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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의 유혹은 왜 이렇게 무서운가? 돈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

    돈의 유혹은 왜 이렇게 무서운가? 돈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돈과 부를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점점 돈의 유혹이 강해짐을 느낍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주식과 ETF에 투자해야 할까?

    어떤 부동산을 사야 할까?

    노후를 위해 얼마를 모아야 할까?

    경제적 자유를 이루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이런 질문들은 이제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이런 관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돈이 필요하고, 안정적인 삶을 원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돈을 좇는 이유가 정말 돈을 사랑해서만일까?

    어쩌면 그보다 더 강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두려움입니다.


    돈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돈을 붙잡는다

    우리는 흔히 성경의 말씀을 생각하면 먼저 디모데전서 6장 10절을 떠올립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물론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 경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다른 모습도 보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이유가 반드시 부자가 되고 싶어서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생각 때문일 수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노후에는 괜찮을까?”

    “갑자기 병원비가 많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하지?”

    “집값이 오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가진 것을 잃으면 어떻게 하지?”

    “자녀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들이 우리의 마음을 붙잡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삶의 구조가 됐습니다. 그래서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더 모으고 싶어집니다.

    투자를 하고 싶어집니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자산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돈을 사랑해서 붙잡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두려워서 붙잡고 있는 것일까?


    돈의 유혹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습니다

    돈의 유혹은 단순히

    “더 많이 가져라.”

    라는 모습으로만 찾아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가지고 있지 않으면 위험하다.”

    라는 두려움입니다.

    욕망은 우리에게 더 많이 가지라고 말하고,

    두려움은 우리에게 가진 것을 절대로 놓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돈이 많아지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걱정은 끝나지 않습니다.

    100만 원이 부족할 때는 100만 원만 더 있으면 될 것 같고,

    1,000만 원이 생기면 이제 1억이 있어야 안심될 것 같고,

    1억이 생기면 노후를 위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돈이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버립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돈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주는 안전감을 의지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어쩌면 돈의 유혹보다 더 무서운 부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돈이 있어야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돈의 유혹 즉, 두려움이 찾아오면 우리는 미래를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자산의 가치를 계산하고,

    투자 수익률을 확인하고,

    부동산 가격을 살펴보고,

    앞으로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될지 계산합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혜롭게 준비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믿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돈이 충분해야 나는 안전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돈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돈이 건강을 완전히 지켜줄 수 있을까요?

    가족의 관계를 지켜줄 수 있을까요?

    우리의 생명을 연장해 줄 수 있을까요?

    죽음을 막아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마음을 정확하게 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많이 쌓아 놓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 사람은 풍년이 들자 더 큰 곳간을 짓고 재물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영혼에게 말합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누가복음 12:20-21)

    이 말씀에서 무서운 것은 그 사람이 돈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돈을 통해 자신의 미래와 안전을 확보했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돈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저 자신에게도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면서,

    통장 잔고가 줄어들면 불안해하고,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미래가 무너질 것처럼 두려워하고,

    투자한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면 마음까지 함께 흔들린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 앞에서 불안해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현실적인 걱정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점점 커져서

    “돈이 없으면 나는 안전하지 않다.”

    라는 생각으로 굳어지기 시작하고 돈의 유혹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우리는 한번 멈춰서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24)

    돈이 하나님과 경쟁하는 또 하나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돈보다 먼저 ‘염려’를 말씀하셨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께서 재물에 대한 말씀을 하신 뒤 염려에 대해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6:25)

    여기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현실적인 필요를 모른 척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먹을 것이 필요하고,

    입을 것이 필요하고,

    살아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보다 염려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을 경계하십니다.

    그리고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시고,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33)

    이 말씀은 미래를 준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돈을 벌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돈을 준비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돈이 없을까 두려운 마음을 하나님께 가져가기

    저는 이 부분이 믿음의 중요한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이 생기고 돈의 유혹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

    “나는 왜 이렇게 믿음이 없을까?”

    라고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 자체를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돈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미래가 걱정됩니다.”

    “제가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두려움이 있는데도 그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돈을 붙잡고 두려움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먼저 하나님께 두려움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돈을 준비하는 것과 돈을 의지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저축할 수 있습니다.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노후를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재산을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마음속에 이런 믿음이 생긴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이 정도 돈이 있어야 내가 안전해.”

    “이 정도 자산이 있어야 내 인생이 괜찮아.”

    “돈만 충분하면 어떤 일이 와도 견딜 수 있어.”

    그때 우리는 돈을 준비하는 것을 넘어 돈을 의지하기 시작한 것일 수 있습니다.

    돈은 우리의 삶을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의 유혹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것은 ‘무엇을 믿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돈의 문제를 단순히

    “돈을 사랑하지 말자.”

    라고 끝내면 조금 부족한 것 같습니다.

    더 깊은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돈을 믿고 있는가?

    내 능력을 믿고 있는가?

    내가 가진 자산을 믿고 있는가?

    미래의 경제 상황을 믿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물론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면서 돈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돈이 우리의 안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재산이 우리의 생명이 될 수 없습니다.

    투자 수익이 우리의 미래를 완전히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돈보다 더 큰 것을 의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이 질문을 한번 자신에게 해보고 싶습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돈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내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일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노후를 두려워하는가?

    가진 것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그 두려움의 가장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어쩌면 이런 마음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이것은 쉽게 인정하기 어려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을 하나님 앞에 가져갈 때 믿음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돈이 없을까 두려워합니다.”

    “제가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보다 돈을 먼저 바라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돈의 유혹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고 또 가장 나중까지 마주하는 현실적인 부분입니다.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열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3942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재산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돈을 벌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것을 지혜롭게 관리하고,

    정직하게 일하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다른 사람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돈도,

    내가 가진 능력도,

    내가 가진 직업도,

    내가 가진 집도,

    내가 가진 투자자산도

    결국 내 인생을 완전히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돈이 나의 안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안전이 되기를

    돈의 유혹은 정말 무섭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돈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돈이 없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강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을 무조건 탐욕스럽다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어쩌면

    두려움과 불안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저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돈이 필요하고,

    안정되고 싶고,

    미래가 걱정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 다시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 제가 돈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되 돈을 의지하는 사람은 되지 않게 해주세요.”

