자체만 바라보면 매번 새로운 문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아래에 동일한 원인이 숨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마치 나무의 잎이 계속 시들어 가는데 잎만 잘라내는 것과 같습니다.

    잎을 잘라내면 잠시 깨끗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뿌리에 문제가 있다면 다시 잎이 시들 것입니다.

    결국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는 뿌리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복되는 문제에는 반복되는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해결책을 찾기 전에 질문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어떻게 없앨까?’가 아니라

    ‘왜 생겼을까?’

    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어려운 부분은 원인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인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원인을 찾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을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은 쉽게 보입니다.

    환경의 문제도 쉽게 보입니다.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 안에 나의 선택이나 태도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인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분석하는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겸손해지는 과정입니다.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을 수 있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겠구나.’

    ‘내가 바꾸어야 할 부분도 있구나.’

    라고 인정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를 없애는 것만이 아닙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문제가 없는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바라보느냐일 것입니다.

    증상만 바라보면 문제를 빨리 없애는 데 집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원인을 바라보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

    그리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진짜 해결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새벽의 작은 사건이 남긴 깨달음

    그날 새벽 아들의 기침을 통해 저는 아주 작은 일 하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침이라는 증상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감기라고 생각했고 감기약부터 찾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한마디를 듣고 주변 환경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평소보다 창문을 많이 열어 놓았다는 사실도 생각났습니다.

    물론 아이의 증상에 대해서는 필요할 경우 의료진의 정확한 진료와 판단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날의 경험은 제게 하나의 생각을 남겼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눈앞에 나타난 증상만 해결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화가 난다고 화를 없애려고만 하고,

    힘들다고 힘든 상황만 바꾸려고 하고,

    관계가 어렵다고 상대방만 바꾸려고 하고,

    신앙이 흔들린다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바로잡으려고 하지는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진짜 바라보아야 할 것은 그 아래에 있는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해결은 원인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즉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원인을 알아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문제가 생겼을 때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려고 합니다.

    눈앞에 나타난 현상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람을 볼 때도 그렇고,

    가족을 대할 때도 그렇고,

    나 자신을 바라볼 때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주님, 제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증상입니까, 아니면 원인입니까?’

    ‘제가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정말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까?’

    ‘혹시 제가 보지 못하고 있는 더 깊은 곳이 있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 묻고 싶습니다.

    때로는 내가 생각했던 문제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문제가 다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살피는 삶

    우리의 삶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습니다.

    말보다 마음이 중요하고,

    행동보다 그 행동의 동기가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문제의 결과보다 그 문제를 만들어 낸 과정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가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 자신에게 질문해 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해결하려 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시 질문합니다.

    그것은 정말 문제의 본질인가?

    혹시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단순한 증상이라면,

    그 아래에 있는 원인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발견했을 때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제를 감추는 것이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뿌리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것이 진짜 해결의 시작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새벽에 시작된 아이의 기침은 짧은 순간의 일이었지만 제게는 생각할 거리를 남겼습니다.

    증상을 해결하는 것과 원인을 해결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건강뿐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나 자신의 마음에서도,

    그리고 신앙생활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앞에 나타난 문제만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무엇이 이 문제의 뿌리인지,

    내 안에는 어떤 부분이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문제의 증상만 바라볼 때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우리가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억하고 싶습니다.

    “증상을 없애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원인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순간,

    진짜 해결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

  • 건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신앙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성경적 분별과 시민의 자세

    건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신앙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성경적 분별과 시민의 자세

    좋은 리더십은 권력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민을 섬기고 진실을 존중하는 리더십이 건강한 사회를 만듭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은 어떤 자세로 시대를 살아가야 할까요?

    건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사람들은 강한 지도자를 원합니다. 어려운 경제 상황과 갈등, 불안한 국제 정세 속에서 누군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역사와 성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반복해서 가르쳐 줍니다.

    강한 리더십과 건강한 리더십은 결코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권력을 강하게 행사한다고 해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리더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통제하기보다 국민을 섬기고, 공동체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갑니다.

    건강한 리더십은 두려움보다 신뢰를 만들고, 거짓보다 진실을 존중하며, 자신의 명예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반대로 지도자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갈라놓고, 비판을 억압하며, 사실보다 선전을 앞세운다면 그것은 건강한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 속에서 국민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분노만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욱 필요한 것은 분별력과 지혜입니다.


    *진실을 외면하는 삶의 본질, 자기 정당화가 반복될 때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


    *좋은 리더는 무엇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능력보다 중요한 책임의 리더십

    출처 :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1. 사실을 분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보를 접하며 살아갑니다.

