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newznls6857

  • 남편을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남편을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결혼을 하면 남편이 모든 것을 잘 알고,
    가정을 완벽하게 이끌어 줄 것이라고 기대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됩니다.

    남편도 모르는 것이 많고,
    두려운 것도 많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일지 몰라도
    마음속에서는 방향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아내가 해야 할 일은
    실망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부를 경쟁자가 아니라
    동역자로 세우셨습니다.

    남편은 홀로 모든 짐을 지는 사람이 아니고,
    아내는 그 곁에서 지혜와 사랑으로 돕는 배필입니다.

    돕는다는 것은
    무조건 남편의 말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함께 기도하고,
    때로는 지혜로운 조언을 하고,
    때로는 격려하며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것입니다.

    남편도 연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아내의 역할이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완벽한 남편을 기대하기보다
    함께 성장해 가는 부부가 될 때
    가정은 더욱 건강해집니다.

    결국 좋은 가정은
    한 사람이 잘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며
    하나님 안에서 함께 자라갈 때 세워지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남편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부족함을 보며 답답해했던 순간들만큼, 저 역시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도 함께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로를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정은 조금씩 더 건강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한 줄 묵상

    “완벽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품고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 답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답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가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좋아하세요?”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그런데 저는 이런 질문에 선뜻 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없어서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제 마음속에는 늘 다른 질문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많은 책을 갖고 싶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싶었고, 형이나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알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마음껏 배우고 물어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 답답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 안에는 더 깊고 본질적인 질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계실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정말 내 마음을 아실까?”

    “내가 혼자 중얼거리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실까?”

    “기도는 꼭 교회에 가서 해야 하는 걸까?”

    “하나님은 정말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까?”

    “순종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진짜 순종일까?”

    “예수님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을 믿는데 왜 내 마음에는 기쁨과 감사가 없는 걸까?”

    이런 질문들은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제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쉽게 답할 수 없었습니다.

    제 안에서는 늘 더 중요한 질문들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고, 성경도 배우고, 여러 사람들의 간증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형식은 있는데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고,

    배움은 있는데 평안이 없었으며,

    신앙은 있는데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교회에 가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사람들에게 답을 주는 사람이라기보다 답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질문을 하면 쉽게 대답하기보다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이 질문에 책임 있게 답할 수 있는가?”

    “이 사람은 정말 무엇을 궁금해하는 것일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함부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 이것이 제가 사람들의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감사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 모든 질문에 한 번에 답해 주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대신 질문 속에서 하나님을 찾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답보다 하나님 자신을 알아 가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혼자 있을 때도 함께 계셨고,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도 알고 계셨으며,

    응답보다 먼저 평안으로 찾아와 주셨습니다.

    또 순종은 로봇처럼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함께 걸어가는 것임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다 얻은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고,

    여전히 하나님께 묻고 싶은 것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답을 찾는 것보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형식적인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남을 수 있지만 생명력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릅니다.

    그 관계 안에서 질문은 기도로 바뀌고,

    불안은 평안으로 바뀌며,

    답답함은 소망으로 바뀌어 갑니다.

    오늘도 저는 모든 답을 얻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질문 가운데서도 여전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하나님 앞에 머뭅니다.

    답보다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

  • 영적 전쟁 ② : 하나님이 다루시는 전쟁

    영적 전쟁 ② : 하나님이 다루시는 전쟁

    영적 전쟁은 실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적 전쟁을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한 현상이나 사탄의 공격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서도 갈등이 발생하고, 때로는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시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불완전한 인격이 반응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충돌과 갈등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의 문제만 바라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 속에서 상대방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함께 다루고 계십니다.

    사실 많은 갈등은 돈과 관련된 문제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또한 자존심, 인정받고 싶은 마음, 소유욕과 같은 인간의 욕망이 갈등의 뿌리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겉으로는 다른 이유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상황을 통해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영적 전쟁은 결국 눈에 보이는 문제 뒤에 있는 인간의 욕망과 인격의 문제를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부분을 다루십니다.

