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신앙 묵상

하나님과의 관계, 믿음의 성장, 기도와 말씀을 통해 배우는 신앙의 여정을 나눕니다.

  • 악인의 결말, 그리고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것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마음이 답답해질 때가 있습니다.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것처럼 보이고,
    불의한 사람이 오히려 형통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특히 사회와 나라의 여러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정말 하나님은 보고 계실까?”
    “악은 왜 이렇게 오래 버티는 걸까?”

    라는 질문이 마음속에 올라오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악인의 번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악인이 한때 성공하고 형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향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사람이 지나갈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시편 37:35-36)

    악인은 거대한 나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권력도 있고,
    재물도 있고,
    사람들의 지지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없는 번영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크고 강해 보여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악은 결국 자신을 무너뜨립니다

    성경은 악이 단순히 남을 해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악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가 판 웅덩이에 자기가 빠졌도다.”
    (시편 7:15)

    거짓은 더 큰 거짓을 낳고,

    불의는 또 다른 불의를 낳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향해 던진 칼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칼은 자신을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악은 언젠가 스스로 무너집니다.


    최종적인 심판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람을 심판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성경은 최종적인 심판의 자리가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시편 7:11)

    세상의 법망을 피할 수도 있고,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으며,

    오히려 선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감춰진 것이 없습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누가복음 8:17)

    그래서 믿는 사람은 스스로 심판자가 되려고 하기보다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며 기다리는 법을 배워 갑니다.


    악인의 길은 결국 망합니다

    시편 1편은 의인과 악인의 마지막을 비교합니다.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6)

    여기서 말하는 망함은 단순한 실패나 가난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이 결국 도달하게 되는 종착지를 말합니다.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하나님 없는 길은 생명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악이 영원히 존재하지 못합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보여 줍니다.

    그곳에는 더 이상 거짓도,
    억압도,
    눈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요한계시록 21:4)

    악은 잠시 세상을 흔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의 마지막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더 놀라운 사실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악인은 누구일까요?

    성경은 “저 사람이 악인이다”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 모두를 향해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10)

    우리는 종종 악인을 세상 어딘가에 있는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고 말씀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과 베드로의 이야기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한 사람은 핍박자였고,

    한 사람은 배신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단지 심판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회개하게 하셨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악인의 결말은 사실 두 갈래로 나뉩니다

    성경이 말하는 악인의 결말은 단순히 멸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돌아올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사람

    • 자신의 죄를 붙들고 살아감
    • 하나님을 거부함
    •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음
    • 악인의 길은 망함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

    • 자신의 죄를 인정함
    • 회개함
    • 십자가의 은혜를 붙듦
    • 새 생명을 얻음

    하나님은 어떤 길을 더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회개입니다

    에스겔 33장 11절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하나님은 심판을 즐거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악인의 멸망보다도
    악인이 변화되는 은혜를 더 크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늦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보며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왜 악한 사람은 잘되는 것 같고,
    왜 정의는 더디게 오는 것처럼 보일까요?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악인의 형통 때문에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또한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분노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공의를 신뢰하고,
    은혜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오늘도 우리는 사람을 향한 정죄보다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며,

    동시에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됩니다.

    결국 역사의 마지막 주관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에스겔 33:11)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그 사실이 오늘 우리의 분노를 인내로,
    답답함을 소망으로 바꾸어 주기를 소망합니다.
    🙏🏻✨

  • 답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답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가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좋아하세요?”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그런데 저는 이런 질문에 선뜻 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없어서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제 마음속에는 늘 다른 질문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많은 책을 갖고 싶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싶었고, 형이나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알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마음껏 배우고 물어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 답답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 안에는 더 깊고 본질적인 질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계실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정말 내 마음을 아실까?”

    “내가 혼자 중얼거리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실까?”

    “기도는 꼭 교회에 가서 해야 하는 걸까?”

    “하나님은 정말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까?”

    “순종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진짜 순종일까?”

    “예수님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을 믿는데 왜 내 마음에는 기쁨과 감사가 없는 걸까?”

    이런 질문들은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제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쉽게 답할 수 없었습니다.

    제 안에서는 늘 더 중요한 질문들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고, 성경도 배우고, 여러 사람들의 간증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형식은 있는데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고,

    배움은 있는데 평안이 없었으며,

    신앙은 있는데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교회에 가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사람들에게 답을 주는 사람이라기보다 답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질문을 하면 쉽게 대답하기보다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이 질문에 책임 있게 답할 수 있는가?”

    “이 사람은 정말 무엇을 궁금해하는 것일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함부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 이것이 제가 사람들의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감사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 모든 질문에 한 번에 답해 주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대신 질문 속에서 하나님을 찾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답보다 하나님 자신을 알아 가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혼자 있을 때도 함께 계셨고,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도 알고 계셨으며,

    응답보다 먼저 평안으로 찾아와 주셨습니다.

    또 순종은 로봇처럼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함께 걸어가는 것임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다 얻은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고,

    여전히 하나님께 묻고 싶은 것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답을 찾는 것보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형식적인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남을 수 있지만 생명력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릅니다.

