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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국은 어떤 곳인가? 누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가|성경이 말하는 천국과 구원

    천국은 어떤 곳인가? 누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가|성경이 말하는 천국과 구원

    앞에서 우리는 지옥은 어떤 곳인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지옥이 성경에서 경고하는 심판의 장소라면, 그 반대편에는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들에게 약속하신 천국과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그리고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나쁜 일을 많이 하지 않았으니 천국에 갈 수 있겠지.”

    “착하게 살았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 주실 거야.”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당연히 천국에 가겠지.”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분명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의 선행이나 종교적인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구원​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곳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단순히 고통이 없는 아름다운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천국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며 다시는 사망이나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 요한계시록 21:3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 요한계시록 21:4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죽음이 있고, 질병이 있고, 이별이 있으며, 배신과 슬픔과 눈물이 있습니다.

    아무리 행복한 삶을 살아도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고, 우리의 육체도 쇠약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나라에는 이러한 것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음이 없고, 아픔이 없고, 눈물이 없으며,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곳.

    그곳이 성경이 보여 주는 천국의 모습입니다.


    천국에는 하나님을 떠난 죄가 없습니다

    천국을 생각할 때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천국은 단순히 ‘좋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죄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7절은 새 예루살렘에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거짓말하는 자가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빛이시며 그분 안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곳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죄를 가진 인간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바로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상태를 매우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로마서 3:23

    성경은 특정한 사람들만 죄인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말씀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죄의 모습과 정도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의로움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로움은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함 앞에서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착하게 사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것만으로도 구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헌금을 많이 했다고 해서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봉사를 많이 했다고 해서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믿음의 열매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근거 자체는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성경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복음의 핵심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려 줍니다.

    구원은 내가 얼마나 잘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종교를 믿든 결국 같은 곳에 가는 것 아닐까?”

    “착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지 않을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요한복음 14:6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4장 12절 역시 이렇게 선언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막연한 종교적 위로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입으로만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전부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은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믿음은 삶의 변화로 나타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사람이라면 죄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믿는 사람도 넘어집니다.

    실수하고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죄를 대하는 마음입니다.

    죄를 죄로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다시 주님께 돌아가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지옥은 어떤 곳인가? 성경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영원한 심판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09596


    구원받은 사람의 삶에는 변화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죄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자신의 욕심만을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선행을 통해 구원을 사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믿음이라면 반드시 삶 가운데 열매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나무가 살아 있다면 열매가 맺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는 사람에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이전에는 자기 생각만 중요했는데 조금씩 주님의 뜻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용서하기 어려웠던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잘못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게 됩니다.

    세상의 성공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을 더 알고 싶어 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완벽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전히 넘어지고 부족하지만,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천국에 가는 사람은 죄가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도 아닙니다.

    완벽하게 의로운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로마서 10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천국은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가’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나는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은 오늘의 삶도 달라집니다

    천국을 믿는다는 것은 죽은 뒤 좋은 곳에 간다는 생각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은 오늘의 삶에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기준만 따라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만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돈과 성공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0절에서 우리에게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이 땅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언젠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았는가?”


    오늘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천국입니다

    사람들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것을 합니다.

    노후를 준비하고,

    재정을 준비하고,

    건강을 관리하고,

    자녀의 미래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정작 반드시 맞이하게 될 영원한 삶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날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선한 일을 했는지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의로운지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의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선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칫 죽은 이후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소망하는 삶은 오늘의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지,

    죄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려움 가운데 누구를 의지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가 모두 중요합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선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좋은 행동이 구원의 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의 삶에서 감사와 순종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매일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내 마음을 살피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알게 된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나는 정말 천국을 소망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있는가?

    예수님보다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가?

    죄를 지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과 감정을 더 앞세우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내 뜻대로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들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질문입니다.

    구원은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은 단순한 종교적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치는 영원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천국은 아무나 자기 힘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직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지 않는 분이라면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내가 정말 주님 안에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죄를 멀리하며,

    회개하고,

    순종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최종 목적지는 이 땅의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나라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이 약속을 바라보며 오늘도 주님과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소망이 이 땅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땅의 삶은 잠시 지나가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이 땅의 삶만 바라보며 살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게 해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게 해 주세요.”

    천국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꿈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오늘의 삶 역시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세상의 무엇인가를 더 많이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고, 믿고, 사랑하며,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 지옥은 어떤 곳인가? 성경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영원한 심판

    지옥은 어떤 곳인가? 성경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영원한 심판

    앞의 글에서 우리는 “지옥에 가는 것이 지금의 어떤 어려움보다도 훨씬 두려운 일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고, 관계의 어려움도 있으며, 건강과 직장, 자녀 문제로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지금 당장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눈앞의 고난만 바라보지 말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지옥은 과연 어떤 곳일까요?

    지옥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사람을 겁주기 위한 종교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지옥에 대해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사람들은 지옥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닐까?”

    “지옥이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하나님이 사랑이신데 어떻게 지옥이 있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지옥을 단순한 상징이나 비유 정도로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마지막 심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악인에게 임할 심판을 “영벌”​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또한 마가복음에서는 죄의 결과에 대해 매우 엄중하게 경고하시면서 지옥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지옥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지옥에 대한 경고는 사람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지옥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지옥이 없다면 예수님께서 그렇게까지 반복해서 경고하실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옥의 가장 큰 두려움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입니다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때 흔히 불, 고통, 어둠과 같은 이미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성경에도 지옥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지옥의 가장 본질적인 두려움은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두려움은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갈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햇빛을 주시고, 비를 내리시며, 생명을 유지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 이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습니다.