    “미래를 준비하되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돈이 줄어들어도 하나님을 잃지 않게 해주세요.”

    “제가 가진 것이 많아져도 하나님보다 그것을 더 사랑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나의 안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안전이라는 사실을 믿게 해주세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오늘도 이 말씀을 마음에 품어봅니다.

    돈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올바른 자리에 내려놓는 것.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

    어쩌면 이것이 돈의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믿음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욕심이 없는 것과 믿음으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욕심이 없는 것과 믿음으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이야.”

    “많이 벌고 싶은 생각도 없어.”

    “그냥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살면 되지.”라고 말 한다고 해서 욕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도 우리에게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가르치며,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자족하는 삶을 귀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욕심이 없는 것과 책임이 없는 것은 다릅니다.

    자족하는 것과 안일한 것은 다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현실을 외면하는 것도 다릅니다.

    때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은 채 “나는 욕심이 없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게으름이나 안일함, 책임 회피, 두려움 때문에 필요한 수고를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욕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전혀 다른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난의 원인이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닙니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게으른 것은 아닙니다.

    질병이나 사고, 실직, 경제적인 환경, 가족의 어려움, 사회적인 구조 등 사람이 자신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로 가난해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가난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모든 가난을 환경의 문제로만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반복되는 무책임과 게으름, 지나친 안일함, 현실을 회피하는 태도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보다는

    “나는 돈에 욕심이 없어.”

    “나는 물질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에게 필요한 변화까지도 거부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과 성장하기 위한 수고를 포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족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 빌립보서 4:11

    바울은 자족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삶을 보면 그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안일함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수고했고, 자신의 삶을 책임졌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자족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이 많든 적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내게 맡겨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겠다.”

    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자족하면서도 일할 수 있습니다.

    자족하면서도 더 배우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자족하면서도 더 나은 삶을 위해 계획할 수 있습니다.

    자족하면서도 자신의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땀 흘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족과 성실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과 돈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다릅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는 것만 경계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돈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돈을 두려워하는 것도 우리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평안할 때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돈이 뭐 그렇게 중요해?”

    “나는 돈 욕심 없어.”

    “하나님만 의지하면 되지.”

    그런데 막상 예상하지 못했던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오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통장 잔액이 줄어들고,

    수입이 끊기고,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발생하고,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해지면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의지하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돈이 충분히 있을 때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일까?


    어려움은 우리의 중심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사람은 평안할 때 자신의 믿음을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나는 믿음이 있어.”

    “나는 돈에 연연하지 않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

    하지만 실제적인 어려움이 닥치면 마음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먼저 올라옵니다.

    원망이 생깁니다.

    불안해집니다.

    사람을 붙잡고 싶어집니다.

    돈이 없다는 사실 자체보다 돈이 없으면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어려운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믿음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 찾아왔을 때 결국 누구를 붙드는가입니다.

    두려움이 생겼지만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가?

    불안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는가?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가?

    그리고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까지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가?

    그 과정에서 믿음은 더욱 실제적인 것이 됩니다.


    믿음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믿음이 없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믿음으로 살면 되지.”

    물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내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믿음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일해야 한다면 일하고,

    배워야 한다면 배우고,

    잘못된 소비 습관이 있다면 돌아보고,

    재정 계획이 필요하다면 계획을 세우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면 책임을 다하고,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내가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나의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과 책임이 함께 가는 모습이 아닐까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수고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일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삶을 맡기셨고, 각자에게 감당해야 할 책임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욕심을 버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성실함도 필요합니다.

    절제도 필요합니다.

    지혜도 필요합니다.

    책임감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정말 욕심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것인가?

    나는 정말 자족하는 것인가?

    아니면 변화하기 싫어서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나는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인가?

    아니면 현실적인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은 다른 사람에게 하기 전에 나 자신에게 먼저 해야 하는 질문일 것입니다.


    *문제 앞에서 이론이 멈출 때, 하나님을 경험하는 믿음이 시작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05967

    어려움이 왔을 때 믿음의 중심이 드러납니다

    어쩌면 평안할 때의 믿음보다 어려울 때의 믿음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지도 모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내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가장 붙들고 싶은지,

    누구를 원망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결국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보면

    내 마음의 중심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어려움이 찾아왔다고 해서

    “내 믿음이 없었구나.”

    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이 내 믿음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발견하고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어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다시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돈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돈을 사랑하지 않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돈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돈이 많아도 하나님을 잊을 수 있고,

    돈이 없어도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자신의 삶을 바로 세워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핵심은 단순히

    “나는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이야.”

    라는 말에 있지 않습니다.

    더 깊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돈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있는가?”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이유로 내가 해야 할 수고와 책임을 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두 질문을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음의 중심입니다

    돈이 많고 적은 것이 믿음의 기준은 아닙니다.

    가난하다고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니고,

    부유하다고 믿음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가는가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현실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어려운 이유를 외부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하지 않은 수고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욕심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정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 보고 있었는지 보여주세요.”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깨닫게 해주세요.”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보다 돈을 더 붙들고 있었다면 그것도 깨닫게 해주세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믿음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우리는 흔히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탐욕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진 돈도,

    내가 하는 일도,

    내가 얻는 수입도,

    내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계획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마음도 무조건 욕심이라고 정죄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가족을 위해 더 안정적인 삶을 만들고 싶은 마음,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싶은 마음,

    성실하게 일해서 더 나은 삶을 만들고 싶은 마음까지 모두 욕심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돈을 얻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욕심이 없는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믿음은 욕심과 안일함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면서 내가 맡은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말보다 중심이 드러납니다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야.”

    “나는 돈에 관심이 없어.”

    “나는 하나님만 믿고 살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어려움이 왔을 때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기회가 왔을 때 무엇을 선택하는지,

    실패했을 때 누구를 원망하는지,

    돈이 생겼을 때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누구를 기다리는지를 통해 우리의 중심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단순히 힘든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 안에 있는

    게으름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안일함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탐욕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두려움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무엇보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고 있었던 마음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빨리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라고만 기도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이 어려움 가운데서 제 마음을 보여주세요.”

