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newznls6857

  • 하나님의 은혜는 나 한 사람을 위한 것일까?

    하나님의 은혜는 나 한 사람을 위한 것일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제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흔적들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글이 하나 둘 쌓여 어느덧 40편이 되었고, 문득 이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베푸신 은혜는 과연 나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일까?”

    사실 저는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간증을 하다 보면 자칫 하나님보다 자신이 드러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려다가 자신의 경험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글을 쓰면서 종종 고민합니다.

    “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맞을까?”

    “이 글이 정말 하나님을 드러내는 글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록하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지나온 길에는 제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돈의 문제를 통해 저를 다루셨고,

    때로는 가족 관계를 통해 저를 변화시키셨으며,

    때로는 직장과 일터를 통해 인내와 섬김을 가르치셨습니다.

    제가 계획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씩 인도하신 길이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는 단순히 그 사람 한 명만을 위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증상이 아니라 원인을 보라, 해결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성경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며 그를 통해 많은 사람이 복을 받게 하셨고,

    베드로를 회복시키셔서 다른 사람을 세우게 하셨으며,

    바울을 만나 주셔서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지게 하셨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유명한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행하신 일들을 통해 다른 누군가가 위로를 얻고, 용기를 얻고, 하나님을 찾게 된다면 그것 또한 귀한 열매일 것입니다.

    사실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저를 보았으면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나도 하나님을 알고 싶다.”

    “나도 저분이 만난 하나님을 만나 보고 싶다.”

    “나도 하나님을 믿고 싶다.”

    누군가가 이런 마음의 동기를 얻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글이 아닙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제 삶 속에서 행하신 일들을 가능한 한 정직하게 기록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저는 완벽한 모습보다는 부족했던 모습, 실패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붙들어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록하려고 합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제 이야기가 아니라 제 삶 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분도 이렇게 고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도 하나님을 알고 싶다.”

    “나도 하나님을 믿고 싶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혜는 처음부터 저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기록을 이어 갑니다.

    감사합니다. 🙏✍️📖

  • 영혼은 왜 중요할까요?

    영혼은 왜 중요할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건강도 중요하고,
    가정도 중요하며,
    직장과 경제적인 안정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영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말씀은 영혼의 가치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크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영혼은 사람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을 외모나 능력, 성취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을 그렇게 정의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단순히 몸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명을 불어넣으신 영적인 존재입니다.

    몸은 세월이 지나면 늙고 약해지지만,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영혼은 사람에게 붙어 있는 부속품이 아니라,
    사람 존재의 가장 깊은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과 영이 거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영혼은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과 교제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감동을 받고,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위로와 평안을 경험하는 모든 과정은 영혼 안에서 일어납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영혼이 깨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고,
    영혼이 메말라 있는 사람은 형식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외적인 모습보다
    영혼의 상태를 먼저 보십니다.

    영혼은 영원을 향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이 땅의 삶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들만을 위해 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성공과 명예,
    재산과 인정,
    안정된 삶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모두 얻었다 하더라도
    영혼이 병들고 하나님과 멀어진다면
    결코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영혼이 살아 있어야
    삶의 모든 축복도 올바르게 누릴 수 있습니다.

    영혼은 가장 깊은 상처와 회복을 경험합니다

    사람은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영혼이 지치고 상해 있을 수 있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
    이유 없는 무기력,
    반복되는 관계의 갈등,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힘든 마음.

    이런 모습들은 종종 영혼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영혼이 회복되면
    환경이 완전히 바뀌지 않아도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감사할 수 있고,
    소망을 품을 수 있으며,
    다시 걸어갈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혼을 먼저 다루십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상황을 바꿔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많은 경우
    문제를 먼저 해결하시기보다
    우리의 영혼을 먼저 만지십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바로 서면 삶은 따라오지만,
    영혼이 무너지면 어떤 축복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은 때로 느려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외적으로 꾸미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을 건강하게 세우기 위한 사랑의 과정입니다.

    맺으며

    우리는 몸을 돌보기 위해 시간을 쓰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은 어떨까요?

    오늘 하루,
    잠시라도 하나님 앞에 조용히 서서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은
    우리가 이루어 낸 성과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는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건강한 영혼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 영혼이 살아 있을 때,
    우리의 삶도 비로소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가게 됩니다.
    🙏❤️

  • 대체 불가능한 사람

    대체 불가능한 사람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저 사람은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야.”

    처음에는 이 말이 능력이 뛰어나거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세상에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의 자리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고, 직책과 업무도 누군가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떠나면 단순히 업무의 빈자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공백이 생깁니다.

    역할보다 사람이 중요한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로 설명됩니다.

    직장에서는 직책으로,
    사회에서는 능력으로,
    가정에서는 맡은 책임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다릅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빠지면 분위기가 달라지고,
    관계의 균형이 흔들리며,
    사람들이 의지하던 중심이 사라진 것 같은 공허함이 생깁니다.

    이는 단순히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영이 부드러운 사람

    *https://www.christiandaily.co.kr/

    사람마다 고유한 결이 있습니다

    대체 불가능함은 재능이나 성과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내면에서 만들어진 고유한 결에서 나옵니다.

    같은 상황을 만나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같은 문제 앞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며,
    성공과 실패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다릅니다.

    이러한 내면의 결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고민하고,
    실패를 겪고,
    인내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형성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기술은 배울 수 있어도, 그 사람의 삶의 결까지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습니다.

    곁에 있으면 안정감을 주는 사람

    세상은 종종 사람을 능력과 성과로 평가합니다.

    필요할 때 사용하고,
    효율이 떨어지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성과만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함께 있으면 신뢰가 생기며,
    어려운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이 됩니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가 기준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숫자나 기록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품처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고유하게 창조하시고, 그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을 맡기십니다.

    모세는 지도자가 많던 시대에도 하나님과 대면하며 백성을 이끌었던 특별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왕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순종하는 마음의 태도 때문에 기억됩니다.