    뉴스, 유튜브, SNS,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문제는 모든 정보가 사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선택해서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보다 감정이 앞서기 시작하면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워집니다.

    건강한 시민은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라도 잘못한 부분은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반대로 반대편 사람이라도 옳은 부분은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21)

    하나님은 맹목적인 믿음보다 분별하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감정이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는 태도는 건강한 사회를 지키는 첫걸음입니다.


    2. 두려움에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권력을 오래 유지하려는 지도자들은 공통적으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려 했습니다.

    비판하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분위기를 만들고, 침묵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심어 줍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회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위에서 성장합니다.

    물론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적으로 규정하거나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두려움보다 진리를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7)

    신앙인은 권력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38752

    3. 평화롭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닙니다.

    국민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주체입니다.

    선거에 참여하고, 사실에 근거한 의견을 나누며, 언론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시민단체 활동이나 공론장에 참여하는 것은 건강한 시민의 책임입니다.

    반면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증오는 더 큰 갈등을 만듭니다.

    진정한 변화는 책임 있는 참여에서 시작됩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평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9)


    4. 사람을 우상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특정 지도자를 절대적인 존재처럼 여기기 시작할 때입니다.

    어떤 정치인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어떤 정당도 절대적인 선이 아닙니다.

    사람을 지나치게 신뢰하면 그의 잘못을 보지 못하게 되고, 결국 진실보다 사람을 지키려 하게 됩니다.

    성경은 인간의 한계를 분명히 말씀합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시편 146:3)

    신앙인의 최종적인 충성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는 존중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 속 선지자들은 권력 앞에서도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권력 앞에서 진리를 말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 왕이 죄를 지었을 때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우상숭배와 불의를 행하던 아합 왕 앞에 담대히 섰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 왕의 죄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다가 결국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행동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말했습니다.

    오늘날 신앙인 역시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권력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적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신앙인의 자세는 진리와 사랑을 함께 붙드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는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이 갈라지고, 친구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세상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말하되 사랑으로 말해야 하며, 정의를 추구하되 증오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증오는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사람을 적으로 만들지만, 사랑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존중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21)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책임 있는 시민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걱정이 분노와 미움으로만 이어진다면 결국 우리 자신도 건강한 판단을 잃게 됩니다.

    신앙인은 진리를 사랑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두려움보다 양심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심을 믿으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지도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진실을 분별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며, 사랑 안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건강한 시민이 함께할 때 비로소 공동체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눈치는 사람을 묶고, 겸손은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눈치는 사람을 묶고, 겸손은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진정한 자유를 얻는 삶의 비밀

    얼마 전 오래된 글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2013년 어느 날, 가족 식사 자리에서 큰아이가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였습니다.

    “어릴 때 아빠 눈치를 많이 보며 자랐어요.”

    출처 :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그 말은 짧았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사랑하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늘 조심해야 하는 존재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혹시 혼나지 않을까,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혹시 잘못 보이지 않을까.

    아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기보다 먼저 아버지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눈치를 보는 삶입니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내 의견을 숨긴 채 상대의 반응부터 살피는 상태입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마음은 늘 긴장 상태에 놓여 있게 됩니다.

    그날 아이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아빠도 지나고 보니 아빠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
    그때는 너무 몰라서 너희들에게 잘못한 것이 많았다.”

    변명도 하지 않았고,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고,
    자신을 정당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권위는 자신을 높이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때 남편이

    “그래도 너를 그렇게 키웠으니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 것 아니냐?”

    라고 말했다면 어떠했을까요?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닫혔을 것입니다.

    사람은 힘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신뢰로 움직입니다.

    권위로 복종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마음까지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인정과 변화는 사람의 마음을 열게 만듭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가정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아빠 역시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야 했던 답답함과 억압감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며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억압으로 변화시키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와 사랑으로 사람의 마음을 만지십니다.


    *좋은 리더는 무엇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능력보다 중요한 책임의 리더십


    *마음과 영이 부드러운 사람



    가정만이 아니라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원리는 가정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도,
    직장도,
    교회도,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건강한 관계는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불이익을 받을까 봐,
    비난을 받을까 봐,

    침묵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공동체는 점점 건강함을 잃어가게 됩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반대 의견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며,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6026

    진정한 리더십은 두려움을 만들지 않습니다

    좋은 리더는 사람들에게 눈치를 보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듭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귀를 열어 놓습니다.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비판을 들을 줄 알고,
    다른 의견을 존중할 줄 압니다.

