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돈과 부를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점점 돈의 유혹이 강해짐을 느낍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주식과 ETF에 투자해야 할까?
어떤 부동산을 사야 할까?
노후를 위해 얼마를 모아야 할까?
경제적 자유를 이루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이런 질문들은 이제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이런 관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돈이 필요하고, 안정적인 삶을 원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돈을 좇는 이유가 정말 돈을 사랑해서만일까?
어쩌면 그보다 더 강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두려움입니다.
돈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돈을 붙잡는다
우리는 흔히 성경의 말씀을 생각하면 먼저 디모데전서 6장 10절을 떠올립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물론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 경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다른 모습도 보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이유가 반드시 부자가 되고 싶어서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생각 때문일 수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노후에는 괜찮을까?”
“갑자기 병원비가 많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하지?”
“집값이 오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가진 것을 잃으면 어떻게 하지?”
“자녀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들이 우리의 마음을 붙잡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삶의 구조가 됐습니다. 그래서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더 모으고 싶어집니다.
투자를 하고 싶어집니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자산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돈을 사랑해서 붙잡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두려워서 붙잡고 있는 것일까?
돈의 유혹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습니다
돈의 유혹은 단순히
“더 많이 가져라.”
라는 모습으로만 찾아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가지고 있지 않으면 위험하다.”
라는 두려움입니다.
욕망은 우리에게 더 많이 가지라고 말하고,
두려움은 우리에게 가진 것을 절대로 놓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돈이 많아지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걱정은 끝나지 않습니다.
100만 원이 부족할 때는 100만 원만 더 있으면 될 것 같고,
1,000만 원이 생기면 이제 1억이 있어야 안심될 것 같고,
1억이 생기면 노후를 위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돈이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버립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돈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주는 안전감을 의지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어쩌면 돈의 유혹보다 더 무서운 부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돈이 있어야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돈의 유혹 즉, 두려움이 찾아오면 우리는 미래를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자산의 가치를 계산하고,
투자 수익률을 확인하고,
부동산 가격을 살펴보고,
앞으로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될지 계산합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혜롭게 준비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믿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돈이 충분해야 나는 안전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돈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돈이 건강을 완전히 지켜줄 수 있을까요?
가족의 관계를 지켜줄 수 있을까요?
우리의 생명을 연장해 줄 수 있을까요?
죽음을 막아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마음을 정확하게 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많이 쌓아 놓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 사람은 풍년이 들자 더 큰 곳간을 짓고 재물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영혼에게 말합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누가복음 12:20-21)
이 말씀에서 무서운 것은 그 사람이 돈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돈을 통해 자신의 미래와 안전을 확보했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돈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저 자신에게도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면서,
통장 잔고가 줄어들면 불안해하고,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미래가 무너질 것처럼 두려워하고,
투자한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면 마음까지 함께 흔들린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 앞에서 불안해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현실적인 걱정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점점 커져서
“돈이 없으면 나는 안전하지 않다.”
라는 생각으로 굳어지기 시작하고 돈의 유혹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우리는 한번 멈춰서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24)
돈이 하나님과 경쟁하는 또 하나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돈보다 먼저 ‘염려’를 말씀하셨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께서 재물에 대한 말씀을 하신 뒤 염려에 대해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6:25)
여기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현실적인 필요를 모른 척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먹을 것이 필요하고,
입을 것이 필요하고,
살아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보다 염려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을 경계하십니다.
그리고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시고,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33)
이 말씀은 미래를 준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돈을 벌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돈을 준비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돈이 없을까 두려운 마음을 하나님께 가져가기
저는 이 부분이 믿음의 중요한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이 생기고 돈의 유혹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
“나는 왜 이렇게 믿음이 없을까?”
라고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 자체를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돈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미래가 걱정됩니다.”
“제가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두려움이 있는데도 그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돈을 붙잡고 두려움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먼저 하나님께 두려움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돈을 준비하는 것과 돈을 의지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저축할 수 있습니다.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노후를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재산을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마음속에 이런 믿음이 생긴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이 정도 돈이 있어야 내가 안전해.”
“이 정도 자산이 있어야 내 인생이 괜찮아.”
“돈만 충분하면 어떤 일이 와도 견딜 수 있어.”
그때 우리는 돈을 준비하는 것을 넘어 돈을 의지하기 시작한 것일 수 있습니다.
돈은 우리의 삶을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의 유혹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것은 ‘무엇을 믿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돈의 문제를 단순히
“돈을 사랑하지 말자.”
라고 끝내면 조금 부족한 것 같습니다.
더 깊은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돈을 믿고 있는가?
내 능력을 믿고 있는가?
내가 가진 자산을 믿고 있는가?
미래의 경제 상황을 믿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물론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면서 돈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돈이 우리의 안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재산이 우리의 생명이 될 수 없습니다.
투자 수익이 우리의 미래를 완전히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돈보다 더 큰 것을 의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이 질문을 한번 자신에게 해보고 싶습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돈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내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일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노후를 두려워하는가?
가진 것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그 두려움의 가장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어쩌면 이런 마음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이것은 쉽게 인정하기 어려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을 하나님 앞에 가져갈 때 믿음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돈이 없을까 두려워합니다.”
“제가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보다 돈을 먼저 바라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돈의 유혹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고 또 가장 나중까지 마주하는 현실적인 부분입니다.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열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3942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재산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돈을 벌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지혜롭게 관리하고,
정직하게 일하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다른 사람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돈도,
내가 가진 능력도,
내가 가진 직업도,
내가 가진 집도,
내가 가진 투자자산도
결국 내 인생을 완전히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돈이 나의 안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안전이 되기를
돈의 유혹은 정말 무섭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돈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돈이 없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강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을 무조건 탐욕스럽다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어쩌면
두려움과 불안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저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돈이 필요하고,
안정되고 싶고,
미래가 걱정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 다시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 제가 돈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되 돈을 의지하는 사람은 되지 않게 해주세요.”
“미래를 준비하되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돈이 줄어들어도 하나님을 잃지 않게 해주세요.”
“제가 가진 것이 많아져도 하나님보다 그것을 더 사랑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나의 안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안전이라는 사실을 믿게 해주세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오늘도 이 말씀을 마음에 품어봅니다.
돈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올바른 자리에 내려놓는 것.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
어쩌면 이것이 돈의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믿음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