    에스더 역시 왕후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를 용기 있게 감당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세상은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때로는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는 가장 귀하게 쓰임받기도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특별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삶이 쌓여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람으로 세워 가십니다.

    그들의 자리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나타내신 방식은 누구도 완전히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신실함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재능과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많은 사람 앞에서 일하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섬깁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자리인가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정은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린 신실한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리에서 사랑과 정직, 책임감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태복음 25:21)

    이 칭찬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가장 귀한 평가일 것입니다.

    중요한 깨달음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맡겨진 길을 끝까지 걸어간 사람들이었습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는 시간에 깊어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단단해지며,
    결국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기준점이 됩니다.

    저는 이 생각을 하면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누군가를 흉내 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모습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시는 고유한 뜻이 있습니다.

    어쩌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길을 끝까지 떠나지 않은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는 매우 소중한 사람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남기게 됩니다. ✨🙏

  • 재롱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재롱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작년 6월, 뜨거운 여름날 재롱이와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어린 길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작고 여린 몸으로 혼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아직 세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어린 생명이 차가운 아파트 단지 한편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습니다.

    길고양이는 흔히 볼 수 있고, 우리가 모든 생명을 다 돌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동생이 급히 구조했고, 가족들은 정성껏 치료와 돌봄을 시작했습니다.

    작은 생명이 다시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돌보았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과 재롱이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의 재롱이는 참 작고 약했습니다

    처음 발견했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의 재롱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작은 몸,

    힘없는 움직임,

    아직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눈.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재롱이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먹을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곳이 필요했고,

    아픈 몸을 치료해 줄 사람이 필요했고,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 줄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경험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재롱이에게 가족들이 해 준 것은 아주 작은 것들이었습니다.

    먹을 것을 챙겨 주고,

    몸을 살펴주고,

    아플 때 치료해 주고,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돌봄이 한 생명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랑을 받으면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약하고 불안해 보이던 재롱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회복되면서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사람을 대하는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을 놓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고,

    배고플 때 먹을 것이 있고,

    아플 때 돌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안정되어 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것을 받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구나.

    사랑을 받으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고,

    다른 존재를 대하는 모습도 달라집니다.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던 존재가 안전함을 경험하면 조금씩 경계심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재롱이를 바라보면서 정서가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받는 경험은 마음의 기초가 됩니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자라면서 가장 먼저 경험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너는 소중한 아이야.”

    “네가 있어서 기뻐.”

    “네가 잘하지 못해도 나는 너를 사랑해.”

    이런 경험을 충분히 한 아이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안정감을 배워갑니다.

    반대로 사랑받아야 할 시기에 충분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인정받아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평가에 지나치게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정서는 단순히 기분이 좋은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것,

    어려움이 찾아와도 완전히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을 갖는 것,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마음의 힘을 갖는 것도 건강한 정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서 기록했던 것처럼 정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생각과 선택, 인간관계와 삶의 방향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재롱이를 보면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재롱이를 돌보면서 문득 사람의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몸만 먹고 자라는 존재가 아닙니다.

    마음도 먹고 자랍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먹고,

    관심을 먹고,

    격려를 먹고,

    사랑을 먹으며 자랍니다.

    반대로 차가운 말과 무관심,

    반복되는 거절과 상처,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경험이 마음에 쌓이면 정서가 지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자리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금 더 따뜻한 말을 건넬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가족에게는 더 그렇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고 표현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마음속에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표현되어야 전달됩니다.

    “사랑해.”

    “고마워.”

    “네가 있어서 참 좋아.”

    “힘들었지?”

    “괜찮아.”

    이런 짧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은 존재를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재롱이가 처음부터 특별히 용감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처음부터 사람을 믿었던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저 작은 생명으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재롱이에게 가족의 돌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재롱이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랑에는 참 신비한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랑은 단순히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행위가 아닙니다.

    “너는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야.”

    “너는 버려진 존재가 아니야.”

    “네가 여기 있어도 괜찮아.”

    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메시지를 반복해서 경험하면 마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한 존재의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의 삶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먼저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재롱이를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는 재롱이처럼 연약한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어려움이 찾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마음이 무너지고,

    때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때로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릴 만큼 힘든 시간을 지나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잘해서 사랑하시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많이 이루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사랑하십니다.

    이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내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내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정서-보이지 않지만 인생을 움직이는 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

    재롱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롱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구나.”

    처음에는 버려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작은 길고양이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눈에 발견되었고,

    누군가의 손에 구조되었고,

    가족의 사랑과 돌봄을 받으며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실패를 경험하고,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진짜 가치가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는 다른 사람의 평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재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귀합니다.


    상처받은 마음에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마음속에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가족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힘들어하고,

    누군가는 반복되는 실패 때문에 자신을 믿지 못합니다.

    또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평생 애쓰면서 살아갑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때로 충고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마음을 강하게 먹어.”

    “다 지나간 일이잖아.”

    라는 말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많이 힘들었구나.”

    라는 따뜻한 공감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상처를 단번에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상처 입은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곁에 있어 주고,

    정답을 알려 주지는 못하더라도 들어 주고,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품어 주는 사람 말입니다.


    사랑받은 존재는 다시 사랑을 흘려보냅니다

    재롱이가 건강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또 하나의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을 받은 존재는 사랑을 다시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돌봄을 받은 아이가 다른 존재를 돌볼 줄 알게 되고,

    충분히 존중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알게 되며,

    충분히 용서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에 무엇이 채워져 있느냐에 따라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깊이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존재라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사랑받은 경험이 또 다른 사랑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작은 생명을 통해 배운 하나님의 마음

    재롱이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아팠는지 설명할 수도 없고,

    우리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살아 있고,

    먹고,

    움직이고,

    가끔 우리 곁에 와 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재롱이를 사랑합니다.

    무언가를 해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 드렸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자격보다 먼저 찾아온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증명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미 사랑받고 있는 존재입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해 보면 좋겠습니다

    재롱이를 돌보는 작은 일에서 시작된 생각이 여기까지 이어졌습니다.