    그 관계 안에서 질문은 기도로 바뀌고,

    불안은 평안으로 바뀌며,

    답답함은 소망으로 바뀌어 갑니다.

    오늘도 저는 모든 답을 얻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질문 가운데서도 여전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하나님 앞에 머뭅니다.

    답보다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

  • 영적 전쟁 ② : 하나님이 다루시는 전쟁

    영적 전쟁 ② : 하나님이 다루시는 전쟁

    영적 전쟁은 실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적 전쟁을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한 현상이나 사탄의 공격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서도 갈등이 발생하고, 때로는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시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불완전한 인격이 반응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충돌과 갈등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의 문제만 바라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 속에서 상대방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함께 다루고 계십니다.

    사실 많은 갈등은 돈과 관련된 문제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또한 자존심, 인정받고 싶은 마음, 소유욕과 같은 인간의 욕망이 갈등의 뿌리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겉으로는 다른 이유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상황을 통해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영적 전쟁은 결국 눈에 보이는 문제 뒤에 있는 인간의 욕망과 인격의 문제를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부분을 다루십니다.

    갈등이 생길 때 우리는 상대방을 바꾸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마음을 살피게 하십니다. 억울한 상황 속에서는 교만이 드러나고, 상처받은 상황 속에서는 두려움과 연약함이 드러납니다. 또한 손해를 보는 상황 속에서는 돈과 물질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빚어 가십니다.

    더 겸손한 사람으로.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더 주님을 찾는 사람으로.

    영적 전쟁의 목적은 단순히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연단하시고 변화시키십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의 승리는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하며, 더욱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 상황 속에서 우리의 인격을 다루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은 영적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빚어 가십니다.

    더 겸손하게.

    더 하나님을 찾게 하시며.

    더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말입니다.📚🙂💕🍀

  • 영적 전쟁이란 영적 전쟁의 본질

    영적 전쟁이란 영적 전쟁의 본질

    영적 전쟁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한 싸움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영적 전쟁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일어납니다.

    영적 전쟁은 문제의 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항상 문제만 바라보는 사람은 억압에 갇혀 살아갑니다. 문제의 크기가 문제가 되기보다 문제 자체가 없어져야 안심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잠시 평안을 얻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다시 불안해집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동안은 문제가 없을 수 있어도 문제가 전혀 없는 삶은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가정의 문제, 건강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직장의 문제 등 다양한 어려움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돈에 대한 염려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활비에 대한 걱정, 자녀 교육에 대한 부담, 미래에 대한 불안, 노후에 대한 염려 등 우리가 겪는 수많은 고민의 중심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돈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만큼 돈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돈 자체보다 돈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말씀합니다.

    돈이 부족하면 불안해지고, 돈이 많아도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돈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돈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우리의 마음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그 문제 앞에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느냐입니다.

    문제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주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적 전쟁이 시작됩니다.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한 사람은 계속 문제를 바라봅니다. 반면 또 다른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환경은 같지만 마음의 방향은 전혀 다릅니다.

    영적 전쟁은 눈에 보이는 싸움이 아니라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 싸움입니다.

    문제가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특히 돈에 대한 염려는 우리의 생각을 끊임없이 붙잡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돈이 있어야만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하나님보다 현실의 문제를 더 크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은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돈에 대한 염려가 하나님을 향한 신뢰보다 더 커질 때 시작되는 믿음의 싸움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해서 염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두려워할 수 있고, 걱정할 수 있으며,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염려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염려 가운데서도 다시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은 자라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아 가는 만큼 믿음도 함께 성장합니다.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알아 갈 때 우리의 믿음은 조금씩 자라나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문제가 믿음의 성장을 위한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통해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조금씩 알아 가게 됩니다.

    반대로 문제만 바라보며 문제 해결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점점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려는 마음도 약해지게 됩니다.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우리의 시선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은 거창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의 생각과 마음속에서, 문제를 바라볼 것인가 하나님을 바라볼 것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일어나는 믿음의 싸움입니다.

    문제가 사라져야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때 참된 평안이 찾아옵니다.

    영적 전쟁의 승패는 문제의 크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문제를 만났는가보다, 그 문제 앞에서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자라나고,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게 됩니다.

    영적 전쟁은 결국 문제와의 싸움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 가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

  • 지금 하나님은 무엇을 보고 계실까?

    지금 하나님은 무엇을 보고 계실까?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정치도 보이고,
    경제도 보이고,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보입니다.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게 되고,
    점점 더 악해져 가는 세상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거짓과 탐욕,
    분열과 혼란이 점점 커져 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하나님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세상만 바라보지 않으셨습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에도,
    타락이 극심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신의 백성들을 찾으셨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세상을 향한 경고를 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의 백성들이 깨어 있기를 원하셨고,
    그들의 믿음이 바로 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세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이야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합니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
    누가 문제이고 누구를 비판해야 하는지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어쩌면 다른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얼마나 악해졌는가?”

    보다

    “너는 지금 깨어 있는가?”

    를 물으시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자신의 백성들을 찾고 계십니다.

