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지나고 보니 은혜였던 일

돌아보면 쉽지 않았던 시간도,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그 길에도 하나님이 함께 걸어주셨다는 것을.

「지나고 보니 은혜였던 길」은 삶의 여러 순간을 돌아보며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기록하는 공간입니다.

기다림의 시간, 아픔과 어려움, 관계의 갈등, 예상하지 못했던 삶의 변화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배웠던 이야기들을 담습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그때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셨구나”
고백할 수 있는 작은 믿음의 기록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걷고 있는 길이 힘들게 느껴지는 분들에게도 언젠가 이 시간이 은혜였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작은 위로와 소망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 무엇을 의지하는가? 술을 의지하셨던 친정아버지

    무엇을 의지하는가? 술을 의지하셨던 친정아버지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사람을 의지하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술을 의지하셨던 아버지

    친정아버지는 평소에도 술을 많이 드셨습니다.

    그런데 저희와 함께 생활하게 된 후에는 술을 더 많이, 더 자주 드셨습니다.

    술을 드시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실 때가 많았고, 아파트 단지 안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계신 날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목청은 또 얼마나 좋으셨는지 모릅니다.

    술을 드시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시기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가족의 마음은 참 힘들었습니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고, 가족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자연스럽게 소문도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희에게 사람들의 시선이나 소문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가 술을 드시지 않고 살아가실 수 있을까?”

    그리고 마음속으로 늘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가 술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실 수 있을까?”


    다섯 살 아이가 할아버지를 찾아다녔습니다

    당시 저희 둘째 아이는 다섯 살이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으면 아이가 스케이트를 타고 밖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할아버지를 찾으러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을 돌아다니다가 할아버지가 어디엔가 쓰러져 계신 것을 발견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와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엄마, 할아버지 쓰러져 있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다섯 살 어린아이가 할아버지가 어디에 쓰러져 있는지 찾아다녀야 했던 것입니다.

    저희가 집에 없을 때 그런 일이 생기면 구급 안내원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고 그렇게 할아버지를 찾아다녔을까 싶습니다.

    그저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아버지에게 알코올성 치매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때는 치매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왜 같은 말씀을 계속 반복하시는지,
    왜 조금 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술을 많이 드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니까 기억력이 떨어지고, 술 때문에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아버지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시 가족들이 겪었던 힘든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여전히 힘들었고, 가족 모두가 지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아버지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도 달라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가 힘들어하셨던 부분

    당시 제 남편은 신학을 하겠다고 하면서 직장을 다니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린 손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가고 있었고,
    아이들을 교육하려면 앞으로 들어갈 돈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장으로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아버지의 눈에는 그것이 참 답답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신학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하나님께서 그 길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알지 못하셨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믿음이 없으셨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현실이 더 크게 보였을 것입니다.

    어린 손자들은 커 가는데
    사위는 직장을 다니지 않고 신학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는가?”

    하는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어려울 때 아버지로서 무언가를 해주고 싶으셨을 텐데,
    정작 아버지 자신도 자식들을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참 힘드셨던 것 같습니다.

    자식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도와줄 수 없는 마음.

    어린 손자들이 커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앞으로의 삶이 걱정되는 마음.

    그런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

    아버지에게는 그것이 큰 답답함으로 남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까지 깊이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하나님께서 남편을 부르셨다고 믿고 있었기에
    아버지가 왜 그렇게 답답해하시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니
    아버지의 입장도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아버지에게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더 크게 보였을 것입니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 길이 자신이 생각하는 안정된 길과 다르니
    걱정되고 답답하셨던 것이겠지요.

    어쩌면 그 답답함과 무력감도
    아버지가 술을 더 찾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술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답답해하셨던 것도
    어쩌면 자식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때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모습만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술 뒤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걱정과 답답함,
    그리고 자식들을 향한 마음까지 조금씩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마음들이 하나씩 보이기도 합니다.




    *순종이 가장 어려웠던 자리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08477


    무엇을 의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이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느냐는 참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그것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술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고,
    술 한 잔으로 힘든 일을 잊고,
    술 한 잔으로 외로움을 견디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술이 나의 삶을 끌고 가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그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문득 나 자신에게도 질문하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 잠언 3장 5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생각과 경험 그리고
    사람이나 환경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해서 삶의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문제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술을 끊기를 원했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답답할 때도 있었고, 화가 날 때도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오면서 저는 오히려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 역시 무엇인가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만 무엇인가를 의지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가 의지했던 것과는 방향이 달랐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애쓰기도 했습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깨닫습니다.

