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마음과 영의 성장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보다 마음과 영을 먼저 다루십니다.

이 공간은 하나님께서 삶 속에서 가르쳐 주신 내면의 성장과 성숙에 대한 기록입니다.

마음과 영의 거침에서 부드러움으로, 열정에서 성숙으로,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빚어 가시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십자가 앞에서 수치는 은혜가 되고, 상처는 새로운 삶이 됩니다

    십자가 앞에서 수치는 은혜가 되고, 상처는 새로운 삶이 됩니다

    사람들은 보통 십자가를 생각하면 용서와 사랑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정작 십자가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새롭게 하기 전에 먼저 우리를 벗겨 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써 감추고 있던 모습,
    스스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모습,
    사람들에게는 물론 하나님께도 숨기고 싶었던 모습까지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은혜의 자리인 동시에 수치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바로 그 수치의 자리를 통해 우리에게 새 옷을 입히십니다.

    변명할 말이 사라지는 순간

    처음에는 누구나 자신을 변호하려고 합니다.

    “이건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하지만 십자가 앞에 오래 머물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변명이 힘을 잃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고백이 흘러나옵니다.

    “주님,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은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을 붙들고 있던 마지막 손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은 비로소 우리를 붙드시기 시작하십니다.



    *행복은 왜 돈만으로 결정되지 않을까? 돈과 행복의 진짜 관계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

    • AI 생성 이미지 (제작: ChatGPT)

    주님의 시선이 정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 자신도 모르게 재판관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실망한 아버지,
    엄격한 검사,
    잘못을 지적하는 심판자의 모습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십자가 앞에서는 다른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모습을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실패도,
    넘어짐도,
    감추어진 마음도,
    상처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수치의 성질이 달라집니다.

    숨고 싶은 마음이 내려놓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주님께 머물고 싶은 마음으로 바뀝니다.

    수치가 은혜로 변화되는 순간입니다.

    벗겨졌는데도 버려지지 않았다는 경험

    인간은 누구나 두려워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났을 때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꾸미고,
    포장하고,
    증명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합니다.

    모든 것이 드러났는데도
    주님이 떠나지 않으시는 경험입니다.

    벗겨졌는데도 품어 주시고,
    연약함이 드러났는데도 사랑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이래도 사랑받는구나.”

    은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입히시는 새 옷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 옷을 더 훌륭한 모습으로 생각합니다.

    성공한 사람,
    흠 없는 사람,
    실수하지 않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입히시는 새 옷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의의 옷

    의의 옷은 완벽함의 옷이 아닙니다.

    “이제 너는 절대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약속이 아니라,

    “실수해도 너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

    라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이 옷을 입은 사람은 남을 쉽게 정죄하지 않습니다.

    자신 또한 은혜로 덮인 존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겸손의 옷

    진짜 겸손은 자기비하가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이미 나를 아신다.”

    라는 평안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조용해집니다.

    목소리는 낮아지지만,
    존재감은 더 깊어집니다.

    긍휼의 옷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본 사람은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못합니다.

    자신도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왔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별은 하지만 냉혹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지만 잔인하지 않으며,

    선을 지키지만 우월감을 갖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입히시는 긍휼의 옷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벗지 않아도 되는 옷

    하나님이 입히시는 새 옷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옷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벗지 않아도 되는 옷입니다.

    이 옷을 입은 사람은 더 이상 사람들의 인정에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박수에 취하지도 않고,
    오해에 쉽게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깊은 곳에서 이미 하나님께 덮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먼저 벌거벗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벗겨진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의의 옷과 겸손의 옷, 그리고 긍휼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목적은 수치가 아닙니다.

    수치를 지나 은혜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마침내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이제는 숨지 않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이미 덮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

  • 십자가를 구하지 않는 이유

    십자가를 구하지 않는 이유

    벗겨짐의 수치를 지나 새 옷을 입기까지

    사람들은 흔히 십자가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십자가 앞으로 깊이 나아가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왜일까요?

    십자가가 우리를 위로하기 전에 먼저 벗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은 원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민낯은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때로 은혜보다 먼저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십자가는 나를 보호하던 옷을 벗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겹의 옷을 입습니다.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야.”

    “상황이 어쩔 수 없었어.”

    “저 사람보다는 낫지.”

    “나도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잖아.”

    이런 생각들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옷과 같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앞에 서면 이 옷들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합니다.

    공로도,
    변명도,
    억울함도,
    종교적인 자부심도,

    심지어 내가 선한 의도로 했던 일들조차
    십자가의 빛 앞에서는 더 이상 나를 가려 주지 못합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단순히 죄인으로 드러내기 전에,
    먼저 벌거벗은 존재로 세운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주님이시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 AI 생성 이미지 (제작: ChatGPT)


    수치심은 인간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사람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수치심을 더 힘들어할 때가 많습니다.

    상처는 견딜 수 있어도
    수치는 숨고 싶게 만듭니다.

    성경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변명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가리기 시작했습니다.