    갈등이 생길 때 우리는 상대방을 바꾸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마음을 살피게 하십니다. 억울한 상황 속에서는 교만이 드러나고, 상처받은 상황 속에서는 두려움과 연약함이 드러납니다. 또한 손해를 보는 상황 속에서는 돈과 물질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빚어 가십니다.

    더 겸손한 사람으로.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더 주님을 찾는 사람으로.

    영적 전쟁의 목적은 단순히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연단하시고 변화시키십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의 승리는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하며, 더욱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 상황 속에서 우리의 인격을 다루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은 영적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빚어 가십니다.

    더 겸손하게.

    더 하나님을 찾게 하시며.

    더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말입니다.📚🙂💕🍀

  • 영적 전쟁이란 영적 전쟁의 본질

    영적 전쟁이란 영적 전쟁의 본질

    영적 전쟁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한 싸움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영적 전쟁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일어납니다.

    영적 전쟁은 문제의 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항상 문제만 바라보는 사람은 억압에 갇혀 살아갑니다. 문제의 크기가 문제가 되기보다 문제 자체가 없어져야 안심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잠시 평안을 얻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다시 불안해집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동안은 문제가 없을 수 있어도 문제가 전혀 없는 삶은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가정의 문제, 건강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직장의 문제 등 다양한 어려움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돈에 대한 염려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활비에 대한 걱정, 자녀 교육에 대한 부담, 미래에 대한 불안, 노후에 대한 염려 등 우리가 겪는 수많은 고민의 중심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돈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만큼 돈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돈 자체보다 돈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말씀합니다.

    돈이 부족하면 불안해지고, 돈이 많아도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돈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돈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우리의 마음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그 문제 앞에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느냐입니다.

    문제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주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적 전쟁이 시작됩니다.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한 사람은 계속 문제를 바라봅니다. 반면 또 다른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환경은 같지만 마음의 방향은 전혀 다릅니다.

    영적 전쟁은 눈에 보이는 싸움이 아니라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 싸움입니다.

    문제가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특히 돈에 대한 염려는 우리의 생각을 끊임없이 붙잡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돈이 있어야만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하나님보다 현실의 문제를 더 크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은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돈에 대한 염려가 하나님을 향한 신뢰보다 더 커질 때 시작되는 믿음의 싸움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해서 염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두려워할 수 있고, 걱정할 수 있으며,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염려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염려 가운데서도 다시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은 자라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아 가는 만큼 믿음도 함께 성장합니다.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알아 갈 때 우리의 믿음은 조금씩 자라나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문제가 믿음의 성장을 위한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통해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조금씩 알아 가게 됩니다.

    반대로 문제만 바라보며 문제 해결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점점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려는 마음도 약해지게 됩니다.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우리의 시선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은 거창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의 생각과 마음속에서, 문제를 바라볼 것인가 하나님을 바라볼 것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일어나는 믿음의 싸움입니다.

    문제가 사라져야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때 참된 평안이 찾아옵니다.

    영적 전쟁의 승패는 문제의 크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문제를 만났는가보다, 그 문제 앞에서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자라나고,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게 됩니다.

    영적 전쟁은 결국 문제와의 싸움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 가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

  •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2018년 요양보호사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하며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기도 제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를 드리고, 봉사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가정 안에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부부가 서로 존중하며,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는 일.

    이것은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 역시 많은 기회를 놓치며 살아왔고,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도 말씀이 지식으로만 머무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2018년, 제가 방문하던 한 어르신 가정에서도 그런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 가정은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가정이었습니다.

    가족 모두 하나님을 믿고 있었고, 교회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갈등이 생겼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자녀 교육 문제와 앞으로의 삶을 위해 미국으로 잠시 나가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사실 그 자체는 특별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정에는 한 가지 중요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경추 장애로 인해 오랜 세월 침상 생활을 하고 계셨고, 돌봄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어머님의 입장에서는

    “결국 나를 두고 떠나는구나.”

    라는 서운함과 외로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자녀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며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입장이 너무 달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한 가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에 가느냐, 가지 않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님의 마음이 충분히 존중받고 있지 않다고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옳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상대방의 마음은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해보다 주장,
    배려보다 판단,
    사랑보다 서운함이 자리 잡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믿는 가정도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어느 날 며느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미국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머님의 마음이 존중받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자녀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서운함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녀들을 축복하며 보내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물론 저는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그 가정 가운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조금씩 정리되었습니다.

