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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내딛는 믿음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내딛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때로는 아주 거창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마음에 조용히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지나치지 않고,
    그 말씀 앞에 자신의 마음을 내어놓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한 걸음씩 옮겨가는 것.

    저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네 동생 선옥이를 불쌍히 여겨라.”

    몇 년 전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동생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 마음에 아주 부드러운 감동이 찾아왔습니다.

    “네 동생 선옥이를 불쌍히 여겨라.”

    그 말씀은 제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남았습니다.

    동생은 바로 제 아래 동생으로 나이가 있지만, 미혼으로 경제력 없이 건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 만으로 힘겹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후에 동생은 친정 어머니가 돌아 가시기 전 임대 아파트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친정 어머니는 저희와 함께 몇 년을 같이 생활하시다가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시기 시작하셨는데, 어릴 적부터 할머니가 아픈 모습을 보며 자란 막내 어린 딸이 할머니를 걱정하여 할머니랑 생활했습니다.

    어린 딸의 말이
    “할머니가 많이 아프면, 내가 엄마, 아빠한테 전화 할 수 있잖아!~”
    “그러면, 엄마, 아빠가 빨리 올 수 있고”
    6살 딸의 말이 지금도 생각하면 기특합니다.

    다행히 친정 어머니가 거주 하시고 계신 임대 아파트는 저희가 새로 이사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위에 두 오빠들은 어떻게 어린 동생만 할머니하고 생활하느냐며, 두 아들들도 할머니하고 생활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동생이 늦게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동생으로 인하여 가족 간에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동생으로 인하여 아픈 할머니를 걱정하는 아이들 마음에도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친정 어머니와 나는 동생으로 인하여 가족 간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을 보고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부모의 가난으로 인하여 제대로 된 보호와 가르침을 받지 못하며 상처투성이인 동생의 아픔을 알기에, 저는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동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라고요.

    그러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생은 또 따로 생활하게 되었지요.
    저희는 저희대로 다시 아이들과 함께 생활 할 수 있는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제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속 동생에 대한 부담감을 부어 주셔서 위해서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들려 온 말씀이었습니다.

    “네 동생 선옥이를 불쌍히 여겨라.”

    저도 동생을 불쌍히 여기고 있었기에 계속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주님의 감동의 말씀이 마음에서 울리니,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에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동생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때부터 또 다른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모를 마음에서 부터 받아 들여져야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렇듯 말씀에 순종 한다는 것은, 저 한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순종은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해서
    그 순간 모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함께 살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제가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한 후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마음을 움직이셨고, 남편에게 얘기한 다음
    그 말씀에 순종 할 수 있도록 한 걸음 내딛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동생은 저희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직장도 얻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어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안정되었고,
    이제는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신기합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한 걸음 말씀에 순종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많은 일들은
    제가 계획하고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74714


    순종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더 흐른 후
    저는 뜻밖의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내가 동생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동생을 돕고 있었던 것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동생을 통해 나와 우리 가정도 돌보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생을 품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제가 오히려 많은 위로와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도 무언가를 채워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때로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은혜의 자리로
    내가 말씀에 순종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순종의 결과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 말씀의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이 어디로 가게 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에 순종하며 떠났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한 다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며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때
    동생과 함께 살게 될 미래를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정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마음에 주신 말씀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순종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셨다는 것을 조금씩 보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항상 큰 결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주 작은 마음의 움직임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용서하라는 마음이 들었을 때
    한 걸음 다가가는 것.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작은 손길을 내미는 것.

    내려놓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내 뜻을 내려놓는 것.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 앞에서
    내 감정보다 말씀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제가 이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마음을 정하는 것입니다.

    순종한다고 해서
    모든 결과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순종의 자리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일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순종 후에야 알게 되는 하나님의 뜻

    돌이켜보면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던 것은
    단순히 동생을 불쌍히 여기라는 말씀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제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하셨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하셨으며,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세밀하게 돌보고 계시는지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배웠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순종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 자신을 빚어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종의 또 다른 은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런데 때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부터 순종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순종.

    어쩌면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 큰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이미 들은 말씀에 대한 우리의 순종일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그때 모든 것을 알았던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마음에 주어진 한 말씀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한 걸음 뒤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서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십니다.
    지금 동생은 조금씩 신앙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다시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내 마음에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말씀 앞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모든 것을 이해한 후에 순종하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이미 알고 있는 말씀 앞에서도
    내 생각과 상황을 이유로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결과를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내딛는 믿음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때 배웠습니다.