    수치심은 인간을 숨게 만듭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우리가 애써 만들었던 가리개를 벗겨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보여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감추고 싶은 부분이
    주님께서 만지기를 원하시는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4501

    십자가가 어려운 이유는 즉시 새 옷을 입혀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벗기는 순간과 입히는 순간 사이에
    잠시의 틈을 허락하십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자신의 능력도,

    사람들의 인정도,

    지금까지 쌓아 온 신앙 경력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도,

    모두 내려놓은 채
    오직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지점에서 돌아섭니다.

    진실하게 드러나는 것보다
    차라리 적당히 감추고 살아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틈을 통해
    우리가 진짜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십니다.



    그러나 그 수치의 자리가 은혜의 시작이다

    놀랍게도 십자가는 우리를 수치스럽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수치의 종말을 위해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수치를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이 수치를 감당하신 이유는
    우리가 평생 숨으며 살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 선 사람은 결국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주님,
    꾸미지 않은 저를 사랑하시는군요.

    잘 포장된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받아 주시는군요.”

    그 순간 수치는 은혜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십자가를 구하는 사람의 선택

    십자가를 구하는 사람은 특별히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이상 자신을 붙들 힘이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수치심을 피하는 대신 진실을 선택합니다.

    자기 보호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덮으심을 기다립니다.

    스스로 새 옷을 만들어 입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입혀 주실 옷을 기다립니다.

    이것은 용기라기보다 신뢰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믿음의 가장 깊은 모습은
    바로 이 신뢰인지도 모릅니다.



    마무리

    십자가는 우리를 망가뜨리기 위해 벌거벗기지 않습니다.

    새 옷을 입히기 위해 벗기십니다.

    참된 자유를 주시기 위해 가리개를 벗기십니다.

    우리가 평생 숨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감추어진 곳까지 빛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 선 사람은 결국 알게 됩니다.

    “주님은 나를 부끄럽게 하려고 벗기신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입히시기 위해 벗기셨구나.”

    그 깨달음이 찾아오는 순간,
    수치는 은혜가 되고
    두려움은 신뢰가 되며
    십자가는 더 이상 형벌의 자리가 아니라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자리가 됩니다.
    🌿✝️

    “십자가는 나를 새 옷으로 입히기 위해 잠시 벌거벗기신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십자가를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십자가를 떠날 수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벗겨짐의 시간을 지나 새 옷을 입게 하소서

    주님,
    우리는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정작 내 삶에 십자가가 찾아오는 것은 두려워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면서도
    내 자존심이 내려놓아지는 것은 싫어하고,
    내 뜻이 꺾이는 것은 힘들어하며,
    내 안에 감추어 두었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습니다.

    십자가는 단지 고난을 견디는 자리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옛사람이 벗겨지는 자리이며,
    내가 붙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더욱 깊이 의지하게 되는 자리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내가 십자가를 구하지 않았던 이유를 돌아보게 하옵소서.

    혹시 내가 편안함만을 원했던 것은 아닌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원했던 것은 아닌지,
    내 자존심과 내 뜻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돌아보게 하옵소서.

    벗겨짐의 시간이 찾아올 때
    그것을 실패라고만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수치스럽고 아픈 순간에도
    주님께서 나를 새롭게 빚어 가고 계심을 믿게 하옵소서.

    사람들에게 오해받을 때에도,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너질 때에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날 때에도
    주님을 원망하기보다
    그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묻게 하옵소서.

    주님,
    내 안에 있는 교만을 벗겨 주시고
    내 안에 있는 자기중심성을 벗겨 주시며
    사람의 인정에 대한 집착과
    내 뜻대로 살아가려는 마음도 벗겨 주옵소서.

    때로는 그것이 아프고 부끄럽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도망치지 않게 하옵소서.

    벗겨짐 뒤에는
    주님께서 준비하신 새 옷이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

    내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입게 하시고,
    내 자랑이 아니라 십자가를 자랑하게 하시며,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내가 십자가를 피하려고만 하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를 통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무엇을 새롭게 입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옵소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빚어 달라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벗겨짐의 시간이 끝난 뒤
    내가 이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주님을 닮은 사람으로 서게 하옵소서.

    상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게 하시고,
    낮아짐을 통해 다른 사람을 품게 하시며,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누군가에게 은혜를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십자가를 통해 나를 죽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삶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내 안의 옛 옷을 벗고
    주님께서 입혀 주시는 새 옷을 입게 하옵소서.

    그리고 언젠가 뒤돌아보며
    내가 가장 힘들고 수치스럽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이
    사실은 주님께서 나를 가장 깊이 만지시고
    새롭게 빚으셨던 은혜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주님이시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주님이시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주님이시라면? 자기중심성이 무너질 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하나님께서 내 생각에 동의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었음을 말입니다.