    한 생명을 살리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따뜻한 공간을 마련해 주고,

    먹을 것을 챙겨 주고,

    아픈 곳을 치료해 주고,

    곁에 있어 주는 것.

    어쩌면 사랑은 이렇게 작은 모습으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 보십시오.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보십시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내가 기도하고 있어.”라고 말해 주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게도 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사람들의 사랑이 부족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까지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모르시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내가 작고 연약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작게 여기시는 것도 아닙니다.


    재롱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처음 재롱이를 보았을 때는 작은 길고양이 한 마리였습니다.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되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재롱이는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었습니다.

    작은 생명을 돌보는 기쁨을 알게 해 주었고,

    사랑이 한 존재를 얼마나 달라지게 하는지 보여 주었으며,

    무엇보다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롱이를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그리고 이 말을 재롱이에게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들려주고 싶습니다.

    당신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세상이 당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못해도,

    사람들이 당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도,

    지금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당신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알게 될 때,

    상처받은 정서도 조금씩 회복되고,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지며,

    삶을 바라보는 방향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앞서 나누었던 것처럼 정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생각과 관계와 삶의 방향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마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관계, 말씀과 기도 가운데 조금씩 회복되어 갑니다.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통해 배운 사랑.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생명을 통해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도 내가 사랑하는 아이란다.”

    오늘도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사랑을 다시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랑받은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깊이 아는 사람은 사랑을 흘려보내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재롱이가 사랑받으며 건강하게 자라난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를 바라보는 누군가가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은 참 사랑받고 자란 사람 같아.”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아름다운 흔적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요.


  • 하나님은 먼저 상대방이 아닌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상대방이 아닌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믿음의 가정을 꿈꾸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제 마음속에는 한 가지 분명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죽어서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가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이 점점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하여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소망도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을 함께 믿고, 함께 기도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가정을 꿈꾸었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의 저는 그런 가정이라면 갈등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면 서로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실제 삶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갈등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같은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모든 가치관이 같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같은 말씀을 듣고 같은 예배를 드려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하는 방식은 서로 다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의 모양은 있지만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를 먼저 생각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답답했습니다.

    왜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이렇게 다를까?

    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상대방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왜 나는 이것이 너무 분명하게 보이는데 상대방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반복되면서 마음이 힘들어졌습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이 조금만 달라지면 우리 가정이 훨씬 평안해질 텐데…”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남편의 마음을 바꾸어 주세요.”

    “하나님, 남편이 이것을 깨닫게 해주세요.”

    저는 하나님께서 상대방을 먼저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상대방보다 먼저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남편을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께서는 남편의 문제가 아니라 제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 생각을 주장하기 전에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할까?”

    를 먼저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상대방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문제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조금씩 다른 질문을 하게 하셨습니다.

    “네 생각이 맞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냐?”

    “아니면 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냐?”

    그 질문 앞에서 제 마음이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왜 저럴까?”라는 질문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보면 답답함과 분노가 먼저 올라왔습니다.

    “왜 저렇게 하지?”

    “왜 저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다루시면서 조금씩 질문이 달라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이렇게 묻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 사람은 왜 저럴까요?”

    같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질문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상대방을 판단하기 위한 질문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 이해를 구하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 묻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상대방의 행동 뒤에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상처가 보이고,

    두려움이 보이고,

    자라온 환경이 보이고,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의 모든 행동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동의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무조건 옳다고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신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마음의 방향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1508


    하나님은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가르쳐 주신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상대방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너 자신을 살펴보아라.”

    상대방의 문제는 정말 쉽게 보입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잘 보입니다.

    그 사람의 말투도 보이고,

    습관도 보이고,

    부족한 점도 보이고,

    고쳐야 할 부분도 너무나 잘 보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문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 시선을 상대방에게서 제 자신에게로 돌리게 하셨습니다.

    “나는 이 문제에서 정말 자유로운가?”

    “나에게는 이런 모습이 전혀 없는가?”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정직한가?”

    이 질문 앞에 서면 상대방을 함부로 판단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상대방에게 요구했던 것이 사실은 나에게도 필요한 것이었음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인내하라고 말하면서 나는 인내하지 못하고 있었고,

    상대방에게 사랑으로 말하라고 하면서 나는 정작 내 말 속에 사랑이 부족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 앞에서 제 마음이 낮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옳은가”보다 “어떤 마음인가”를 보게 하셨습니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우리는 쉽게 누가 옳은지를 따집니다.

    “누가 잘못했는가?”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

    “누가 사과해야 하는가?”

    물론 잘잘못을 분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너의 마음은 어떠하냐?”

    내가 옳다고 하더라도 교만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내 말이 맞더라도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바른 것을 이야기하고 있어도 사랑 없이 말한다면 그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닫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게 옳은 말을 하는 것보다 옳은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무엇을 말할까?”보다 “어떻게 말할까?”

    그 후부터 저는 하나님께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라고만 묻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주님,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라고 묻게 되었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상처를 주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을 열게 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말하기 전에 기도하고,

    감정이 올라올 때 바로 말하지 않고,

    내가 정말 해야 할 말인지 하나님께 먼저 묻고,

    필요한 말이라면 어떤 마음과 어떤 태도로 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아무리 설명하고 설득해도 하나님께서 만지시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는 노력보다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문제를 중보기도의 제목으로 바꾸게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부족한 모습을 보면 마음속으로 불평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다루시면서 그것을 기도의 제목으로 바꾸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왜 저 사람은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 때,

    그 사람을 판단하는 대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 사람의 마음을 만져 주세요.”

    “주님, 제가 보지 못하는 그 사람의 아픔을 알게 해주세요.”

    “주님, 제가 그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놀랍게도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제 마음부터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상대방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는데 내가 달라집니다.