    순종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이루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자리에 나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순종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어 가실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될 때가 많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말씀 앞에서 한 걸음 내딛어 봅니다.

    “주님, 제가 이해하지 못해도
    말씀하신다면 순종하겠습니다.”

    그 한 걸음의 끝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어 가실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함께 묵상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그 말씀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세요.

    말씀을 듣고,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
    그것이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 하나님이-반복해서-말씀하시는-이유

    하나님이-반복해서-말씀하시는-이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함없이 말씀하신 신실하신 분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은 제 삶 가운데 오랜 시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결같이
    말씀하셨는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출처 : 페이스북 저장 글



    2015년 겨울
    잊을 수 없는 한 꿈


    2015년 12월 19일

    며칠 전에 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땅 위에서 보니 맨홀 같은 웅덩이가 있어서 내려다 보니
    그 곳은 아주 커다랗고 넓고 깊은 구덩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마치 해발 고도가 832m에 이르고 총 고개의 연장 길이가 13km 이며
    99개의 고개의 굽이가 있는 대관령 고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봤을 때와 같은..

    그런 깊은 곳 아래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던 시간 때 부터 엄청나게 큰 구렁이가 빠른 속도로 땅 위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비록 꿈 속이었지만 너무 놀라서 지금도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깊은 아래에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구렁이가 쉭쉭 소리를
    내며 올라오고 있었는데,
    두 바퀴 정도면 곧 땅 위로 올라올 기세였습니다.

    꿈속에서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꿈 속이었지만 그 구렁이가 머지않아 땅 위까지 올라 오면
    모두가 죽는다 라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순간
    제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절박하게 주님을 찾아야 할 때다.”

    꿈의 내용보다
    제 마음에 남겨 주신 이 한 문장이
    더 강하게 기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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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계속 같은 방향으로 말씀하셨습니다.

    2016년에는 또 다른 꿈을 통해 여러 가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 꿈 속에서는

    • 지휘권을 넘겨주지 말라는 의미
    • 연약한 사람을 돌아보라는 마음
    • 언제나 말씀하시는 분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라는 말씀
    • 사람을 부풀려 말하지 말라는 교훈

    등이 제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을 미리 아시고
    제게 꿈으로 알려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의미를 모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말씀하신 내용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분별력이 있는 자들은 본질을 추구합니다 – 현상이 아닌 진실을 바라보는 성경적 분별력의 원리



    *왜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즉시 해결하지 않으실까? 기다림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


    출처 : 페이스북 저장 글




    그리고 2026년…

    올해 1월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성령께서 제 마음에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라!”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라!”

    다시 한번,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라!”

    그 순간 제 마음에는 한 가지 확신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주님께서 하실 일의 목적은
    어떤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시는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35738

    하나님은 언제나 일관되게 말씀하십니다

    뒤돌아보면 단 한 번도 서로 다른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말씀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그림처럼 연결되었습니다.

    성경도 그렇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두 번의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알았습니다.

    사무엘은 여러 번 들려오는 음성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았습니다.

    선지자들도 같은 메시지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도하시며 때가 되면 깨닫게 하시는 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사건과 뉴스를 접합니다.

    사회도 흔들리고,
    정치도 흔들리며,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게 오랫동안 가르쳐 주신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꿈의 마지막에 남겨진 마음도,

    성령께서 주신 말씀도,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더욱 찾으라.”

    그리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라.”

    이것이 제게 계속해서 말씀하신 핵심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고 믿습니다.

    때로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장 정확한 때에 일하십니다.

    그리고 뒤돌아보면,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말씀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맺음말

    저는 앞으로도 사람을 드러내기보다
    주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을 바라보게 하지만,

    성령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라.”

    그 이름만이 소망이며,

    그 이름만이 영광을 받으실 이름입니다.

    신실하신 예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 함께 묵상할 말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영원하도다.”
    (시편 100:5)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그는 미쁘시니 그 약속하신 이를 생각하라.”
    (히브리서 10:23)

  • 오늘날 교회는 많아졌는데, 왜 우리의 정서는 메말라가고 있을까요?

    오늘날 교회는 많아졌는데, 왜 우리의 정서는 메말라가고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예전보다 교회의 수는 훨씬 많아졌고, 다양한 예배와 프로그램, 사역들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게 됩니다.

