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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을 결정할 때 마음이 쫓기고 불안한 가운데서 하면 안 됩니다

    무엇을 결정할 때 마음이 쫓기고 불안한 가운데서 하면 안 됩니다

    결정은 마음이 차분하고 고요할 때 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결정을 내립니다.

    아주 작은 선택부터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결정까지, 하루에도 여러 번 선택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어떤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보이지 않아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여러 상황을 경험하다 보니 한 가지를 점점 깨닫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마음이 심하게 쫓기고 불안하다면, 그 상태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빨리 선택해야 해.”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돼.”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조금이라도 늦으면 모든 것이 잘못될 거야.”

    이런 생각이 계속해서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다 보면 충분히 생각하고 판단하기도 전에 무언가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 문제가 시작됩니다.


    불안은 사람을 조급하게 만듭니다

    불안 자체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불안한 마음이 우리에게 위험을 알려 주기도 합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긴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걱정하는 것 역시 당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을 마음속에 계속 품고 있으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불안이 커질수록 사람은 기다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무엇인가 빨리 해결해야 할 것 같고, 지금 당장 결론을 내려야 마음이 편해질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서둘러 내린 선택이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조급하게 내린 선택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서둘러 선택합니다.

    그러다 보면 한 번의 실수가 여러 번의 실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조급함은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끝나지 않고, 잘못된 선택의 연속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다음 선택을 부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일 것입니다.

    잘못된 선택을 내렸다면 그 자리에서 인정하고 멈추면 됩니다.

    “내가 잘못 판단했구나.”

    “이 방향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이렇게 멈출 수 있다면 처음의 실수는 더 큰 문제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한 상태에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미 선택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선택을 옳게 만들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두 번째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선택이 또 잘못되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세 번째 선택을 합니다.

    이렇게 하나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기 위해 또 다른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처음에는 단순한 실수였던 것이 점점 복잡한 문제가 되어 버립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행동을 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실수였는데,

    그 실수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행동을 하고,

    결국에는 처음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잘못까지 저지를 수 있습니다.

    작은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 잘못을 덮기 위해 더 큰 잘못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법을 어기는 행위, 즉 범죄와 같은 심각한 결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방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빨리’가 아니라 ‘멈춤’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빨리 해결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속도를 높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문제는 멈추어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자동차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속도를 더 높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목적지에서 더 멀어질 뿐입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차를 세우고 내가 어느 길로 들어왔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무조건 더 열심히 달릴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이 결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려움 때문에 서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이시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3490


    마음이 쫓길 때는 결정하기 전에 마음부터 살펴야 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내가 무엇을 결정할 것인지보다 먼저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금 화가 나 있는가?

    두려운가?

    불안한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가?

    손해를 볼까 봐 초조한가?

    무언가를 잃을까 봐 조급한가?

    아니면 정말 옳다고 생각해서 이 결정을 하려고 하는가?

    같은 상황에서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판단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불안이 심할 때는 눈앞의 한 가지 문제만 크게 보입니다.

    다른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 내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길이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마음이 가라앉은 후 다시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른 방법이 있었음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마음이 지나치게 쫓긴다면 저는 결정의 속도보다 마음의 속도를 먼저 늦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안한 마음은 ‘지금 당장’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불안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지금 당장”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고,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하고,

    지금 당장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기다리는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다루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게 하시고,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보게 하시고,

    내가 얼마나 내 생각을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결코 낭비되는 시간이 아닙니다.

    때로는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께서 상황보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키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조급함과 다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일을 결정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너무나 원하는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하면 더 그렇습니다.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주님, 빨리 답을 주세요.”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답을 하나님께 받아내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는 기도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해 주세요.”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이 당장 오지 않더라도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을 소극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빨리 결정하고 빨리 행동해야 능력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상황을 살피는 것입니다.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 감정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내 생각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방향을 수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기다림일 수 있습니다.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입니다.

    오히려 중요한 순간에는 그 선택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작은 실수를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작은 잘못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한 번쯤은 괜찮아.”