    돌이킬 수도 없고,

    다시 선택할 수도 없으며,

    “그때 하나님을 찾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후회해도 이미 늦습니다.

    그래서 지옥은 단순히 “고통스러운 장소”​라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을 떠난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옥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지옥을 그렇게 엄중하게 경고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죄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며, 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지옥에 대해서는 매우 엄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바로 사람이 그곳에 가지 않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에게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곳에 가면 위험해.”

    “그 길로 가면 안 돼.”

    “돌아서야 해.”

    이러한 말을 하는 이유는 자녀를 겁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지옥에 대한 경고도 그렇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옥에 대한 말씀은 우리를 공포에 빠뜨리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선택하도록 주시는 경고입니다.


    지옥에 대한 경고는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는 감정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이 자신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돌아보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종교적인 행동만 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찬양을 부르는 것 자체가 신앙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정말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내 뜻만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게 유리한 것만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죄를 죄라고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님의 뜻보다 세상의 기준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옥에 대한 묵상은 결국 우리를 자기 자신에게로 데려옵니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피할 수 없게 합니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누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가|성경이 말하는 천국과 구원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4317



    지옥은 한순간의 실수 때문에 가는 곳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실수를 많이 했는데 혹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까지 지은 죄가 너무 많은데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 주실까?”

    그러나 복음의 핵심은 인간의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완벽하게 살았느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중심입니다.

    우리 중 죄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우리의 의로움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완벽해져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대한 글을 읽고 단순히 두려움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깨닫게 해 주세요.”

    “제가 제 뜻대로 살고 있다면 돌이키게 해 주세요.”

    “주님을 진심으로 알고 사랑하며 살아가게 해 주세요.”

    그것이 지옥에 대한 말씀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돌아올 시간을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직 하나님께 돌아갈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숨을 쉬고 있고,

    오늘도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오늘도 기도할 수 있으며,

    오늘도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사람은 내일도 당연히 살아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내일을 보장받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일을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믿겠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한 다음 하나님께 돌아가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을 내일로 미루기보다 오늘 하나님께 마음을 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옥을 생각하면 지금의 삶을 다시 보게 됩니다

    지옥에 대한 묵상은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돈이 가장 중요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내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을 생각하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인가?”

    “내 삶의 주인은 정말 하나님이신가?”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얻어도 하나님을 잃는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반대로 세상에서 조금 부족하게 살아가더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뜻 가운데 살아간다면, 그 삶은 결코 실패한 삶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옥에 대한 말씀을 가볍게 넘기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지옥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편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능하면 아름답고 따뜻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심판에 대한 말씀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죄에 대한 심판이 없다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왜 필요한지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죄가 아무 문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죄는 반드시 다루어져야 하는 심각한 문제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죄인을 버리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옥에 대한 말씀을 묵상할수록 오히려 십자가의 은혜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내가 받아야 할 심판을 주님께서 대신 담당하셨구나.”

    “내가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구나.”

    이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옥을 두려워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지옥이 두렵다고 해서 단순히 공포에 사로잡혀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두려움 때문에 억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대한 묵상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묵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멈추지 않고,

    “나는 하나님을 정말 알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을 정말 믿고 있는가?”

    “나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내 삶에서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는가?”

    이러한 질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은 단순히 지옥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님께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지옥이 어떤 곳인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그 무거움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붙잡고 싶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오늘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직 회개할 수 있습니다.

    아직 말씀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아직 주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옥에 대한 말씀은 우리에게 절망을 주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초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지금 자신의 삶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다고 느껴진다면, 거창한 것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조용히 주님 앞에 앉아 이렇게 기도하면 됩니다.

    “주님,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여 주세요.”

    “제가 주님의 뜻보다 제 뜻을 따라 살고 있다면 깨닫게 해 주세요.”

    “제가 주님을 잊고 살았다면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해 주세요.”

    그리고 말씀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주님을 묵상하고,

    주님의 마음을 구하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오늘 주어진 삶에서 작은 것부터 순종하는 것입니다.


    지옥을 생각할수록 천국을 바라보게 됩니다

    지옥에 대한 묵상은 우리를 단순히 두려움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편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게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신앙의 목적은 단순히 지옥을 피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시간은 결코 가볍게 흘려보낼 시간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지,

    어떤 것을 사랑하는지,

    어떤 말씀에 순종하는지,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삶이 힘들 때마다 단순히 “이 어려움이 언제 끝날까?”​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이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하지 않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만으로 끝나서도 안 됩니다.

    그 경고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돌이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며,

    오늘 주어진 삶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지옥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는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주님을 바라봅니다.

    오늘도 주님의 마음을 구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오늘이 주어졌다는 것,

    아직 주님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아직 돌이킬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영원한 생명-현 상황이 매우 힘드신가요? 그보다 더 평생 힘든 일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현 상황이 매우 힘드신가요? 그보다 더 평생 힘든 일이 있습니다

    요즘 마음이 많이 힘드신가요?
    무엇보다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아무리 견뎌 보려고 해도 상황이 쉽게 달라지지 않고, 하나의 어려움이 지나가기도 전에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오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저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고 아직 현재 진행형의 시간입니다.

    오랫동안 여러 가지 힘겨운 시간을 지나왔고, 그 가운데 어렵게 시작했던 소송 사건마저 1심에서 패소라는 결과를 받아들게 되었습니다.