    기도도 했고,
    말씀도 읽었고,
    나름대로 하나님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나는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이 아니라
    내 뜻에 대한 하나님의 승인을 구하고 있었던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 이렇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제가 생각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것을 기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아보니
    기도의 중심에 하나님보다 내가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내 뜻에 맞추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원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믿음은 때로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길이 막힐 수도 있고,
    내가 기대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날 수도 있으며,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계획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하십니까?”

    “제가 이렇게까지 기도했는데 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제가 원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에게 답을 주시기 전에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시는 것 같습니다.

    “너는 정말 내 뜻을 구하고 있느냐?”

    “아니면 네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냐?”

    이 질문 앞에 서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이
    우리 안에 숨어 있던 자기중심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성은 생각보다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성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이기적인 사람을 떠올립니다.

    자기 것만 챙기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으며,
    자신의 유익만 생각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자기중심성의 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신앙 안에서의 자기중심성은
    조금 더 교묘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내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내가 원하는 응답을 기다리고,

    말씀을 읽지만
    내 생각과 맞는 말씀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가 결정한 것을 하나님께 확인받으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서도
    그 안에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이기심보다 훨씬 발견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왜 제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오히려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너는 정말 내 뜻을 구하고 있느냐,
    아니면 네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냐?”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내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상대방의 잘못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정해 놓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분명 이렇게 하실 거야.”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보여 주시면
    당황합니다.

    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대했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보셨을까?

    그래서 저는 어떤 일을 만날 때마다
    이 질문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보셨을까?”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주님이시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누군가 나를 오해했을 때,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반응하셨을까?

    내가 상대방의 잘못을 발견했을 때,

    주님이시라면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셨을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주님이시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을까?

    이 질문은 우리의 생각을 멈추게 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합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이 내려놓아질 때

    신앙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내려놓는 것.”

    물론 실제로 내가 옳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관계가 분명한 경우도 있고,
    누군가의 잘못이 명백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옳다는 사실과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내가 옳다고 해서
    상대를 미워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억울하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내 마음속에 분노와 미움을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 질문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하면
    내가 옳다는 사실보다
    주님의 마음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해지기 시작합니다.


    자기중심성이 무너지는 과정은 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있는 자기중심성을 다루실 때
    그 과정은 결코 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동만 다루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동기와 중심까지 만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인정받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용서한다고 말하면서도
    상대방이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깨닫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섬기면서도
    내가 얼마나 수고했는지 알아주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내 뜻대로 움직여 주시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하나님께서 하나씩 보여 주실 때
    우리는 당황합니다.

    “제가 이것까지 내려놓아야 하나요?”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깊은 곳으로 이끌고 계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 안의 자기중심성을 드러내시는 것은
    우리를 정죄하거나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써야 하고,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며,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러나 내 중심을 내려놓기 시작하면
    조금씩 자유로워집니다.

    “내가 반드시 옳아야 하는 것은 아니구나.”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구나.”

    “내가 모든 결과를 통제할 필요도 없구나.”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아시는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때부터 믿음이 깊어지기 시작합니다.


    “왜?”에서 “무엇을?”로 질문이 바뀝니다

    자기중심성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아주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질문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라고만 물었다면,

    어느 순간부터

    “주님, 이 일을 통해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라고 묻게 됩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했습니까?”에서

    “주님, 제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묻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까?”에서

    “주님, 제가 아직 내려놓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시선의 변화입니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정답을 주장하는 사람”에서 “하나님께 묻는 사람”으로

    신앙의 성숙은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계속 묻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 이 말이 주님의 뜻에 맞습니까?”

    “주님, 제가 지금 감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주님, 제 안에 잘못된 동기가 있지는 않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 묻는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하나님께 다시 묻습니다.

    내가 확신하는 일이더라도
    말씀 앞에 다시 세워 봅니다.

    왜냐하면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높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가장 깊은 순종

    예수님의 삶을 보면
    자기중심성이 무엇인지,
    하나님 중심의 삶이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극심한 고통 가운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원하는 것을 주장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순종의 모습입니다.

    “내 뜻보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신앙은 결국
    이 자리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되,

    마지막에는

    “그러나 주님, 제 뜻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3839


    자기중심성이 무너지는 것은 은혜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자기중심성이 무너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은혜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알게 되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 판단이 항상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세우시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굴복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네가 틀렸으니 인정해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마음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내 감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내 기준을 내려놓고
    말씀의 기준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장은
    단순히 죄를 덜 짓는 사람이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 삶의 중심이 조금씩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자기중심성이 무너지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저 사람에게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잘못을 찾아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죄와 분별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마음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그 사람을 바라보게 하는 마음입니다.

    이것 역시
    내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옮겨가는 과정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묻는 습관

    그래서 저는 우리 삶에
    한 가지 질문을 습관처럼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시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화가 날 때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억울할 때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을 때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생각이 너무 확실하다고 느껴질 때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주님, 정말 이것이 주님의 생각입니까?”