    “이번만 넘어가면 돼.”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쉽게 익숙해집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했던 행동도 반복하다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지 못했던 행동도 한 번, 두 번 반복하면서 점점 대담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행동은 작을 때 멈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인정해야 합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잘못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자신을 멈추게 하는 용기입니다.


    한 번 멈추는 것이 많은 실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단 한 번의 멈춤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말하기 전에 한 번 멈추는 것,

    결정하기 전에 한 번 멈추는 것,

    화가 났을 때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멈추는 것,

    불안할 때 계약하거나 약속하기 전에 한 번 멈추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한 번 멈추는 것입니다.

    그 멈춤의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여 주세요.”

    “제가 두려움 때문에 움직이고 있다면 멈추게 해 주세요.”

    “제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돌이킬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며 멈추는 순간, 우리는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평안 가운데 다시 바라보면 다른 길이 보일 수 있습니다

    불안할 때는 출구가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가라앉으면 다른 길이 보이기도 합니다.

    “꼭 이것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구나.”

    “조금 더 기다려도 되는 일이었구나.”

    “내가 너무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너무 서두르고 있었구나.”

    이런 깨달음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평안은 단순히 마음이 편안한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평안은 상황을 조금 더 바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의 시야를 회복시켜 주기도 합니다.

    불안할 때는 문제 안에 갇혀 있지만, 마음이 평안해지면 문제를 조금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서 멈추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결정을 하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정말 급하게 결정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불안과 조급함 속에서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마음이 지나치게 쫓긴다면 잠시 멈추십시오.

    불안하다면 먼저 기도하십시오.

    화가 난 상태라면 감정이 가라앉은 후에 결정하십시오.

    두려움 때문에 무엇인가를 선택하려 한다면 그 두려움을 먼저 주님께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내 결정이 정말 옳은 것인지 다시 살펴보십시오.

    한 번의 조급한 결정이 또 다른 실수를 만들고, 그 실수가 반복되면서 더 큰 잘못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한 번의 멈춤이 그 악순환을 끊는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멈추고,

    내 마음을 살피고,

    말씀 앞에서 생각을 내려놓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지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쫓길 때,

    “주님, 빨리 답을 주세요.”라고만 기도하기보다

    “주님, 제가 조급함으로 결정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두려움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멈추어야 할 때 멈추게 하시고,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릴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답보다 주님이 주시는 답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때로는 빠르게 결정하는 것보다 늦게 결정하는 것이 지혜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행동하는 것보다 멈추는 것이 믿음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기다리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쫓기고 불안할 때는 중요한 결정을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내린 결정이 나중에 또 다른 결정을 요구하지 않도록, 먼저 마음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 멈춤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시며,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보여 주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죄란 무엇인가? 죄의 본질— 나는 왜 내 죄를 스스로 보지 못하는가

    죄란 무엇인가? 죄의 본질— 나는 왜 내 죄를 스스로 보지 못하는가

    죄의 본질? 우리는 흔히 죄를 생각할 때 먼저 행동을 떠올립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 남을 미워하는 것, 욕심을 부리는 것,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잘못을 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들도 죄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죄는 단순히 “잘못된 행동 몇 가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과 욕망을 앞세우는 것,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죄의 뿌리입니다.

    그래서 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나는 정말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1.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로마서 3:23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보다 정직하게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법을 잘 지키고 선한 일을 많이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거의 주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죄가 없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죄의 기준은 다른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의 기준은 하나님입니다.

    사람과 비교하면 나는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죄를 깨닫는다는 것은

    “나는 나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없이 살아왔고, 하나님의 뜻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며 살아왔다.”

    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왜 나는 내 죄를 스스로 보지 못할까요?

    바로 죄의 본질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죄가 그렇게 심각하다면 우리는 왜 자신의 죄를 잘 보지 못할까요?

    성경은 인간의 마음에 대해 매우 엄중하게 말씀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 예레미야 17:9

    사람은 자신의 죄를 바라볼 때조차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화를 냈다면

    “그 사람이 먼저 나를 화나게 했어.”