    무엇을 의지하느냐는 결국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술을 의지하셨고, 그 술에 삶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하나님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붙들려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왜 그렇게 술을 의지하셨는지,
    왜 술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는지
    지금도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를 단순히 술을 많이 드셨던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안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아픔이 있었을 수도 있고,
    질병이 있었을 수도 있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가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을 바라보면서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것도 배웁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힘들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무엇인가?

    불안할 때 붙잡는 것은 무엇인가?

    삶이 흔들릴 때 나는 누구를 바라보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 예레미야 17장 7절

    삶에는 사람들이 의지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도, 돈도, 능력도, 환경도 자신을 끝까지 붙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려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삶이 어떤 것에 지배당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버지의 삶을 바라보며 시작했던 질문,

    “사람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는가?”

    이 질문은 이제 다른 사람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 되었습니다.

  •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내 결심만으로는 살아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내 결심만으로는 살아지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 많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책임감 있는 딸이고 싶었습니다.

    남편에게는 지혜로운 아내이고 싶었고,
    자녀들에게는 좋은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형제들에게는 어려울 때 도움을 줄 줄 아는 언니이고 싶었고,
    동기간에는 갈등보다 화평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살아오면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마음속에 꽤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어릴 때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정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따라 내 삶을 돌아보다 보니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부모님에게는 책임감 있는 딸이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친할머니와 함께 생활했습니다.

    할머니는 내게 참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말이 있습니다.

    “아빠 엄마에게는 아들이 없으니 네가 아들 역할을 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말이 좋지 않았습니다.

    책임감이 싫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부담스러웠고,
    무언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이 말을 한두 번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싫은 마음으로 들었던 그 말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서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원해서 마음에 품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반복해서 들었던 말이
    어느새 내 생각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이 언제부터 내 안에 자리 잡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보니
    가족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부모님이 힘드시면 내가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가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다시 나에게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싫었던 책임감인데,
    어른이 된 나는 오히려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는
    책임감 있는 딸이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이 힘드실 때 외면하지 않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연약해지셨을 때는
    내가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두 분 모두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와서 돌아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부모님에게 어떤 딸이었을까?’

    더 잘해드릴 걸.

    조금 더 이해해 드릴 걸.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드릴 걸.

    그때는 왜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까.

    이제는 아무리 잘해드리고 싶어도
    다시 해드릴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생각하면
    아쉬움도 남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부모님을 위해 애쓰며 살아왔던 나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했기 때문에
    잘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돌아보니
    그 사랑 안에는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자리 잡은 책임감도 함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니까 내가 해야 하고,
    가족이니까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내가 조금 더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에게는 지혜로운 아내이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에게만 그런 마음을 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남편에게도 좋은 아내이고 싶었습니다.

    내 생각만 주장하기보다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고,
    가정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지혜롭게 대처하는 아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주고,
    서로의 부족함을 감싸면서 함께 걸어가는 아내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아내가 되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요.

    내 마음이 상하면 지혜보다 감정이 먼저 나왔고,
    내 생각이 옳다고 여겨질 때는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아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 마음만으로 언제나 좋은 아내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좋은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좋은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힘들 때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엄마,
    실수했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엄마,
    아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훗날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했어.’

    그렇게 기억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나 역시 완벽한 엄마는 아니었습니다.

    지쳐 있을 때는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내가 힘든 상황에서는 아이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아쉬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좋은 엄마로 살아내지 못했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을 사랑했던 마음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습니다.


    형제들에게는 도움을 줄 줄 아는 언니이고 싶었습니다

    형제들에게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외면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언니이고 싶었습니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나 역시 힘든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 역시 모든 것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때로는 나 자신 하나를 돌보는 것조차 버거운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면서
    다른 사람의 연약함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동기간에는 화평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동기간에
    화평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겼을 때
    누군가의 편에 서기보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불씨를 더 크게 만들기보다
    조금이라도 가라앉힐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말해도
    내 뜻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고,

    내가 화평을 만들려고 했던 일이
    오히려 또 다른 갈등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을 내가 화해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먼저 상처 주는 말을 내려놓고,
    상대를 존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진실하게 대하는 것까지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의 일까지
    내가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마음의 방향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2918


    돌아보니 나는 내가 생각했던 사람과 많이 달랐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돌아보니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과
    실제로 살아온 나의 모습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나는 좋은 딸이고 싶었습니다.