    교회는 많아졌는데 왜 우리 사회와 교회 안의 사람들은 여전히 정서적으로 메말라 있을까요?

    우울과 불안, 외로움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사람들은 쉽게 지치고 상처를 받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는 교회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하나님보다 활동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본래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 안에서 쉼과 회복을 경험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예배의 횟수와 봉사의 양, 프로그램의 다양성, 교회의 성장과 같은 눈에 보이는 활동들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물론 이러한 활동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보다 활동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사람의 영혼은 쉽게 지치게 됩니다.

    사람의 정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건강하게 회복됩니다.

    하나님과 멀어질수록 마음은 메말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편 42:1)


    2. 말씀은 많이 배우지만 삶으로 경험하는 신앙은 부족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좋은 설교를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 공부 자료도 풍성하며 다양한 신앙 콘텐츠도 넘쳐납니다.

    하지만 말씀을 많이 아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신앙은 마음까지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은혜를 체험하며, 삶 속에서 말씀이 살아 움직일 때 우리의 정서도 함께 회복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건강한 정서란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마음의 방향과 하나님의 시선



    3. 세상의 경쟁 문화가 교회 안에도 들어왔습니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더 성공해야 하고,

    더 인정받아야 하며,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문화가 교회 안에도 스며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규모를 비교하고,

    사역의 성과를 비교하며,

    신앙의 모습을 서로 평가하기 시작하면 사랑보다 경쟁이 앞서게 됩니다.

    비교가 많은 곳에서는 정서가 건강하게 자라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경쟁보다 사랑을, 비교보다 섬김을 원하십니다.


    4. 상처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부족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아픔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판단받지는 않을까?’

    ‘약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웃는 얼굴 뒤에 깊은 상처를 감추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교회는 원래 상처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함께 회복되어 가는 공동체입니다.

    진정한 공동체는 서로의 약함을 정죄하지 않고 품어 주는 곳입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38752

    5. 성령의 열매보다 성과를 더 중요하게 여긴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은 신앙의 성숙을 외적인 성공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열매를 통해 사람의 변화를 말씀합니다.

    • 사랑
    • 기쁨
    • 화평
    • 오래 참음
    • 자비
    • 양선
    • 충성
    • 온유
    • 절제

    이러한 열매들은 건강한 정서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성과보다 사람의 내면을 세워 가는 일에 더욱 집중할 때 성도들의 정서도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오늘날 상담사역이나 치유사역, 다양한 회복 프로그램들이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프로그램으로 유지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서는 영혼이 살아나고,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곳에서는 마음이 회복되며,

    성령께서 일하시는 곳에서는 상한 정서도 새롭게 됩니다.

    프로그램은 도울 수 있지만,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영적인 풍요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가 크고 프로그램이 다양하면 신앙도 자연스럽게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좋은 공동체와 건강한 예배는 매우 소중한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정서가 메말라가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시간보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더 많고,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보다 걱정과 염려에 마음을 빼앗기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우리의 마음은 조금씩 지쳐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가까이 부르십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마음을 회복시키시며, 성령님의 위로로 메마른 심령을 다시 적셔 주십니다. 영적인 회복은 특별한 사람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은혜입니다.

    회복은 하나님께 다시 시선을 돌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의 모습보다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입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감사와 감격,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떨리던 마음, 기도 속에서 누리던 평안이 다시 살아날 때 우리의 정서도 함께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소유하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하나님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환경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쉼을 얻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조용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메마른 마음은 다시 생명을 얻고, 잃어버렸던 감사와 기쁨이 조금씩 회복될 것입니다.

    맺음말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서적으로 많이 지쳐 있습니다.

    교회 역시 이러한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교회를 통해 사람들을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품어 주는 공동체가 될 때,

    메마른 정서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결국 정서의 회복은 인간적인 방법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 속에서 시작됩니다.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의 영혼뿐 아니라 정서도 함께 치유되고 회복될 것입니다.📚🍀✨💒

  • 문제 앞에서 이론이 멈출 때, 하나님을 경험하는 믿음이 시작됩니다

    문제 앞에서 이론이 멈출 때, 하나님을 경험하는 믿음이 시작됩니다

    머리로 아는 이론 믿음과 삶으로 경험하는 믿음

    살아가다 보면 머리로는 이론은 분명히 알고 있는데 마음은 전혀 따라주지 않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성경도 알고 있습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 말씀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현실의 거대한 문제 앞에 서는 순간, 그동안 붙들고 있던 확신들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질병,
    경제적인 어려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자녀 문제,
    직장에서의 실패,
    인간관계의 상처….