    “제가 무엇을 붙들고 있었는지 알게 해주세요.”

    “제가 해야 할 수고를 피하고 있었다면 깨닫게 해주세요.”

    “돈을 사랑하거나 돈을 두려워하는 마음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중심을 돌아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믿음의 실제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가난을 미화할 필요도 없고,

    부를 무조건 악하게 볼 필요도 없습니다.

    게으름을 믿음으로 포장해서도 안 되고,

    돈에 대한 두려움을 믿음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수고는 다하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

    필요한 것을 구하되,

    돈이 나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하는 것.

    어려움 속에서 두려워할 수는 있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한 모습이 아닐까요.

  •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열매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열매

    믿음의 열매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흔들리지 않고, 항상 기도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이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는 아직 믿음이 부족한가 보다.”

    하지만 믿음의 열매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다음 날 바로 열매가 열리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고 해서 우리의 성품과 삶이 한순간에 완전히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씨앗으로 시작하여 자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은 삶의 방향을 바꾸어 갑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화가 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며, 때로는 두려움과 염려에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내 힘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하나님께 맡기기 시작하고, 미워했던 사람을 조금씩 용서하려 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살아가려 합니다.

    예전에는 어려움을 만나면 원망부터 했다면 이제는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게 됩니다.

    완전히 달라진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사랑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삶에서 사랑을 매우 중요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사랑 역시 저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대할 때입니다.

    상처를 주었던 사람을 용서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쌓이면 조금씩 변화가 나타납니다.

    “저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들고,

    “하나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셨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마음으로 용서하기 어려워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믿음의 열매가 자라는 과정입니다.

    어려움 속에서 믿음의 뿌리가 깊어집니다

    평안할 때의 믿음보다 어려움 가운데서 드러나는 믿음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기고, 아무리 기도해도 상황이 쉽게 바뀌지 않을 때는 우리의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경험을 통해 믿음의 뿌리가 깊어집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것은 믿습니다.”

    이런 고백이 조금씩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59239


    *깨달음 -민사소송 진행 가운데 가장 크게 얻은 것

    넘어졌다고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화낼 수도 있고,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면서도 마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넘어졌을 때 어디로 돌아가느냐입니다.

    믿음이 자라면 넘어졌을 때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 제가 또 넘어졌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납니다.

    어쩌면 믿음의 성숙이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열매는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자라면 그 변화는 결국 삶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말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어려움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나에게 손해가 되는 일을 무조건 피하려 했다면 이제는 옳은 일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잘못만 보였다면 이제는 나 자신의 부족함도 돌아보게 됩니다.

    예전에는 받은 상처를 오래 붙잡고 있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 맡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이 그 변화를 알아보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예전과 조금 달라졌네.”

    바로 이런 변화가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열매가 아닐까요?

    하나님은 열매가 완성되기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빨리 변하고 싶어 합니다.

    기도하면 곧바로 믿음이 깊어지기를 원하고, 말씀을 읽으면 곧바로 삶이 달라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장을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어린 나무에게 열매를 빨리 맺으라고 재촉하지 않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면서 한 걸음씩 인도하십니다.

    오늘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인내할 수 있었다면 그것도 은혜입니다.

    넘어졌지만 다시 하나님께 돌아왔다면 그것 역시 믿음의 한 걸음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빨리 변화했느냐가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느냐입니다.

    믿음은 결국 삶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은 말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나타나고, 용서로 나타나며, 정직함으로 나타납니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길을 선택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묵묵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아직 내 삶에 부족한 것이 많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열매가 아직 작다고 해서 나무가 죽은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 있고, 자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려고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용서하려고 한다면, 그곳에서 이미 믿음의 열매가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열매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긴 시간 속에서 조금씩 자랍니다.

    그리고 어느 날 뒤돌아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변화시킨 것 같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열매를 바라볼 때 우리가 해야 할 고백은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저를 여기까지 자라게 하셨군요.”

    그 고백 안에 믿음의 열매가 있습니다.

  • 민사소송 진행 가운데 가장 크게 얻은 깨달음

    민사소송 진행 가운데 가장 크게 얻은 깨달음

    민사소송을 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깨달음

    민사소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 소송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깨닫게 하실까?’

    처음에는 그저 내가 겪은 일을 사실대로 설명하고, 그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하나씩 준비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상대방의 주장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살펴보고, 내가 주장하는 내용이 실제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을 자료로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재판에서는 아무리 내가 억울하다고 말해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주장에는 근거가 필요했고, 사실에는 증명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는 시간 중에 어느 날 저녁 마음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판 날에 너희가 내 앞에 믿음의 증거를 보여야 한다”

    순간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신앙 생활은 매우 구체적인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도 사실과 증거로 증명해야 할 사건이라면
    영혼 구원이라는 아주 중요한 사건에서는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이전과는 달리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생각되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그때부터 신앙을 바라보는 제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입으로 하는 말만으로는 믿음이 증명되지 않는다

    재판에서는 내가 무엇이라고 주장하는가보다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실과 증거가 중요합니다.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상대방이 이렇게 했습니다.”

    “나는 이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만으로 판결이 내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주장이 실제 사실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원리를 생각하다 보니 신앙에 대한 아주 무거운 질문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떠한가?’

    우리는 얼마든지 입으로 믿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입으로 하는 고백과 실제 삶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숨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겉모습만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의 삶을 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의 진실성이 드러날 것이다

    민사소송을 경험하면서 제가 크게 깨달은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우리의 믿음 역시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많이 해야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이라면 그 믿음은 우리의 삶 속에서 반드시 어떤 흔적을 남깁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삶에서는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면,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미움과 증오만 가득하다면,

    말로는 용서했다고 하면서 끝까지 상대를 정죄하고 있다면,

    말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 모든 순간을 자신의 힘과 방법으로만 살아간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말하는 믿음은 정말 살아 있는 믿음인가?’

    야고보서가 말하는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위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이 실제 삶 속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91255


    재판에서는 증거가 중요했고, 신앙에서는 열매가 중요했다

    민사소송을 준비하면서 저는 수많은 자료를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 확인하고,

    상대방이 무엇을 주장했는지 살펴보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것은 단순히 재판의 기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너는 입으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

    그리고 더 깊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 말이 네 삶에서도 사실이냐?’

