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newznls6857

  •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역의 자리보다,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먼저 우리를 빚어 가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역의 자리보다,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먼저 우리를 빚어 가신다

    최근 문득 예전에 기록해 두었던 글들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2012년 당시 저는 직장생활 3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그중 2년은 우체국 FC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시작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FC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 활용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이야기에 시작하게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시험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보험설계 업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경제적인 개념도 무너져 있었고, 보험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었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게 된 일이었기에 마음속 갈등도 컸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저는 하나님께서 사역의 문을 열어 주시기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현실은 사역이 아니라 세상 속 직장으로 나가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되었습니다.

    “왜 사역하지 않고 이런 일을 하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왜 보험 일을 하지?”

    누가 직접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 마음은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이 일이 정말 주님께서 허락하신 길이라면 알게 해 주세요.”

    그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너의 힘과 계획을 내려놓고 나를 의지하는 법을 가르쳐 왔는데, 왜 또 네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두려워하느냐?”

    그 말씀 앞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교회에서 사역자라는 이름으로 하는 일만이 나의 일이 아니다.”

    그 말씀은 제 신앙의 관점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하나님을 위한 일과 세상 일을 구분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직장에서도 일하시고, 시장에서도 일하시며, 가정에서도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결국 저는 우체국 FC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돈을 버는 방법보다 사람을 대하는 법을 가르치셨고, 업무를 통해 성공하는 방법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또 다른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작은 단자를 현미경으로 확대하여 불량과 양품을 구분하는 생산직 업무였습니다.

    우체국 FC와는 정반대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동일했습니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분이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웃음에 그늘이 없네요.”

    그리고는 어려움 없이 살아온 사람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언니도 신앙생활 하시잖아요.”

    그러자 그분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웃음의 그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대화를 나누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말투가 다르고, 음성이 다르고, 살아온 인생의 색깔도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옳은 말 몇 마디가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늘 우리를 그렇게 대해 주십니다.

    정죄하기보다 기다려 주시고, 판단하기보다 말씀으로 방향을 보여 주십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저를 특별한 사역의 자리에서만 훈련하지 않으셨습니다.

    보험 일을 하던 자리에서도,
    생산직 공장에서 일하던 자리에서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저를 다루시고 빚어 가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특별한 곳에서만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일하십니다.

    오늘 내가 서 있는 직장,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
    오늘 내가 감당해야 하는 작은 책임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역의 자리보다,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먼저 우리를 빚어 가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분은 어떤 일을 맡기시기 전에 먼저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어떤 사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을 다루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어디든지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있게 하신 자리라면 그곳 역시 하나님의 훈련장이며, 은혜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답답하게 느껴지고, 앞으로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역의 자리보다,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먼저 우리를 빚어 가십니다.

    오늘의 평범한 하루도 하나님 손 안에서는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빚어 가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

  •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최근에 수년 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블로그가 놀라울 정도로 쉽게 개설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전도서 말씀처럼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만들고 싶어 했던 블로그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는 충분히 준비되었으니 시작해도 되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조금 달랐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늦추다 보면 지금 주시는 은혜와 감동을 놓칠 수도 있으니, 순종하며 한 걸음을 내딛으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글을 잘 써서가 아닙니다.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저 제 삶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기록하고,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는 제 열심의 결과라기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늘 순종을 먼저 요구하셨습니다.

    우리는 순종하기 전에 결과를 보고 싶어 합니다.
    준비가 충분한지 확인하고 싶고,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많은 경우 결과를 먼저 보여 주시지 않으십니다.

    대신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막상 순종하여 걸어가 보면, 내가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해 두신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이번 블로그 역시 그런 과정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은 있었지만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자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조건이 아니라 순종하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순종의 길이 항상 쉽고 편한 길은 아닙니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고,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라면 그 길 끝에는 생명이 있고, 평안이 있으며,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결국 같은 고백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순종하는 길이 사는 길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신앙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제 삶을 돌아보아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던 순간들은 대부분 제 계획이 완벽했을 때가 아니라, 부족하고 연약했지만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였습니다.