    이 질문 하나가
    우리의 마음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결국 신앙은 중심의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자기중심성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수록
    내 안에 아직 하나님보다 내가 중심이 되어 있는 부분이
    더 선명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할 이유가 아닙니다.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은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내 마음이 보이고,

    이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이전에는 다른 사람의 잘못만 보였는데
    이제는 내 안도 돌아보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이시라면 아마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주님이시라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네가 틀렸다는 것을 먼저 알려 주려는 것이 아니다.
    네가 나를 더 깊이 알게 하려는 것이다.”

    “네 생각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 자리에 내가 서겠다.”

    “네가 모든 것을 이해해야 나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나를 신뢰하며 한 걸음씩 따라오면 된다.”

    “네가 모든 사람에게 옳다는 것을 인정받을 필요도 없다.
    내가 너의 중심을 알고 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계속 돌아오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하나님께서 제 뜻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해 주세요.

    제가 원하는 답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해 주세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주님께 다시 묻게 해 주세요.

    제가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을 때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해 주세요.

    제가 억울할 때에도
    주님께서 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 주세요.

    제가 원하는 길이 막힐 때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준비하고 계실 수도 있음을 믿게 해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 삶의 중심에 제가 앉아 있지 않게 해 주세요.

    제 생각보다 주님의 생각을 높이고,
    제 뜻보다 주님의 뜻을 구하며,
    제 감정보다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해 주세요.



    마무리하며

    우리가 평생 가야 할 길은
    완벽하게 하나님 중심이 되는 길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주님의 마음을 배우는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한 번 더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오늘 내가 판단했던 사람을
    한 번 더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오늘 내가 붙들고 있는 계획을
    한 번 더 하나님께 맡겨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전에
    이 질문 하나를 먼저 던져보는 것입니다.

    “주님이시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그 질문이 우리의 말을 바꾸고,
    그 질문이 우리의 행동을 바꾸고,
    그 질문이 우리의 관계를 바꾸고,
    결국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신앙은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맞추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울 때도
    주님을 신뢰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계획이 흔들릴 때도
    주님의 뜻을 구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에도
    겸손하게 하나님께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내 뜻을 이루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던 삶”에서

    “주님, 제 뜻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삶으로 조금씩 변화되어 있기를 소망합니다.

    자기중심성이 무너지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을 보기 시작하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모든 상황 앞에서
    내가 먼저 판단하기보다,

    “주님이시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 예수님이라면 오늘의 나라를 보시며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예수님이라면 오늘의 나라를 보시며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요즘 나라의 여러 상황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지금의 이 시대를 보시며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

    우리는 수많은 정보와 의견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강하게 주장하고, 누군가는 강하게 반대합니다.
    그 가운데 믿는 사람들 역시 어느 한편에 서서 판단하기보다 먼저 하나님께 묻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주님은 오늘의 믿는 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먼저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문제를 단순히 정치적인 해답으로 풀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끄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단순한 종교적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살아 있는 삶의 방향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나라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지하는 것이 옳은가?”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은 무엇인가?”

    를 먼저 묻는 것이 믿음의 출발점일 것입니다.

    주님은 어쩌면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실지도 모릅니다.

    “이 선택이 사람을 살리는가?”

    “진실보다 앞세우고 있는 것은 없는가?”

    “너희가 지키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가, 자신의 이익인가?”


    두려움이 아니라 진리로 반응하라

    예수님께서 오셨던 시대 역시 혼란스러운 시대였습니다.

    정치는 불안정했고,
    권력은 사람들을 억압했으며,
    종교 지도자들조차 본질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공포를 조장하지도 않으셨고,
    증오를 부추기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오늘날 우리 역시 감정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분노가 판단을 대신하고,
    두려움이 행동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은 세상과 같은 방식으로 반응해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붙들되 미움을 사용하지 않고,
    불의를 분별하되 사람을 정죄하는 자리에 서지 않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길이었습니다.


    *성경적 경제관, 하나님의 사람은 경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빛은 숨겨지는 것이 아니라 비추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빛의 역할은 어둠을 저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밝게 비추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같은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정직함이 사라질 때 정직함을 보여 주고,

    사랑이 식어 갈 때 사랑을 실천하며,

    서로가 미워할 때 화해를 선택하는 사람.

    그러한 모습이 바로 빛의 삶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쩌면 교회를 향해 이렇게 물으실지도 모릅니다.

    “너희는 세상을 밝히고 있느냐?”

    “아니면 안전한 곳에서 세상을 평가만 하고 있느냐?”


    교회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질문합니다.

    “교회는 나라의 문제에 대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저는 교회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대신 말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침묵만 하는 곳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특정한 진영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분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운가.

    어떤 선택이 사람을 살리는가.

    언제 양심이 무뎌지는가.

    어떻게 미움 없이도 진리를 붙들 수 있는가.

    교회는 이러한 질문들을 함께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결론: 주님께 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라가 혼란할수록 사람들은 더 쉽게 자기 확신에 빠집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먼저 무릎을 꿇는 사람입니다.

    주장하기 전에 기도하고,

    판단하기 전에 말씀을 묵상하며,

    사람들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답을 빨리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합니까?”