    이 질문은 제 마음을 쉽게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믿고 살아가는 것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 상황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불평하고,

    하나님께 맡겼다고 말하면서 끊임없이 내가 결과를 통제하려 하고,

    용서했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에서는 계속 상대방을 정죄하고 있다면,

    그 믿음의 고백은 과연 얼마나 실제적인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가짜 신앙을 구별하실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앙을 완벽하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아주 신앙적인 말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많이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날에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게 매우 두려우면서도 중요한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입술의 고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보십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

    정직을 선택했는지,

    용서를 선택했는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순종했는지를 아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흔적이 될 것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나의 믿음을 증명하고 있는가?

    이 깨달음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내가 말하는 믿음은 삶에서도 나타나고 있는가?’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나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가?’

    ‘내게 손해가 생겨도 정직을 선택할 수 있는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가?’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가?’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하다 보니 신앙은 단순히 ‘무엇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은 결국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민사소송이 내게 가르쳐 준 신앙의 질문

    돌이켜 보면 이번 민사소송은 제게 단순히 법적인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재판을 준비하면서 사실과 증명의 중요성을 배우게 하셨고,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제 믿음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재판에서는 말한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고백하는 믿음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다른 사람의 신앙을 쉽게 판단하기보다 먼저 제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내가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도 참된 것인가?’

    사람에게 인정받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시는 믿음.

    입술에만 머무는 믿음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나는 믿음.

    상황이 좋을 때만 유지되는 믿음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

    그것이 제가 민사소송의 과정을 지나며 조금씩 깨닫게 된 ‘진짜 믿음’에 대한 질문​입니다.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다

    재판은 결국 판결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이 주장한 것들이 법정에서 사실인지 아닌지가 판단되고,

    그에 따라 결과가 결정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훨씬 더 큰 마지막 심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에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만들어 놓았던 모습도,

    입술로만 고백했던 말도,

    숨겨 놓았던 마음도 모두 하나님 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 내 안에 어떤 열매가 맺히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짜를 진짜라고 인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주시는 엄중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내 입술의 고백은 내 삶에서도 사실인가?


    민사소송을 지나며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깨달음

    처음에는 내가 재판을 통해 무엇인가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제게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네가 말하는 믿음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느냐?”

    참 이상한 일입니다.

    나는 법정에서 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재판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내 믿음의 진실성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 민사소송을 통해 제가 받은 가장 큰 깨달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재판에서는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는 진실이 중요합니다.

    입술의 고백은 시작일 수 있지만,

    그 고백이 삶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믿음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묻습니다.

    “그 믿음이 지금 내 삶에서 사실로 나타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해 대답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각 사람이 자신의 삶으로 대답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민사소송을 통해 깨달은 이 한 가지를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말이 사실인지 증명해야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말하는 믿음이 진짜인지 삶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을 생각한다면,

    오늘의 작은 선택 하나도 결코 가볍게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골리앗 앞에 선 다윗, 민사소송을 시작하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 민사소송을 시작하다

    골리앗과의 싸움! 민사소송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걱정한 사람들은 가족이었습니다.

    제가 소송을 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가족들이 가장 먼저 물었던 것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변호사 비용은 어떻게 하려고?”

    그 말을 듣고 보니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상대방은 개인이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증권사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변호사를 선임해야 할 것 같았고,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또다시 큰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족들의 걱정은 당연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정말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얼마나 강하게 나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닌데 혼자 소송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갔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저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겪은 일이 정말 잘못된 일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끝까지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정말 사실인지, 내가 가진 증거가 법정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이 사건을 법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나 홀로 민사소송을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앞에는 하나의 거대한 산이 놓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골리앗과 다윗

    성경을 읽다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골리앗은 거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모습만 보아도 상대방의 마음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반면 다윗은 전쟁의 전문가도 아니었고, 거대한 무기를 가진 장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골리앗을 보면서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크기만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민사소송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가족들은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걱정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피고인 증권사에서 준비서면을 보내왔고, 재판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내세운 것은 대형 로펌이었습니다.

    변호인은 무려 네 명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혼자 소송하는데 상대방은 변호사가 네 명이나 된다고?”

    그 말을 듣고 있으면 누구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상대방은 거대한 증권사였고, 그 뒤에는 대형 로펌과 여러 명의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혼자였습니다.

    객관적으로만 보면 너무나 불리해 보였습니다.

    마치 거대한 골리앗 앞에 작은 다윗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오히려 담담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86421

    상대가 커질수록 마음은 더 담담해졌다

    가족들은 상대방의 규모를 보면서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때부터 더 차분해졌습니다.

    왜였을까요?

    아마도 처음부터 제가 이 싸움을 사람과 사람의 힘겨루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일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증거를 하나씩 정리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사실관계가 맞는지 살펴보고,
    법원에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성실하게 설명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일이었습니다.

    상대방에게 변호사가 몇 명인지, 얼마나 큰 로펌인지, 얼마나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되었습니다.

    저는 제 사건을 하나씩 공부했습니다.

    문서를 다시 읽고, 날짜를 확인하고, 증거를 살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법률 용어 하나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하니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송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주장을 얼마나 사실과 증거로 설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싸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법률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조심했습니다.

    모르는 것은 찾아보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나는 혼자다”라는 생각을 내려놓다

    상대방이 대형 로펌을 선임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저도 잠시 생각했습니다.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질문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은 포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이 소송을 끌고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저는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정말 혼자였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준비할 때도, 상대방의 준비서면을 읽을 때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할 때도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알게 해 주세요.”

    “제가 감정적으로 판단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리고 결과가 어떠하든 이 과정을 통해 제가 하나님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해 주세요.”

    저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방보다 더 큰 힘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다윗에게도 골리앗보다 더 큰 무기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거대한 상대 앞에서 내가 배운 것

    돌이켜보면 상대방이 대형 로펌을 내세웠던 순간은 오히려 제게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상대방의 크기를 바라보기보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변호사가 네 명이다.”

    “대형 로펌이다.”

    “상대방은 거대한 증권사다.”