    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 사람은 미움받을 만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욕심을 부렸다면

    “나도 이 정도는 가져야 하지.”

    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서도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은 쉽게 보면서도 자신의 마음속 죄는 합리화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죄의 무서운 점은 단순히 죄를 짓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9941


    *복음이란 무엇인가 — 성령의 비추심으로 복음을 깨닫다

    3. 죄는 행동보다 먼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죄의 본질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단순한 행동의 문제로만 보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미움이 살인으로 나타나기 전에 이미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음욕이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에 이미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탐심이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에 이미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교만 역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 이전에 마음속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행동만 고치려고 하면 죄의 뿌리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달라졌는데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보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주인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죄는 행동의 문제이기 전에 죄의 본질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문제입니다.


    4.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죄를 완전히 볼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요한복음 16:8

    성령께서 하시는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죄를 깨닫게 하시는 일입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설교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죄에 관한 지식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만으로는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비추실 때 비로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했던 것이 사실은 교만이었구나.”

    “내가 화를 낸 이유가 단순히 상대방의 잘못 때문만은 아니었구나.”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내 뜻대로 살고 싶어 했구나.”

    “나는 하나님보다 돈과 사람과 내 안전을 더 의지하고 있었구나.”

    이런 깨달음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단순한 죄에 대한 지식과 죄에 대한 영적인 깨달음의 차이입니다.


    5. 성령의 비추심은 우리를 절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죄의 본질을 이해하고 죄를 깨닫게 되면 처음에는 마음이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훨씬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죄를 드러내시는 목적은 우리를 정죄하여 절망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죄를 보게 하심으로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왜 필요한지 절실하게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보기 시작하면 고백이 달라집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내 힘으로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고칠 수 없습니다.”

    “주님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복음이 복음으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6. 죄를 깨닫는 사람에게 십자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복음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으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라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복음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을까요?

    인간의 죄가 그렇게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죄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십자가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의로워질 수 있다면 예수님의 죽음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죄인이며 내 힘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깊이 깨닫는 것은 복음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자리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7. 진정한 회개는 죄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더 깊은 회개는 행동만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 행동 뒤에 있는 내 마음을 바라보게 합니다.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무엇을 원했는가?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무엇을 의지했는가?

    하나님보다 무엇을 더 사랑했는가?

    이 질문 앞에 서게 될 때 우리는 죄의 뿌리를 조금씩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8.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은 절망의 고백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죄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은 자신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요한일서 1장 8-9절은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지만,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죄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보았을 때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죄를 숨기는 사람은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게 됩니다.


    9. 오늘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의 문제도 보입니다.

    세상의 타락도 보입니다.

    교회의 문제도 보입니다.

    다른 사람의 위선도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비추신다면 나는 무엇을 보게 될까요?

    내 안에 있는 교만은 무엇일까요?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욕심은 무엇일까요?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얼마나 클까요?

    용서하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마음은 없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정말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 질문 앞에 조용히 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무리 — 죄를 보는 눈이 열릴 때 복음이 보입니다

    죄의 본질을 이해 하고 죄를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는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 안에서 발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비추실 때 우리는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훨씬 심각한 죄인이었구나.”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또 하나의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구나.”

    죄를 깨닫는 것은 복음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를 깊이 깨달을수록 십자가의 은혜가 더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죄를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다른 사람의 죄를 보기 전에 먼저 제 죄를 보게 해 주세요.

    제가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속이지 않게 해 주세요.

    성령께서 제 마음을 비추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저의 모습을 정직하게 보게 해 주세요.

    그리고 제가 죄를 보았을 때 숨거나 변명하지 않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세요.”

    죄를 보는 눈이 열릴 때, 복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복음이 보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지를 알게 되며

    죄의 본질을 깨달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생명이 없음을 고백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죄의 본질을 깨닫고 바라 볼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축복입니다.

  • 내면의 치유 ① | 치유-상처로 얼룩진 내면

    내면의 치유 ① | 치유-상처로 얼룩진 내면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와 치유를 경험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들었던 말 한마디,
    친구에게 받은 배신,
    가족과의 갈등, 가난
    직장에서의 무시와 억울함, 따돌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그리고 사별,
    실패와 좌절….