    상대방의 행동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달라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갈등을 통해서도 우리를 빚으십니다

    우리는 어려운 관계가 생기면 그 관계가 빨리 끝나거나 상대방이 빨리 변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 그 관계를 통해 나를 빚어 가십니다.

    인내를 배우게 하시고,

    용서를 배우게 하시고,

    경청을 배우게 하시고,

    겸손을 배우게 하시고,

    사랑을 배우게 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십니다.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관계가 힘들고 마음이 상할 때는 우리의 진짜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쉽게 판단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내 생각을 주장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상대방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는지를 말입니다.

    그래서 갈등은 힘든 시간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보여주시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


    내가 옳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한 가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항상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진리는 중요합니다.

    잘못된 것을 옳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관계를 무너뜨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닫게 만든다면, 과연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문제를 바라볼 때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

    보다

    “하나님께서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원하실까?”

    를 생각하려 합니다.

    이 질문 하나가 제 마음을 많이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은 상대방을 통해서도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힘들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하나님께서 제 삶에 허락하신 하나의 배움의 자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의 부족함을 통해 나의 부족함을 보게 하셨고,

    그 사람의 연약함을 통해 나의 연약함을 보게 하셨으며,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사람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을 조금씩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은 내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잘못한 부분을 회개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필요한 말을 지혜롭게 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제 마음에도 조금씩 자유가 생겼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갈등이 없는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어릴 때 꿈꾸었던 믿음의 가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믿음의 가정이라면 갈등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갈등이 없는 가정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가정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살아가면서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이 생겼을 때 하나님을 제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 감정만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님께 변화받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오랜 시간 관계를 통해 배우고 있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상대방이 아닌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가장 큰 가르침은 이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기 전에 먼저 네가 나에게 변화받아라.”

    저는 처음에는 상대방의 변화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해 제 마음부터 만지셨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상대방의 상처를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중보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자신을 먼저 살피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관계의 문제를 만날 때 예전과 같은 질문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 저 사람은 저럴까?”

    에서 멈추지 않고,

    “주님, 이 일을 통해 제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라고 묻고 싶습니다.

    그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지금도 하나님께 배우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글을 쓴다고 해서 제가 모든 관계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 역시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때로는 감정이 먼저 올라오기도 하고,

    상대방의 말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며,

    내 생각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돌아보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합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보여 주세요.”

    “제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제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합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부터 고치려고 합니다.

    상대방이 먼저 변해야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

    그것이 제가 지금도 배우고 있는 신앙의 길입니다.


    마무리하며

    어릴 적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만나 믿음의 가정을 이루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게 더 깊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단순히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함께 배워가는 자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방을 먼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상대방의 부족함을 발견했을 때 나의 부족함도 함께 돌아보는 것,

    상대방의 상처를 발견했을 때 정죄하기보다 기도하는 것,

    말하고 싶을 때 먼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변화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만났던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들은 저를 힘들게만 했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를 가르치고 빚어 가셨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상대방의 문제를 통해서도 일하셨지만,

    무엇보다 먼저 제 안을 다루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배우고 있습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상대방의 잘못을 찾는 것보다 내 마음을 살피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내 생각을 관철시키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혹시 지금 관계의 문제로 힘든 시간을 지나고 계신가요?

    상대방이 변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하나님께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하나님, 상대방에게 무엇을 하시려는지보다 먼저 제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신지 보여주세요.”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일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상대방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교만을 내려놓게 하시고,

    상대방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듣는 법을 가르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오히려 우리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며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만 가르치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나를 먼저 가르치고 계셨구나.”

    오늘도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상대방만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 이 상황을 통해 먼저 저를 가르쳐 주세요.”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환경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때로는 어려운 관계 속에서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실을 믿으며 오늘도 하나님께 배우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

  •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역의 자리보다,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먼저 우리를 빚어 가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역의 자리보다,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먼저 우리를 빚어 가신다

    최근 문득 예전에 기록해 두었던 글들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오래된 기록들을 하나씩 넘겨보다 보니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지금에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고,

    내가 원했던 길과 전혀 다른 곳에 서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모든 시간이 그냥 흘러간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자리에서 저를 훈련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가 바로 2012년의 기록이었습니다.


    사역을 기다리던 때, 뜻밖의 직장에 들어가다

    2012년 당시 저는 직장생활 3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그중 2년은 우체국 FC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시작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부터 보험설계사가 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FC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 활용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시험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제야 보험설계 업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경제적인 개념도 충분하지 않았고,

    보험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었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속 갈등도 컸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던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사역의 문을 열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저를 어떤 사역의 자리로 부르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싶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는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을 구분하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저는 교회 안에서 사역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험을 공부하고 고객을 만나야 하는 직장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왜 사역하지 않고 이런 일을 하지?”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되었습니다.

    누가 직접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왜 사역하지 않고 이런 일을 하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왜 보험 일을 하지?”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왜 이런 곳에 와 있는 걸까?”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장소를 제가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이 일이 정말 주님께서 허락하신 길이라면 알게 해 주세요.”

    저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제 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76165


    하나님께서 제게 먼저 가르치신 것

    그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너의 힘과 계획을 내려놓고 나를 의지하는 법을 가르쳐 왔는데, 왜 또 네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두려워하느냐?”

    그 말씀 앞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하나님께서 사역을 맡겨 주시기를 기다리면서도 정작 제 삶에서는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잘할 수 있는 일이면 마음이 편했고,

    자신 없는 일이면 두려웠습니다.

    준비가 충분하면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인지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제가 준비되지 않은 자리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왜였을까요?

    어쩌면 그곳에서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어서 제 마음에 분명한 깨달음이 왔습니다.

    “교회에서 사역자라는 이름으로 하는 일만이 나의 일이 아니다.”

    그 말씀은 제 신앙의 관점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는 거룩한 자리와 세속적인 자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하나님을 위한 일과 세상에서 하는 일을 구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직장에서 하는 일은 생계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게 새로운 관점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장에서도 일하십니다.

    시장에서도 일하시고,

    가정에서도 일하시며,

    공장에서도 일하시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있느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누구를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일 것입니다.

