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는 죄인 & 끝까지 악을 붙드는 사람
우리는 종종 사람을 판단할 때 그가 저지른 행동만을 보고 결론을 내립니다.
큰 죄를 지으면 악인이라 부르고,
실수가 적으면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쉽게 그 사람을 정죄하고, 반대로 겉으로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조금 다른 시선을 보여 줍니다.
성경은 어떤 사람이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느냐만을 가지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죄를 깨달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진리가 자신의 잘못을 비추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죄를 지었느냐, 짓지 않았느냐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 돌아가느냐?”
바로 이 질문입니다.
죄를 지었다고 모두 같은 모습은 아닙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실수하고, 넘어지고, 때로는 알고도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욕심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죄를 지은 사람과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성경의 기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 가운데에도 심각한 죄와 연약함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죄를 지었느냐의 여부만이 아니었습니다.
죄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바울을 위대한 사도라고 부릅니다.
복음을 전했고, 수많은 교회를 세웠으며,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도 어두운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교회를 박해했고, 성도들을 붙잡아 감옥에 넘기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당시의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열심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때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좋은 의도로 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라고 끝까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완전히 돌이켰습니다.
바울의 과거가 없었던 일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가 저질렀던 일이 지워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붙들고 살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죄를 지었던 사람이었지만 회개를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간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고백했던 제자였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상황이 달라지자 베드로는 두려워졌습니다.
결국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가 느꼈을 절망은 얼마나 컸을까요?
자신의 말과 행동이 완전히 달랐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야기는 실패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심히 통곡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가볍게 넘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에게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베드로는 실패한 사람이었지만 실패를 붙들고 살아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통해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았고, 다시 주님을 붙들었습니다.
다윗 역시 무거운 죄를 범했습니다
다윗을 생각하면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 사랑받은 왕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다윗의 삶에도 결코 가볍지 않은 죄가 있었습니다.
그는 밧세바와 간음했고,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드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라고 말할 수 없는 큰 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의 죄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때 다윗은 자신의 왕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나단을 몰아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시편 51편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깊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긍휼을 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죄를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사랑하며 끝까지 붙든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죄가 드러났을 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죄인과 악인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타날까요?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악인은 단순히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일까요?
성경은 악인의 특징을 단순히 죄의 양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며, 진리가 자신을 비추는 것을 싫어하는 태도에서 악인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깨닫고 돌이킬 수도 있습니다.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수도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끝까지 죄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보여 주셔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오히려 화를 냅니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한다.”
“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이 먼저 잘못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자신의 죄를 합리화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보다 자신의 자존심을 붙듭니다.
회개하지 않는 마음에는 자기합리화가 자리 잡습니다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시작하면 마음이 점점 굳어집니다.
처음에는 작은 변명으로 시작합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내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상대방 때문이었어요.”
“상황이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죄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셔도 마음을 닫게 됩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죄를 지었다는 사실보다 더 심각한 것은 죄를 죄라고 인정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 고백이 시작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분별력이 있는 자들은 본질을 추구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1134
악인은 빛보다 어둠을 선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사람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빛이 비추면 감추어 두었던 것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비추면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욕심이 보일 수 있습니다.
미움이 보일 수 있습니다.
교만이 보일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보일 수 있습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빛 앞에서 자신을 돌아볼 것인가?
아니면 빛을 거부하고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회개하는 사람은 빛이 자신을 비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아프고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빛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반면 끝까지 악을 붙드는 사람은 빛이 자신을 비추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는 사람을 미워하고, 말씀의 책망을 거부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라는 말은 단순히 입으로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회개에는 방향의 변화가 있습니다.
내가 가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도 계속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회개했다고 해서 다시는 실수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연약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전과 똑같은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붙들고 살아가는 것과, 죄를 미워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
잘못했을 때 용서를 구하는 것.
말씀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조금씩이라도 삶의 방향을 바꾸어 가는 것.
이것이 회개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과거만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사람의 과거를 쉽게 기억합니다.