    앞으로 이 블로그가 어떻게 사용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게 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일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 과정 또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제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주님, 제가 이루려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순종하겠습니다.
    순종하는 길이 사는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

  • 열정, 그리고 10년의 시간

    열정, 그리고 10년의 시간

    최근 우연히 2015년도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열정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열정은 환경과 처지를 탓하지 않는 것이고,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힘이며,
    성공 그 자체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열정을 가진 사람은 결국 세상 속에서 ‘구별됨’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고 적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글을 다시 읽으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때는 열정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기쁜 날도 있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고민하기도 했고,
    가족 안에서 갈등을 경험하기도 했으며,
    경제적인 문제와 현실의 벽 앞에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오며 한 가지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저의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사람의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처음 품었던 꿈도 변할 수 있고,
    굳게 세웠던 결심도 흔들릴 수 있으며,
    뜨겁던 마음도 식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에도,
    넘어질 때에도,
    길을 잃고 헤맬 때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바라보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저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 같았지만,
    먼저 저를 사랑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제가 믿음을 지킨 것 같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열정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됩니다.

    열정은 단순히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잃지 않는 마음이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려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구별됨 역시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따라가기로 결단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조금씩 변화시키실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그래서 열정과 구별됨, 은혜와 사랑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이라는 한 뿌리에서 자라나는 열매들입니다.

    이번에 2015년의 글을 다시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10년 전의 저에게 이미 말씀하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잘 보이지 않겠지만, 내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 말씀은 삶의 현장에서 조금씩 증명되고 있습니다.

    제가 계획한 길보다 더 좋은 길로,
    제가 기대한 방식보다 더 깊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여전히 저를 다루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다시 고백합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 마음이 하나님을 향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주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저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의 열정보다 더 크고,
    저의 결심보다 더 강하며,
    저의 믿음보다 더 신실한 것은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지난 10년을 걸어올 수 있었고,
    그 사랑이 있기에 앞으로의 10년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함으로 고백합니다.

    “2015년의 고백이 2025년의 간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하나님이셨습니다.”
    🙏🏻❤️🌱➡️🌳

    “돌아보니,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

  • 하나님의 음성이 만든 가족의 자리

    하나님의 음성이 만든 가족의 자리

    결혼하지 않은 바로 아래 동생이 지금은 저희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작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주님은 제 마음에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동생 선옥이를 불쌍히 여겨라.”

    당시에도 저는 동생을 돕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은 제 마음을 더욱 깊이 움직였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하나님은 저희 가정을 동생을 맞이할 수 있는 자리로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이후 동생은 저희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고 가까운 곳에 직장도 얻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자신의 몫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생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저 역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과 가정 생활을 함께 책임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함께 생활하며 여러 부분을 도와주다 보니 가정의 일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생각합니다.

    “서로 협력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처음에는 제가 동생을 돌보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동생에게 필요한 가정을 준비해 주셨고, 동시에 저희 가정에도 필요한 도움을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언제나 한쪽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한 사람을 살리시면서 또 다른 사람도 함께 세우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주님의 음성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 음성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이어 주며, 서로를 살리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가족의 자리를 감사함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시작에 있었던 주님의 한마디를 다시 떠올립니다.

    “네 동생 선옥이를 불쌍히 여겨라.”

    그 음성은 결국 동생뿐 아니라 저희 가정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

    지난 페이스북 글을 살펴보다가 오래전 기록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예영이가 큰오빠 방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고 받은 용돈이 7만 원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큰아이는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치울 수가 있지?”

    그 말을 보며 웃음이 났습니다.
    어쩌면 예영이는 저를 닮은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저는 집안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기는지 모르게 가구를 옮기고 정리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남편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낮에 불시에 들어와 볼 거야!”

    “대체 어떤 사람이 와서 도와주는지~

    집에 돌아와 달라진 모습을 보면 정말 누군가 와서 도와준 것처럼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몇 년 뒤 남편은 또 다른 말을 하게 됩니다.

    “나 이제 돈 없어서 이사 못 가!”

    “이제 이사 가자고 하지 마!”

    결혼 초에는 어렵게 집을 마련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대출을 안고 시작한 삶이었고, 적은 월급으로 이자를 감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제가 끊임없이 변화를 이야기했으니 그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수많은 변화를 지나왔습니다.
    원해서가 아니라 삶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을 만나야 했고, 많은 시간들을 통과해 왔습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가구를 옮기고 집안을 뒤집어 놓을 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정리해야지.
    청소해야지.

    생각은 하지만 몸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분명하게 생기는 순간,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겨나는지 저도 모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동생도 말합니다.

    “언니가 한 번 움직일 때는 나도 놀라.”

    “평소에는 힘이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저렇게 하지?”