    이런 사실들이 처음에는 크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실들이 제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얼마나 큰지는 제가 할 일을 대신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하나였습니다.

    끝까지 진실을 확인하고, 제가 가진 증거를 성실하게 제시하는 것.

    그리고 결과는 법원에 맡기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시는 또 하나의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골리앗처럼 거대한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문제 앞에서 자신이 너무 작아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크기가 우리의 믿음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대한 문제를 만났을 때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결과를 알지 못합니다.

    8월 18일, 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크기가 보였습니다.

    그다음에는 제 자신의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혼자 싸우는 것처럼 보였던 그 길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커 보여도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골리앗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누구를 바라보고 있느냐였습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대한 증권사와 대형 로펌, 네 명의 변호인단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정직하게 제 길을 걸어갈 수는 있었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해야 할 몫은 끝까지 감당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제가 민사소송을 통해 배우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골리앗이 커질수록 다윗이 더 위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야말로,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다시 확인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신실하신 하나님

    반대매매가 일어나기 사흘 전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자리에 앉아 준비하고 있는데, 마음에 아주 강하게 들어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살려 달라고 기도해라.”

    얼마나 강하게 마음에 와닿았는지 조금은 당황스러웠습니다.

    당시에도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말씀을 현재의 상황과 연결해서 생각했습니다. 주식과 관련된 말씀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나 혼자 가지고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반대매매가 일어났습니다.

    너무 놀랐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 불과 사흘 전에 기도하게 하셨던 그 말씀을 오히려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때 나에게 살려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을까?”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반대매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반대매매가 이루어진 과정이었습니다.

    담보부족이 발생했고, 반대매매가 이루어질 수 있는 T+2 기준에 따라 나는 자기매도상환을 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담보부족을 해소하고 담보비율도 맞추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기록을 하나씩 살펴보니 이상한 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매도상환을 통해 담보부족이 해소되고 담보비율이 충족된 과정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기록에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종목까지 반대매매가 강행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증권사의 소비자보호부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방문했을 때는 내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한 번 찾아갔습니다.

    소비자 보호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증권사 담당자의 입장에서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소비자 보호부로 부터 한 장의 자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자료가 그렇게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한 장의 종이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료에는 담보부족과 T+2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기록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내가 자기매도상환을 통해 담보부족을 해소하고 담보비율을 맞추었던 과정과 실제 기록 사이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씩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하나를 찾으면 또 하나가 보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부터 모든 증거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의 자료를 찾다 보면 그 안에서 또 다른 단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을 확인하다 보면 또 다른 자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자료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또 다른 단서가 발견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왜 여기에서 발견되었을까?”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를 확인하다 보니 다음 것이 보였고, 그것을 확인하다 보니 또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하나씩 확인해 나갔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일이 정말 어디까지 가게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두 번 민원을 넣다

    그래서 금융감독원에도 두 번이나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나는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의 민원을 거치면서 오히려 답답함이 더 커졌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기보다 증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답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정말 막막했습니다.

    내가 가진 의문은 풀리지 않았고, 내가 확인한 자료와 설명 사이에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비용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많은 시간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뜻밖의 한마디

    그러던 어느 날 큰아이가 말했습니다.

    “맨날 네이버 검색만 하지 말고, 제미나이를 활용해 봐!”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머리가 복잡한데 새로운 것을 배워서 해보라는 말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속으로 그 말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결국 제미나이를 사용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ChatGPT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궁금한 것들을 하나씩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왜 이런가?”

    “이 기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부분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다시 물었습니다.

    답을 들으면 또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게 질문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계속되었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95405

    질문하기 시작하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를 물으면 하나를 알게 되었고, 하나를 알게 되면 또 다른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 질문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확인하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준 것은 아닙니다.

    ChatGPT가 나를 대신해 소송을 한 것도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한 사람은 나였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확인해야 할지 막막했던 나에게 질문할 수 있는 도구가 생겼다는 것은 큰 변화였습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고, 필요한 내용을 하나씩 확인하고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홀로 민사소송을 시작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혼자 시작한 민사소송

    그렇게 소장을 준비했습니다.

    준비서면을 작성하고, 하나씩 증거를 정리했습니다.

    처음부터 법률을 잘 알았던 것도 아닙니다.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도 하나씩 알아가야 했습니다.

    때로는 막막했고, 때로는 내가 과연 이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자료를 펼쳐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물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기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내가 놓친 것은 없는가?”

    그렇게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합니다.

    반대매매가 일어나기 사흘 전에는 “살려 달라고 기도해라”​라는 말씀이 마음에 강하게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반대매매가 일어난 뒤에는 너무 놀라 그 말씀조차 잊었습니다.

    증권사에 찾아갔을 때는 답답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방문에서 받은 한 장의 종이가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두 번 민원을 넣었지만 내가 원하는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뒤에는 뜻밖에도 큰 아이의 한마디를 통해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조차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말이 마음에 남았고,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질문하면서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하나하나의 사건은 별개처럼 보입니다.

    기도했던 일,

    반대매매가 일어난 일,

    두 번째 방문에서 자료를 받은 일,

    그 자료에서 단서를 발견한 일,

    금융감독원에 두 번 민원을 넣은 일,

    1년이 넘도록 답을 찾지 못했던 시간,

    그리고 큰아이의 한마디.

    당시에는 어느 것 하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일이 하나의 길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나는 길을 알고 걸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과정을 지나면서 한 가지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길을 알고 걸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그때 다음 한 걸음만 알았습니다.

    기도했고,

    기다렸고,

    찾았고,

    발견했고,

    또 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한 걸음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모두 보여주셨다면 아마 나는 덜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주셨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답을 보여주시기보다 그때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셨습니다.
    한 번에 다 보여주셨더라면, 어쩌면 저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잘 아시기에, 한 걸음 씩 인도해 주셨습니다.

    다음 한 걸음을 걸으면 또 다른 길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단순히 민사소송의 과정으로만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 이 소송의 최종 결과도 알 수 없습니다.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분명히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답을 한꺼번에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다음 한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하나씩 길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엄마도 몰라서 묻는다」와 이어지는 이야기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내가 이전에 썼던 **「엄마도 몰라서 묻는다」**라는 글과도 연결됩니다.