    이러한 경험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마음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면 오래전에 받았던 상처가 다시 떠올라서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같은 말에도 쉽게 마음이 무너지고,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화가 나거나,
    사람을 믿지 못하는 편견이 생기기도 합니다.

    상처는 단순히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움직이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상처가 시간만으로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인 상처의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상처는 치유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보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바라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아픔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그 정도는 별것 아니야.”라고 말하기도 하고,
    오히려 상처를 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더욱 힘들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 한 방울도 헛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상한 마음을 가까이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밤에 흘린 눈물도 알고 계시고

    말하지 못한 아픔도 알고 계십니다.

    감추어진 상처도 알고 계시며

    그리고 그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상처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려 합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점점 우리의 삶을 지배합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며,

    늘 비교하고 탓 하게 만들며, 변명하고 합리화 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열등감과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게 합니다.

    또한 분노와 미움은 또 다른 상처를 만들기도 합니다.

    상처 받은 사람이 그 상처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환경만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의 방향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https://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132541/20260803/%EC%95%84%EB%B2%84%EC%A7%80%EA%B0%80-%EC%82%B4%EC%95%84%EC%95%BC-%EA%B0%80%EC%A0%95%EC%9D%B4-%EC%82%B0%EB%8B%A4-%EB%91%90%EB%9E%80%EB%85%B8-%EC%95%84%EB%B2%84%EC%A7%80%ED%95%99%EA%B5%90-%EC%8B%9C%EC%95%A0%ED%8B%80-51%EA%B8%B0-%EC%B0%B8%EA%B0%80%EC%9E%90-%EB%AA%A8%EC%A7%91.htm

    치유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 번 기도하면 모든 상처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시간을 통해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말씀으로,

    기도로,

    예배로,

    성령님의 위로로,

    좋은 공동체를 통해,

    조금씩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마치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이,

    회복도 하나님의 때를 따라 찾아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상처를 맡길 때 진정한 자유가 시작됩니다

    우리 힘으로는 모든 상처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용서도 쉽지 않고,

    잊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솔직히 내어드릴 때 치유는 시작됩니다.

    기도는 상처를 숨기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시간입니다.

    눈물도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침묵도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가장 잘 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상처까지 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죄만 담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조롱받으셨고,

    버림받으셨으며,

    배신당하셨고,

    고통과 슬픔을 몸소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이해하십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용서뿐 아니라 회복의 시작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둘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받은 치유와 회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함께 말씀을 묵상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공동체를 표현한 이미지

    우리의 회복은 또 다른 사람을 살리는 통로가 됩니다

    치유를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받은 위로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헛되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회복된 마음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믿음이 되며,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됩니다.


    맺음말

    혹시 지금도 오래된 상처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도 마음 한편이 무너져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두 손을 내밀며 말씀하십니다.

    “내게 나오라.”

    우리의 상처는 하나님께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맡겨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메마른 우리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며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함께 묵상할 말씀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36:26)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상처를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사람에게 받은 아픔과 스스로를 정죄했던 마음까지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메마른 제 영혼에 주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미움 대신 사랑을, 두려움 대신 평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제 삶이 치유의 은혜를 경험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에필로그

    상처는 우리의 인생을 정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상처는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내면의 치유 ② | 용서하지 못한 마음,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를 통해 용서와 회복의 실제적인 여정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 내면의 치유 시리즈 ②

    내면의 치유 시리즈 ②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도 치유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용서하지 못할까요?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모두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원망이 되고, 분노가 되고, 마음속에 단단한 벽을 만들기도 합니다.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왜 나를 그렇게 대했을까?”
    “나는 아직도 그 일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이러한 기억은 우리의 마음을 계속 괴롭히고 무겁게 붙잡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용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상처가 깊을수록, 배신이 클수록, 억울함이 클수록 우리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단순히 “용서하라”고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의 상처, 상한 감정을 치유하시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새롭게 만들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감정보다 먼저 믿음에서 시작되는 일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마음이 풀리면 하겠다.”