    보험을 판매하는 일을 하더라도 정직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습니다.

    고객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생산직으로 일하면서도 함께 일하는 사람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가족을 돌보면서도 사랑과 인내를 배울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어쩌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사역인지도 모릅니다. 🌿




    우체국 FC 생활을 통해 배운 것

    결국 저는 우체국 FC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보험에 대해 공부해야 했고,

    사람을 만나야 했고,

    제가 잘 모르는 경제적인 개념도 배워야 했습니다.

    때로는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 단순히 보험을 판매하는 방법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법을 가르치셨고,

    사람마다 형편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배우는 것도 훈련이었습니다.

    부족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훈련이었습니다.

    내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도하는 것도 훈련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그 2년은 단순히 직장생활 2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준비시키신 2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통해 사람을 먼저 빚으십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명을 주시면 그때부터 훈련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순서가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사람됨을 다루시고,

    그 후에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을 맡기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려면 능력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내가 필요하고,

    겸손이 필요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자신을 절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특별한 사역의 자리로 보내시기 전에 먼저 평범한 삶 속에서 우리를 훈련시키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직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에서,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품을 다듬어 가십니다.


    그리고 또 다른 직장으로 보내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는 또 다른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우체국 FC와는 완전히 다른 일이었습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작은 단자를 현미경으로 확대하여 불량과 양품을 구분하는 생산직 업무였습니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 보험설계 업무와는 정반대의 일이었습니다.

    한쪽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일이었고,

    다른 한쪽은 현미경을 바라보며 작은 부품 하나하나를 살펴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동일했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사람을 통해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웃음에 그늘이 없네요”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분이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웃음에 그늘이 없네요.”

    그리고는 제게 어려움 없이 살아온 사람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언니도 신앙생활 하시잖아요.”

    그러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웃음의 그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한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사람의 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배웠습니다.

    누군가는 밝게 웃고 있어도 마음속에 깊은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혼자 감당하고 있는 아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왜 저를 그곳에 보내셨는지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옳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마다 말투가 다르고,

    음성이 다르고,

    살아온 인생의 색깔도 모두 다릅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고,

    같은 상황을 경험해도 느끼는 감정이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옳은 말 몇 마디가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사람을 만날 때 조금 더 천천히 듣고 싶어졌습니다.

    내가 무엇을 말해 줄 것인가보다,

    이 사람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먼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필요한 사람인지,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하나를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대하실 때 단순히 우리의 문제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는지,

    어떤 상처 때문에 넘어지는지,

    말하지 못하는 마음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삶의 현장은 하나님의 훈련장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저를 특별한 사역의 자리에서만 훈련하지 않으셨습니다.

    보험 일을 하던 자리에서도,

    생산직 공장에서 일하던 자리에서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저를 다루시고 빚어 가셨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저

    “왜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할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면 왜 이런 곳에 있게 하실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자리에서 저를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제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가르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역을 너무 좁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역”이라고 하면 교회 안에서 하는 특별한 일을 먼저 떠올립니다.

    설교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선교하고,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는 것을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귀한 사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역은 그보다 훨씬 넓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으로 돌보는 것도 사역이 될 수 있고,

    아버지가 가정을 책임지는 것도 사역이 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정직하게 일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힘든 사람을 위로하는 것도,

    작은 친절을 베푸는 것도,

    내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얼마나 크고 특별하게 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하루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오늘 내가 서 있는 직장이 평범해 보일 수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일하십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

    오늘 내가 해야 하는 일,

    오늘 내가 감당해야 하는 작은 책임,

    오늘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빚어 가시는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께서 나를 크게 사용하실 날”만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고 계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만나는 한 사람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것,

    오늘 맡은 일을 정직하게 감당하는 것,

    오늘 힘든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오늘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삶의 예배일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은 사명을 주시기 전에 사람을 준비시키십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무엇인가를 맡겨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제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에게는 지식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기다릴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힘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믿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다리게 하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자리로 바로 보내지 않으십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게 하십니다.

    원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결코 낭비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길 사람을 준비시키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혹시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요?

    내가 원했던 일이 아닌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곳에 두신 이유를 지금 당장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씨앗이 땅속에 있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럴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마음과 성품과 믿음을 준비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지금의 삶도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가 서 있는 자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보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빚고 계시는가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직장에 있다면 그곳에서 배우고,

    가정에 있다면 그곳에서 배우고,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 관계 속에서 배우고,

    힘든 일을 만나면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묻습니다.

    “주님, 이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이 질문이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없애 달라고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는지도 구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삶의 현장을 다르게 바라봅니다

    예전에는 특별한 사역의 자리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맡기신 하루가 있다면,

    그 하루 자체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역의 자리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직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시간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도,

    작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시간도,

    하나님께서는 모두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훨씬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 일하시는 분입니다.


    마무리하며

    이제 와서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저를 준비시키고 계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2년 우체국 FC 생활도,

    그 후 생산직으로 일했던 시간도,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나누었던 대화도,

    당시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모든 시간이 하나의 과정처럼 이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을 통해 돈을 버는 방법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가르치셨고,

    업무를 통해 성공하는 방법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치셨으며,

    특별한 사역을 시작하는 방법보다 삶 자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역의 자리보다,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먼저 우리를 빚어 가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맡기시기 전에 먼저 사람을 준비시키십니다.

    어떤 사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을 다루십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기 전에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치시고,

    우리가 누군가를 섬기기 전에 먼저 낮아지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든지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환경이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꿈꾸었던 길과 너무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라면 그곳 역시 하나님의 훈련장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 역시 은혜의 자리일 수 있습니다. 🌿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가르치실 수도 있고,

    오늘 내가 감당하는 작은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의 성품을 다듬으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 경험하는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인내를 가르치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 빨리 지금의 자리를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 나는 여기 있는가?”

