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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순한 지식 -믿음에 대한 이해

    단순한 지식 -믿음에 대한 이해

    믿음은 단순한 지식과 분위기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다니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예배를 드리면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성경을 많이 읽고 단순한 지식이 많으면,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정말 믿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믿음이라는 말을 너무 익숙하게 사용하다 보니 오히려 믿음의 본질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믿음은 종교적인 행위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믿음은 어려울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수단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의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이것보다 훨씬 깊습니다.

    믿음은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믿음이 깊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믿음의 중요한 기초가 될 수 있지만, 지식 자체가 믿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저 사람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정작 어려운 순간에 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그 사람의 능력을 알고 있는 것과 그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다릅니다.

    믿음에도 이와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믿음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때때로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하려고 합니다.

    기도하면서도 결과는 내가 정해 놓습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하면서도 일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해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오면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하시는지 의심하기도 합니다.

    믿음은 단순한 지식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고, 인격체 되신 주님께 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어서라기보다 우리가 믿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하나님께 받아내는 힘이 아닙니다.

    믿음은 결과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선하시고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성령의 조명 비추심이 있어야 그 삶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진짜 믿음은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열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을 미리 보고 움직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붙드는 것.

    지금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는 것.

    내가 모든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지혜가 나보다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참 믿음의 모습이며, 단순한 지식으로는 불가능한 삶입니다.

    믿음은 감정과도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좋다는 것을 늘 평안하고 흔들리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걱정이 생길 수도 있고, 눈물이 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라고 묻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감정이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에게도 어려움은 찾아옵니다.

    다만 어려움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믿음은 삶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은 마음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진짜 믿음이라면 결국 삶에서 열매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용서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욕심을 내려놓는 방식이 달라지고,
    어려움을 견디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내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됩니다.

    예전에는 억울함을 반드시 내가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릴 수 있게 됩니다.

    예전에는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했다면, 이제는 결과를 넘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변화가 바로 믿음의 열매이며

    단순한 지식에 의한 종교의 행위에서는 절대로 맺을 수 없는 열매들입니다.

    믿음은 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조금씩 드러납니다.

    *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6335


    믿음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믿음을 처음 갖게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참 믿음에는 성장의 과정이 있습니다.

    작은 일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또 다른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때로는 넘어지고 흔들리면서 다시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조금씩 알아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깨닫게 됩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구나.”

    당시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보니 그 과정 속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또 다른 믿음이 됩니다.

    믿음의 중심에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있습니다

    믿음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믿음을 너무 쉽게 ‘내가 얼마나 강하게 믿느냐’​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믿음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능력이 나의 확신에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누구신지가 더 중요합니다.

    내 믿음이 강해서 하나님이 신실하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흔들리지 않아서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부족할 때에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핵심은 ‘내가 얼마나 잘 믿는가’가 아니라 ‘내가 누구를 믿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은 어떤 종교적인 개념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한 걸음 걷고,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붙들고,
    때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의 모습이라기보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오늘 내가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직 믿음이 부족하다고 느껴져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해 다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씩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체 되신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나는 오늘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 고백이 바로 우리의 삶으로 이어질 때,
    믿음은 비로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집니다.

    혼자 있을 때와 누군가가 곁에 있을 때의 모습이 다르고, 존경하는 사람이 함께 있을 때는 말과 행동이 더욱 신중해집니다.

    그렇다면 만일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깊이 인식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할까요?

    분명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삶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신다는 의식이 살아 있을 때 우리의 생각은 달라지고, 말은 달라지고, 선택은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좋은 리더는 무엇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능력보다 중요한 책임의 리더십


    *잘하던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방법이 아닌 중심을 새롭게 빚으십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집니다

    하나님이 인식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조심스러움’입니다.

    죄를 짓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마음속에 올라오는 교만과 욕심을 경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심스러움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변화입니다.

    삶의 작은 부분까지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은 큰 일뿐 아니라 작은 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정직하려고 합니다.