    좋은 아내이고 싶었습니다.

    좋은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도움을 줄 줄 아는 언니이고 싶었습니다.

    화평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제의 나는
    때로는 화를 냈고,
    상처를 주었고,
    참지 못했고,
    내 생각을 앞세웠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돌아보면
    예전 같았으면 나 자신에게 실망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이렇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왜 또 이렇게 되었을까?’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결심만으로는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이렇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더 잘해야지.

    조금 더 참아야지.

    조금 더 이해해야지.

    사랑해야지.

    화평을 만들어야지.

    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결심한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도
    내 안에는 여전히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사랑하고 싶어도
    내 마음이 상하면 사랑하기 어려웠고,

    참고 싶어도
    어느 순간 감정이 먼저 튀어나왔습니다.

    용서하고 싶어도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고,

    화평을 만들고 싶어도
    내 안의 상처 때문에 오히려 갈등을 키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예전에는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것을 깨닫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결심만으로 변화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나를 하나님께 맡기고 싶습니다

    이제는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내 힘으로 만들어 가려고 애쓰기보다
    하나님께 맡기고 싶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결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님, 저는 제 결심만으로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을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내가 참아야 할 때 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내가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려고 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몫과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먼저 묻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넘어졌을 때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라고 나를 책망하기보다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여전히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여전히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책임감 있는 딸이고 싶었습니다.

    남편에게는 지혜로운 아내이고 싶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좋은 엄마이고 싶습니다.

    형제들에게는 어려울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언니이고 싶습니다.

    동기간에는 갈등보다 화평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보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릴 때 할머니가 내게 하셨던

    “네가 아들 역할을 해야 한다.”

    는 말은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말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어린 나에게는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들었던 그 말은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내 생각과 삶의 태도 속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그 흔적을 조금씩 바라봅니다.

    나는 오랫동안
    사랑과 책임을 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니까 내가 해야 하고,
    사랑하니까 내가 참아야 하고,
    사랑하니까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돕고,
    내가 해야 할 몫을 다한 뒤에는
    나머지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는 것을.

    부모님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부모님을 사랑하며 살아왔던 시간과
    그 안에서 배운 것들은 여전히 내 삶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조금씩 흘려보내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모든 것을 내 책임으로 짊어지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나의 결심보다
    나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의지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내가 원했던 모습으로 완벽하게 살아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는 고백하고 싶습니다.

    “나는 부족했습니다.
    내 결심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조금씩 나를 빚어 가셨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만 이제는
    내 힘으로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도록
    나 자신을 맡겨드리고 싶습니다.

  •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내 마음을 붙드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내 마음을 붙드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을 걸어오면서 때로는 평탄한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과 긴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2026년 8월 18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1심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재판을 기다렸습니다.

    처음에는 언젠가 이 일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지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자료를 다시 살펴보고, 서류를 준비하고, 재판을 기다리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이 민사소송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몇 편의 글로 기록해 왔습니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 민사소송을 시작하다」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민사소송 진행 가운데 가장 크게 얻은 깨달음」

    그리고 그 긴 시간을 지나오며 소송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깨달았는지도 기록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의 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1심 판결입니다.


    판결을 기다리던 시간

    판결을 기다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상당 부분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고,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설명하고,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기다림의 시간이 제게는 또 하나의 믿음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실 수 있다는 것.

    내가 결과를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8월 18일, 판결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그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마음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긴 시간 동안 준비했던 일들이 떠올랐고, 재판을 위해 자료를 하나씩 정리했던 시간도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저 혼자 이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걸어오셨습니다.

    제가 힘들어할 때도 함께 계셨고,

    답을 알 수 없어 기다릴 때도 함께 계셨고,

    마음이 흔들릴 때도 저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내가 원하는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제가 겪은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랐고, 제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제 마음에 조금씩 다른 질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보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여전히 결과에 대한 마음이 있습니다.