    나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물었고,

    내가 가진 자료를 찾아보았고,

    궁금한 것을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모르는 것이 부족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묻기 시작했을 때, 다음 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질문한다고 해서 모든 답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질문하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무조건 두려워하기보다 먼저 묻습니다.

    그리고 확인합니다.

    다시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또 질문합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다음 한 걸음을 찾습니다.

    아직 마지막 장면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이 길의 마지막은 모릅니다.

    민사소송의 결과도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내가 바라는 결과가 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나는 혼자 걸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매매가 일어나기 사흘 전의 그 기도도,

    뜻밖에 손에 들어온 한 장의 자료도,

    그 자료에서 발견된 단서도,

    두 번의 민원도,

    2년이 넘는 기다림도,

    큰아이의 뜻밖의 한마디도,

    그리고 질문을 통해 하나씩 길을 찾아간 시간도,

    지금의 나에게는 모두 하나의 과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왜 이렇게 많은 자료를 찾아야 하는지,

    왜 내가 직접 이 모든 것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길 전체를 볼 수 있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다음 한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하셨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또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길의 마지막을 억지로 알려고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한 걸음을 걸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한 걸음이 보이면 또 걸으려고 합니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나는 길을 다 알고 걸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그때 다음 한 걸음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음 길을 볼 수 있도록 조금씩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믿고 싶습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하는 길에도 하나님은 이미 계신다고.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나는 하나님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통로로 부를 허락하시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통로로 부를 허락하시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어떤 통로로 부를 허락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부를 생각하면 먼저 돈을 떠올립니다.

    얼마를 벌었는지,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얼마나 좋은 투자를 했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앙 안에서도 부에 대한 생각은 쉽게 두 극단으로 나뉩니다.

    한쪽에서는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물질적인 복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다른 한쪽에서는 “돈과 부를 가까이하는 것은 신앙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성경이 말하는 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반드시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증거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어떻게 얻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의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의 궁극적인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열심히 일했고, 공부했고, 기술을 익혔고, 좋은 기회를 잡았고, 투자해서 수익을 냈으니 모두 내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의 노력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노력할 수 있는 건강과 능력도 내가 처음부터 만들어 낸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재능과 지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환경, 그리고 때를 따라 찾아오는 기회 역시 모두 내가 계획해서 만들어 낸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부를 만들어 냈다고 자랑하지 않도록 경고합니다.

    신명기 8장 18절은 하나님께서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이 말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돈을 보내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할 능력과 생각할 지혜, 기회를 활용할 힘과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를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돈에 대한 우리의 관점입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벌었는가?”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맡기셨는가?”로 시선을 옮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통로를 사용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어떤 통로를 통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방법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직장을 통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기술과 재능을 통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면서 소득을 얻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 공부하고 전문성을 쌓은 뒤 그 능력을 통해 더 넓은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대가 변하면서 투자와 자산 관리 역시 우리가 경제생활을 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통로인가보다 그 통로를 누가 열었고, 나는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사용하고 있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방식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 이미 존재하는 여러 통로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일할 기회를 주시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하기도 하며, 생각하지 못했던 공부의 기회를 열어 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를 알게 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훗날 돌아보면 당시에는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갔던 일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길을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부의 통로 가운데 하나는 입니다.

    우리는 일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일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소득을 얻는 과정 역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질서 안에 있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그렇고, 자신의 기술로 일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며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를 이야기할 때 단순히 “얼마를 벌 것인가?”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도 함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왜 같은 말씀을 여러 번 하실까?



    재능과 전문성도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재능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글을 잘 쓰고, 어떤 사람은 손재주가 뛰어나며, 어떤 사람은 사람을 잘 돌봅니다.

    어떤 사람은 숫자에 강하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발견하는 데 능숙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 한 분야를 공부하여 전문적인 지식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재능과 지식은 단순한 개인의 자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잘 사용하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동시에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소득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단순히 성공하기 위한 노력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을 잘 관리하는 청지기의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사업과 투자도 무조건 배척할 대상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사업과 투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돈과 투자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나 투자라는 행위 자체가 선하거나 악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안에 들어 있는 탐욕과 욕심, 정직하지 못한 방법, 지나친 위험 감수와 돈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투자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탐욕스러운 것도 아니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돈을 바라보는 마음과 그것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투자는 미래를 위해 자산을 관리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투자에는 언제나 위험이 존재합니다.

    수익을 얻을 수도 있지만 손실을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투자하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수익을 보장받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이런 생각은 믿음이라기보다 때로는 자신의 욕심을 신앙으로 포장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위험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위험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도 지혜롭게 판단하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61074

    하나님이 주시는 부와 내가 원하는 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부와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시는 부가 반드시 같지는 않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많은 돈을 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절제를 배우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나는 더 큰 수익을 원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손실을 통해 욕심을 돌아보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나는 빠른 성공을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랜 시간 성실함을 배우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돈을 얻는 것보다 돈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해할 때는 결과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벌었는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부는 축복이면서 동시에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신다면 그것은 단순히 더 편안하게 살라는 의미만은 아닐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에게는 더 큰 책임도 따릅니다.

    내가 가진 돈으로 가족을 돌볼 수 있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부의 개념에는 나눔과 책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돈이 많다는 사실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얼마나 정직하고 지혜롭게 관리했는지가 중요합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라도 돈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소유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를 허락하실 때 우리가 배워야 할 것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경제적인 기회를 열어 주실 때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먼저 감사를 배워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모두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별을 배워야 합니다.

    좋은 기회처럼 보인다고 해서 모두 붙잡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절제를 배워야 합니다.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기다림도 배워야 합니다.

    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경우보다 오랜 시간 성실하게 쌓이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눔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이미 길을 열고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삶에는 이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시간이 지난 후 돌아보니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된 일,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 일, 예상하지 못했던 공부를 하게 된 일, 새로운 금융상품을 알게 된 일, 투자라는 세계를 접하게 된 일도 그렇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인지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때부터 나를 어떤 길로 인도하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물론 모든 일이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었다고 섣불리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선택과 실수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택과 부족함까지도 사용하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성숙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나온 모든 일을 억지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셨는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돈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결국 부에 대한 신앙적인 질문은 이것으로 모아집니다.

