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갈등이 심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주님 앞에 주저앉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속상해서 한참을 울다가, 그때도 주님께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제발 남편에게 직접 말씀해 주세요.”
“제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으니, 주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세요.”
“남편이 주님의 뜻을 알게 해 주세요.”
저는 어떻게 해야 남편이 변할까? 라는 생각과 함께 넋두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직접 말씀해 주셔서 남편이 깨닫고 달라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속에 있는 이야기를 주님께 다 쏟아 놓았습니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었습니다.
그저 힘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이 조금씩 잠잠해졌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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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남편에게 직접 얘기해 주고, 너에게는 일러 주지 않았을 때 네 고집으로 순순히 순종하겠느냐?”
순간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었는데, 울던 마음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아… 그러네.’
사실 저는, 남편이 하나님께 직접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에는
제가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제 중심을 아셨던 것이지요.
사실 매번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분별하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쉽고 편안한 삶을 구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아주 간단한 질문 하나를 던지셨습니다.
“그런데 네가 정말 남편의 말에 순순히 따르겠느냐?”
그 질문 앞에서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남편이 무엇을 말 하느냐 보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더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저는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먼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설령 저의 그 생각이 맞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먼저 저를 변화시키기로 작정하신 듯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제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다른 마음을 주셨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자다.”
그 말씀이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말씀이었습니다.
아내의 역할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을 돕는다 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무조건 순종하고 또 무조건 도와야 하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수없이
몰려들었습니다.
남편이 잘 몰라서 헤매고 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옆에서 기도하고, 필요한 말을 지혜롭게 전하면서,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제가 알고 있었던 아내의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 제 마음속에는 아주 솔직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남편이 좀 온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말 그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 하필이면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사람을 만나게 하셨을까요?’
그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네가 나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가 변화하기를 기다리기보다, 네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먼저 돌아보아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여 주셨습니다.
기도하는 것.
중보하는 것.
사랑으로 돕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 있는 고집과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내려놓는 것.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기를 원하셨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돌이켜 보면,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 중보하는 것, 사랑으로 돕는 것 그 한 부분 한 부분을 모두 주님께로 부터 배워야 했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네 고집으로 순순히 따르겠느냐?”
그 한마디에 저는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가장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을 먼저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마음부터 만지기도 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저는 그 질문을 기억합니다.
“네 고집으로 순순히 따르겠느냐?”
그 질문 앞에서는 여전히 제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갈등 때문에 주님 앞에 주저앉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제 고집을 내려놓게 하시고, 아내로서의 자리를 다시 가르쳐 주신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하십니다.
연약한 자를 위해서 중보기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 실제를 알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요.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중보 기도로 배우자를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안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 이라고요.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의 모든 면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가치관의 변화!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일 입니다.
사람의 설득이나 지혜로운 말로 되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도 성령님의 역사가 제 삶 가운데서 충만하게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오늘도 새롭게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