    이러한 현실 앞에서는 알고 있던 말씀이 갑자기 멀게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걸까?’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기도해도 변하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질문은 믿음이 없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경험하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이고, 문제를 이론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 믿음의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엘리야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후에도 두려움에 도망쳤고,
    다윗은 수없이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깊은 절망 속에서 눈물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세례 요한도 감옥에서 예수님께 “오실 그이가 당신이십니까?”라고 물을 만큼 흔들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시며 그 자리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는 시간 | 문제 속에서 만나는 사랑과 지혜의 하나님




    문제는 말씀이 약해서가 아니라 경험이 부족해서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활력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가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말씀의 능력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말씀을 지식 이론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머리에 머물지만,
    믿음은 삶에서 검증됩니다.

    수영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서 이론으로 알아도 물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수영을 배울 수 없습니다.
    운전에 관한 이론을 완벽하게 알아도 실제 운전대를 잡지 않으면 운전할 수 없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고, 순종하며, 응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의 여정입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4386

    하나님은 문제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흔히 문제가 모두 해결되어야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홍해 앞에서 길이 완전히 막혔을 때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거대한 골리앗 앞에서 다윗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크신지를 경험했습니다.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은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했습니다.

    불타는 풀무불 속에 들어간 세 친구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원망 대신 찬양을 선택했고, 하나님은 감옥의 문을 여시는 기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들은 문제가 없어서 믿음이 생긴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믿음이 더욱 깊어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평탄한 길을 걸어서 위대한 믿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성장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떠나셨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려움이 찾아오면 쉽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신 것은 아닐까?’

    그러나 성경은 계속해서 다른 진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어두운 밤에도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떠나신 적은 없습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지만 성경은 반복해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라고 기록합니다.

    제자들이 풍랑 속에서 두려워할 때도 예수님은 같은 배 안에 계셨습니다.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가 절망 가운데 걸어갈 때도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걸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할 때만 함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눈물이 흐를 때도,
    기도가 막힐 때도,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때로는 그 침묵조차 우리를 버리심이 아니라 더 깊은 신뢰를 배우게 하시는 하나님의 교육일 수 있습니다.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성경 지식은 점점 많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살아보는 것입니다.

    기도를 오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정보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가족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안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하나님도 지식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기도 속에서,
    순종 속에서,
    기다림 속에서,
    고난 속에서,
    감사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인격적으로 알아 갑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믿음의 자산이 됩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혹시 지금 해결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까?

    문제만 바라보면 낙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다시 소망을 품게 됩니다.

    현재의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가까이 부르시고, 더 깊이 만나기를 원하시는 초대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크기를 계산하기보다 하나님의 크심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어제도 살아 계셨고,
    오늘도 살아 계시며,
    내일도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삶을 붙드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오늘 우리의 신앙이 머리로만 아는 이론에 머무르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문제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삶의 모든 순간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날마다 그분과 동행하는 믿음으로 자라가기를 소망합니다.

    고난은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하시기 위해 허락되는 때가 있습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이론을 넘어 삶으로 증명되는 믿음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26년 전 주님이 주셨던 말씀을 26년 후 다시 읽다

    26년 전 주님이 주셨던 말씀을 26년 후 다시 읽다

    최근 오래된 자료를 정리하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록 하나를 다시 발견했습니다.

    2000년 5월에 기록했던 글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따라 약 10일 동안 글을 기록했습니다. A4 용지로 무려 40장에 이르는 분량이었습니다.

    26년이 지난 지금 그 기록을 다시 펼쳐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기록했던 것일까?’

    그리고 한 장 한 장 다시 읽어 내려가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많은 내용 속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성령을 의지하라.”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가정을 회복하라.”

    26년 전, 주님께서 주셨던 말씀

    당시의 글을 다시 읽어 보니 지금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글에는 사탄이 가장 먼저 무너뜨리려고 하는 곳이 가정이며, 성도들이 하나 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을 일으킨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말씀인지 충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6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온 지금 다시 읽어 보니 그 말씀의 의미가 조금씩 다르게 다가옵니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습니다.