    저 역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분명 평소에는 지치고 힘이 없는데,
    어떤 순간에는 집중력이 생기고,
    일이 정리되기 시작하고,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의지력이 강해서 그렇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제 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마음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움직일 힘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평소의 저는 연약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 공급하시는 힘으로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예영이가 방을 정리한 이야기는 단순한 청소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모습을 보며 예전의 저를 떠올렸고,
    또 하나님께서 제 삶을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제 힘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힘이 필요한 순간마다,
    주님은 언제나 부족함 없이 채워 주셨습니다. 😊🙏🏻✨

  • 가족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 이야기

    가족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 이야기

    오늘 아침, 블로그에 30번째 글을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어떻게 일하셨는지 정리해 보고 싶었고, 잊고 싶지 않은 깨달음들을 남겨 두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30개의 글이 되었습니다.

    신앙 이야기, 가족 이야기, 삶 속에서 배우고 깨달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이 글들을 누구보다 먼저 가족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내가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글을 정리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가족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는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세상의 방법보다 먼저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품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가족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저 자신을 향한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과연 가족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고 있는가?”

    저는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고 있지만, 실제 삶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쓴 글보다도 제 삶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 속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수했을 때 어떻게 인정하는지,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는지를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30개의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제 자신을 비춰 보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너는 네가 기록한 믿음을 실제로 살아가고 있느냐?”

    저는 아직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사람이 되기보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도 함께 하나님을 찾는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정리한 글들은 제가 잘해서 남긴 기록이 아니라, 넘어지고 실패하면서도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려고 했던 과정의 기록입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시간 될 때 천천히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들을 통해 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한 사람과 한 가정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함께 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찾고 의지하는 가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30개의 글을 채우며 얻은 가장 큰 열매는 글의 개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삶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우리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찾는 가족이 되기를 더욱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이번에 정리한 블로그는 제게 특별한 생일 기념품이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하시고, 그 은혜를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기록해 가려고 합니다.

    사랑합니다.^^

  • 예배가 살아나니 삶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가 살아나니 삶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은 제게 여러 의미가 있는 해였습니다.

    요양보호사로 일한 지 어느덧 5년이 되었고, 그 일을 마무리할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제 능력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고 섬기면서 때로는 기쁨도 있었고, 때로는 이별의 아픔도 있었습니다.

    5년 동안 만난 어르신들은 스무 분 정도였습니다.

    그중에는 먼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들도 계셨고, 요양원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 소식을 전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일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자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르신들을 돌보며 일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그분들이 제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동안 잘 방문드리며 해왔던 요양보호사 일을 내려놓게 되니 제 마음이 생각보다 많이 붙들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매이지 않도록 인도하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기에 다시 주님만 바라보기를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요양보호사 일을 정리하고 주님을 찾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드리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하게 사회복지사로 근무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라는 마음이 들어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또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계셨던 것은 직업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예배의 회복이었습니다.

    특히 남편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루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예배는 자동으로 드려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와 직결되어 있었고, 말씀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말씀으로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주셨고, 회개하게 하셨으며,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살아 있는 예배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신기한 것은 예배가 살아나기 시작하자 삶도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남편도 점점 더 사모함으로 예배에 참여하게 되었고, 저 역시 예배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의 예배가 한 주를 살아갈 힘이 되었고, 예배를 기다리는 마음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예배는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말씀으로 인도받고, 성령님의 다루심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배를 향한 영적 전쟁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피곤함이 찾아오고, 바쁜 일이 생기고,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사소한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갈등이 있는 상태에서는 예배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갈등을 해결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원수는 예배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그래서 예배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하는 믿음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를 변화시킨 것은 우리의 결심이나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영적 전쟁 가운데서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도록 붙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부족함을 경험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예배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을 지나며 우리의 삶에도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 드리기 전에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차분히 하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비추시고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요양보호사로 보낸 5년의 시간도 감사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예배를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주님께 더 가까이 이끌어 주신 은혜가 감사합니다.

    돌이켜보면 2020년은 직업의 변화보다도 예배의 회복이 더 큰 의미로 남아 있는 해였습니다.

    예배가 생명임을 잊지 말자.

    그리고 어떤 영적 전쟁이 찾아오더라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며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 남편을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남편을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결혼을 하면 남편이 모든 것을 잘 알고,
    가정을 완벽하게 이끌어 줄 것이라고 기대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됩니다.