    앞으로 항소라는 또 다른 과정을 지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결과를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보다,

    하나님을 붙들고 결과를 맡기며 걸어가고 싶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8045

    판결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심 판결이 선고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는 앞으로 또 다른 선택과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지금의 마음은 조금 다릅니다.

    처음 소송을 시작했을 때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만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지나가는 저 자신을 변화시키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하셨고,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셨고,

    사람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먼저 구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지나고 보니 은혜였던 길

    아직 이 사건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이 길을 돌아보며 모든 것이 은혜였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일이 있고, 마음에 남아 있는 질문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 길을 지나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저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힘들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셨고,

    포기하고 싶을 때 다시 걸을 수 있도록 하셨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한 걸음씩 내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길의 끝이 어디인지보다,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을 더 바라보려고 합니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딛으려고 합니다.

    1심 판결 이후의 과정도 기록할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길에서는 결과만 바라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길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시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지나게 하시는지,

    그리고 제가 어떤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지를 함께 기록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이 모든 시간이 지나고 뒤를 돌아보게 되는 날,

    저는 이 사건을 이렇게 기억하고 싶습니다.

    “힘들었던 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걸어주셨던 길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고백합니다.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 민사소송 진행 가운데 가장 크게 얻은 깨달음

    민사소송 진행 가운데 가장 크게 얻은 깨달음

    민사소송을 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깨달음

    민사소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 소송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깨닫게 하실까?’

    처음에는 그저 내가 겪은 일을 사실대로 설명하고, 그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하나씩 준비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상대방의 주장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살펴보고, 내가 주장하는 내용이 실제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을 자료로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재판에서는 아무리 내가 억울하다고 말해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주장에는 근거가 필요했고, 사실에는 증명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는 시간 중에 어느 날 저녁 마음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판 날에 너희가 내 앞에 믿음의 증거를 보여야 한다”

    순간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신앙 생활은 매우 구체적인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도 사실과 증거로 증명해야 할 사건이라면
    영혼 구원이라는 아주 중요한 사건에서는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이전과는 달리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생각되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그때부터 신앙을 바라보는 제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입으로 하는 말만으로는 믿음이 증명되지 않는다

    재판에서는 내가 무엇이라고 주장하는가보다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실과 증거가 중요합니다.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상대방이 이렇게 했습니다.”

    “나는 이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만으로 판결이 내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주장이 실제 사실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원리를 생각하다 보니 신앙에 대한 아주 무거운 질문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떠한가?’

    우리는 얼마든지 입으로 믿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입으로 하는 고백과 실제 삶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숨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겉모습만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의 삶을 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의 진실성이 드러날 것이다

    민사소송을 경험하면서 제가 크게 깨달은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우리의 믿음 역시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많이 해야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이라면 그 믿음은 우리의 삶 속에서 반드시 어떤 흔적을 남깁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삶에서는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면,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미움과 증오만 가득하다면,

    말로는 용서했다고 하면서 끝까지 상대를 정죄하고 있다면,

    말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 모든 순간을 자신의 힘과 방법으로만 살아간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말하는 믿음은 정말 살아 있는 믿음인가?’

    야고보서가 말하는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위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이 실제 삶 속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91255


    재판에서는 증거가 중요했고, 신앙에서는 열매가 중요했다

    민사소송을 준비하면서 저는 수많은 자료를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 확인하고,

    상대방이 무엇을 주장했는지 살펴보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것은 단순히 재판의 기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너는 입으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

    그리고 더 깊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 말이 네 삶에서도 사실이냐?’

    이 질문은 제 마음을 쉽게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믿고 살아가는 것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 상황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불평하고,

    하나님께 맡겼다고 말하면서 끊임없이 내가 결과를 통제하려 하고,

    용서했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에서는 계속 상대방을 정죄하고 있다면,

    그 믿음의 고백은 과연 얼마나 실제적인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가짜 신앙을 구별하실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앙을 완벽하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아주 신앙적인 말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많이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날에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게 매우 두려우면서도 중요한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입술의 고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보십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

    정직을 선택했는지,

    용서를 선택했는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순종했는지를 아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흔적이 될 것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나의 믿음을 증명하고 있는가?

    이 깨달음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내가 말하는 믿음은 삶에서도 나타나고 있는가?’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나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가?’