    라는 질문만 하기보다,

    “하나님,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물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특별한 사역의 날을 위해,

    오늘의 평범한 하루를 사용하여 우리를 준비시키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의 자리가 작아 보인다고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리라면 평범한 자리도 거룩한 훈련의 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미처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모든 일상 속에서

    우리보다 먼저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역의 자리보다,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먼저 우리를 빚어 가십니다.

    그리고 언젠가 뒤를 돌아보게 될 때,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는 왜 그곳에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이미 나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오늘의 평범한 하루도 하나님 손 안에서는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오늘의 직장도,

    오늘의 가정도,

    오늘의 관계도,

    오늘의 기다림도,

    오늘의 작은 책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어 가시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감사함으로 바라보며,

    “주님, 제가 어디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주님을 배우게 해 주세요.
    제가 무엇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해 주님을 닮아가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빚어 가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

    아멘 🙏

  •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최근에 수년 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블로그가 놀라울 정도로 쉽게 개설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떤 내용으로 채워야 할지, 사람들이 과연 읽어 줄지, 앞으로 꾸준히 운영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있었지만 쉽게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준비되면 시작해야지.’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때 시작해야지.’

    ‘시간이 여유로워지면 그때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시간만 길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 마음에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먼저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완벽하게 준비된 후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에 순종하여 먼저 한 걸음을 내딛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시작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쉽게 풀렸습니다.

    하나하나 길이 열렸고, 필요한 것들이 채워졌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면서 저는 이것이 단순히 제가 블로그를 하나 만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전도서에는 모든 일에 때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아직 그때가 아닐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시작할 때를 열어 놓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의 때가 항상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만들고 싶어 했던 블로그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이제는 충분히 준비되었으니 시작해도 되겠다.’

    라는 의미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주신 것은 조금 달랐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늦추다 보면 지금 주시는 은혜와 감동을 놓칠 수도 있으니,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라.’

    는 마음이었습니다.

    어쩌면 순종은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움직이는 사람이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결과를 보고 순종하고 싶어 합니다

    사실 우리는 순종하기 전에 결과를 알고 싶어 합니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알고 싶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데 아무런 결과가 없으면 어떻게 할지도 걱정합니다.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하나님, 먼저 결과를 보여 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과를 먼저 보여 주시기보다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라고 말씀하실 때가 많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든 것을 알고 출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이 먼저 갈라진 후에 발을 내딛은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물에 발을 담갔을 때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는 길이 열리면 걸어가겠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 걸어가면 길을 열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나는 앞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십니다.’

    ‘나는 결과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결과까지 알고 계십니다.’

    이것이 믿음이 아닐까요?

    그래서 순종은 때로 우리의 계산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맞는 것 같고, 내 경험으로는 저 방법이 더 나은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면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순종하고 걸어가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순종하여 한 걸음을 내딛고 나면 그때부터 보이지 않았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막막했습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일까?’

    수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걸음을 내딛고 보니 그다음 길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한 걸음 더 내딛으니 또 다른 길이 열렸습니다.

    그때 깨닫게 됩니다.

    내가 길을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길을 내가 뒤늦게 따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블로그도 그런 과정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었지만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마음을 움직이시고 한 걸음을 내딛게 하시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준비되었습니다.

    글을 쓰게 되었고, 하나의 글이 또 다른 글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제 안에 이런 확신이 생겼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고 계셨구나.’

    제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하나님께서 먼저 제 마음에 씨앗을 심으셨고 때가 되었을 때 그것을 꺼내어 시작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보다 순종을 보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글을 잘 써서가 아닙니다.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알아서도 아닙니다.

    그저 제 삶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기록하고, 제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때로는 제 글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표현이 서툴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읽어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해 이 일을 시작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마음에 순종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결과까지 제가 책임지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는 제 열심의 결과라기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드리고 싶어 합니다.

    좋은 예배를 드리고 싶고, 많은 일을 하고 싶고,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부활의 영광만 누리려 할 수는 없습니다.

    희생 없이 헌신을 말할 수 없고, 순종 없이 믿음을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이전에 기록했던 ‘십자가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라는 글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우리의 예배와 신앙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되려면 결국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예배당 안에서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배가 끝난 후 우리의 삶에서 그 고백이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순종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9581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분별하는가?|성경으로 분별하기


    순종은 거창한 일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말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사명을 받아야 하고, 대단한 일을 해야 하며, 많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은 때로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정직하게 하는 것.

    내게 맡겨진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말씀하신 것을 알고도 미루지 않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신 작은 감동을 외면하지 않는 것.

    어쩌면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그런 작은 순종 가운데 하나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열매를 맺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앞으로 이 블로그가 어떻게 사용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게 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일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 과정 또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저는 씨를 뿌릴 뿐입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모든 결과를 만들어 내려고 하면 금방 지치겠지만,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며 걸어간다면 오늘 해야 할 한 걸음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에 너무 흔들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숫자와 결과만 바라보며 낙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잃지 않고, 한 편의 글을 쓰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행하신 일을 진실하게 기록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보다 한 사람에게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전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순종하는 길이 사는 길입니다

    제 삶을 돌아보아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던 순간들은 대부분 제 계획이 완벽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족하고 연약했지만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그때의 순종이 다음 길을 열어 주는 시작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다시 한번 믿고 싶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내가 이루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내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믿으며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순종의 길이 항상 쉽고 편한 길은 아닙니다.

    때로는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을 지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견뎌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라면 그 길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결과만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의 마음과 삶도 함께 빚어 가십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시는 이유는 그 일을 통해 세상에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일을 순종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제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아직 모르는 것도 많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걸음 뒤에 또 다른 한 걸음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혹시 지금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시는 일이 있지만 계속 미루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조금 더 준비되면 하겠습니다.’

    ‘조금 더 상황이 좋아지면 시작하겠습니다.’

    ‘확신이 생기면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물론 신중하게 준비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분명한 마음을 주셨다면, 때로는 완벽한 준비보다 믿음으로 내딛는 한 걸음이 먼저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의 능력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함 가운데 일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순종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더 이상 미루지 않는 것.