    남편도 모르는 것이 많고,
    두려운 것도 많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일지 몰라도
    마음속에서는 방향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아내가 해야 할 일은
    실망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부를 경쟁자가 아니라
    동역자로 세우셨습니다.

    남편은 홀로 모든 짐을 지는 사람이 아니고,
    아내는 그 곁에서 지혜와 사랑으로 돕는 배필입니다.

    돕는다는 것은
    무조건 남편의 말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함께 기도하고,
    때로는 지혜로운 조언을 하고,
    때로는 격려하며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것입니다.

    남편도 연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아내의 역할이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완벽한 남편을 기대하기보다
    함께 성장해 가는 부부가 될 때
    가정은 더욱 건강해집니다.

    결국 좋은 가정은
    한 사람이 잘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며
    하나님 안에서 함께 자라갈 때 세워지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남편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부족함을 보며 답답해했던 순간들만큼, 저 역시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도 함께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로를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정은 조금씩 더 건강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한 줄 묵상

    “완벽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품고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 답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답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가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좋아하세요?”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그런데 저는 이런 질문에 선뜻 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없어서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제 마음속에는 늘 다른 질문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많은 책을 갖고 싶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싶었고, 형이나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알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마음껏 배우고 물어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 답답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 안에는 더 깊고 본질적인 질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계실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정말 내 마음을 아실까?”

    “내가 혼자 중얼거리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실까?”

    “기도는 꼭 교회에 가서 해야 하는 걸까?”

    “하나님은 정말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까?”

    “순종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진짜 순종일까?”

    “예수님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을 믿는데 왜 내 마음에는 기쁨과 감사가 없는 걸까?”

    이런 질문들은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제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쉽게 답할 수 없었습니다.

    제 안에서는 늘 더 중요한 질문들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고, 성경도 배우고, 여러 사람들의 간증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형식은 있는데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고,

    배움은 있는데 평안이 없었으며,

    신앙은 있는데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교회에 가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사람들에게 답을 주는 사람이라기보다 답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질문을 하면 쉽게 대답하기보다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이 질문에 책임 있게 답할 수 있는가?”

    “이 사람은 정말 무엇을 궁금해하는 것일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함부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 이것이 제가 사람들의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감사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 모든 질문에 한 번에 답해 주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대신 질문 속에서 하나님을 찾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답보다 하나님 자신을 알아 가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혼자 있을 때도 함께 계셨고,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도 알고 계셨으며,

    응답보다 먼저 평안으로 찾아와 주셨습니다.

    또 순종은 로봇처럼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함께 걸어가는 것임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다 얻은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고,

    여전히 하나님께 묻고 싶은 것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답을 찾는 것보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형식적인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남을 수 있지만 생명력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릅니다.

    그 관계 안에서 질문은 기도로 바뀌고,

    불안은 평안으로 바뀌며,

    답답함은 소망으로 바뀌어 갑니다.

    오늘도 저는 모든 답을 얻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질문 가운데서도 여전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하나님 앞에 머뭅니다.

    답보다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

  • 영적 전쟁 ② : 하나님이 다루시는 전쟁

    영적 전쟁 ② : 하나님이 다루시는 전쟁

    영적 전쟁은 실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적 전쟁을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한 현상이나 사탄의 공격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서도 갈등이 발생하고, 때로는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시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불완전한 인격이 반응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충돌과 갈등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의 문제만 바라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 속에서 상대방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함께 다루고 계십니다.

    사실 많은 갈등은 돈과 관련된 문제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또한 자존심, 인정받고 싶은 마음, 소유욕과 같은 인간의 욕망이 갈등의 뿌리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겉으로는 다른 이유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상황을 통해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영적 전쟁은 결국 눈에 보이는 문제 뒤에 있는 인간의 욕망과 인격의 문제를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부분을 다루십니다.

    갈등이 생길 때 우리는 상대방을 바꾸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마음을 살피게 하십니다. 억울한 상황 속에서는 교만이 드러나고, 상처받은 상황 속에서는 두려움과 연약함이 드러납니다. 또한 손해를 보는 상황 속에서는 돈과 물질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빚어 가십니다.

    더 겸손한 사람으로.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더 주님을 찾는 사람으로.

    영적 전쟁의 목적은 단순히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연단하시고 변화시키십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의 승리는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하며, 더욱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 상황 속에서 우리의 인격을 다루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은 영적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빚어 가십니다.

    더 겸손하게.

    더 하나님을 찾게 하시며.

    더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