    라고 진심으로 묻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사람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

  • 왜 하나님은 부드러운 사람에게 일을 맡기실까?

    왜 하나님은 부드러운 사람에게 일을 맡기실까?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어떤 일을 맡고 싶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선택하실 때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과는 조금 다른 기준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세상은 능력을 먼저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먼저 보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매우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마음과 영의 부드러움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을 어떤 사역이나 직분, 혹은 특별한 사명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맡기시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습니다.

    가정을 세우는 일도 사람을 위한 것이고, 교회를 섬기는 일도 사람을 위한 것이며, 직장에서 일하는 것조차 결국 사람과 관계된 일입니다.

    하나님은 결과만 만들어 내는 사람보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먼저, 생명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사람을 보십니다.


    *마음과 영이 부드러운 사람


    부드러운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하나님이 나타나도록 합니다

    마음과 영이 거친 사람은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앞서기 쉽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자기 판단이 강하게 들어가고, 하나님보다 자신의 방식이 더 드러날 수 있습니다.

    반면 부드러운 사람은 다릅니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내어 드립니다.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순히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이 자유롭게 역사하실 수 있는 사람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힘을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십니다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에는 언제나 영향력이 따릅니다.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작은 권한 하나가 사람을 세울 수도 있고 상처 입힐 수도 있습니다.

    부드러운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통제하기보다 품어 주고,
    정죄하기보다 회복시키며,
    높아지기보다 섬기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을 손에 힘을 맡기십니다.


    부드러운 사람은 실패 속에서도 배움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도 넘어지고 실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계속 쓰임 받았던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 앞에서 겸손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부드러운 사람은 틀렸을 때 인정할 줄 알고, 넘어졌을 때 회개할 줄 압니다.

    그래서 실패가 사람을 망가뜨리는 계기가 아니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고, 또다시 맡기십니다.


    하나님은 결과보다 사람의 결을 보십니다

    세상은 늘 묻습니다.

    “무엇을 이루었는가?”

    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 일을 하는 동안 너는 사람을 어떻게 대했느냐?”

    결과를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방식은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면서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부드러운 사람은 조급함보다 기다림을 배우고, 경쟁보다 사랑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사람들도 부드러워진 후에 쓰임 받았습니다

    모세는 광야의 긴 시간을 지나며 낮아졌습니다.

    다윗은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연약함과 실패를 경험한 후에 양 떼를 맡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강한 사람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다듬어지고 부드러워진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힘을 신뢰하던 자리에서 내려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결국 하나님이 부드러운 사람에게 일을 맡기시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도 하나님보다 자신이 앞에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자기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자기 상처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묵상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시기 전에 먼저 물으시는 질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 일을 너에게 맡긴다면, 너는 사람을 살릴 수 있겠느냐?”

    부드러운 사람은 이 질문 앞에서 쉽게 자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고, 관계를 회복시키며,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십니다.

    부드러움은 약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강함이며,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이며,
    하나님께서 기꺼이 맡기실 수 있는 마음입니다.
    🍀📚

  • 마음과 영이 부드러운 사람

    마음과 영이 부드러운 사람

    세상은 종종 부드러운 사람을 약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늘 양보하며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드러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과 영이 부드러운 사람은 가장 단단한 중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쉽게 흔들리지 않지만 완고하지 않고, 강하지만 거칠지 않으며, 진리를 붙들되 사랑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부드러움은 약함이 아니라 성숙함입니다

    마음과 영이 부드럽다는 것은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고, 무조건 참고만 산다는 뜻도 아닙니다.

    부드러운 사람도 아픔을 느끼고, 때로는 눈물 흘리며, 때로는 깊이 상처받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가 분노와 미움으로 자라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가져갑니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감정을 느끼지만 감정이 삶의 주인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화가 날 때에도 즉시 반응하기보다 잠시 멈추고,
    상처를 받을 때에도 상대를 공격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이러한 모습은 약함이 아니라 성숙함의 열매입니다.


    *왜 하나님은 부드러운 사람에게 일을 맡기실까?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합니다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은 사람을 쉽게 단정 짓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실수만 보고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지 않으며,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무엇이 그 마음을 힘들게 했는지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정죄받을 것 같은 두려움보다 이해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됩니다.

    말이 사람을 살립니다

    마음과 영이 부드러운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말의 온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기기 위해 말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말보다 세워 주기 위한 말을 선택합니다.

    같은 진실을 말하더라도 상대의 존엄을 지키며 말하고,
    상대가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큰 목소리 때문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잘 멈춥니다

    영이 부드러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멈출 줄 압니다.

    말씀이 자신의 모습을 비출 때 변명으로 도망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이라고 말하기보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할 줄 압니다.

    회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성장의 시작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이 살아 있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루실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드립니다.

    권면을 통해 더 깊어집니다

    누구나 책망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러나 영이 부드러운 사람은 권면을 단순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비판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는지를 먼저 살펴봅니다.

