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사회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갈등이 이어지고,
국가들은 서로를 비난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악을 막기 위해서는 강한 조치가 필요하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수많은 사람들과 생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한쪽의 말만 쉽게 맞다고 하기도 어렵고,
반대로 틀렸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현실은 복잡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바라보며 한 가지 분명하게 떠오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반드시 옳은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옳은 일을 망설이는가?
사실 사람들은 대부분 무엇이 옳은지 전혀 몰라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옳은 일을 선택했을 때 따라올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말하면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정의를 세우려 하면 반발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면 관계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종종 진리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그 진리를 외면할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나 하나 행동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그렇게 합리화가 시작됩니다.
합리화는 우리의 마음을 잠시 편안하게 만들지만,
진실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대가가 두렵다고 진리를 포기할 수 있는가?
성경 속 하나님의 사람들은 늘 이 질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노아는 조롱을 감수해야 했고,
모세는 바로와 맞서야 했으며,
다니엘은 사자굴의 위협 앞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조차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그 길은 가장 옳은 길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큰 대가를 요구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단순히 옳은 것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옳은 것을 위해 어떤 대가를 감당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공의를 말하면서 생명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균형을 배워야 합니다.
때로 사람들은 공의를 이야기하면서
그 과정에서 상처 입는 사람들의 아픔을 너무 쉽게 지나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피해와 고통만 바라보다가
결국 불의에 대한 판단 자체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분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죄라고 말씀하시지만,
동시에 죄인 한 사람의 생명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것을 보여 줍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있습니다.
죄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동시에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죄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그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타협이 반복될 때 하나님의 공의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많은 사람들은 묻습니다.
“타협하며 살아도 당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나타난다고 말씀합니다.
다만 그것이 언제나 즉각적인 심판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무서운 일은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이 있었지만,
합리화가 반복되면 양심이 무뎌지고,
양심이 무뎌지면 결국 자신이 옳다고 믿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스스로를 속이는 가장 위험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심은 것은 결국 거두게 됩니다.
진리를 외면한 선택 역시 언젠가 그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보다 정직한 사람을 찾으신다
다행인 것은 하나님께서 완벽한 사람만 찾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대가가 부담스러워 진리를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지만 다시 일어섰고,
다윗은 큰 죄를 범했지만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회개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무리
세상에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습니다.
전쟁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우리의 일상 속 선택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옳은 일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릅니다.
그 대가가 두렵다고 진리를 포기하면 결국 타협이 시작됩니다.
반대로 공의를 말하면서 사람의 아픔과 생명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대가가 두렵더라도,
합리화로 진리를 포기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옳은 길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모든 것을 공의롭게 판단하시며 동시에 사랑으로 품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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