    말씀하신 것을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것.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

    그것이 믿음의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그 믿음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루십니다.

    제가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길을 여십니다.

    제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제가 이루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순종하겠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해도 주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을 내딛겠습니다.

    그리고 제 삶을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순종하는 길이 사는 길임을 믿습니다.”

    아멘. 🙏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작은 마음을 소중히 여기며,

    그 마음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순종의 걸음을 시작할 때,

    이미 우리의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열정, 그리고 10년의 시간

    열정, 그리고 10년의 시간

    최근 우연히 2015년도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최근 우연히 2015년도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잠시 멈춰 서게 되었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때 제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는지가 글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저는 열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열정은 환경과 처지를 탓하지 않는 것이고,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힘이며,
    성공 그 자체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열정을 가진 사람은 결국 세상 속에서 ‘구별됨’​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고 적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아마도 열정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환경이 어렵더라도 마음만 흔들리지 않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했습니다.

    ‘포기하지 말자.’
    ‘다시 시작하자.’
    ‘환경을 탓하지 말자.’
    ‘끝까지 해보자.’

    돌이켜 보면 그때의 저는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려고 했고,
    새로운 기회를 붙잡으려고 했으며,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습니다.

    때로는 결과가 생각처럼 나오지 않아 낙심하기도 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때는 그것을 나의 열정과 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글을 다시 읽으니 조금 다른 것이 보입니다.

    그때는 제가 열정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안에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열정만으로는 지나올 수 없었던 시간

    지난 10여 년 동안 제 삶에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기쁜 날도 있었고 감사한 날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도 있었고,
    내 힘으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고민하기도 했고,
    가족 안에서 갈등을 경험하기도 했으며,
    경제적인 문제와 현실의 벽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었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전처럼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일어서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모든 시간을 견뎌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누구에게나 열정이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마음이 뜨겁습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꿈을 품고,
    이번에는 반드시 달라지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뜨거움은 조금씩 약해집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며,
    기대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열정은 시험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면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열정은 언제나 뜨거운 감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열정일 수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열정일 수 있습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이 열정일 수 있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다시 주님을 찾는 것이 열정일 수 있습니다.


    그때의 열정과 지금의 열정은 다릅니다

    2015년의 저는 열정을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가져야 하는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열정은 단순히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추진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림의 시간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넘어졌을 때에도 다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예전보다 오히려 열정에 대해 더 겸손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뜨거워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강해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잘 견뎌냈기 때문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열정까지도 사용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2015년의 열정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때 제가 가지고 있던 열정과 성실함, 배우고자 하는 마음과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까지도 사용하셨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단순히 저의 성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나는 포기하는 것을 싫어하니까.’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성향과 경험, 재능과 열정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부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보고 계셨고,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걸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돌아보면 때로는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도 지금은 조금씩 의미가 보입니다.

    그때는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이 나를 다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수도 있고,
    그때는 지연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나를 준비시키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는 시간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00729


    구별됨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2015년의 글에서 저는 ‘구별됨’​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열정을 가진 사람은 결국 세상 속에서 구별되는 열매를 맺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구별됨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이해합니다.

    구별됨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해서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고 애쓰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하려 할 때,

    그 삶 속에서 조금씩 나타나는 것이 구별됨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과 다른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하고,
    힘들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미워하기보다 용서를 선택하고,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사람들은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삶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맺으시는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10년의 시간을 지나서야 보이는 것

    10년 전에는 앞만 바라보았습니다.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뒤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지나온 길을 바라봅니다.

    그 길에는 제가 계획하지 않았던 길도 있었습니다.

    제가 원하지 않았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돌아가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길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제 삶을 떠나신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저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 같았지만,
    먼저 저를 사랑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제가 믿음을 지킨 것 같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제가 기도해서 길이 열린 것 같았지만,
    돌이켜 보면 기도할 마음조차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내가 얼마나 잘했는가?’보다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무엇을 하셨는가?’

    를 바라보게 됩니다.


    열정의 뿌리는 은혜였습니다

    이번에 2015년의 글을 다시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10년 전의 저에게 이미 말씀하고 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잘 보이지 않겠지만,
    내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다 알지 못하더라도,
    내가 너의 삶을 통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저는 그 말씀을 삶을 통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계획한 길보다 더 좋은 길로,
    제가 기대한 방식보다 더 깊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여전히 저를 다루고 계십니다.

    때로는 기다리게 하시고,
    때로는 멈추게 하시며,
    때로는 제가 원하지 않았던 길을 지나게 하십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과정 하나하나가 저를 만들어 가는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일을 당장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시간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10년도 하나님과 함께

    2015년의 저는 앞으로의 삶을 바라보며 열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지나온 10여 년의 시간을 바라보며 은혜를 이야기합니다.

    앞으로 또 10년이 지나면 저는 어떤 모습으로 이 시간을 돌아보게 될까요?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기쁜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믿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열정만 믿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내 결심만 의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내가 세운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내가 원하는 길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선택하며,
    내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10년 전보다 지금 더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이것입니다.

    나의 열정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는 것.

    나의 결심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더 강하다는 것.

    나의 믿음보다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이 더 강하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다시 고백합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 마음이 하나님을 향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주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저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의 열정보다 더 크고,
    저의 결심보다 더 강하며,
    저의 믿음보다 더 신실한 것은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지난 10여 년을 걸어올 수 있었고,
    그 사랑이 있기에 앞으로의 시간도 걸어갈 수 있습니다.

    2015년의 글을 다시 읽으며 저는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때 제가 열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뿌리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제가 다시 일어났던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내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함으로 고백합니다.

    “2015년의 고백이 2025년의 간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하나님이셨습니다.”
    🙏🏻❤️🌱🌳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도 지나고 나면
    또 하나의 간증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때도 저는 같은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돌아보니,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




  • 하나님의 음성이 만든 가족의 자리

    하나님의 음성이 만든 가족의 자리

    결혼하지 않은 바로 아래 동생이 지금은 저희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작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주님은 제 마음에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동생 선옥이를 불쌍히 여겨라.”