    하지만 성경은 조금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감정이 모두 해결된 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은 아직 아플 수 있습니다.

    눈물이 날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아시며, 우리와 함께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한 걸음 씩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도
    함께 치유해 가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힘으로 순종이 어려워 힘들어 하는 자들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의 상한 감정을 치유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억압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 제작: (ChatGPT)AI 생성 지이미지

    하나님을 깊이 알수록 은혜는 커집니다

    우리는 모두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하나님 앞에 잘못했고, 넘어졌으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수 없는 은혜를 베푸셨고, 갚을 수 없는 사랑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나도 이렇게 복음에 빚진 자인데…’

    이 깨달음은 억지로 참는 마음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내 마음을 붙잡고 있던 미움과 원망을 하나님께 맡기는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임재 안에서 주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게 되면 부정적인 마음에 자신을 내 맡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상한 감정을 맡겼을 때 누리게 되는 참 평안을 알게 되면
    오히려 주님의 사랑을 더욱 알고 싶은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정의와 심판을 맡기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영혼은 왜 중요할까요?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57717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나 자신을
    더 아프게 합니다

    원망은 상대방보다 먼저 내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미움은 생각을 지배하고,

    분노는 평안을 빼앗으며,

    복수심은 우리의 영혼을 지치게 만듭니다.

    겉으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과거의 상처를 반복해서 떠올리며 스스로를 괴롭히게 됩니다.

    용서하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대를 위한 일이기 전에 나 자신의 자유를 위한 일 입니다.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회복시키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까지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 마음부터 변화 시켜 주십니다.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상처,

    오랫동안 품어 왔던 원망,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눈물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어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아픔을 내려놓을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조금씩 부드럽게 하십니다..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순종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새롭게 변화 시켜 주십니다.


    용서는 치유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용서는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닙니다.

    과거의 상처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치유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 뿐 아니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치유하시고 억압에서 자유 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솔직히 내어 드려 보십시오.

    “하나님, 제 안에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 주십시오.”

    하나님은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자유하게 하시며,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함께 묵상해 보세요

    • 지금도 내 마음속에 놓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해 보세요!

    마무리하며

    용서는 인간의 의지 만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조금씩 배워 가는 삶의 과정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키시는 치유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 이유를 몰라도 흘러나오는 감사, 그것이 진짜 감사입니다.

    이유를 몰라도 흘러나오는 감사, 그것이 진짜 감사입니다.

    우리는 보통 감사할 이유가 있을 때 감사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감사하고, 기도한 것이 응답되었을 때 감사하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물론 이런 감사도 귀한 감사입니다.

    하지만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 다른 감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유를 다 알지 못하는데도 마음에서 감사가 흘러나오는 감사입니다.

    무언가 특별히 좋은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속에서 감사가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감사할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저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고백이 흘러나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경험하게 되는 참된 감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감사할 이유가 있을 때의 감사

    우리는 대부분 눈에 보이는 이유를 가지고 감사하는 데 익숙합니다.

    건강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감사하고,

    기도했던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감사하고,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감사하고,

    좋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감사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감사하기도 합니다.

    이런 감사는 자연스럽습니다.

    좋은 일이 생겼는데 감사하지 않는 것보다 감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조금 더 깊어지면 한 가지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감사할 수 있는가?”

    기도했지만 아직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상황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까요?

    저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감사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좋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

    참된 감사는 상황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좋으면 감사하고 상황이 나쁘면 감사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감사는 결국 상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감사는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지금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앞날을 볼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앞날을 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왜 이런 일을 지나고 있는지 알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주님, 지금은 제가 왜 이런 상황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이것이 믿음에서 나오는 감사가 아닐까요?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58559



    이유를 몰라도 감사가 흘러나올 때가 있습니다

    살다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분명 힘든 상황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마음속에서 감사가 올라올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특별히 감사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하나님 앞에 앉아 있으면 마음에서 감사가 흘러나옵니다.