    판결문을 받아들고 나니 마음이 참 복잡했습니다.

    그동안 사건을 돌아보고 자료를 정리하고, 내가 겪었던 일을 하나씩 기록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결과가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나오니 마음이 허무하기도 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힘든 일이 계속되는 것일까?’

    ‘나는 언제까지 이 시간을 지나가야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이 마음을 오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제 마음에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현 상황이 많이 힘든가?”


    네, 지금 많이 힘듭니다

    솔직히 말하면 힘듭니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기도하면서도 마음이 무겁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순간순간 낙심이 찾아옵니다.

    특히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일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마음이 쉽게 무너집니다.

    사람은 결과를 통해 자신의 삶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잘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 같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혹시 내가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흔들립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마음에 다시 질문이 들려왔습니다.

    “현 상황이 그렇게 힘든가?”

    그리고 그 질문 뒤에 이런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그보다 더 힘겹고, 평생 힘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그 순간 제 시선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바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시선이었습니다.


    지금의 고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문제를 가장 크게 생각합니다.

    돈이 부족하면 돈 문제가 가장 큰 문제처럼 느껴지고, 소송에서 패소하면 그 패소가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우면 그 관계가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넓혀 보면 알게 됩니다.

    지금 내가 겪는 모든 일은 이 땅에서의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긴 고난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도 결국에는 끝나는 날이 있습니다.

    오늘의 눈물도 언젠가는 멈추고, 오늘의 실패도 언젠가는 지나간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영원한 생명 내 영혼의 문제입니다.

    이 땅에서 잠시 겪는 고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떻게 서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제 마음에 ‘지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지옥에 대한 생각은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지옥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지옥에 대한 말씀을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기 위한 말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먼저 내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게 하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에는 참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실패하지 않을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지,

    어떻게 하면 지금의 어려움에서 벗어날지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영원한 생명, 영혼의 문제에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래서 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 상황이 매우 힘든가?
    그보다 더 평생 힘든 일은 영원한 생명의 문제일 수 있다.”

    이것은 지금의 고통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힘든 것은 힘든 것입니다.

    억울한 것은 억울한 것이고, 실패는 아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 때문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영원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저는 그 답을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님을 묵상하는 삶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부지런히 묵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묵상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부터 내 생각이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나로 영원한 생명에서 점차로 멀어지게 합니다.

    내 감정이 기준이 되고,

    내 억울함이 기준이 되고,

    내 욕심이 기준이 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준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주님의 뜻을 구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원하는 답을 하나님께 요구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은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실지,

    주님이라면 지금 내가 어떤 말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주님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주님을 묵상하는 삶입니다.


    주님의 마음과 뜻을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내가 원하는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것이 아닐까요?

    때로는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내가 억울할 때 용서해야 할 수도 있고,

    내가 화가 날 때 말을 멈춰야 할 수도 있고,

    내가 옳다고 생각할 때에도 한 걸음 물러서야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조금씩 배워 갑니다.

    그래서 주님을 묵상하는 일은 단순히 조용히 앉아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순간 순간마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묻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경 요한복음 17장 3절에 따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말씀처럼 주님을 알아야 하고 주님 뜻을 구하는 삶이 같이 가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을 때에는 서두르지 않고 다시 주님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무엇을 결정할 때 마음이 쫓기고 불안한 가운데서 하면 안 됩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3490


    힘든 순간일수록 더 깊은 분별이 필요합니다

    특히 마음이 힘들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마음이 쫓기고 불안할 때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억울한 마음이 커지면 말이 거칠어질 수 있고,

    두려움이 커지면 조급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분노가 커지면 나중에 후회할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욱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주님의 뜻과 맞는가?”

    “내가 하려는 행동이 주님의 마음에 합한 것인가?”

    “이 선택을 주님 앞에서도 떳떳하게 할 수 있는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번 멈추어 서면 마음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지금의 소송도 제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의 소송 결과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물론 마음이 아픕니다.

    패소라는 결과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항소를 준비하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이 사건이 제 인생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승소한다고 해서 제가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패소한다고 해서 제가 가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법원의 판결이 제 존재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결과가 제 영혼보다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하나님께 시선을 돌립니다.

    “주님, 이 사건의 결과를 어떻게 만들어 주실 것인가”만 묻기보다,

    “주님, 이 시간을 통해 제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라고 묻고 싶습니다.


    주님을 묵상하면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주님을 계속 묵상한다고 해서 상황이 즉시 달라지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문제가 당장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를 바라보는 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억울함만 보였다면 이제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게 되고,

    예전에는 결과만 중요했다면 이제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을 묵상하는 일은 우리의 삶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수님의 성품을 생각하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지를 묵상하고,

    내 마음속에 있는 욕심과 분노와 교만을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주님의 마음과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지옥에 대한 두려움에서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을 생각할 때에 지옥을 생각하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글이 단순히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글로 끝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주님께 나아가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묵상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주님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말씀을 붙들고,

    주님의 마음을 알고 싶기 때문에 기도하고,

    내 뜻대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분별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주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기를 구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 아니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걷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힘들다면 영원을 바라보십시오

    혹시 지금 삶이 너무 힘드신가요?

    저도 지금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이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실패도 지나갑니다.

    오늘의 눈물도 지나갑니다.

    오늘의 억울함도 언젠가는 끝납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고통 때문에 영원한 생명, 영원한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다시 말합니다.

