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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욥,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욥,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욥의 고난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납니다.

    분명히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려움이 찾아오고,
    기도했는데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려고 애쓰는데 오히려 삶이 더 힘들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나는 것입니까?”

    성경의 욥은 바로 그 질문 앞에 서 있었던 사람입니다.

    욥기는 단순히 고난을 잘 견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사람, 욥

    욥기 1장은 욥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자녀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었던 이유가 단순히 자신의 삶이 평안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성경은 욥의 삶을 통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먼저 보여줍니다.

    욥은 고난이 시작되기 전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연이어 일어납니다.

    재산을 잃고, 자녀들을 잃고, 자신의 몸마저 심각한 고통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한순간에 평안했던 삶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욥이 처음 보인 반응은 놀랍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물론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짜 믿음의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욥은 왜 고난을 당했을까?

    우리는 욥기의 처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욥에게 일어난 일의 배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욥 자신은 몰랐습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버린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아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 이런 고난이 찾아왔는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욥기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고난에 대한 전체적인 이유를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면서 쉽게 판단합니다.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일 거야.”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는 것일 거야.”

    욥의 친구들이 바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욥에게 계속해서 그의 고난에는 반드시 죄의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에 욥의 친구들에게 그들의 말이 옳지 않았음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모든 고난을 죄의 결과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고난보다 더 힘든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욥에게 가장 힘든 것은 단순히 재산을 잃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녀를 잃은 슬픔도, 몸의 고통도 너무나 컸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고통은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시는지 모르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응답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때로는 너무나 거칠고 절박한 말까지 쏟아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욥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질문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울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답답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하나님께

    “왜입니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을 떠나는가, 아니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가​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놓친 것

    욥의 세 친구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변호하려 했습니다.

    그들의 말에는 하나님에 관한 옳은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욥의 상황을 자신들이 알고 있는 틀 안에서 해석했습니다.

    “의로운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나고, 악한 사람에게는 고난이 온다.”

    그렇다면 욥에게 고난이 왔으니 욥에게 반드시 숨겨진 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욥의 삶을 바라보시는 방식과 달랐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같은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한 부분을 알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삶 전체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누군가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때로는 설명보다 함께 울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충고보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삶을 어떻게 다루고 계시는지 내가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2519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모든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셨다

    욥이 가장 원했던 것은 설명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셨을 때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의 모든 원인을 설명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창조 세계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욥은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이며,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여기에서 욥기의 놀라운 반전이 나타납니다.

    욥은 상황에 대한 답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하나님께 답을 요구할 때가 많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왜 기도했는데 응답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제가 이런 길을 지나가야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욥기의 가장 깊은 고백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달라졌습니다.

    고난 이전에도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난이 좋은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고난 자체가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우리의 믿음이 깊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어떤 고난은 지나고 나서야 그 시간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왜 침묵하시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떠나셨던 것이 아니라
    제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욥의 회개는 무엇이었을까?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말을 돌이키고 회개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단순히

    “욥에게 큰 죄가 있었기 때문에 고난을 받았고, 마지막에 그 죄를 회개했다.”

    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욥기는 처음부터 욥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욥의 회개는 자신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큰 악을 행했다는 의미라기보다,
    자신이 하나님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것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데 더 가깝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우리의 생각 안에 가두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면 반드시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기도했으니 반드시 이런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내가 옳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신 분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욥의 마지막 회복이 보여주는 것

    욥기의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욥의 삶을 회복시키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잃었던 것들을 다시 얻게 되고, 그의 삶은 다시 회복됩니다.

    하지만 욥기의 결론을 단순히

    “고난을 잘 견디면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주신다.”

    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욥기의 깊은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욥에게 가장 큰 회복은 재산의 회복만이 아니었습니다.

    자녀와 삶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난 이전의 욥은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지나온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도

    우리의 삶에도 욥의 시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묻지만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오히려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욥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계신 것도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설명보다 더 깊은 곳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상황을 이해하는 믿음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욥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

    욥기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실 때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기도의 응답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때만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의심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하나님 그분을 사랑하는가?

    욥기는 이 질문을 우리 앞에 세워 놓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모든 질문에 답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때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자리에서도

    “나는 지금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 모든 것을 알게 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욥은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났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찾아온다면,

    그 시간을 단지 빨리 벗어나야 할 고난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 울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왜입니까?”라고 물어도 됩니다.

    그러나 그 질문을 하나님께 가지고 가십시오.

    그리고 답을 얻기 전에도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하나님께서 설명해 주시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욥의 이야기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욥처럼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어쩌면 믿음의 여정에서 가장 깊은 만남은
    내가 모든 것을 이해했을 때가 아니라,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놓지 않았을 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기다림-왜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즉시 해결하지 않으실까?