    방어하기보다 성찰하려 하고,
    변명하기보다 배우려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집니다.

    하나님을 도구가 아닌 주인으로 모십니다

    영이 부드러운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도 자신의 뜻만 주장하지 않습니다.

    “주님, 제 뜻대로 해 주세요.”보다
    “주님의 뜻을 알게 해 주세요.”를 먼저 구합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해되지 않는 길에서도 순종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의 중심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 곁에는 회복이 일어납니다

    마음과 영이 부드러운 사람은 갈등 속에서도 관계를 먼저 생각합니다.

    상대를 굴복시키기보다 이해하려 하고,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분별합니다.

    자신의 유익보다 진실함을 선택하고,
    자신의 자존심보다 사랑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곁에는 이상하게도 회복이 일어납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위로를 얻고,
    지친 사람이 쉼을 얻고,
    넘어진 사람이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

    성경은 이런 사람을 온유한 사람, 심령이 가난한 사람,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세상이 보기에 화려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의 삶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지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부드러운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마무리하며

    마음과 영이 부드러운 사람은 늘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삶의 여러 순간 속에서 이런 질문을 놓치지 않습니다.

    “내가 옳았는가?”

    그보다 더 먼저,

    “내가 사랑했는가?”

    이 질문을 잃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과 영이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태복음 11:29)

    진정한 부드러움은 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가는 강함입니다. 그리고 그 부드러움 속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고 관계를 회복시키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 마음과 영이 거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마음과 영이 거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저 사람은 마음이 참 거칠어.”
    “영적으로 너무 메말라 있는 것 같아.”

    그런데 과연 마음과 영이 거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처음에는 단순히 성격이 급하거나 말투가 강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닫게 되는 것은, 마음과 영의 거침은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내면의 상태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거칠다는 것

    마음은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의지가 머무는 자리입니다.

    마음이 거칠어지면 작은 말에도 쉽게 상처받고, 상대의 의도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공감하기보다 판단이 앞서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방어하려고 합니다.

    또한 분노와 억울함, 서운함이 정리되지 않은 채 마음속에 쌓여 갑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상처받은 마음이 단단한 껍질을 만들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식이 바뀌면 삶의 의미가 보인다 – 의미는 발견하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영이 거칠다는 것

    영은 하나님과 반응하는 영역입니다.

    영이 부드러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멈출 줄 알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압니다.

    반대로 영이 거칠어지면 하나님의 음성보다 자신의 생각이 더 크게 들립니다.

    권면을 들으면 회개보다 반발이 먼저 나오고, 양심의 찔림이 있어도 쉽게 합리화합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도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마음이 점점 줄어들 수 있습니다.

    결국 영이 거칠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민감함이 둔해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과 영이 거칠어질 때 나타나는 모습

    마음과 영이 거칠어지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 말이 날카로워진다.
    •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판단한다.
    • 관계 속에서 갈등이 반복된다.
    • 자신의 책임보다 남의 잘못이 먼저 보인다.
    •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
    • 힘이나 능력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 배우자, 자녀, 형제자매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스스로는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하기도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친 마음

    성경은 이런 상태를 여러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 목이 곧은 백성
    • 마음이 완악한 자
    • 영이 교만한 자
    • 들어도 듣지 못하는 자

    이 표현들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멈추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듣지 않고,
    깨닫게 하셔도 인정하지 않으며,
    돌이키라고 하셔도 계속 자신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왜 마음과 영은 거칠어질까?

    사람이 처음부터 거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살아가면서 받은 상처와 아픔들이 쌓여 갑니다.

    인정받지 못했던 기억,
    해결되지 않은 분노,
    채워지지 않은 욕구,
    오랜 실패와 좌절.

    이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다루어지지 않으면 마음속에 굳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은 점점 더 자신을 방어하게 됩니다.

    결국 상처가 거침으로, 아픔이 완고함으로 변해 가는 것입니다.


    회복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고치려고 애씁니다.

    더 착해지려고 하고,
    더 인내하려고 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그런 노력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회복의 시작은 의외로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말하기보다 듣고,

    변명하기보다 인정하고,

    판단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억울함을 주장하기보다 하나님께 마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굳어진 마음을 만지시고,
    무뎌진 영을 다시 살리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은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루실 수 있는 강함입니다.

    거친 마음은 자신의 힘으로 버티려 하지만,
    부드러운 마음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부드러운 마음을 통해 일하시고, 겸손한 영을 통해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의 마음과 영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 역시 살아오면서 억울함과 상처 때문에 마음이 거칠어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문제의 원인이 늘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제 마음을 보여 주셨고, 하나님 앞에 멈추어 설 때 비로소 진짜 회복이 시작된다는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거칠었던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무뎌졌던 영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

  • 영혼은 왜 중요할까요?

    영혼은 왜 중요할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건강도 중요하고,
    가정도 중요하며,
    직장과 경제적인 안정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영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말씀은 영혼의 가치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크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영혼은 사람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을 외모나 능력, 성취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을 그렇게 정의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단순히 몸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명을 불어넣으신 영적인 존재입니다.