    “지금의 상황이 많이 힘들지?
    그래도 이것이 전부는 아니야.”

    지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내 영혼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과 얼마나 가까운지 돌아봅니다.

    내가 하려는 일이 주님의 뜻에 맞는지 분별합니다.

    그리고 잘 모르겠을 때는 서둘러 결정하지 않고 다시 주님 앞에 머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주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수많은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승리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도 있고 오해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을 지나면서 제가 붙들고 싶은 것은 하나입니다.

    주님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을 묵상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주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과 감정이 앞서지 않도록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질문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소송의 결과가 아무리 마음 아파도,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어도,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을 놓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이 땅에서의 모든 것은 지나가지만, 주님과 함께하는 영원은 지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 자신에게 다시 말합니다.

    “지금의 고난 때문에 영원을 잊지 말자.
    세상의 문제 때문에 영원한 생명의 문제를 놓치지 말자.
    주님을 부지런히 묵상하자.
    그리고 매 순간 주님의 마음과 뜻을 분별하며 살아가자.”

    이것이 지금 힘겨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 제가 제 자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주님,
    오늘의 상황보다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게 하시고,
    내 생각보다 주님의 마음을 먼저 구하게 하시며,
    내 뜻보다 주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소서.
    힘든 순간에도 주님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게 하시며,
    끝까지 주님과 함께 걷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무엇을 결정할 때 마음이 쫓기고 불안한 가운데서 하면 안 됩니다

    무엇을 결정할 때 마음이 쫓기고 불안한 가운데서 하면 안 됩니다

    결정은 마음이 차분하고 고요할 때 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결정을 내립니다.

    아주 작은 선택부터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결정까지, 하루에도 여러 번 선택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어떤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보이지 않아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여러 상황을 경험하다 보니 한 가지를 점점 깨닫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마음이 심하게 쫓기고 불안하다면, 그 상태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빨리 선택해야 해.”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돼.”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조금이라도 늦으면 모든 것이 잘못될 거야.”

    이런 생각이 계속해서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다 보면 충분히 생각하고 판단하기도 전에 무언가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 문제가 시작됩니다.


    불안은 사람을 조급하게 만듭니다

    불안 자체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불안한 마음이 우리에게 위험을 알려 주기도 합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긴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걱정하는 것 역시 당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을 마음속에 계속 품고 있으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불안이 커질수록 사람은 기다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무엇인가 빨리 해결해야 할 것 같고, 지금 당장 결론을 내려야 마음이 편해질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서둘러 내린 선택이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조급하게 내린 선택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서둘러 선택합니다.

    그러다 보면 한 번의 실수가 여러 번의 실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조급함은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끝나지 않고, 잘못된 선택의 연속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다음 선택을 부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일 것입니다.

    잘못된 선택을 내렸다면 그 자리에서 인정하고 멈추면 됩니다.

    “내가 잘못 판단했구나.”

    “이 방향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이렇게 멈출 수 있다면 처음의 실수는 더 큰 문제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한 상태에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미 선택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선택을 옳게 만들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두 번째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선택이 또 잘못되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세 번째 선택을 합니다.

    이렇게 하나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기 위해 또 다른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처음에는 단순한 실수였던 것이 점점 복잡한 문제가 되어 버립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행동을 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실수였는데,

    그 실수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행동을 하고,

    결국에는 처음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잘못까지 저지를 수 있습니다.

    작은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 잘못을 덮기 위해 더 큰 잘못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법을 어기는 행위, 즉 범죄와 같은 심각한 결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방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빨리’가 아니라 ‘멈춤’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빨리 해결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속도를 높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문제는 멈추어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자동차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속도를 더 높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목적지에서 더 멀어질 뿐입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차를 세우고 내가 어느 길로 들어왔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무조건 더 열심히 달릴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이 결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려움 때문에 서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이시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3490


    마음이 쫓길 때는 결정하기 전에 마음부터 살펴야 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내가 무엇을 결정할 것인지보다 먼저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금 화가 나 있는가?

    두려운가?

    불안한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가?

    손해를 볼까 봐 초조한가?

    무언가를 잃을까 봐 조급한가?

    아니면 정말 옳다고 생각해서 이 결정을 하려고 하는가?

    같은 상황에서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판단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불안이 심할 때는 눈앞의 한 가지 문제만 크게 보입니다.

    다른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 내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길이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마음이 가라앉은 후 다시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른 방법이 있었음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마음이 지나치게 쫓긴다면 저는 결정의 속도보다 마음의 속도를 먼저 늦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안한 마음은 ‘지금 당장’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불안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지금 당장”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고,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하고,

    지금 당장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기다리는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다루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게 하시고,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보게 하시고,

    내가 얼마나 내 생각을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결코 낭비되는 시간이 아닙니다.

    때로는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께서 상황보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키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조급함과 다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일을 결정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너무나 원하는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하면 더 그렇습니다.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주님, 빨리 답을 주세요.”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답을 하나님께 받아내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는 기도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해 주세요.”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이 당장 오지 않더라도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을 소극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빨리 결정하고 빨리 행동해야 능력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상황을 살피는 것입니다.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 감정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내 생각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방향을 수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기다림일 수 있습니다.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입니다.

    오히려 중요한 순간에는 그 선택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작은 실수를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작은 잘못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한 번쯤은 괜찮아.”