    그런 리더십 앞에서는 사람들이 억지로 따르지 않습니다.

    기꺼이 함께 가게 됩니다.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으로 세워진 권위는 오래가지 못하지만,

    신뢰로 세워진 권위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습니다.


    전도서 4장 12절은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을 묶어 주는 것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억압이 아닙니다.

    신뢰입니다.

    자유로운 말에도 책임이 따릅니다

    물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상대를 존중하는 가운데 사용될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의무도 함께 있습니다.

    내 의견이 소중한 것처럼 상대방의 의견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진실을 말한다는 명분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말하라고 하셨지만, 동시에 사랑 안에서 말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에베소서 4:15)

    건강한 가정도,
    건강한 공동체도,
    건강한 사회도,

    서로 눈치를 보며 침묵하는 곳도 아니고,
    서로를 공격하며 함부로 말하는 곳도 아닙니다.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곳입니다.

    침묵과 무례함 사이에는 건강한 대화라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는 바로 그 길을 걸어가는 공동체일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성숙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 좋은 리더는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좋은 리더는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능력보다 중요한 책임의 리더십

    능력이 아니라 책임이 리더를 완성한다

    사람들은 흔히 훌륭한 리더를 떠올릴 때 뛰어난 능력과 강한 추진력을 먼저 생각합니다.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사람,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사람,
    위기 속에서도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

    물론 이러한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뛰어난 능력을 가진 리더가 반드시 좋은 리더였던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처음에는 부족해 보였지만 국민과 조직의 신뢰를 얻었던 리더들도 있었습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결국 리더를 완성하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책임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


    • 출처: ChatGPT(DALL·E)를 활한 AI 이미지용해 제작


    리더의 첫 번째 책임은 문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조직이든 문제는 발생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이고,
    기업도,
    교회도,
    가정도 예외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대하느냐입니다.

    문제를 인정하는 리더는 해결의 첫걸음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부정하는 순간 해결은 멈추게 됩니다.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을 적으로 여기거나,
    비판을 공격으로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리더는 현실보다 자신의 체면을 지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진정한 용기는 실수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줄 아는 리더

    세상에는 완벽한 리더가 없습니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좋은 리더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동역자를 세우며,
    더 좋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배우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성경의 모세 역시 처음부터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하나님께 고백했고,
    하나님은 아론과 장로들을 세워 함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보다
    겸손한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9786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리더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국민의 칭찬도 들어야 하지만,
    비판도 들어야 합니다.

    듣기 좋은 말만 듣는 순간
    리더는 현실과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가장 불편한 목소리 속에
    가장 중요한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국민이 불안해한다면 그 이유를 살펴야 하고,

    국민이 의문을 제기한다면 충분히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뢰는 권위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소통에서 만들어집니다.


    권력은 특권이 아니라 맡겨진 책임입니다

    권력은 오래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이 맡긴 권한이며,
    언젠가는 다시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권력을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수단으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을 섬기는 도구로 사용할 것인가는
    리더 자신의 선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리더십은 지배가 아니라 섬김입니다.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모든 시대에는 다양한 의혹과 갈등이 존재합니다.

    이럴 때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면
    투명하게 설명하고,

    필요한 검증이 있다면
    성실하게 협조하며,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진실은 감춘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불신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신앙인이 바라보는 리더

    성경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리더는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책임을 지는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웃시야 왕은 교만으로 인해 넘어졌고,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리더를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권한이 클수록 책임도 커진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 줍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며,

    권력보다 진실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책임을 다하는 리더는 신뢰를 남깁니다

    리더의 영향력은 직책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신뢰에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완벽한 리더를 따르기보다 책임을 다하는 리더를 신뢰합니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을 줄 아는 사람이 오래도록 존경받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뛰어난 능력과 화려한 성과를 가진 리더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성과보다 그 사람이 어떤 책임감을 가지고 공동체를 섬겼는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장면은 이러한 리더십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가장 낮은 종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지셨음에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셨습니다. 참된 리더십은 자신의 위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사람들을 세우는 데 있습니다.

    책임은 작은 일에서 드러납니다

    책임감은 위기의 순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을 대하는 태도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약속을 지키는 일,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일, 실수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는 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정직하게 행동하는 일은 모두 건강한 리더십의 기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능력을 가진 사람보다 작은 일에도 성실한 사람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우리 역시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맡겨진 작은 책임을 기쁨으로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사명을 맡기실 수 있는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오늘 우리의 리더십을 돌아보며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리더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교사는 학생에게, 직장인은 동료에게, 신앙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삶으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뛰어난 리더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책임 있는 사람인가?”입니다.