    어머님 명의로 임대 아파트를 마련하게 되었고,

    아드님은 한국에 남아 어머님과 함께 생활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의 계획은 무엇을 기준으로 세워져야 할까요?

    그리고 진정한 믿음은 언제 드러나는 것일까요?

    믿음은 예배당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과 선택의 순간 속에서 드러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도,
    자녀를 이해하는 일도,
    서로를 존중하는 일도,

    모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열매일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종종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교회보다 먼저 우리의 가정을 다스려 주십시오.

    말씀을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가정이 되게 하십시오.

    우리의 생각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시고,

    우리의 주장보다
    주님의 사랑이 먼저 흘러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

  • 관계는 작은 배려 속에서 자라납니다

    관계는 작은 배려 속에서 자라납니다

    2018년의 일입니다.

    둘째가 운전면허를 취득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당분간은 형의 차를 번갈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근무 파트가 달라
    출퇴근 시간이 서로 겹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부모의 마음은 늘 같습니다.

    혹시나 늦지는 않을까,
    차량 이용에 불편함은 없을까,

    남편과 저는 아직도 노파심에
    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둘째를 걱정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 몸에 열이 많고 추위를 잘 타지 않는 남편과 달리,
    아이들은 저를 닮아 추위를 많이 타는 편입니다.

    아이들이 거실 온도를 조금 높여 놓았는데,
    남편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말투도 평소보다 부드럽지 못했고,
    아이들은 그런 분위기를 금방 느꼈습니다.

    사실 가족은 그렇습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에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그 일이 오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음 날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어제 저녁에 거실이 너무 펄펄 끓어서
    내가 순간적으로 마음이 안 좋았나 봐.”

    신의 감정을 인정하며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저는 답장으로 이렇게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당신의 표정과 말투에 민감하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러자 남편은 짧지만 진심이 담긴 답을 보냈습니다.

    “알았시유~~”

    그 한마디가 참 고마웠습니다.

    변명하지 않고,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관계란
    서로 실수하지 않는 관계가 아닙니다.

    서운함이 생겼을 때
    다시 돌아와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

    잘못을 깨달았을 때
    겸손하게 인정할 수 있는 관계,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대해 주십니다.

    실수하고 넘어질 때마다 정죄하기보다,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시고
    회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가정 안에서도 조금씩 용서하고,
    조금씩 이해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날의 작은 일상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관계는 거창한 사건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돌아보는 작은 배려와
    진심 어린 한마디가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금씩 성숙해져 가는 것임을 말입니다. 😊🙏🏻

  •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2018년도, 예영이가 중학교 2학년 무렵 친구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을 기억하다가 문득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한 학급의 인원도 적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학교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예영이는 초등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좋아했고,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하고, 2학년이 되면서 어려운 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일부 친구들의 따돌림과 집요한 태도와 왜곡된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수업 시간조차 숨 막히고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으로 결국 학교생활 자체가 힘들어졌습니다.

    예영이는 당시 친구들의 행태에 맞서며 당당하게 위클래스 상담 교사를 찾아서 상담을 하며 그 상황을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부모로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왜 우리 아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상처를 받고, 관계 때문에 울고, 학교 가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내야 하나 하는 문제로 주님을 절박하게 찾았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위클래스 상담으로 극복해 주길 원했으나, 상담하는 선생님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학교로 직접 찾아가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선생님들은 제게 무조건 예영이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음을 알기에 예영이 전학을 추진해 달라고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폭으로 인해 전학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또한 전학은 예영이가 해야 할 부분이 아니었음에도 예영이가 너무도 학교 생활이 싫어서 전학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은 예영이에게 단순한 상처의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예영이는 원래 모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힘들게 해도 참고 넘어가려고 했고, 갈등이 생기는 것 자체를 불편해했습니다.

