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시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주님이시라면? 자기중심성이 무너질 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하나님께서 내 생각에 동의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었음을 말입니다.

기도도 했고,
말씀도 읽었고,
나름대로 하나님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나는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이 아니라
내 뜻에 대한 하나님의 승인을 구하고 있었던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 이렇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제가 생각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것을 기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아보니
기도의 중심에 하나님보다 내가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내 뜻에 맞추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원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믿음은 때로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길이 막힐 수도 있고,
내가 기대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날 수도 있으며,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계획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하십니까?”

“제가 이렇게까지 기도했는데 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제가 원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에게 답을 주시기 전에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시는 것 같습니다.

“너는 정말 내 뜻을 구하고 있느냐?”

“아니면 네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냐?”

이 질문 앞에 서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이
우리 안에 숨어 있던 자기중심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성은 생각보다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성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이기적인 사람을 떠올립니다.

자기 것만 챙기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으며,
자신의 유익만 생각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자기중심성의 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신앙 안에서의 자기중심성은
조금 더 교묘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내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내가 원하는 응답을 기다리고,

말씀을 읽지만
내 생각과 맞는 말씀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가 결정한 것을 하나님께 확인받으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서도
그 안에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이기심보다 훨씬 발견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왜 제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오히려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너는 정말 내 뜻을 구하고 있느냐,
아니면 네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냐?”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내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상대방의 잘못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정해 놓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분명 이렇게 하실 거야.”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보여 주시면
당황합니다.

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대했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보셨을까?

그래서 저는 어떤 일을 만날 때마다
이 질문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보셨을까?”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주님이시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누군가 나를 오해했을 때,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반응하셨을까?

내가 상대방의 잘못을 발견했을 때,

주님이시라면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셨을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주님이시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을까?

이 질문은 우리의 생각을 멈추게 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합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이 내려놓아질 때

신앙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내려놓는 것.”

물론 실제로 내가 옳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관계가 분명한 경우도 있고,
누군가의 잘못이 명백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옳다는 사실과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내가 옳다고 해서
상대를 미워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억울하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내 마음속에 분노와 미움을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 질문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하면
내가 옳다는 사실보다
주님의 마음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해지기 시작합니다.


자기중심성이 무너지는 과정은 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있는 자기중심성을 다루실 때
그 과정은 결코 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동만 다루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동기와 중심까지 만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인정받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용서한다고 말하면서도
상대방이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깨닫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섬기면서도
내가 얼마나 수고했는지 알아주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내 뜻대로 움직여 주시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하나님께서 하나씩 보여 주실 때
우리는 당황합니다.

“제가 이것까지 내려놓아야 하나요?”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깊은 곳으로 이끌고 계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 안의 자기중심성을 드러내시는 것은
우리를 정죄하거나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써야 하고,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며,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러나 내 중심을 내려놓기 시작하면
조금씩 자유로워집니다.

“내가 반드시 옳아야 하는 것은 아니구나.”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구나.”

“내가 모든 결과를 통제할 필요도 없구나.”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아시는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때부터 믿음이 깊어지기 시작합니다.


“왜?”에서 “무엇을?”로 질문이 바뀝니다

자기중심성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아주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질문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라고만 물었다면,

어느 순간부터

“주님, 이 일을 통해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라고 묻게 됩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했습니까?”에서

“주님, 제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묻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까?”에서

“주님, 제가 아직 내려놓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시선의 변화입니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정답을 주장하는 사람”에서 “하나님께 묻는 사람”으로

신앙의 성숙은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계속 묻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 이 말이 주님의 뜻에 맞습니까?”

“주님, 제가 지금 감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주님, 제 안에 잘못된 동기가 있지는 않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 묻는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하나님께 다시 묻습니다.

내가 확신하는 일이더라도
말씀 앞에 다시 세워 봅니다.

왜냐하면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높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가장 깊은 순종

예수님의 삶을 보면
자기중심성이 무엇인지,
하나님 중심의 삶이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극심한 고통 가운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원하는 것을 주장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순종의 모습입니다.

“내 뜻보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신앙은 결국
이 자리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되,

마지막에는

“그러나 주님, 제 뜻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3839


자기중심성이 무너지는 것은 은혜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자기중심성이 무너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은혜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알게 되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 판단이 항상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세우시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굴복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네가 틀렸으니 인정해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마음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내 감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내 기준을 내려놓고
말씀의 기준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장은
단순히 죄를 덜 짓는 사람이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 삶의 중심이 조금씩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자기중심성이 무너지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저 사람에게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잘못을 찾아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죄와 분별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마음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그 사람을 바라보게 하는 마음입니다.

이것 역시
내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옮겨가는 과정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묻는 습관

그래서 저는 우리 삶에
한 가지 질문을 습관처럼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시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화가 날 때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억울할 때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을 때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생각이 너무 확실하다고 느껴질 때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주님, 정말 이것이 주님의 생각입니까?”

이 질문 하나가
우리의 마음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결국 신앙은 중심의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자기중심성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수록
내 안에 아직 하나님보다 내가 중심이 되어 있는 부분이
더 선명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할 이유가 아닙니다.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은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내 마음이 보이고,

이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이전에는 다른 사람의 잘못만 보였는데
이제는 내 안도 돌아보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이시라면 아마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주님이시라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네가 틀렸다는 것을 먼저 알려 주려는 것이 아니다.
네가 나를 더 깊이 알게 하려는 것이다.”

“네 생각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 자리에 내가 서겠다.”

“네가 모든 것을 이해해야 나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나를 신뢰하며 한 걸음씩 따라오면 된다.”

“네가 모든 사람에게 옳다는 것을 인정받을 필요도 없다.
내가 너의 중심을 알고 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계속 돌아오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하나님께서 제 뜻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해 주세요.

제가 원하는 답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해 주세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주님께 다시 묻게 해 주세요.

제가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을 때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해 주세요.

제가 억울할 때에도
주님께서 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 주세요.

제가 원하는 길이 막힐 때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준비하고 계실 수도 있음을 믿게 해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 삶의 중심에 제가 앉아 있지 않게 해 주세요.

제 생각보다 주님의 생각을 높이고,
제 뜻보다 주님의 뜻을 구하며,
제 감정보다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해 주세요.



마무리하며

우리가 평생 가야 할 길은
완벽하게 하나님 중심이 되는 길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주님의 마음을 배우는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한 번 더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오늘 내가 판단했던 사람을
한 번 더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오늘 내가 붙들고 있는 계획을
한 번 더 하나님께 맡겨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전에
이 질문 하나를 먼저 던져보는 것입니다.

“주님이시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그 질문이 우리의 말을 바꾸고,
그 질문이 우리의 행동을 바꾸고,
그 질문이 우리의 관계를 바꾸고,
결국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신앙은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맞추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울 때도
주님을 신뢰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계획이 흔들릴 때도
주님의 뜻을 구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에도
겸손하게 하나님께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내 뜻을 이루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던 삶”에서

“주님, 제 뜻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삶으로 조금씩 변화되어 있기를 소망합니다.

자기중심성이 무너지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을 보기 시작하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모든 상황 앞에서
내가 먼저 판단하기보다,

“주님이시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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