    “이번만 넘어가면 돼.”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쉽게 익숙해집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했던 행동도 반복하다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지 못했던 행동도 한 번, 두 번 반복하면서 점점 대담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행동은 작을 때 멈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인정해야 합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잘못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자신을 멈추게 하는 용기입니다.


    한 번 멈추는 것이 많은 실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단 한 번의 멈춤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말하기 전에 한 번 멈추는 것,

    결정하기 전에 한 번 멈추는 것,

    화가 났을 때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멈추는 것,

    불안할 때 계약하거나 약속하기 전에 한 번 멈추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한 번 멈추는 것입니다.

    그 멈춤의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여 주세요.”

    “제가 두려움 때문에 움직이고 있다면 멈추게 해 주세요.”

    “제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돌이킬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며 멈추는 순간, 우리는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평안 가운데 다시 바라보면 다른 길이 보일 수 있습니다

    불안할 때는 출구가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가라앉으면 다른 길이 보이기도 합니다.

    “꼭 이것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구나.”

    “조금 더 기다려도 되는 일이었구나.”

    “내가 너무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너무 서두르고 있었구나.”

    이런 깨달음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평안은 단순히 마음이 편안한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평안은 상황을 조금 더 바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의 시야를 회복시켜 주기도 합니다.

    불안할 때는 문제 안에 갇혀 있지만, 마음이 평안해지면 문제를 조금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서 멈추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결정을 하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정말 급하게 결정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불안과 조급함 속에서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마음이 지나치게 쫓긴다면 잠시 멈추십시오.

    불안하다면 먼저 기도하십시오.

    화가 난 상태라면 감정이 가라앉은 후에 결정하십시오.

    두려움 때문에 무엇인가를 선택하려 한다면 그 두려움을 먼저 주님께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내 결정이 정말 옳은 것인지 다시 살펴보십시오.

    한 번의 조급한 결정이 또 다른 실수를 만들고, 그 실수가 반복되면서 더 큰 잘못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한 번의 멈춤이 그 악순환을 끊는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멈추고,

    내 마음을 살피고,

    말씀 앞에서 생각을 내려놓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지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쫓길 때,

    “주님, 빨리 답을 주세요.”라고만 기도하기보다

    “주님, 제가 조급함으로 결정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두려움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멈추어야 할 때 멈추게 하시고,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릴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답보다 주님이 주시는 답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때로는 빠르게 결정하는 것보다 늦게 결정하는 것이 지혜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행동하는 것보다 멈추는 것이 믿음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기다리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쫓기고 불안할 때는 중요한 결정을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내린 결정이 나중에 또 다른 결정을 요구하지 않도록, 먼저 마음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 멈춤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시며,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보여 주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순종이 가장 어려웠던 자리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

    순종이 가장 어려웠던 자리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순종을 배웠습니다.

    말씀을 읽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는 것도 순종이었고, 내 생각과 다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도 순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가장 어려웠던 순종 중 하나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말이 조금 낯설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 문제가 단순히 부부 사이의 갈등이나 성격 차이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의 문제였고, 하나님 앞에서 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아프고 긴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하면 모든 것이 다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제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기대가 있었습니다.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함께 말씀을 배우고, 함께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습니다.

    신앙 안에서 서로를 세워 주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가정을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기대했던 모습과 현실 사이에는 점점 큰 간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결혼생활과는 다른 모습이 나타났고, 제가 기대했던 신앙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제 마음속에 있던 기대가 하나씩 무너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힘들었던 것은 신앙을 바라보는 방향까지 서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무엇보다 신앙의 본질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저의 신앙 생활에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오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저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사역에 더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말씀의 기준을 배우려고 했고, 남편은 사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는 마치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는데 현실에서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참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현실을 바라보면 도무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데, 주님은 제 마음에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라.”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을 믿어라.”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변할 가능성도 없어 보였고, 제가 무엇인가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

    목놓아 울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말할 힘조차 없어서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기도를 해야 하는데 기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주님! 남편에게 말씀해 주세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마음속에는 수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입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제게 십자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님께서 제 마음에 십자가를 비추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때는 참 이상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말을 하고 싶었는데,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제가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제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따지고 싶었던 것들,

    그 모든 말들이 십자가 앞에서는 잠잠해졌습니다.

    십자가는 제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걸어가신 길이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사랑 때문에 자신을 내어주신 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제가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은 단순히 남편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자아와 내 뜻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본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자다”

    어느 날 주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자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제 마음은 참 복잡했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돕는 자’라는 말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돕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무조건 남편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일까?

    내 생각은 내려놓고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일까?

    많은 질문이 생겼습니다.

    남편에게는 도울 방법이 없었습니다.
    정확히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 말씀을 가르쳐 가셨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돕는 자’는 내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생각도 없애고,

    내 감정도 무시하고,

    내가 받은 상처도 없는 것처럼 만들고,

    무조건 상대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제게 먼저 내가 누구의 사람인가를 다시 묻게 하셨습니다.

    나는 남편의 사람이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남편을 돕는 것도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 안에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사람을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하나님 앞에서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제 안에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순종은 상대가 완벽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사람을 바라보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상대가 완벽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대의 모든 행동이 옳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상대를 인정하기 때문에만 순종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주님, 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는 붙들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순종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님은 남편보다 먼저 제 마음을 다루셨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저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남편의 신앙이 달라져야 하고,

    남편의 행동이 달라져야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남편을 먼저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을 먼저 만지셨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기대를 내려놓게 하셨고,

    사람을 바라보며 실망했던 마음을 내려놓게 하셨고,

    제가 옳다는 생각에 붙들려 있던 마음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제게 하나씩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내 몫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서야 할 자리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6641


    순종은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배운 또 하나의 순종은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무언가를 말해서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

    내 힘으로 상황을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않는 것.