    사람들의 생활 방식도 달라졌고, 소통하는 방법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가정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가정이 깨어지고 관계가 무너지는 아픔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26년 전의 기록을 읽으면서 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을 의지하라”

    그때 기록했던 글에는 성령 충만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해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제 마음에 다시 들어온 말씀이 있습니다.

    “너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26년 전에도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하나님보다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을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예전에 받았던 은혜를 붙잡습니다.

    과거에 경험했던 하나님의 역사를 떠올립니다.

    물론 그것은 귀한 간증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셨다고 해서 오늘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했다고 해서 오늘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40장의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

    26년 전 제가 기록했던 40장의 글은 분명 소중한 자료입니다.

    그 글을 다시 발견한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40장의 기록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글을 기록하게 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그때 저를 붙드셨던 주님께서 지금도 붙들고 계십니다.

    그때 말씀하셨던 주님께서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동일하게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2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제 삶에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기쁨도 있었고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일도 있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 다시 26년 전의 기록을 읽어 보니 오히려 한 가지가 선명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도 하나님이셨고, 지금도 하나님이십니다.

    상황은 변했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고, 내가 보지 못했던 곳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주님께서 왜 그렇게 반복해서 성령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6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환경도 변합니다.

    계획도 변합니다.

    내가 세웠던 생각과 목표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다릅니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지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그 길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먼저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를 묻고 싶습니다.

    내가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앞서가시도록 기다리고 싶습니다.

    내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기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상대방이 아닌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8503


    “가정을 회복하라”는 말씀도 다시 생각합니다

    26년 전 주님께서 주셨던 말씀 가운데 또 하나의 중요한 내용은 가정을 회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앞으로의 삶에서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마음에 남게 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정은 단순히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됩니다.

    가정은 사랑을 배우는 곳이고,

    용서를 배우는 곳이며,

    기다림을 배우는 곳입니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가장 큰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회복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회복은 단순히 관계를 좋게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 가시는 회복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6년 전의 기록을 다시 읽으면서 저는 그때 주님께서 왜 ‘성령을 의지하라’는 말씀과 ‘가정을 회복하라’는 말씀을 함께 주셨는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가정을 회복하려 하면 결국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면 달라집니다.

    내가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먼저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보다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회복은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26년 전의 기록을 다시 읽으면서 또 하나 마음에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2013년에 제가 적어 놓았던 고백입니다.

    “더 은밀하고, 더 고요하며, 더 조용하고, 더 한적한 시간.”

    어쩌면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이루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주님 앞에 머무는 시간.

    그곳에서 다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묻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하기 전에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기회보다 중요한 것

    최근 들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하나씩 열리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고, 새로운 일도 경험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만남과 기회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바라보면서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회가 열린다고 해서 반드시 그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원하는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내가 가야 하는 길도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회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 기회를 주신 분이 누구인지 분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주님보다 앞서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의미 있는 사역이라도 주님과의 교제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한다 해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놓친다면 결국 내 힘으로 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제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일을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법인 것 같습니다.


    26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말씀

    2000년 5월.

    그때 저는 40장의 글을 기록하면서 그것이 26년 후의 제게 다시 읽히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지금의 저를 알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시간을 지나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26년 전의 기록을 다시 읽으면서 저는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시간이 지난다고 낡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말씀은 때로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 깊은 곳에 머물러 있다가 하나님의 때에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는 것을.

    26년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말씀이,

    26년의 시간을 지나온 지금에는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다시 그 말씀 앞에 서고 싶습니다.

    성령을 의지하라.

    가정을 회복하라.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 안에 거하라.


    오늘 다시 드리는 고백

    2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어떤 문이 열릴지도 알지 못합니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싶습니다.

    내가 가는 길에 주님이 함께하시는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내 생각과 경험과 능력을 앞세우기보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걸어가고 있는가.

    26년 전 주님께서 주셨던 말씀을 다시 읽은 오늘,

    저는 그 말씀을 과거의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의 고백으로 다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아니라 성령을 의지하게 하소서.”

    내 힘으로 살아가지 않게 하시고,

    내 생각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시고,

    내가 앞서가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게 하소서.

    그리고 26년 전 제게 말씀하셨던 그 주님께서

    앞으로의 남은 삶에서도 변함없이 저를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6년 전에도 주님이셨고,

    오늘도 주님이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주님이실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