    “하나님은 나를 얼마나 부자로 만들어 주실 것인가?”

    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을 나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돈은 우리의 삶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때로는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돈 자체를 죄악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돈이 하나님보다 앞서게 되는 순간 우리는 돈을 섬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돈을 갖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가지고도 돈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려 합니다

    이제부터 나는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부를 허락하시는 통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나에게도 하나의 특별한 통로가 열렸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거창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식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남편이 어느 날 주식이 꼭 나쁜 것 만은 아닌 것 같다며 아주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냅니다. 아이들 결혼 준비도 해야 하는 부담감에 조금이라도 투자를 해서 돈을 모으고 싶은 마음에서 주식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전 부터 주식을 부정적으로 바라 보지 않았으나, 남편이 부정적이었고 또 투자를 할 만한 상황이 못되었기에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식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 남편과 아주 조금 투자를 해 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본격적으로 자연스럽게 주식이라는 금융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과정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을 지나면서 나는 투자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돈에 대한 나의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상하지 못했던 큰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반대매매였습니다.

    그 사건은 나에게 단순한 투자 손실이 아니었습니다.

    돈을 바라보는 시선, 금융회사를 바라보는 시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질문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주식을 접하도록 길을 여셨다면, 왜 그 길의 끝에서 이런 어려움을 만나게 하셨을까?”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번에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하나씩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돈을 많이 벌었던 이야기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투자를 잘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한 사람이 돈과 투자, 손실과 고난을 지나오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그 과정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를 허락하시는 가장 중요한 통로는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다듬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하시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이제 다음 글부터 하나씩 꺼내 보려고 합니다.

  •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말씀 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길이 맞는 걸까요?”

    “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나는 건가요?”

    “하나님은 정말 제 기도를 듣고 계신가요?”

    때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기도해도 상황은 그대로이고, 기다려도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다만 내가 그 말씀을 알아 듣지 못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가장 분명한 통로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던 한 구절이 어느 날 유난히 마음에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같은 말씀인데도 어떤 날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가, 내가 가장 힘든 순간에 읽으면 마치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게 맡기라.”

    “기다리라.”

    말씀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나의 상황과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조금씩 알아가고, 내가 가고 있는 길을 돌아보게 됩니다.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책망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내가 원하는 답과 전혀 다른 말씀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때부터 진짜 믿음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말씀하신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말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쏟아놓습니다.

    억울한 일도 이야기하고, 두려움도 이야기하고, 원하는 것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오래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달라집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말씀드리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기다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답을 빨리 얻고 싶습니다.

    “하나님, 이것을 해결해 주세요.”

    “하나님, 이 길을 열어 주세요.”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려 주세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과 시간에 답하지 않으실 때가 많습니다.

    대신 우리의 마음을 먼저 바꾸십니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기도 하고,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게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런 마음이 생깁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자.”

    “내가 판단하지 말자.”

    “하나님께 맡기자.”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통로로 부를 허락하시는가?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의 꿈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사람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여주시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셉에게 주셨던 꿈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어떤 꿈은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꿈을 꾸어도 금방 잊어버리는데, 어떤 꿈은 잠에서 깬 뒤에도 이상하리만큼 마음에 남습니다. 때로는 그 꿈 때문에 하루 종일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이나 말이 오랫동안 기억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꿈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가져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혹시 이 꿈을 통해 제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뿐만 아니라 잠든 시간에도 우리의 마음을 다루실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꿈을 통해 떠올리게 하시고, 잊고 있던 일을 다시 생각하게 하시며, 어떤 사람이나 상황을 위해 기도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모든 꿈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겠지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말씀하신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꿈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기도로 가져가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잠든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깨우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도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훗날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도 나에게 말씀하고 계셨구나.”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61074

    하나님은 사람과 사건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책을 펼쳤을 때만 들려오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한 사람의 말 한마디를 통해 마음에 무언가를 깨닫게 하십니다.

    때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을 통해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어떤 만남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오고, 어떤 사건은 나를 멈추게 하기 위해 찾아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건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 그래서 그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그곳에 머물게 하셨구나.”

    “내가 그때는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셨구나.”

    물론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고, 그 안에서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은 기다림 속에서도 말씀하신다

    가장 어려운 것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답을 듣는 것보다 답이 늦어지는 것을 더 힘들어합니다.

    특히 이미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할 때 그렇습니다.

    기도했고, 노력했고, 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하지만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상황을 먼저 바꾸지 않으시고 사람을 먼저 바꾸십니다.

    상황을 해결하기 전에 우리의 믿음을 준비시키십니다.

    문을 열어주시기 전에 그 문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원하는 말과 다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생각과 같은 말씀을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내가 원하는 길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변화되기를 바라며, 내가 원하는 결과를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분으로만 존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멈추라”고 말씀하시고,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며,

    “용서하라”고 말씀하시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내려놓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기분을 만족시키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고 계신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한 번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셨고,

    기도 가운데 말씀하셨으며,

    사람을 통해 말씀하셨고,

    사건을 통해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다림 속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그때의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무 큰 소리로만 찾았던 것 같습니다.

    특별한 표적이나 분명한 음성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주 조용하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말씀 한 구절을 통해,

    마음에 주시는 작은 깨달음을 통해,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통해,

    뜻밖의 사건을 통해,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기다림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

    “하나님,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 질문이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셔서 답답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기도를 통해 마음을 만지시며,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말씀 앞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입니다.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믿고,

    기다리고,

    순종하며,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나온 모든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미처 알아듣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시 조용히 하나님 앞에 서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말씀해 주세요.
    제가 듣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이라도
    주님을 신뢰하며 따라가겠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오늘도 우리의 삶을 향하고 있습니다.

  • 내면의 치유 ① | 치유-상처로 얼룩진 내면

    내면의 치유 ① | 치유-상처로 얼룩진 내면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와 치유를 경험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들었던 말 한마디,
    친구에게 받은 배신,
    가족과의 갈등, 가난
    직장에서의 무시와 억울함, 따돌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그리고 사별,
    실패와 좌절….