    당시에도 저는 동생을 돕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은 제 마음을 더욱 깊이 움직였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하나님은 저희 가정을 동생을 맞이할 수 있는 자리로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이후 동생은 저희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고 가까운 곳에 직장도 얻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자신의 몫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생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저 역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직장 생활과 가정 생활을 함께 책임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함께 생활하며 여러 부분을 도와주다 보니 가정의 일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생각합니다.

    “서로 협력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처음에는 제가 동생을 돌보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동생에게 필요한 가정을 준비해 주셨고, 동시에 저희 가정에도 필요한 도움을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언제나 한쪽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한 사람을 살리시면서 또 다른 사람도 함께 세우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주님의 음성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 음성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이어 주며, 서로를 살리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가족의 자리를 감사함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시작에 있었던 주님의 한마디를 다시 떠올립니다.

    “네 동생 선옥이를 불쌍히 여겨라.”

    그 음성은 결국 동생뿐 아니라 저희 가정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

    지난 페이스북 글을 살펴보다가 오래전 기록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예영이가 큰오빠 방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고 용돈으로 7만 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큰아이가 감탄하며 말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치울 수가 있지?”

    그 말을 보며 저도 웃음이 났습니다.

    어쩌면 예영이가 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저는 집안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기는지 모르게 가구를 옮기고, 물건을 정리하고, 집 안을 뒤집어 놓곤 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힘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마음먹으면 이상할 정도로 몸이 움직였습니다.

    가구를 옮기고 청소를 하고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집 안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웃으며 말하곤 했습니다.

    “내가 낮에 불시에 들어와 볼 거야.”

    “대체 어떤 사람이 와서 도와주는지~”

    제가 혼자 그렇게 많은 일을 해놓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정말 누군가 와서 도와준 것처럼 집 안의 모습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말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나 이제 돈 없어서 이사 못 가!”

    “이제 이사 가자고 하지 마!”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지만, 그 말 속에는 우리 가족이 지나온 시간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결혼 초에는 어렵게 집을 마련했습니다

    결혼 초에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어렵게 집을 마련했습니다.

    대출을 안고 시작한 삶이었고, 많지 않은 월급으로 이자를 감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제가 끊임없이 집을 바꾸고 환경을 바꾸자는 이야기를 했으니, 남편 입장에서는 정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변화를 지나오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원해서 움직였던 때도 있었지만, 원하지 않았는데도 새로운 환경을 만나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변화는 기대를 품고 시작했고, 어떤 변화는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 지나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은 한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변화와 선택의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마음만 먹으면 집 안의 가구를 옮기고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정리해야지.

    청소해야지.

    마음으로는 생각하지만 몸이 예전처럼 쉽게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이 이제는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예전과 같지 않구나.’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조금씩 알아갑니다.

    예전에는 힘이 있는 것이 당연했고, 내가 움직이면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됩니다.

    내가 가진 힘도 영원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움직일 수도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이상하게 힘이 생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삶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지치고 힘이 없는데,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분명하게 생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그런 힘이 생겨나는지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하나씩 손을 대기 시작하면 일이 정리됩니다.

    생각보다 많은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저와 함께 생활하는 동생도 그런 모습을 보며 말합니다.

    “언니가 한 번 움직일 때는 나도 놀라.”

    “평소에는 힘이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저렇게 하지?”

    저 역시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평소의 제 모습만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막상 해야 할 일이 생기면 힘이 생깁니다.

    집중할 마음이 생기고,

    움직일 힘이 생기고,

    끝까지 해낼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갑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5946

    내 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사람들은 그것을 의지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부지런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고,

    성격이 강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 안에 그런 부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삶을 오래 돌아보면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때에도 해야 할 일을 감당하게 하셨고,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다시 일어날 힘을 주셨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루를 살아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전과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내가 힘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힘조차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몸도,

    생각할 수 있는 마음도,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의지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 힘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때에 힘을 공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힘을 미리 주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날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을 그때그때 공급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힘은 오늘 주시고,

    내일의 힘은 내일 주십니다.

    그래서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힘까지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 이사야 40:31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 단순히 육체적인 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때로는 지친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힘이고,

    때로는 포기하지 않는 힘이며,

    때로는 해야 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입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예영이의 정리에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래전 예영이가 큰오빠 방을 깨끗하게 정리했다는 이야기를 다시 보면서 단순히 ‘참 부지런했구나’라는 생각만 들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통해 예전의 저를 떠올렸고,

    예전의 저를 떠올리면서 다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 속에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내가 힘이 있어서 움직였던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움직일 힘을 주셨고,

    내가 결단해서 시작했던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셨으며,

    내가 끝까지 버텨낸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견딜 힘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아주 특별한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때로는 평범한 하루 속에 있습니다.

    청소할 힘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가족을 돌볼 힘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다시 일어설 힘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늘 하루를 버티는 힘일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용서할 힘일 수도 있고,

    다시 사랑할 힘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갑니다

    이제 저는 예전처럼 제 힘만 믿고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섰다면,

    지금은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이 없을 때도 너무 낙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보며 절망하기보다,

    ‘하나님, 오늘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을 감당할 힘을 주세요.’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한 걸음씩 움직입니다.

    작은 일 하나를 하고,

    또 하나를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생각보다 많은 일을 지나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연약함 가운데 힘을 공급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제 힘을 자랑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나는 지치지만 하나님은 지치지 않으십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힘을 공급하십니다.

    오늘도 저는 그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내일을 미리 걱정하기보다 오늘 주신 힘으로 오늘을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힘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하나님께 구하겠습니다.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은 언제나 내가 생각했던 방식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알게 됩니다.

    그때 내가 어떻게 그 일을 감당했는지 설명할 수 없었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셨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고백합니다.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오늘도 한 걸음 걷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이면 충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