    몸은 세월이 지나면 늙고 약해지지만,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영혼은 사람에게 붙어 있는 부속품이 아니라,
    사람 존재의 가장 깊은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과 영이 거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영혼은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과 교제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감동을 받고,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위로와 평안을 경험하는 모든 과정은 영혼 안에서 일어납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영혼이 깨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고,
    영혼이 메말라 있는 사람은 형식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외적인 모습보다
    영혼의 상태를 먼저 보십니다.

    영혼은 영원을 향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이 땅의 삶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들만을 위해 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성공과 명예,
    재산과 인정,
    안정된 삶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모두 얻었다 하더라도
    영혼이 병들고 하나님과 멀어진다면
    결코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영혼이 살아 있어야
    삶의 모든 축복도 올바르게 누릴 수 있습니다.

    영혼은 가장 깊은 상처와 회복을 경험합니다

    사람은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영혼이 지치고 상해 있을 수 있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
    이유 없는 무기력,
    반복되는 관계의 갈등,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힘든 마음.

    이런 모습들은 종종 영혼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영혼이 회복되면
    환경이 완전히 바뀌지 않아도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감사할 수 있고,
    소망을 품을 수 있으며,
    다시 걸어갈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혼을 먼저 다루십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상황을 바꿔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많은 경우
    문제를 먼저 해결하시기보다
    우리의 영혼을 먼저 만지십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바로 서면 삶은 따라오지만,
    영혼이 무너지면 어떤 축복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은 때로 느려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외적으로 꾸미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을 건강하게 세우기 위한 사랑의 과정입니다.

    맺으며

    우리는 몸을 돌보기 위해 시간을 쓰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은 어떨까요?

    오늘 하루,
    잠시라도 하나님 앞에 조용히 서서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은
    우리가 이루어 낸 성과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는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건강한 영혼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 영혼이 살아 있을 때,
    우리의 삶도 비로소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가게 됩니다.
    🙏❤️

  • 대체 불가능한 사람

    대체 불가능한 사람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저 사람은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야.”

    처음에는 이 말이 능력이 뛰어나거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세상에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의 자리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고, 직책과 업무도 누군가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떠나면 단순히 업무의 빈자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공백이 생깁니다.

    역할보다 사람이 중요한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로 설명됩니다.

    직장에서는 직책으로,
    사회에서는 능력으로,
    가정에서는 맡은 책임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다릅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빠지면 분위기가 달라지고,
    관계의 균형이 흔들리며,
    사람들이 의지하던 중심이 사라진 것 같은 공허함이 생깁니다.

    이는 단순히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영이 부드러운 사람

    *https://www.christiandaily.co.kr/

    사람마다 고유한 결이 있습니다

    대체 불가능함은 재능이나 성과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내면에서 만들어진 고유한 결에서 나옵니다.

    같은 상황을 만나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같은 문제 앞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며,
    성공과 실패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다릅니다.

    이러한 내면의 결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고민하고,
    실패를 겪고,
    인내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형성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기술은 배울 수 있어도, 그 사람의 삶의 결까지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습니다.

    곁에 있으면 안정감을 주는 사람

    세상은 종종 사람을 능력과 성과로 평가합니다.

    필요할 때 사용하고,
    효율이 떨어지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성과만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함께 있으면 신뢰가 생기며,
    어려운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이 됩니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가 기준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숫자나 기록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품처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고유하게 창조하시고, 그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을 맡기십니다.

    모세는 지도자가 많던 시대에도 하나님과 대면하며 백성을 이끌었던 특별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왕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순종하는 마음의 태도 때문에 기억됩니다.

    에스더 역시 왕후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를 용기 있게 감당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세상은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때로는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는 가장 귀하게 쓰임받기도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특별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삶이 쌓여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람으로 세워 가십니다.

    그들의 자리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나타내신 방식은 누구도 완전히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신실함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재능과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많은 사람 앞에서 일하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섬깁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자리인가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정은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린 신실한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리에서 사랑과 정직, 책임감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태복음 25:21)

    이 칭찬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가장 귀한 평가일 것입니다.

    중요한 깨달음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맡겨진 길을 끝까지 걸어간 사람들이었습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는 시간에 깊어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단단해지며,
    결국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기준점이 됩니다.

    저는 이 생각을 하면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누군가를 흉내 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모습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시는 고유한 뜻이 있습니다.

    어쩌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길을 끝까지 떠나지 않은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는 매우 소중한 사람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남기게 됩니다. ✨🙏

  • 열정, 그리고 10년의 시간

    열정, 그리고 10년의 시간

    최근 우연히 2015년도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최근 우연히 2015년도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잠시 멈춰 서게 되었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때 제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는지가 글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저는 열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열정은 환경과 처지를 탓하지 않는 것이고,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힘이며,
    성공 그 자체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열정을 가진 사람은 결국 세상 속에서 ‘구별됨’​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고 적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아마도 열정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환경이 어렵더라도 마음만 흔들리지 않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했습니다.