    남들이 알지 못해도 선한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려 합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도, 작은 친절을 베푸는 일도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은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모세는 떨기나무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을 만난 후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 후 자신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한 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삶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은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이 참된 신앙입니다

    신앙은 교회에 있는 시간만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자연스럽게 거룩함을 향해 나아갑니다.

    억지로 착하게 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은 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만 하나님을 찾고, 예배 시간에만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과 분리된 존재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인식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에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도,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도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행동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 그리고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인지를 깨달을수록 우리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향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늘 생각하게 되듯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도 관계 속에서 깊어지는 것입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39690

    하나님을 인식하면 삶의 기준이 바뀝니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인식되기 전에는 세상의 평가와 성공이 삶의 기준이 되기 쉽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에 기뻐하고 비난에 쉽게 흔들리며, 환경이 좋아지면 감사하고 어려워지면 낙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삶의 중심이 되면 기준이 달라집니다.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결과보다 순종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눈앞의 손해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용기를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믿음은 더욱 견고해지고, 우리의 생각과 말, 행동까지도 조금씩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이 경험하는 가장 큰 변화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삶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은 어느 한순간의 감동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하며,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성숙해집니다.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수록 하나님을 향한 신뢰도 더욱 커집니다. 미래가 불확실해 보여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수 있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들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은 환경이 바뀌어서 행복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맺음말

    하나님 그분이 우리 마음속에 분명하게 인식되어질 때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집니다.

    그 조심스러움은 우리를 억누르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변화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심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 주님은 인격이십니다

    주님은 인격이십니다

    주님은 인격이십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이 일을 2016년 12월 31일 페이스북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찬호는 제 옆에서 통변하며 기도 내용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때는 그저 기도 가운데 주어진 말씀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그 기록을 읽어 보니,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는지 새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그 기도문 속에 담겨 있던 주님의 마음을 다시 묵상하게 됩니다.

    마치 주님께서 찬호에게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니?”

    “나를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있니?”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단다.”

    오래전의 짧은 기도 기록이었지만, 지금 다시 읽어 보니 그 안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중요한 질문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을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에 관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도 배웁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거룩하시며,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을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을 오래 읽었고, 교회를 오래 다녔으며, 설교를 많이 들었고, 여러 사역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득 이런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을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일까?”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과 나이, 직업, 가족관계, 좋아하는 음식까지 알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 그 사람과 대화하지 않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지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을 바르게 아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종교적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아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혼잣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도 단순히 오래된 책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분의 뜻을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만이 아닙니다.

    얼마나 하나님과 실제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너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니?”

    오래전 찬호의 기도문을 다시 읽으면서 이 질문이 제 마음에도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니?”

    이 질문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너는 내가 어떤 하나님인지 정말 알고 있니?”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니?”

    “내가 네 삶 가운데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니?”

    “네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를 신뢰할 수 있니?”

    “네가 원하는 응답을 받지 못할 때에도 나를 사랑할 수 있니?”

    이 질문 앞에 서면 저 자신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알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인가?

    하나님 자체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내 삶을 잘되게 해 주시기를 원하는 것일까?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이름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53610

    우리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을까요?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교회에서 여러 가지 사역을 감당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역이 많아지고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일이 잘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신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의 상황이나 성과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사역이 성공했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과 깊은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계명을 말씀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결국 신앙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고 싶은 것입니다.


    은사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사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 가운데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하고, 말씀을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섬김의 은사를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돕는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은사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특별한 경험이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앞설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보다 하나님 자신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는 믿음이 아닐까요?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인격적인 관계에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던 마음도 아십니다.

    내가 감추고 싶은 생각도 아십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도 아십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는지도 아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좋은 모습만 보고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도 아시고,

    실수할 때도 아시고,

    믿음이 흔들릴 때도 아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두려움으로만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께 나아가는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어떻게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과의 관계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작은 삶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 오늘도 함께해 주세요.”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혼자 판단하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 생각보다 주님의 뜻을 따르고 싶습니다.”

