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고난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납니다.
분명히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려움이 찾아오고,
기도했는데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려고 애쓰는데 오히려 삶이 더 힘들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나는 것입니까?”
성경의 욥은 바로 그 질문 앞에 서 있었던 사람입니다.
욥기는 단순히 고난을 잘 견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사람, 욥
욥기 1장은 욥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자녀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었던 이유가 단순히 자신의 삶이 평안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성경은 욥의 삶을 통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먼저 보여줍니다.
욥은 고난이 시작되기 전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연이어 일어납니다.
재산을 잃고, 자녀들을 잃고, 자신의 몸마저 심각한 고통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한순간에 평안했던 삶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욥이 처음 보인 반응은 놀랍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물론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짜 믿음의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욥은 왜 고난을 당했을까?
우리는 욥기의 처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욥에게 일어난 일의 배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욥 자신은 몰랐습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버린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아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 이런 고난이 찾아왔는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욥기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고난에 대한 전체적인 이유를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면서 쉽게 판단합니다.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일 거야.”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는 것일 거야.”
욥의 친구들이 바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욥에게 계속해서 그의 고난에는 반드시 죄의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에 욥의 친구들에게 그들의 말이 옳지 않았음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모든 고난을 죄의 결과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고난보다 더 힘든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욥에게 가장 힘든 것은 단순히 재산을 잃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녀를 잃은 슬픔도, 몸의 고통도 너무나 컸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고통은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시는지 모르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응답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때로는 너무나 거칠고 절박한 말까지 쏟아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욥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질문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울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답답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하나님께
“왜입니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을 떠나는가, 아니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가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놓친 것
욥의 세 친구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변호하려 했습니다.
그들의 말에는 하나님에 관한 옳은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욥의 상황을 자신들이 알고 있는 틀 안에서 해석했습니다.
“의로운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나고, 악한 사람에게는 고난이 온다.”
그렇다면 욥에게 고난이 왔으니 욥에게 반드시 숨겨진 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욥의 삶을 바라보시는 방식과 달랐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같은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한 부분을 알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삶 전체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누군가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때로는 설명보다 함께 울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충고보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삶을 어떻게 다루고 계시는지 내가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2519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모든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셨다
욥이 가장 원했던 것은 설명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셨을 때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의 모든 원인을 설명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창조 세계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욥은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이며,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여기에서 욥기의 놀라운 반전이 나타납니다.
욥은 상황에 대한 답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하나님께 답을 요구할 때가 많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왜 기도했는데 응답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제가 이런 길을 지나가야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욥기의 가장 깊은 고백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달라졌습니다.
고난 이전에도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난이 좋은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고난 자체가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우리의 믿음이 깊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어떤 고난은 지나고 나서야 그 시간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왜 침묵하시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떠나셨던 것이 아니라
제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욥의 회개는 무엇이었을까?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말을 돌이키고 회개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단순히
“욥에게 큰 죄가 있었기 때문에 고난을 받았고, 마지막에 그 죄를 회개했다.”
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욥기는 처음부터 욥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욥의 회개는 자신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큰 악을 행했다는 의미라기보다,
자신이 하나님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것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데 더 가깝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우리의 생각 안에 가두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면 반드시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기도했으니 반드시 이런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내가 옳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신 분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욥의 마지막 회복이 보여주는 것
욥기의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욥의 삶을 회복시키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잃었던 것들을 다시 얻게 되고, 그의 삶은 다시 회복됩니다.
하지만 욥기의 결론을 단순히
“고난을 잘 견디면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주신다.”
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욥기의 깊은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욥에게 가장 큰 회복은 재산의 회복만이 아니었습니다.
자녀와 삶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난 이전의 욥은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지나온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도
우리의 삶에도 욥의 시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묻지만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오히려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욥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계신 것도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설명보다 더 깊은 곳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상황을 이해하는 믿음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욥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
욥기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실 때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기도의 응답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때만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의심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하나님 그분을 사랑하는가?
욥기는 이 질문을 우리 앞에 세워 놓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모든 질문에 답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때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자리에서도
“나는 지금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 모든 것을 알게 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욥은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났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찾아온다면,
그 시간을 단지 빨리 벗어나야 할 고난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 울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왜입니까?”라고 물어도 됩니다.
그러나 그 질문을 하나님께 가지고 가십시오.
그리고 답을 얻기 전에도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하나님께서 설명해 주시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욥의 이야기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욥처럼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어쩌면 믿음의 여정에서 가장 깊은 만남은
내가 모든 것을 이해했을 때가 아니라,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놓지 않았을 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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