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사람을 의지하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술을 의지하셨던 아버지
친정아버지는 평소에도 술을 많이 드셨습니다.
그런데 저희와 함께 생활하게 된 후에는 술을 더 많이, 더 자주 드셨습니다.
술을 드시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실 때가 많았고, 아파트 단지 안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계신 날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목청은 또 얼마나 좋으셨는지 모릅니다.
술을 드시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시기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가족의 마음은 참 힘들었습니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고, 가족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자연스럽게 소문도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희에게 사람들의 시선이나 소문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가 술을 드시지 않고 살아가실 수 있을까?”
그리고 마음속으로 늘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가 술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실 수 있을까?”
다섯 살 아이가 할아버지를 찾아다녔습니다
당시 저희 둘째 아이는 다섯 살이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으면 아이가 스케이트를 타고 밖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할아버지를 찾으러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을 돌아다니다가 할아버지가 어디엔가 쓰러져 계신 것을 발견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와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엄마, 할아버지 쓰러져 있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다섯 살 어린아이가 할아버지가 어디에 쓰러져 있는지 찾아다녀야 했던 것입니다.
저희가 집에 없을 때 그런 일이 생기면 구급 안내원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고 그렇게 할아버지를 찾아다녔을까 싶습니다.
그저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아버지에게 알코올성 치매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때는 치매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왜 같은 말씀을 계속 반복하시는지,
왜 조금 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술을 많이 드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니까 기억력이 떨어지고, 술 때문에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아버지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시 가족들이 겪었던 힘든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여전히 힘들었고, 가족 모두가 지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아버지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도 달라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가 힘들어하셨던 부분
당시 제 남편은 신학을 하겠다고 하면서 직장을 다니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린 손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가고 있었고,
아이들을 교육하려면 앞으로 들어갈 돈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장으로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아버지의 눈에는 그것이 참 답답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신학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하나님께서 그 길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알지 못하셨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믿음이 없으셨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현실이 더 크게 보였을 것입니다.
어린 손자들은 커 가는데
사위는 직장을 다니지 않고 신학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는가?”
하는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어려울 때 아버지로서 무언가를 해주고 싶으셨을 텐데,
정작 아버지 자신도 자식들을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참 힘드셨던 것 같습니다.
자식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도와줄 수 없는 마음.
어린 손자들이 커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앞으로의 삶이 걱정되는 마음.
그런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
아버지에게는 그것이 큰 답답함으로 남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까지 깊이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하나님께서 남편을 부르셨다고 믿고 있었기에
아버지가 왜 그렇게 답답해하시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니
아버지의 입장도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아버지에게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더 크게 보였을 것입니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 길이 자신이 생각하는 안정된 길과 다르니
걱정되고 답답하셨던 것이겠지요.
어쩌면 그 답답함과 무력감도
아버지가 술을 더 찾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술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답답해하셨던 것도
어쩌면 자식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때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모습만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술 뒤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걱정과 답답함,
그리고 자식들을 향한 마음까지 조금씩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마음들이 하나씩 보이기도 합니다.
*순종이 가장 어려웠던 자리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08477
무엇을 의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이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느냐는 참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그것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술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고,
술 한 잔으로 힘든 일을 잊고,
술 한 잔으로 외로움을 견디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술이 나의 삶을 끌고 가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그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문득 나 자신에게도 질문하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 잠언 3장 5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생각과 경험 그리고
사람이나 환경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해서 삶의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문제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술을 끊기를 원했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답답할 때도 있었고, 화가 날 때도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오면서 저는 오히려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 역시 무엇인가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만 무엇인가를 의지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가 의지했던 것과는 방향이 달랐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애쓰기도 했습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깨닫습니다.
무엇을 의지하느냐는 결국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술을 의지하셨고, 그 술에 삶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하나님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붙들려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왜 그렇게 술을 의지하셨는지,
왜 술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는지
지금도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를 단순히 술을 많이 드셨던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안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아픔이 있었을 수도 있고,
질병이 있었을 수도 있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가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을 바라보면서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것도 배웁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힘들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무엇인가?
불안할 때 붙잡는 것은 무엇인가?
삶이 흔들릴 때 나는 누구를 바라보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 예레미야 17장 7절
삶에는 사람들이 의지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도, 돈도, 능력도, 환경도 자신을 끝까지 붙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려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삶이 어떤 것에 지배당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버지의 삶을 바라보며 시작했던 질문,
“사람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는가?”
이 질문은 이제 다른 사람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