    ‘내게 손해가 생겨도 정직을 선택할 수 있는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가?’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가?’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하다 보니 신앙은 단순히 ‘무엇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은 결국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민사소송이 내게 가르쳐 준 신앙의 질문

    돌이켜 보면 이번 민사소송은 제게 단순히 법적인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재판을 준비하면서 사실과 증명의 중요성을 배우게 하셨고,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제 믿음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재판에서는 말한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고백하는 믿음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다른 사람의 신앙을 쉽게 판단하기보다 먼저 제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내가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도 참된 것인가?’

    사람에게 인정받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시는 믿음.

    입술에만 머무는 믿음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나는 믿음.

    상황이 좋을 때만 유지되는 믿음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

    그것이 제가 민사소송의 과정을 지나며 조금씩 깨닫게 된 ‘진짜 믿음’에 대한 질문​입니다.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다

    재판은 결국 판결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이 주장한 것들이 법정에서 사실인지 아닌지가 판단되고,

    그에 따라 결과가 결정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훨씬 더 큰 마지막 심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에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만들어 놓았던 모습도,

    입술로만 고백했던 말도,

    숨겨 놓았던 마음도 모두 하나님 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 내 안에 어떤 열매가 맺히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짜를 진짜라고 인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주시는 엄중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내 입술의 고백은 내 삶에서도 사실인가?


    민사소송을 지나며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깨달음

    처음에는 내가 재판을 통해 무엇인가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제게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네가 말하는 믿음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느냐?”

    참 이상한 일입니다.

    나는 법정에서 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재판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내 믿음의 진실성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 민사소송을 통해 제가 받은 가장 큰 깨달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재판에서는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는 진실이 중요합니다.

    입술의 고백은 시작일 수 있지만,

    그 고백이 삶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믿음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묻습니다.

    “그 믿음이 지금 내 삶에서 사실로 나타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해 대답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각 사람이 자신의 삶으로 대답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민사소송을 통해 깨달은 이 한 가지를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말이 사실인지 증명해야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말하는 믿음이 진짜인지 삶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을 생각한다면,

    오늘의 작은 선택 하나도 결코 가볍게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골리앗 앞에 선 다윗, 민사소송을 시작하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 민사소송을 시작하다

    골리앗과의 싸움! 민사소송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걱정한 사람들은 가족이었습니다.

    제가 소송을 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가족들이 가장 먼저 물었던 것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변호사 비용은 어떻게 하려고?”

    그 말을 듣고 보니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상대방은 개인이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증권사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변호사를 선임해야 할 것 같았고,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또다시 큰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의 걱정은 당연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정말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얼마나 강하게 나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닌데 혼자 소송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갔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저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겪은 일이 정말 잘못된 일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끝까지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정말 사실인지, 내가 가진 증거가 법정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이 사건을 법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나 홀로 민사소송을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앞에는 하나의 거대한 산이 놓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골리앗과 다윗

    성경을 읽다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골리앗은 거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모습만 보아도 상대방의 마음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반면 다윗은 전쟁의 전문가도 아니었고, 거대한 무기를 가진 장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골리앗을 보면서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크기만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민사소송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가족들은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걱정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피고인 증권사에서 준비서면을 보내왔고, 재판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내세운 것은 대형 로펌이었습니다.

    변호인은 무려 네 명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혼자 소송하는데 상대방은 변호사가 네 명이나 된다고?”

    그 말을 듣고 있으면 누구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상대방은 거대한 증권사였고, 그 뒤에는 대형 로펌과 여러 명의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혼자였습니다.

    객관적으로만 보면 너무나 불리해 보였습니다.

    마치 거대한 골리앗 앞에 작은 다윗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오히려 담담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86421

    상대가 커질수록 마음은 더 담담해졌다

    가족들은 상대방의 규모를 보면서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때부터 더 차분해졌습니다.

    왜였을까요?

    아마도 처음부터 제가 이 싸움을 사람과 사람의 힘겨루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일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증거를 하나씩 정리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사실관계가 맞는지 살펴보고,
    법원에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성실하게 설명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일이었습니다.

    상대방에게 변호사가 몇 명인지, 얼마나 큰 로펌인지, 얼마나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되었습니다.

    저는 제 사건을 하나씩 공부했습니다.

    문서를 다시 읽고, 날짜를 확인하고, 증거를 살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법률 용어 하나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하니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송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주장을 얼마나 사실과 증거로 설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싸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법률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조심했습니다.