    저는 그런 감사가 참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감사의 근거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변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보다 더 귀한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 기도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믿음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할 때 그 안에는 사실 이런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모든 것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저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제 앞길을 보고 계십니다.”

    “저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보다 더 크신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감사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드릴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감사가 기도보다 먼저 나오기도 합니다.

    “주님, 이것을 해결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다가 어느 순간

    “주님, 그래도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이 조금 달라집니다.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감사한다고 해서 아픔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감사한다고 해서 힘든 일이 힘들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눈물이 나는 상황에서 억지로 웃을 필요도 없습니다.

    아픈데 아프지 않은 척할 필요도 없습니다.

    힘든데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일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픔도 아십니다.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껏 울면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 너무 힘듭니다.”

    “주님,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다 내려놓고 나면, 이상하게 마지막에는 감사의 고백이 남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그 감사가 귀한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문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앞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일을 내가 알 필요가 없다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내가 알지 못하는 내일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가 신뢰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보다 앞서 가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직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직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응답의 결과보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몰라도 흘러나오는 감사

    어쩌면 우리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감사의 이유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이 함께 계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면,

    나중에는 좋은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특별한 이유를 찾지 않아도 마음에서 감사가 흘러나옵니다.

    그저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감사하고,

    오늘도 나와 함께 계시기에 감사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길을 알고 계시기에 감사하고,

    내 삶을 붙들고 계시기에 감사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참된 감사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는 환경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감사할 이유를 찾아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게 좋은 일이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 가운데서도 감사할 이유를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응답되지 않은 기도 때문에 낙심하고 있다면,

    “그래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믿기에 감사합니다.”

    앞날이 보이지 않아 두렵다면,

    “내가 보지 못하는 길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에 감사합니다.”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고백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는 상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을 없던 것으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그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직 답을 얻지 못했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직 이유를 알지 못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내가 지금 상황을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있구나.”


    이유를 몰라도 흘러나오는 감사

    저는 그런 감사가 제 삶에 더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힘든 날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

    응답을 받았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

    모든 이유를 이해한 후에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유를 알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쩌면 진짜 감사는

    “주님, 이것이 좋아서 감사합니다.”

    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 이것이 왜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기에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아무런 이유를 찾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어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어도,

    아직 기다려야 하는 응답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으며 감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를 몰라도 흘러나오는 감사,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진짜 감사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상황을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유를 다 알지 못해도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 부모도 연약한 사람입니다

    부모도 연약한 사람입니다

    몇 년 전, 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하며 있었던 일입니다.

    그 어르신은 오랜 세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기신 분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술은 끊으셨지만, 통풍과 치매까지 찾아와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어느 날 어르신의 두 아드님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은 자녀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해 겪었던 아픔,
    가정 안에서 경험했던 수많은 상처,
    실망과 분노의 기억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아버지가 연약해지고 병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쉽게 이해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며 제 마음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부모도 결국 연약한 사람일 뿐이구나.’


    *하나님은 먼저 상대방이 아닌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를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부모는 강해야 하고,
    부모는 책임져야 하고,
    부모는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알게 됩니다.

    부모도 부족한 사람이었고,
    부모도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고,
    부모도 자신의 연약함과 싸우며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가 상처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해는 용서의 문을 열어 주고,
    용서는 우리의 마음을 자유롭게 해 줍니다.

    그날 한 아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코 변화되시길 기대하는 마음은 없고, 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찾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오랜 세월의 아픔과 갈등, 그리고 자녀로서의 책임감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어쩌면 가족 관계의 회복은 상대방이 완전히 변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사랑의 몫을 다시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되는지 모릅니다.

    그날 대화를 마친 후 저는 오히려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 앞에서 수없이 결심하고 약속했지만 넘어졌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주님께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했지만 결국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상대방의 잘못만 바라보면 마음은 점점 굳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미워하던 사람 속에서도 연약함을 보게 되고, 정죄하던 사람 속에서도 긍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날 저는 어르신의 아드님들보다 오히려 제 자신의 마음을 더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종종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얼마나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려 주신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기다려 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