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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고집으로 순순히 남편을 따르겠느냐?

    네 고집으로 순순히 남편을 따르겠느냐?

    남편과의 갈등이 심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주님 앞에 주저앉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속상해서 한참을 울다가, 그때도 주님께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제발 남편에게 직접 말씀해 주세요.”

    “제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으니, 주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세요.”

    “남편이 주님의 뜻을 알게 해 주세요.”

    저는 어떻게 해야 남편이 변할까? 라는 생각과 함께 넋두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직접 말씀해 주셔서 남편이 깨닫고 달라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속에 있는 이야기를 주님께 다 쏟아 놓았습니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었습니다.

    그저 힘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이 조금씩 잠잠해졌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72414



    주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남편에게 직접 얘기해 주고, 너에게는 일러 주지 않았을 때 네 고집으로 순순히 순종하겠느냐?”

    순간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었는데, 울던 마음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아… 그러네.’

    사실 저는, 남편이 하나님께 직접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에는

    제가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제 중심을 아셨던 것이지요.

    사실 매번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분별하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쉽고 편안한 삶을 구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아주 간단한 질문 하나를 던지셨습니다.

    “그런데 네가 정말 남편의 말에 순순히 따르겠느냐?”

    그 질문 앞에서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남편이 무엇을 말 하느냐 보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더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저는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먼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설령 저의 그 생각이 맞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먼저 저를 변화시키기로 작정하신 듯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제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다른 마음을 주셨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자다.”

    그 말씀이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말씀이었습니다.

    아내의 역할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을 돕는다 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무조건 순종하고 또 무조건 도와야 하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수없이
    몰려들었습니다.

    남편이 잘 몰라서 헤매고 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옆에서 기도하고, 필요한 말을 지혜롭게 전하면서,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제가 알고 있었던 아내의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 제 마음속에는 아주 솔직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남편이 좀 온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말 그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 하필이면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사람을 만나게 하셨을까요?’
    그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네가 나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가 변화하기를 기다리기보다, 네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먼저 돌아보아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여 주셨습니다.

    기도하는 것.

    중보하는 것.

    사랑으로 돕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 있는 고집과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내려놓는 것.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기를 원하셨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돌이켜 보면,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 중보하는 것, 사랑으로 돕는 것 그 한 부분 한 부분을 모두 주님께로 부터 배워야 했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네 고집으로 순순히 따르겠느냐?”

    그 한마디에 저는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가장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을 먼저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마음부터 만지기도 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저는 그 질문을 기억합니다.

    “네 고집으로 순순히 따르겠느냐?”

    그 질문 앞에서는 여전히 제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갈등 때문에 주님 앞에 주저앉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제 고집을 내려놓게 하시고, 아내로서의 자리를 다시 가르쳐 주신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하십니다.
    연약한 자를 위해서 중보기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 실제를 알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요.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중보 기도로 배우자를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안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 이라고요.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의 모든 면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가치관의 변화!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일 입니다.
    사람의 설득이나 지혜로운 말로 되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도 성령님의 역사가 제 삶 가운데서 충만하게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오늘도 새롭게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이런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 자신의 잘못은 상황 탓으로 설명합니다.
    • 타인의 작은 잘못은 오래 기억하며 강하게 비판합니다.
    • 자신의 거짓말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타인의 거짓말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 사과보다 먼저 변명을 합니다.
    • 사실보다 자신의 체면과 이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의 모습입니다

    자신에게 적용하는 기준과 타인에게 적용하는 기준이 전혀 다릅니다.

    자기 정당화가 반복될 때 일어나는 변화

    10대에는 미숙해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20대에도 판단을 잘못할 수 있으며, 30대와 40대에도 후회할 일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실수를 했는가?’가 아니라 ‘실수를 어떻게 대하는가?’​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변화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수십 년이 지나도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자기 정당화는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단순히 한 번의 실수를 감추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또 다른 이유를 만들고, 결국에는 주변 사람들의 말까지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처음에는 작은 변명으로 시작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변명이 반복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은 결국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믿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관계를 조금씩 무너뜨립니다.

    가족도, 친구도, 직장 동료도 완벽한 사람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과는 오래 함께하기 어렵습니다. 신뢰는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수 이후의 태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왜 끝까지 인정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실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흐르면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거짓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잘못을 숨기기 위해 시작했던 변명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진실’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백한 사실을 보여 주어도 이렇게 말합니다.

    • “그건 네 생각이다.”
    • “기억이 다르다.”
    •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차분하지만, 결론만큼은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사형을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지키고 있는 걸까?

    출처 :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인정은 패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는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는 새로운 신뢰를 쌓는 출발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내가 틀렸습니다.’라는 한마디가 가장 큰 용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진짜 두려운 것은 죄가 아니라 ‘인정’일 수도 있다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죄책감이 없는 사람일까요?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지금까지 평생 쌓아 온 자기 이미지가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내가 틀렸다.”

    이 한마디가 너무 무겁기 때문에, 계속 방어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고, 변명은 더 큰 변명을 낳습니다.

    결국 한 사건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가 방어의 구조 속에서 흘러가게 됩니다.


    시간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나이가 들면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나이는 경험을 늘려 줄 뿐, 반드시 인격을 성장시키지는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 정당화에 익숙한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생각을 더욱 굳게 믿게 될 수도 있습니다.

    60대가 되어도 10대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반복된 삶의 태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

    성경은 죄 없는 사람을 찾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강하게 책망하신 대상은 실수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은 의롭다고 믿으며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회개는 진실 앞에 자신을 세우는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 용기는 인간의 체면보다 진실을 더 소중하게 여길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60566


    우리 자신도 돌아보아야 한다

    이 글은 누군가를 정죄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모습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을 정당화하는 사람은 시간이 흘러도 같은 자리에 머물 가능성이 큽니다.

    진실은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실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가장 큰 용기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용기에서 진정한 변화는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