    ‘포기하지 말자.’
    ‘다시 시작하자.’
    ‘환경을 탓하지 말자.’
    ‘끝까지 해보자.’

    돌이켜 보면 그때의 저는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려고 했고,
    새로운 기회를 붙잡으려고 했으며,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습니다.

    때로는 결과가 생각처럼 나오지 않아 낙심하기도 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때는 그것을 나의 열정과 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글을 다시 읽으니 조금 다른 것이 보입니다.

    그때는 제가 열정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안에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열정만으로는 지나올 수 없었던 시간

    지난 10여 년 동안 제 삶에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기쁜 날도 있었고 감사한 날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도 있었고,
    내 힘으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고민하기도 했고,
    가족 안에서 갈등을 경험하기도 했으며,
    경제적인 문제와 현실의 벽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었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전처럼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일어서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모든 시간을 견뎌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누구에게나 열정이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마음이 뜨겁습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꿈을 품고,
    이번에는 반드시 달라지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뜨거움은 조금씩 약해집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며,
    기대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열정은 시험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면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열정은 언제나 뜨거운 감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열정일 수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열정일 수 있습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이 열정일 수 있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다시 주님을 찾는 것이 열정일 수 있습니다.


    그때의 열정과 지금의 열정은 다릅니다

    2015년의 저는 열정을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가져야 하는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열정은 단순히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추진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림의 시간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넘어졌을 때에도 다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예전보다 오히려 열정에 대해 더 겸손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뜨거워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강해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잘 견뎌냈기 때문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열정까지도 사용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2015년의 열정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때 제가 가지고 있던 열정과 성실함, 배우고자 하는 마음과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까지도 사용하셨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단순히 저의 성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나는 포기하는 것을 싫어하니까.’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성향과 경험, 재능과 열정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부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보고 계셨고,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걸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돌아보면 때로는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도 지금은 조금씩 의미가 보입니다.

    그때는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이 나를 다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수도 있고,
    그때는 지연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나를 준비시키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는 시간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00729


    구별됨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2015년의 글에서 저는 ‘구별됨’​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열정을 가진 사람은 결국 세상 속에서 구별되는 열매를 맺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구별됨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이해합니다.

    구별됨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해서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고 애쓰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하려 할 때,

    그 삶 속에서 조금씩 나타나는 것이 구별됨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과 다른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하고,
    힘들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미워하기보다 용서를 선택하고,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사람들은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삶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맺으시는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10년의 시간을 지나서야 보이는 것

    10년 전에는 앞만 바라보았습니다.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뒤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지나온 길을 바라봅니다.

    그 길에는 제가 계획하지 않았던 길도 있었습니다.

    제가 원하지 않았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돌아가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길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제 삶을 떠나신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저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 같았지만,
    먼저 저를 사랑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제가 믿음을 지킨 것 같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제가 기도해서 길이 열린 것 같았지만,
    돌이켜 보면 기도할 마음조차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내가 얼마나 잘했는가?’보다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무엇을 하셨는가?’

    를 바라보게 됩니다.


    열정의 뿌리는 은혜였습니다

    이번에 2015년의 글을 다시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10년 전의 저에게 이미 말씀하고 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잘 보이지 않겠지만,
    내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다 알지 못하더라도,
    내가 너의 삶을 통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저는 그 말씀을 삶을 통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계획한 길보다 더 좋은 길로,
    제가 기대한 방식보다 더 깊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여전히 저를 다루고 계십니다.

    때로는 기다리게 하시고,
    때로는 멈추게 하시며,
    때로는 제가 원하지 않았던 길을 지나게 하십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과정 하나하나가 저를 만들어 가는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일을 당장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시간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10년도 하나님과 함께

    2015년의 저는 앞으로의 삶을 바라보며 열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지나온 10여 년의 시간을 바라보며 은혜를 이야기합니다.

    앞으로 또 10년이 지나면 저는 어떤 모습으로 이 시간을 돌아보게 될까요?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기쁜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믿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열정만 믿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내 결심만 의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내가 세운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내가 원하는 길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선택하며,
    내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10년 전보다 지금 더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이것입니다.

    나의 열정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는 것.

    나의 결심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더 강하다는 것.

    나의 믿음보다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이 더 강하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다시 고백합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 마음이 하나님을 향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주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저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의 열정보다 더 크고,
    저의 결심보다 더 강하며,
    저의 믿음보다 더 신실한 것은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지난 10여 년을 걸어올 수 있었고,
    그 사랑이 있기에 앞으로의 시간도 걸어갈 수 있습니다.

    2015년의 글을 다시 읽으며 저는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때 제가 열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뿌리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제가 다시 일어났던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내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함으로 고백합니다.

    “2015년의 고백이 2025년의 간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하나님이셨습니다.”
    🙏🏻❤️🌱🌳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도 지나고 나면
    또 하나의 간증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때도 저는 같은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돌아보니,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