    모르는 것은 찾아보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나는 혼자다”라는 생각을 내려놓다

    상대방이 대형 로펌을 선임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저도 잠시 생각했습니다.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질문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은 포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이 소송을 끌고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저는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정말 혼자였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준비할 때도, 상대방의 준비서면을 읽을 때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할 때도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알게 해 주세요.”

    “제가 감정적으로 판단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리고 결과가 어떠하든 이 과정을 통해 제가 하나님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해 주세요.”

    저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방보다 더 큰 힘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다윗에게도 골리앗보다 더 큰 무기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거대한 상대 앞에서 내가 배운 것

    돌이켜보면 상대방이 대형 로펌을 내세웠던 순간은 오히려 제게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상대방의 크기를 바라보기보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변호사가 네 명이다.”

    “대형 로펌이다.”

    “상대방은 거대한 증권사다.”

    이런 사실들이 처음에는 크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실들이 제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얼마나 큰지는 제가 할 일을 대신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하나였습니다.

    끝까지 진실을 확인하고, 제가 가진 증거를 성실하게 제시하는 것.

    그리고 결과는 법원에 맡기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시는 또 하나의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골리앗처럼 거대한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문제 앞에서 자신이 너무 작아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크기가 우리의 믿음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대한 문제를 만났을 때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결과를 알지 못합니다.

    8월 18일, 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크기가 보였습니다.

    그다음에는 제 자신의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혼자 싸우는 것처럼 보였던 그 길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커 보여도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골리앗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누구를 바라보고 있느냐였습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대한 증권사와 대형 로펌, 네 명의 변호인단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정직하게 제 길을 걸어갈 수는 있었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해야 할 몫은 끝까지 감당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제가 민사소송을 통해 배우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골리앗이 커질수록 다윗이 더 위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야말로,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다시 확인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신실하신 하나님

    반대매매가 일어나기 사흘 전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자리에 앉아 준비하고 있는데, 마음에 아주 강하게 들어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살려 달라고 기도해라.”

    얼마나 강하게 마음에 와닿았는지 조금은 당황스러웠습니다.

    당시에도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말씀을 현재의 상황과 연결해서 생각했습니다. 주식과 관련된 말씀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나 혼자 가지고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반대매매가 일어났습니다.

    너무 놀랐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 불과 사흘 전에 기도하게 하셨던 그 말씀을 오히려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때 나에게 살려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을까?”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반대매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반대매매가 이루어진 과정이었습니다.

    담보부족이 발생했고, 반대매매가 이루어질 수 있는 T+2 기준에 따라 나는 자기매도상환을 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담보부족을 해소하고 담보비율도 맞추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기록을 하나씩 살펴보니 이상한 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매도상환을 통해 담보부족이 해소되고 담보비율이 충족된 과정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기록에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종목까지 반대매매가 강행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증권사의 소비자보호부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방문했을 때는 내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한 번 찾아갔습니다.

    소비자 보호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증권사 담당자의 입장에서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소비자 보호부로 부터 한 장의 자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자료가 그렇게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한 장의 종이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료에는 담보부족과 T+2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기록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내가 자기매도상환을 통해 담보부족을 해소하고 담보비율을 맞추었던 과정과 실제 기록 사이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씩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하나를 찾으면 또 하나가 보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부터 모든 증거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의 자료를 찾다 보면 그 안에서 또 다른 단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을 확인하다 보면 또 다른 자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자료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또 다른 단서가 발견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왜 여기에서 발견되었을까?”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를 확인하다 보니 다음 것이 보였고, 그것을 확인하다 보니 또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하나씩 확인해 나갔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일이 정말 어디까지 가게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두 번 민원을 넣다

    그래서 금융감독원에도 두 번이나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나는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의 민원을 거치면서 오히려 답답함이 더 커졌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기보다 증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답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정말 막막했습니다.

    내가 가진 의문은 풀리지 않았고, 내가 확인한 자료와 설명 사이에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비용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많은 시간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뜻밖의 한마디

    그러던 어느 날 큰아이가 말했습니다.

    “맨날 네이버 검색만 하지 말고, 제미나이를 활용해 봐!”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머리가 복잡한데 새로운 것을 배워서 해보라는 말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속으로 그 말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결국 제미나이를 사용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ChatGPT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궁금한 것들을 하나씩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왜 이런가?”