    말씀을 읽으면서도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저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깨닫게 해주세요.”

    이렇게 하나님과 대화하는 삶이 쌓여 갈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조금씩 깊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요구사항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입니다.


    나는 누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요즘 저는 제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해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나 큽니다.

    사람들의 평가도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무엇이 성공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가져야 행복한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수많은 목소리가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때로는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 생각이 너무 앞서갈 때도 있습니다.

    내 감정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사람의 말 한마디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가 아무리 커도 말씀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사람의 평가가 아무리 중요하게 느껴져도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진정한 승리는 주님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흔히 승리를 환경이 좋아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계획했던 일이 성공하면 승리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순간도 감사한 승리입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의 승리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상황이 여전히 힘들어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이 승리입니다.

    답을 아직 알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승리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이 승리입니다.

    내가 원하는 길이 열리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이 믿음의 승리입니다.

    결국 진정한 승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잃지 않는 데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전 찬호의 기도문이 오늘의 나에게 다시 말을 걸어옵니다

    2016년 12월 31일에 기록했던 글을 다시 읽으며 저는 시간을 넘어 다시 질문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찬호를 향해 주님께서 주셨던 것처럼 느껴졌던 말씀,

    “너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니?”

    그리고

    “나를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있니?”

    라는 질문이 이제는 제 마음을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신앙도 익숙해집니다.

    기도도 익숙해지고,

    예배도 익숙해지고,

    성경을 읽는 것도 익숙해집니다.

    교회 생활도 익숙해집니다.

    그런데 익숙함이 반드시 친밀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대하는 마음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정말 사랑하고 있습니까?”

    “주님, 제가 주님을 알고 있습니까?”

    “주님, 제가 주님보다 다른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질문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주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할 때만 찾아가는 분이 아닙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만 기도하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체를 함께 걸어가시는 분입니다.

    기쁜 날에도 함께하시고,

    눈물 나는 날에도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확신에 차 있을 때도 함께하시고,

    아무것도 알 수 없어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도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특별한 순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가족과 이야기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그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주님, 지금도 함께 계시지요?”

    이렇게 마음으로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알게 되면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주장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알고 있다면 그 말씀을 따라 살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랑을 흘려보내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면 나 역시 은혜를 베풀고 싶어집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혼자 결정하기보다 하나님께 묻는 습관이 생깁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의 열매가 아닐까요?


    오늘 다시 주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오래전 찬호의 기도문을 다시 읽으며 이제는 제가 주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더 알아가게 해주세요.”

    “제가 주님에 관한 지식만 쌓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주님과 실제로 교제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저도 기뻐하게 해주세요.”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저도 멀리하게 해주세요.”

    “세상의 수많은 음성보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해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을 주님으로 사랑하게 해주세요.

    주님께서 무엇을 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랑하게 해주세요.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어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지만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는 것 같은 친밀함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나아가 보십시오.

    “주님, 제가 주님을 알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과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마음을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오래전 찬호에게 하셨던 말씀처럼,

    “나는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단다.”

    이 말씀은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2016년 12월 31일에 기록해 두었던 짧은 기도문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으면서 저는 한 가지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고 사랑하고 교제해야 할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성경도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역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은사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너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니?”

    “나를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있니?”

    이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추어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이 걷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나는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우리의 마음으로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아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걷기를 원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세상의 소리보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의 시선보다 주님의 시선을 바라보며,

    하나님에 관한 지식만 쌓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알아가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오래전 찬호의 기도문을 통해 다시 들려오는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나는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단다.”

    이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도 주님과 함께 걷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래전의 한 기도문을 다시 돌아보며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주님,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하나님 자신과 가까이 교제하지 못할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성경의 지식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고,
    사역보다 하나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며,
    은사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귀하게 여기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수많은 소리 가운데서
    주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사람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시선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누구보다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