    이러한 경험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마음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면 오래전에 받았던 상처가 다시 떠올라서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같은 말에도 쉽게 마음이 무너지고,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화가 나거나,
    사람을 믿지 못하는 편견이 생기기도 합니다.

    상처는 단순히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움직이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상처가 시간만으로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인 상처의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상처는 치유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보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바라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아픔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그 정도는 별것 아니야.”라고 말하기도 하고,
    오히려 상처를 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더욱 힘들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 한 방울도 헛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상한 마음을 가까이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밤에 흘린 눈물도 알고 계시고

    말하지 못한 아픔도 알고 계십니다.

    감추어진 상처도 알고 계시며

    그리고 그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상처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려 합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점점 우리의 삶을 지배합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며,

    늘 비교하고 탓 하게 만들며, 변명하고 합리화 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열등감과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게 합니다.

    또한 분노와 미움은 또 다른 상처를 만들기도 합니다.

    상처 받은 사람이 그 상처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환경만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의 방향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https://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132541/20260803/%EC%95%84%EB%B2%84%EC%A7%80%EA%B0%80-%EC%82%B4%EC%95%84%EC%95%BC-%EA%B0%80%EC%A0%95%EC%9D%B4-%EC%82%B0%EB%8B%A4-%EB%91%90%EB%9E%80%EB%85%B8-%EC%95%84%EB%B2%84%EC%A7%80%ED%95%99%EA%B5%90-%EC%8B%9C%EC%95%A0%ED%8B%80-51%EA%B8%B0-%EC%B0%B8%EA%B0%80%EC%9E%90-%EB%AA%A8%EC%A7%91.htm

    치유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 번 기도하면 모든 상처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시간을 통해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말씀으로,

    기도로,

    예배로,

    성령님의 위로로,

    좋은 공동체를 통해,

    조금씩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마치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이,

    회복도 하나님의 때를 따라 찾아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상처를 맡길 때 진정한 자유가 시작됩니다

    우리 힘으로는 모든 상처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용서도 쉽지 않고,

    잊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솔직히 내어드릴 때 치유는 시작됩니다.

    기도는 상처를 숨기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시간입니다.

    눈물도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침묵도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가장 잘 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상처까지 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죄만 담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조롱받으셨고,

    버림받으셨으며,

    배신당하셨고,

    고통과 슬픔을 몸소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이해하십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용서뿐 아니라 회복의 시작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둘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받은 치유와 회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함께 말씀을 묵상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공동체를 표현한 이미지

    우리의 회복은 또 다른 사람을 살리는 통로가 됩니다

    치유를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받은 위로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헛되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회복된 마음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믿음이 되며,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됩니다.


    맺음말

    혹시 지금도 오래된 상처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도 마음 한편이 무너져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두 손을 내밀며 말씀하십니다.

    “내게 나오라.”

    우리의 상처는 하나님께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맡겨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메마른 우리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며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함께 묵상할 말씀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36:26)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상처를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사람에게 받은 아픔과 스스로를 정죄했던 마음까지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메마른 제 영혼에 주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미움 대신 사랑을, 두려움 대신 평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제 삶이 치유의 은혜를 경험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에필로그

    상처는 우리의 인생을 정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상처는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내면의 치유 ② | 용서하지 못한 마음,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를 통해 용서와 회복의 실제적인 여정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 내면의 치유 시리즈 ②

    내면의 치유 시리즈 ②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도 치유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용서하지 못할까요?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모두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원망이 되고, 분노가 되고, 마음속에 단단한 벽을 만들기도 합니다.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왜 나를 그렇게 대했을까?”
    “나는 아직도 그 일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이러한 기억은 우리의 마음을 계속 괴롭히고 무겁게 붙잡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용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상처가 깊을수록, 배신이 클수록, 억울함이 클수록 우리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단순히 “용서하라”고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의 상처, 상한 감정을 치유하시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새롭게 만들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감정보다 먼저 믿음에서 시작되는 일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마음이 풀리면 하겠다.”

    하지만 성경은 조금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감정이 모두 해결된 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은 아직 아플 수 있습니다.

    눈물이 날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아시며, 우리와 함께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한 걸음 씩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도
    함께 치유해 가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힘으로 순종이 어려워 힘들어 하는 자들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의 상한 감정을 치유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억압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 제작: (ChatGPT)AI 생성 지이미지

    하나님을 깊이 알수록 은혜는 커집니다

    우리는 모두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하나님 앞에 잘못했고, 넘어졌으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수 없는 은혜를 베푸셨고, 갚을 수 없는 사랑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나도 이렇게 복음에 빚진 자인데…’

    이 깨달음은 억지로 참는 마음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내 마음을 붙잡고 있던 미움과 원망을 하나님께 맡기는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임재 안에서 주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게 되면 부정적인 마음에 자신을 내 맡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상한 감정을 맡겼을 때 누리게 되는 참 평안을 알게 되면
    오히려 주님의 사랑을 더욱 알고 싶은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정의와 심판을 맡기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영혼은 왜 중요할까요?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57717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나 자신을
    더 아프게 합니다

    원망은 상대방보다 먼저 내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미움은 생각을 지배하고,

    분노는 평안을 빼앗으며,

    복수심은 우리의 영혼을 지치게 만듭니다.

    겉으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과거의 상처를 반복해서 떠올리며 스스로를 괴롭히게 됩니다.

    용서하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대를 위한 일이기 전에 나 자신의 자유를 위한 일 입니다.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회복시키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까지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 마음부터 변화 시켜 주십니다.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상처,

    오랫동안 품어 왔던 원망,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눈물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어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아픔을 내려놓을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조금씩 부드럽게 하십니다..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순종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새롭게 변화 시켜 주십니다.


    용서는 치유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용서는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닙니다.

    과거의 상처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치유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 뿐 아니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치유하시고 억압에서 자유 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솔직히 내어 드려 보십시오.

    “하나님, 제 안에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 주십시오.”

    하나님은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자유하게 하시며,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함께 묵상해 보세요

    • 지금도 내 마음속에 놓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해 보세요!

    마무리하며

    용서는 인간의 의지 만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조금씩 배워 가는 삶의 과정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키시는 치유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