    세상이 얼마나 어두운가를 바라보기보다,
    내가 얼마나 빛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더욱 정결하게 하시고,
    더 깊은 믿음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어떤 시대가 오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람이나 이념이 아니라
    하나님과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은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보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깨어 있는 백성들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 “의미 없는 분주함을 넘어”

    “의미 없는 분주함을 넘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두 종류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는 일상적인 이야기입니다.
    오늘 있었던 일, 관심사, 취미와 같은 가벼운 대화들입니다.

    또 하나는 그 일들 속에 담긴 의미와 목적, 그리고 삶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일상적인 대화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대화보다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나누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대화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넓게 관계를 맺기보다, 몇 사람과라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또한 서로를 이기기 위해 설전을 벌이는 대화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세워 주는 대화를 원합니다.

    어쩌면 제가 SNS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말들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삶에 실제적인 의미를 더해 주는 일에 마음을 쏟고 싶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주님, 제가 시간을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더 가치 있고 건설적인 길을 보여 주세요.”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도
    의미 없는 분주함에 휩쓸리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방향을 따라 걸어가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도 그 답을 주님께 묻고 싶어집니다.

  • “너의 꿈은 내 안에서 이루어진다”

    “너의 꿈은 내 안에서 이루어진다”

    어릴 적 제 꿈 중 하나는 어려운 이웃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속에 그 꿈을 다시 떠오르게 하셨고,
    요양보호사 공부를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배움이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할수록 현실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강사님들은 한결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르신들과 친해지려면 배설물도 가까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습 경험을 들을 때마다
    사람을 섬긴다는 것이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약함과 불편함까지 품고 섬기는 사랑은
    사람의 결심만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주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의 꿈은 내 안에서 이루어진다.”

    주님은 제가 꿈을 이루는 방법보다 먼저
    주님의 마음을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은 멀리서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아름다운 사람만 품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사람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섬김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흘러넘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압니다.

    주님께서 주신 꿈은
    주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구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

  • 주님은 인격이십니다

    주님은 인격이십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이 일을 2016년 12월 31일 페이스북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찬호는 제 옆에서 통변하며 기도 내용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읽어 보니,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는지 새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아래는 당시 기록해 두었던 실제 기도문 일부입니다.

    기도문 속에서 주님은 찬호에게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니?”

    “나를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있니?”

    “나는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단다.”

    이 말씀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으면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여러 사역을 감당하면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한 사람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도 그 사람과 실제로 교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적 지식도 중요하고 은사도 중요합니다. 사역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사역이 커지고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역의 성공보다도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요즘 저는 제 자신에게 질문해 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도 크고 사람들의 움직임은 너무도 분주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주님의 음성보다 세상의 소리에 더 민감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는 주님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알아 가는 삶 속에 참된 평안과 승리가 있습니다.

    오래전 찬호를 향해 하셨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저 역시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주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말씀하시고 사랑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한복음 10:27)

  •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부터 배우자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부터 배우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하신 사랑과 은혜를 경험한 우리는 먼저 자신의 존재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자만심이나 우월감에 빠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자신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관계의 출발점은 결국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로소 다른 사람도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다루시며 조금씩 변화시켜 가십니다.
    우리의 교만을 다루시고,
    상처를 다루시고,
    두려움을 다루시고,
    자기의와 고집을 다루시면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조금씩 배워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아 가는 만큼,
    우리의 사랑도 함께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어쩌면 사도 바울이 그토록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를 힘썼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는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담긴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더욱 알기 원했습니다.

    모든 것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의 사랑이 아닌 주님의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여전히 부족한 모습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완전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부족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그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더욱 알아 가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나 자신이,
    그리고 우리 가정과 가족들이,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

  •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며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며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랫동안 한 가지 착각 속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노력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한 가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무엇을 이루려는 삶에는 생각보다 열매가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가장 좋은 열매들은 내가 애써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이루어 주신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 시작한 블로그도 그렇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경험한 것을 글로 써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습니다.

    그때도 분명 경험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경험했으며,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경험은 아직 설익은 경험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기는 했지만, 그 말씀이 삶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충분히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알고 있는 것은 있었지만 쉽게 글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주님께서는 그 말씀들을 실제 삶 속에서 하나씩 가르쳐 주셨습니다.

    실패와 회복을 통해 배우게 하셨고, 기다림과 순종을 통해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보니 그 과정 자체가 글의 내용이 되어 있었습니다.

    억지로 글감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글이 써집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것들,

    삶 속에서 배우게 하셨던 것들,

    실패와 회복 가운데 깨닫게 하셨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글이 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주님은 제게 먼저 말씀하셨고, 그 후에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무엇을 이루기 위해 애쓰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예전에는 이 말씀이 단순히 겸손하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우리는 씨를 뿌릴 수는 있습니다.

    물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숙은 더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묻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문이 열릴지를 계산하기보다,

    주님께서 여신 문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더욱 마음이 모아지는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가를 바라보게 하소서.”

    “제가 열매를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주님 안에 거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어쩌면 신앙의 여정은 많은 것을 이루어 내는 과정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의지함 속에서 맺히는 열매가 가장 건강하고 가장 오래가는 열매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고백합니다.

    열매를 맺으려 애쓰기보다, 주님 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주님께서 친히 맺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