    때로는 이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다림 속에서도 일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서는 것이었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씀드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씀드리고,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제가 배워간 순종이었습니다.


    순종은 아픔이 사라진 뒤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는 순종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순종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순종하면 상황도 곧 좋아지고,

    순종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제가 경험한 순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픈 가운데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었고,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말씀을 놓지 않는 것이었고,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마음에 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가 제게 순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쉽게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순종은 책에서 배운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순종은 십자가 앞에서 내가 내려놓아야 했던 수많은 것들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돕는 자’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예전에는 ‘돕는 자’라는 말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도와야 하는데, 돕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돕는다는 것은 상대의 모든 것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가 잘못한 것까지 옳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니며,

    내 존재를 없애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때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말해야 할 것도 있고,

    때로는 기다려야 할 것도 있고,

    때로는 내려놓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준을 내 감정이나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찾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에도 주님은 함께 계셨습니다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몰랐습니다.

    왜 이런 시간을 지나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주님께서 왜 제게 그렇게 어려운 순종을 요구하시는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울었습니다.

    말할 힘이 없어서 가만히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알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주님은 저를 버려두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울고 있을 때도 함께 계셨고,

    제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도 함께 계셨고,

    제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도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보아라.”

    저는 그 시간을 통해 남편에게 순종하는 법만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고,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법을 배웠고,

    내 뜻을 내려놓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조금씩 배웠습니다.


    순종은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크게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순종을 완전히 다 배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제 안에는 내 생각이 있고,

    내 감정이 있고,

    내가 원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때로는 다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압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붙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기 위해 울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때의 눈물은 하나님께서 모르고 계셨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아픔도 하나님께서 외면하신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은 주님께서 제 안에 있는 많은 것들을 만지시고,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며,

    제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가르쳐 주신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순종을 말할 때 쉽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순종은 때로 눈물로 배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서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도 제가 먼저 순종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다른 사람의 변화를 기다리기 전에

    먼저 제 마음을 돌아보게 하소서.

    제가 옳다는 생각에 붙들리기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이게 하소서.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아픔 가운데에서도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소서.

    제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사랑으로 섬기는 것임을 배우게 하소서.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게 순종하기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제가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앉습니다.

    제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지만,

    한 가지는 믿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리에는

    반드시 주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그때도 주님이 함께 계셨음을

    고백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은혜란 무엇인가? 오늘도 나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은혜

    은혜란 무엇인가? 오늘도 나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은혜

    오늘도 나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임재

    본문: 빌립보서 2장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 많이도 “은혜”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모두 은혜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도 은혜이고,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우리가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은혜란 과연 무엇일까요?

    은혜를 단순히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좋은 선물”이라고만 생각해도 될까요?

    물론 그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은혜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은혜는 과거의 기억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오늘도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임재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나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 은혜는 과거에 받은 선물이 아니라 오늘도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흔히 은혜를 과거형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나를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나를 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돌아보며

    “그때 참 은혜였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분명 그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과거의 사건으로만 남아 있다면 우리의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은 내 힘으로 살아야 할까요?

    어제까지는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오늘부터는 내 의지와 노력으로 살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도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만 나를 도우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내가 말씀을 듣고,

    오늘 내가 죄를 멀리하고,

    오늘 내가 용서하고,

    오늘 내가 사랑하고,

    오늘 내가 순종할 수 있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은혜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인가를 주셨다”

    라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와 함께하시며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붙드시고 움직이신다”

    는 것입니다.


    2. 은혜는 말씀을 들을 때 순종할 수 있도록 나를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 보면 때때로 마음에 부담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정직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길을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알겠습니다.”

    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을 아는 것과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많이 알 수 있습니다.

    설교도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오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은혜가 무엇인지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은혜는 단순히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깨달은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의지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신앙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내 안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선한 소원을 주시고,

    그 뜻을 따라 움직이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경험합니다.

    “나는 정말 용서하기 싫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풀렸습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고 싶지 않았는데 마음속에서 계속 다가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이것은 정직하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화를 냈을 텐데 이번에는 참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아,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3. 은혜는 내가 원하는 길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의 길로 움직이는 힘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은혜를 오해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면

    “은혜 받았다.”라고 말합니다.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면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결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지 않는 길로 나를 이끄실 때도 있습니다.

    내가 붙잡고 싶은 것을 내려놓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막으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자존심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말을 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고백하게 하십니다.

    “주님, 제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이 더 옳았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을 내 뜻에 맞추는 힘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에 맞춰지도록 나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4.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변화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면 우리의 삶에는 반드시 어떤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완벽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를 전혀 짓지 않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나 방향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죄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예전에는 말씀을 들어도 그냥 지나쳤는데 이제는 그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예전에는 내 뜻만 주장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당연했는데 이제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내 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는 감정만이 아닙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은혜일 수 있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도 은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은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은혜는 결국 우리의 삶을 움직입니다.

    말씀을 따라 한 걸음 움직이게 합니다.

    용서하게 합니다.

    사랑하게 합니다.

    돌아오게 합니다.

    회개하게 합니다.

    순종하게 합니다.