    그런데 관계 속에서 아픔을 겪으며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반드시 건강한 관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줄도 알아야 하고,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그것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며, 필요할 때는 갈등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대를 미워하거나 공격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신을 존중하면서 상대도 존중하는 건강한 관계의 기준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당시에는 왜 그런 아픔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예영이를 다루시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현재 예영이는 대학 진학 대신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하여 관련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 초년생이지만 밝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으며,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전보다 훨씬 안정감 있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학창 시절의 아픔이 있었기에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관계를 바라보는 건강한 기준도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때는 힘들고 억울한 일처럼만 보였던 시간들이었지만, 지금은 하나님께서 예영이를 보호하시고 준비시키시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제는 고백합니다.

    “주님,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감사합니다.”

    우리의 눈물과 상처조차 헛되게 사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전히 선한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 부모도 연약한 사람입니다

    부모도 연약한 사람입니다

    몇 년 전, 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하며 있었던 일입니다.

    그 어르신은 오랜 세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기신 분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술은 끊으셨지만, 통풍과 치매까지 찾아와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어느 날 어르신의 두 아드님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은 자녀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해 겪었던 아픔,
    가정 안에서 경험했던 수많은 상처,
    실망과 분노의 기억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아버지가 연약해지고 병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쉽게 이해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며 제 마음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부모도 결국 연약한 사람일 뿐이구나.’

    우리는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를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부모는 강해야 하고,
    부모는 책임져야 하고,
    부모는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알게 됩니다.

    부모도 부족한 사람이었고,
    부모도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고,
    부모도 자신의 연약함과 싸우며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가 상처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해는 용서의 문을 열어 주고,
    용서는 우리의 마음을 자유롭게 해 줍니다.

    그날 한 아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코 변화되시길 기대하는 마음은 없고, 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찾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오랜 세월의 아픔과 갈등, 그리고 자녀로서의 책임감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어쩌면 가족 관계의 회복은 상대방이 완전히 변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사랑의 몫을 다시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되는지 모릅니다.

    그날 대화를 마친 후 저는 오히려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 앞에서 수없이 결심하고 약속했지만 넘어졌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주님께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했지만 결국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상대방의 잘못만 바라보면 마음은 점점 굳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미워하던 사람 속에서도 연약함을 보게 되고, 정죄하던 사람 속에서도 긍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날 저는 어르신의 아드님들보다 오히려 제 자신의 마음을 더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종종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얼마나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려 주신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기다려 줄 수 있는가?

  • 지금 하나님은 무엇을 보고 계실까?

    지금 하나님은 무엇을 보고 계실까?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정치도 보이고,
    경제도 보이고,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보입니다.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게 되고,
    점점 더 악해져 가는 세상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거짓과 탐욕,
    분열과 혼란이 점점 커져 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하나님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세상만 바라보지 않으셨습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에도,
    타락이 극심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신의 백성들을 찾으셨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세상을 향한 경고를 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의 백성들이 깨어 있기를 원하셨고,
    그들의 믿음이 바로 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세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이야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합니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
    누가 문제이고 누구를 비판해야 하는지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어쩌면 다른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얼마나 악해졌는가?”

    보다

    “너는 지금 깨어 있는가?”

    를 물으시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자신의 백성들을 찾고 계십니다.

    세상이 얼마나 어두운가를 바라보기보다,
    내가 얼마나 빛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더욱 정결하게 하시고,
    더 깊은 믿음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어떤 시대가 오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람이나 이념이 아니라
    하나님과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은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보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깨어 있는 백성들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 “의미 없는 분주함을 넘어”

    “의미 없는 분주함을 넘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두 종류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는 일상적인 이야기입니다.
    오늘 있었던 일, 관심사, 취미와 같은 가벼운 대화들입니다.

    또 하나는 그 일들 속에 담긴 의미와 목적, 그리고 삶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일상적인 대화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대화보다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나누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대화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넓게 관계를 맺기보다, 몇 사람과라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또한 서로를 이기기 위해 설전을 벌이는 대화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세워 주는 대화를 원합니다.

    어쩌면 제가 SNS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말들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삶에 실제적인 의미를 더해 주는 일에 마음을 쏟고 싶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주님, 제가 시간을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더 가치 있고 건설적인 길을 보여 주세요.”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도
    의미 없는 분주함에 휩쓸리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방향을 따라 걸어가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도 그 답을 주님께 묻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