“저 사람은 예전에 저런 일을 했어.”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
한 번의 잘못을 가지고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성경에는 과거의 모습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바울은 핍박자에서 복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던 사람이었지만 초대교회의 중요한 사도로 쓰임 받았습니다.
다윗 역시 큰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습니다.
이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사람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을 새롭게 빚어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과거가 우리의 미래를 완전히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경계해야 할까요?
우리 자신도 이 말씀 앞에서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면 잠시 멈추어야 합니다.
“저 사람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야.”
“저 사람은 악한 사람이야.”
라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혹시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외면하고 있는 영역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설교를 들으면서 “저 말씀은 저 사람이 들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누군가의 잘못은 크게 보면서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지 않은지,
하나님께서 고치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을 자존심 때문에 붙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실 회개는 다른 사람을 향한 말이 아니라 가장 먼저 나 자신을 향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실 때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말씀을 통해 우리를 책망하십니다.
설교를 통해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마음을 찌르는 말씀으로 깨닫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을 통해 우리의 잘못을 보여 주실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겪는 상황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들은 후 우리의 반응입니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씀을 밀어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잘못이 없어.”
“내가 왜 사과해야 해?”
“내가 그렇게 한 데에는 이유가 있어.”
라고 자신을 지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제 생각을 너무 앞세웠습니다.”
“제가 교만했습니다.”
“제가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사람을 미워했습니다.”
“제가 하나님보다 제 자존심을 붙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진짜 문제는 죄의 크기보다 마음의 방향입니다
우리가 오늘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죄를 지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을 단순하게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죄를 지은 후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죄를 지은 후 끝까지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며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둘 다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는 전혀 다릅니다.
한 사람은 빛 앞에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빛을 피해 자신의 모습을 감춥니다.
한 사람은 죄를 인정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죄를 정당화합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의를 붙듭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다른 한 사람은 끝까지 자신의 길을 고집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너는 죄를 지었느냐?”
그보다 더 깊은 질문이 있습니다.
“너는 죄를 깨달았을 때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회개조차 우리의 힘으로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깨우쳐 주시고, 말씀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시며, 다시 하나님을 찾도록 이끄시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를 지어도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작은 잘못 하나에도 마음이 아프고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 차이는 단순히 성격의 차이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우리의 마음을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깨닫게 되었을 때 그것을 부끄러워하기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제가 이것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 마음을 바꾸어 주십시오.”
“다시 같은 길로 가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는 우리를 정죄하기 위한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부르시는 은혜의 초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에게 조용히 질문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내 잘못을 인정하는가?
아니면 먼저 변명하는가?
내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 사과할 수 있는가?
아니면 상대방의 잘못을 먼저 이야기하는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내 마음을 비추실 때 그 빛을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불편하다는 이유로 말씀을 밀어내는가?
나는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죄를 붙들면서도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가?
이 질문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한 질문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보다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귀합니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애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완벽함만이 아닙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마음,
잘못했을 때 인정하는 마음,
죄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 돌아오는 마음,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넘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어디로 돌아가느냐입니다.
자신의 의를 붙들고 일어나려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다시 일어날 것인가?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 때문에 은혜를 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마무리하며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판단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도 우리가 붙들고 놓지 않는 것이 있지는 않습니까?
자존심일 수도 있습니다.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미움일 수도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붙들고 있는 어떤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여 주실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끝까지 변명하고 정당화해야 할까요?
아니면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까요?
베드로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눈물을 흘려야 할까요?
바울처럼 자신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삶의 방향을 돌이켜야 할까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마음이 아니라 회개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죄를 지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죄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렇게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 죄를 보게 해 주십시오.”
“제가 변명하지 않게 하시고, 제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게 해 주십시오.”
“죄를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과거가 어떠했든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넘어졌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입니다.
오늘도 죄를 붙들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깨닫는 순간 하나님께 돌아가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질 때 그 빛을 피하지 않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제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보여 주십시오.”
이 기도가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다시 주님을 향해 걸어가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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