    *죄란 무엇인가 — 나는 왜 내 죄를 스스로 보지 못하는가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16877

    5.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다고 느낄까요?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셨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은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돈이 생기면 은혜입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은혜입니다.

    병이 낫으면 은혜입니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면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만지시고,

    내 고집을 꺾으시고,

    내 죄를 깨닫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도록 나를 움직이시는 것은 은혜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키시는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내 환경이 바뀌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내가 변하는 것은 더 큰 은혜일 수 있습니다.

    문제가 없어지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여전히 있는데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더욱 깊은 은혜입니다.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더 깊은 은혜입니다.


    6. 은혜는 오늘도 우리에게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싶어도 힘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자꾸 무너집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을 정죄하기보다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 안에서 역사해 주십시오.

    제가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기도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순종은 우리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우리는 조금씩 달라집니다.

    어제는 하지 못했던 순종을 오늘 하게 되고,

    오늘 하지 못했던 것을 내일은 하게 됩니다.

    한 번에 완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계속 움직입니다.


    7.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은혜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은혜에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깨달았을 때 순종해야 합니다.

    작은 것부터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용서하라는 마음이 들면 용서하십시오.

    오늘 먼저 연락하라는 마음이 들면 연락하십시오.

    오늘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면 내려놓으십시오.

    오늘 회개해야 할 것이 있다면 회개하십시오.

    오늘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면 사랑하십시오.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경험하게 됩니다.

    은혜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은혜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은혜를 단순히

    “내가 과거에 하나님께 받은 좋은 것”

    으로만 기억하지 마십시오.

    은혜는 과거의 추억이 아닙니다.

    은혜는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만지십니다.

    오늘도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오늘도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오늘도 회개하게 하십니다.

    오늘도 사랑하게 하십니다.

    오늘도 용서하게 하십니다.

    오늘도 순종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은혜를 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는 은혜만 구하지 않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제 안에서 역사하여 주십시오.

    제가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도록,

    제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제가 내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도록

    살아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 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나에게 주셨던 선물이 아닙니다.

    은혜는 오늘도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이끄시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나를 움직이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오늘도 그 은혜 안에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십시오.

    어쩌면 오늘 내가 참고 있는 것,

    오늘 내가 용서하려는 것,

    오늘 내가 내려놓으려는 것,

    오늘 내가 순종하려는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고 계신가요?

    오늘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해 보세요.
    은혜는 과거에 받은 선물이 아니라 오늘도 나와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나를 움직이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 레마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

    레마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

    레마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요?

    본문 말씀

    사무엘상 3장 1~10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주세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세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합니다.

    때로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하나님께 묻기도 하고, 삶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나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
    “나는 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까?”

    오늘은 이 질문을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3장을 보면 어린 사무엘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엘리 제사장에게 달려갑니다.

    “부르셨습니까?”

    엘리는 부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 일이 세 번 반복되고 나서야 엘리는 깨닫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달았더라.”

    그리고 사무엘에게 말합니다.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사무엘이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사무엘이 그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2. 이미 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새로운 말씀을 구하게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게 말씀해 주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셨고, 설교를 통해 말씀하셨고, 우리의 양심을 통해 깨닫게 하셨고, 때로는 주변의 상황을 통해 돌아보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말씀을 기다립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용서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그것을 붙잡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직하라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내게 유리한 방법을 선택하려 합니다.

    그런데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우리가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으로만 쌓아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마의 말씀을 사모한다면 먼저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분별하는가?|성경으로 분별하기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73109


    3. 내 뜻을 정해 놓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것을 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제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른 방향을 말씀하시면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 내 뜻을 이루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기도의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세요.”

    가 아니라,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마음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4. 세상의 소리가 너무 커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많은 소리 가운데 살아갑니다.

    휴대폰의 소리,

    뉴스의 소리,

    사람들의 이야기,

    유튜브의 소리,

    세상의 가치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들입니다.

    하루 종일 수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때때로 멈추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큰 소리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조용해질 때,

    말씀 앞에 머물 때,

    기도하며 기다릴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던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특별한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 마음을 잠잠하게 하고, 성령께서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5. 레마의 말씀은 성경 말씀과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하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할 때,

    그것이 반드시 어떤 실제적인 음성이나 특별한 계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분명한 말씀은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마음의 감동이나 생각이 떠올랐다고 해서

    무조건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지,

    하나님의 성품과 맞는지,

    그리고 그것이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고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말씀을 벗어난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쉽게 말하기보다,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이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라고 겸손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태도입니다.


    6. 레마의 말씀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특별히 잘 듣는 사람만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를 만나십니다.

    똑같은 성경 말씀을 읽어도

    어느 날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어느 날 그 말씀이 갑자기 내 마음에 깊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알고 있던 말씀인데,

    그날따라 그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말씀 한 구절이 마음을 붙잡고,

    내 삶을 돌아보게 하고,

    회개하게 하고,

    용서하게 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레마의 말씀을 경험하는 한 모습입니다.

    말씀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그 말씀을 오늘 나의 삶에 살아 있는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 오늘 제가 읽는 말씀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게 주시는 뜻을 깨닫게 해 주세요.”


    7.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먼저 “주여, 말씀하옵소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서 했던 고백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을 말씀해 주세요.”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순종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 듣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말씀만 듣게 하지 마십시오.”

    “제가 듣기 좋은 말씀만 찾지 않게 하십시오.”

    “제가 불편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듣게 하십시오.”

    “그리고 들었다면 순종하게 하십시오.”