    “이 기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부분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다시 물었습니다.

    답을 들으면 또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게 질문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계속되었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95405

    질문하기 시작하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를 물으면 하나를 알게 되었고, 하나를 알게 되면 또 다른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 질문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확인하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준 것은 아닙니다.

    ChatGPT가 나를 대신해 소송을 한 것도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한 사람은 나였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확인해야 할지 막막했던 나에게 질문할 수 있는 도구가 생겼다는 것은 큰 변화였습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고, 필요한 내용을 하나씩 확인하고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홀로 민사소송을 시작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혼자 시작한 민사소송

    그렇게 소장을 준비했습니다.

    준비서면을 작성하고, 하나씩 증거를 정리했습니다.

    처음부터 법률을 잘 알았던 것도 아닙니다.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도 하나씩 알아가야 했습니다.

    때로는 막막했고, 때로는 내가 과연 이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자료를 펼쳐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물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기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내가 놓친 것은 없는가?”

    그렇게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합니다.

    반대매매가 일어나기 사흘 전에는 “살려 달라고 기도해라”​라는 말씀이 마음에 강하게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반대매매가 일어난 뒤에는 너무 놀라 그 말씀조차 잊었습니다.

    증권사에 찾아갔을 때는 답답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방문에서 받은 한 장의 종이가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두 번 민원을 넣었지만 내가 원하는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뒤에는 뜻밖에도 큰 아이의 한마디를 통해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조차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말이 마음에 남았고,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질문하면서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하나하나의 사건은 별개처럼 보입니다.

    기도했던 일,

    반대매매가 일어난 일,

    두 번째 방문에서 자료를 받은 일,

    그 자료에서 단서를 발견한 일,

    금융감독원에 두 번 민원을 넣은 일,

    1년이 넘도록 답을 찾지 못했던 시간,

    그리고 큰아이의 한마디.

    당시에는 어느 것 하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일이 하나의 길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나는 길을 알고 걸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과정을 지나면서 한 가지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길을 알고 걸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그때 다음 한 걸음만 알았습니다.

    기도했고,

    기다렸고,

    찾았고,

    발견했고,

    또 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한 걸음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모두 보여주셨다면 아마 나는 덜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주셨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답을 보여주시기보다 그때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셨습니다.
    한 번에 다 보여주셨더라면, 어쩌면 저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잘 아시기에, 한 걸음 씩 인도해 주셨습니다.

    다음 한 걸음을 걸으면 또 다른 길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단순히 민사소송의 과정으로만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 이 소송의 최종 결과도 알 수 없습니다.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분명히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답을 한꺼번에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다음 한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하나씩 길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엄마도 몰라서 묻는다」와 이어지는 이야기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내가 이전에 썼던 **「엄마도 몰라서 묻는다」**라는 글과도 연결됩니다.

    나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물었고,

    내가 가진 자료를 찾아보았고,

    궁금한 것을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모르는 것이 부족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묻기 시작했을 때, 다음 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질문한다고 해서 모든 답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질문하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무조건 두려워하기보다 먼저 묻습니다.

    그리고 확인합니다.

    다시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또 질문합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다음 한 걸음을 찾습니다.

    아직 마지막 장면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이 길의 마지막은 모릅니다.

    민사소송의 결과도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내가 바라는 결과가 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나는 혼자 걸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매매가 일어나기 사흘 전의 그 기도도,

    뜻밖에 손에 들어온 한 장의 자료도,

    그 자료에서 발견된 단서도,

    두 번의 민원도,

    2년이 넘는 기다림도,

    큰아이의 뜻밖의 한마디도,

    그리고 질문을 통해 하나씩 길을 찾아간 시간도,

    지금의 나에게는 모두 하나의 과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왜 이렇게 많은 자료를 찾아야 하는지,

    왜 내가 직접 이 모든 것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길 전체를 볼 수 있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다음 한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하셨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또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길의 마지막을 억지로 알려고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한 걸음을 걸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한 걸음이 보이면 또 걸으려고 합니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나는 길을 다 알고 걸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그때 다음 한 걸음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음 길을 볼 수 있도록 조금씩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믿고 싶습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하는 길에도 하나님은 이미 계신다고.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나는 하나님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