    능력은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에게도 배울 수 있지만, 책임감과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맡겨진 자리를 성실하게 지키며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삶, 그것이 오래 기억되는 리더십입니다.

    결국 좋은 리더는 많은 사람을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라, 맡겨진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세워 주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리더십은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가 기대해야 할 리더

    국민은 완벽한 리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람,

    권력을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그리고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기대합니다.

    능력은 시간이 지나며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책임감은 하루하루의 선택 속에서 드러납니다.

    결국 좋은 리더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맡겨진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큰 능력보다 더 큰 책임을 가진 리더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겸손과 진실, 그리고 책임을 붙드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 잘하던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잘하던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새롭게 빚으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잘되던 일이 어느 날부터 잘되지 않습니다.
    늘 사용하던 방법이 더 이상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같은 열심으로 섬기는데도 이전과 같은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당황합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걸까?”
    “내 믿음이 식은 걸까?”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신 걸까?”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도 모든 것이 막혀 버린 듯한 답답함을 경험합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부족한 부분보다 잘하던 부분을 먼저 다루시는 것처럼 보일 때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는 시간 | 문제 속에서 만나는 사랑과 지혜의 하나님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잘 못하는 부분을 고쳐 주시면 되는 것 아닌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시면 더 좋은 사람이 될 텐데 왜 잘하던 것까지 막히는 걸까?”

    그래서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잘 못하던 것은 여전히 부족한 것 같고,
    잘하던 것마저 예전처럼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우리의 시선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엇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성공했는지,
    얼마나 인정받았는지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과보다 그 결과를 만들어 내는 마음과 과정을 먼저 보십니다.

    우리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 속에 자리 잡은 의지와 습관,
    그리고 우리도 미처 깨닫지 못한 교만까지 보고 계십니다.

    사람은 실패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쉽게 인정합니다.

    실패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도움을 구하게 되고,
    기도하게 되며,
    겸손해집니다.

    성공은 다릅니다.

    성공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보다 자신의 경험을 더 신뢰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시작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익숙함이 생깁니다.

    기도보다 경험을 먼저 찾고,
    말씀보다 노하우를 먼저 생각하며,
    하나님의 인도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믿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능력과 경험이 삶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조심스럽게 다루시는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영역을 만지십니다.

    가장 익숙한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하시고,
    가장 자신 있던 능력이 이전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59087

    그 이유는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있던 대상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놓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사람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능력을 바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게 하셨습니다.

    세상은 그의 능력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능력을 없애신 것이 아니라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을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고기를 잡아 온 어부였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선택했고,
    그 순종을 통해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기술을 없애신 것이 아니라,
    기술보다 말씀을 먼저 의지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잘하던 것이 갑자기 막힐 때,
    하나님은 일을 빼앗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우리의 중심을 새롭게 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더 잘하게 해 주세요.”
    “더 큰 능력을 주세요.”
    “더 좋은 결과를 주세요.”

    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네가 무엇을 의지하며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먼저 보자.”

    신앙은 단순히 능력이 커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더욱 깊이 깨닫는 과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이 말씀은 우리가 아무 능력도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가지가 아무리 건강해 보여도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머물 때 비로소 참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시기에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능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보다 경험을 먼저 찾던 사람이
    다시 하나님을 먼저 찾게 되고,

    방법을 의지하던 사람이
    말씀을 의지하게 되며,

    결과를 붙잡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이 변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답답하고,
    더 느리며,
    더 힘든 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중심을 먼저 새롭게 빚으십니다.

    그 중심이 변화될 때,
    하나님은 이전보다 더 깊고 넓은 사명을 맡기실 준비를 시키십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의 능력을 미워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 능력이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하는 사람으로 남는 것보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잘하던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간을 단순한 슬럼프나 실패로만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는 시간이 아니라,
    더 깊은 믿음으로 초대하시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에 조용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가 하던 일을 내려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네가 의지하던 방법을 내려놓아라.
    내가 너를 통해 일하기를 원한다.”

    신앙의 성장은 더 뛰어난 사람이 되는 과정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할 때 가장 온전한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익숙했던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면 낙심하기보다 하나님께 먼저 물어보십시오.

    “주님, 지금 제 능력을 막으시는 것이 아니라 제 중심을 새롭게 빚고 계시는 것입니까?”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이전보다 더 깊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자라가게 될 것입니다.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한 번씩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 잘하던 일이 갑자기 막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하나님은 왜 우리의 강점을 먼저 다루실까요?
    • 신앙에서 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