    기다림-왜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즉시 해결하지 않으실까?

    기다림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


    문제는 왜 빨리 해결되지 않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만 빨리 해결해 주세요.”

    질병이 낫기를 원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끝나기를 바라며,
    가정의 갈등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 다를 때가 많습니다.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상황은 그대로이고,
    시간은 흘러가는데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질문합니다.

    “왜 하나님은 내 기도에 바로 응답하지 않으실까?”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라, 가장 선한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환경보다 사람을 먼저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는 대부분 환경이 바뀌기를 원합니다.

    문제가 사라지고,
    형편이 좋아지고,
    고통이 끝나는 것을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관심을 두시는 것은 우리의 환경보다 우리의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환경은 언젠가 다시 변하지만,
    변화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문제를 그대로 두신 채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십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은혜이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는 것은 더 큰 은혜입니다.


    *회개하는 죄인과 끝까지 악을 붙드는 사람의 차이

    *잘하던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방법이 아닌 중심을 새롭게 빚으십니다



    성경 속 인물들도 모두 기다림을 경험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은 후 오랜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꿈을 받았지만 노예 생활과 감옥을 거친 후에야 총리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받았고,

    다윗 역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뒤에도 오랜 시간 사울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기다림은 하나님의 침묵이 아니라 하나님의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상황보다 그들의 내면을 먼저 다듬고 계셨던 것입니다.


    기다림이 우리에게 어려운 이유

    현대 심리학에서는 사람은 즉각적인 보상(Instant Gratification) 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스마트폰으로 몇 초 만에 원하는 정보를 찾고,
    온라인 주문으로 하루 만에 물건을 받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기다림에 점점 익숙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우리의 신앙에도 영향을 줍니다.

    기도하면 바로 응답받기를 원하고,
    노력하면 즉시 결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조급함에 맞추어 일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기다림을 통해 인내를 배우게 하시고,
    인내를 통해 성숙한 믿음을 만들어 가십니다.

    성경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씀합니다.

    기다림은 시간을 허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가장 깊이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닙니다

    기도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씨앗은 땅속에서 조용히 자라고,

    아기는 어머니의 태중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성장하며,

    다이아몬드는 오랜 시간의 압력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더 깊은 신뢰를 배우게 하십니다.

    지금의 기다림은 하나님의 외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일 수 있습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57717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기다림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다림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맡겨진 삶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를 멈추지 않고, 말씀을 붙들며, 작은 순종을 이어가는 사람은 비록 환경은 변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 안에서 조금씩 변화되어 갑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변화시키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마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

    기다림 끝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결코 쉬운 시간이 아닙니다.

    오늘 답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은 가장 선한 방법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급함보다 신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언제나 가장 정확한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결론: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나 가장 정확합니다

    우리의 시계는 오늘만 바라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계는 우리의 인생 전체와 영원까지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장 좋은 때를 아십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되지 않아도,
    오늘의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늦게 해결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선한 것을 주시기 위해 가장 완전한 때를 준비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조급함으로 하나님의 시간을 앞서기보다, 오늘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걸어가십시오.

    언젠가 뒤돌아보는 날,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늦게 들으신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응답하고 계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

    혹시 지금 해결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낙심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세 가지를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1.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응답이 늦어진다고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2. 결과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지키십시오.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3. 작은 감사 하나를 기록해 보십시오.

    감사는 문제가 없어졌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도 함께하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감사를 기록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이미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루고 계셨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 “주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인격이시기에 교제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작정하면,
    주님은 결코 침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읽을 때 한 구절이 마음에 깊이 새겨지기도 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평안함과 확신을 주시기도 하며,

    예배를 드리는 중에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꿈을 통해 깨우쳐 주시고,

    믿음의 지체들과의 대화를 통해 필요한 답을 얻게 하시기도 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보게 하시고,

    일상 가운데 주시는 작은 깨달음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가시기도 합니다.


    *주님은 인격이십니다

    *https://manna.or.kr/QT/087-%EC%9D%B8%EA%B2%A9%EC%A0%81%EC%9D%B8-%EC%84%B1%ED%92%88%EC%97%90-%EC%9D%98%ED%95%9C-%EB%B9%84%EC%A0%84/


    주님은 단지 우리가 그분에 대해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실제로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주님도 우리와 함께 걸으며 말씀하시고
    우리의 삶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 음성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씀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성경을 기준으로 분별하고,

    기도하며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별된 말씀 앞에서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순종은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말씀을 외면한다면
    진정한 교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을 마음에 품으며,

    삶 속에서 순종으로 응답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귀 기울일 때,

    우리는 날마다 더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