    이러한 마음으로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

    이미 들었던 말씀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순종하지 않았던 말씀,

    내가 외면했던 말씀,

    내가 듣고 싶지 않았던 말씀,

    내가 내 뜻으로 덮어버렸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의 종이 듣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들은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마음을 낮추고,

    말씀을 가까이하며,

    내 뜻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더 분명하게 들려옵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사무엘처럼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음에도

    내가 듣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말씀만 들으려고 했으며,

    말씀을 들었어도 순종하지 않았던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잠잠하게 하시고,

    세상의 수많은 소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내 생각과 내 감정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말씀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씀만 구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고백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들은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우리를 바르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믿는 법을 배웠고, 성경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한편에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떠올랐고, 어떤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질문은 다른 사람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교회에 다니는 것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같은 것일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정말 같은 것일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습니다.
    함께 교회에 가고,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신앙생활의 중요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정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손해를 보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부딪힐 때 무엇을 선택하는지.

    그런 순간마다 내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가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을 어느 날 남편에게 꺼냈습니다.

    결혼한 지 약 13년이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요?”

    아마 제 질문은 남편에게 너무 갑작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화를 냈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그때는 저도 당황했습니다.

    왜 그 질문 하나가 그렇게 큰 감정을 불러일으켰을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질문이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던져지는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다고 해서 자동으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
    기도를 많이 하는 것,
    봉사를 많이 하는 것,
    예배를 빠지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은 소중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는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이루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이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길이라면 걸어가는 것.

    내 감정과 자존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하나님 앞에서 다시 나를 돌아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닐까요?

    남편의 좌절을 바라보며

    지금 남편은 자신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깊은 좌절감을 표현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오히려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하나님을 향해 가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지 못하는 사람보다,

    “나는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가?”

    라고 고민하는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 더 진지하게 서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부족함이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내딛는 믿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내 뜻을 먼저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감정에 끌려갈 때가 있습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서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걸음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부족함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는 것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7894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완벽함의 길이 아니라 순종의 길입니다

    저 역시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 앞에서 나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삶을 살아갈수록 그 질문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단지 마음속에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갑니다.


    사랑은 선택이고, 순종이며, 삶의 방향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늘 한마디를 참을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 저 자신에게 질문해 봅니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조심스럽게 건네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그 사랑은 우리의 말보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고 있습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아직 걸어가는 중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바라보고, 다시 하나님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저도 오늘 다시 그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며,
    그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삶을 살아가는 길.

    그 길을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 하나님이 나를 거대한 KB증권사와 마주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거대한 KB증권사와 마주하게 하셨습니다

    거대한 KB증권사와 마주하다

    살다 보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자리에서
    큰 일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일이 찾아왔습니다.

    처음부터 누군가와 싸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금융회사와 법정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내가 겪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그리고 내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은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자료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kb증권사의 일로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고,
    관련 자료들을 확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단순한 금융 거래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일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는 KB증권사라는 거대한 금융회사와 민사소송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런 일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두려웠습니다.

    상대방은 거대한 금융회사였고,
    저는 법률 전문가도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에게는 여러 명의 변호사가 있었지만
    저는 혼자였습니다.

    처음 법원에 서류를 제출할 때만 해도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제가 경험한 일을 기록하고,
    제가 가진 자료를 하나씩 제출하면서
    제가 왜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될수록
    이것이 단순한 소송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는 이것이 내가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지를 다시 묻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길을 허락하셨을까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까?”

    처음에는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왜 이런 손실을 겪어야 했는지,
    왜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만나게 되었는지,
    왜 하필 제가 거대한 kb증권사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질문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제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

    문제를 없애 달라고만 기도했던 제가
    어느 순간부터는
    이 문제를 지나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제 안에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걷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법률도 잘 모르고,
    복잡한 금융거래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래서 재판을 준비하면서 수없이 막혔습니다.

    자료를 다시 확인하고,
    기록을 읽고,
    앞뒤 내용을 맞춰보고,
    제가 이해한 것을 글로 정리했습니다.

    때로는 너무 지쳤습니다.

    “여기까지 해야 하나?”
    “그냥 포기하면 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마음을 붙들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자리까지 정직하게 걸어가면 된다.

    그리고 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내 마음을 붙드셨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8045

    1심 판결을 받고 난 후

    2026년 8월 18일,
    1심 판결을 받았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결과와는 달랐습니다.

    솔직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동안 준비했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제가 주장했던 내용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제 마음속에는 또 다른 생각이 생겼습니다.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구나.”

    저는 항소를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가 겪은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왜 이 사건이 시작되었는지,
    그날 kb증권사 계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자료를 확인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제가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하나씩 기록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지나오면서
    저는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제가 이 일을 기록할 길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제가 운영하고 있던 블로그들이 있었습니다.
    그 블로그들은 모두 최근에 만들어 진 것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각각 다른 목적으로 시작했던 공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그 공간들이 앞으로 제가 걸어갈 길을 기록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건을 기록하는 공간도 필요했고,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공간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제가 겪은 이 일을 단순히 ‘소송 이야기’로만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거대한 상대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KB증권사라는 이름만 생각하면
    여전히 제게는 큰 상대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대방의 크기만 바라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제가 이 사건의 결과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항소의 결과도 제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도 제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일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자리로 부르신 이유를 아직은 모릅니다

    아직 저는 이 사건의 끝을 모릅니다.

    왜 하나님께서 저를 이 거대한 kb증권사와 마주하게 하셨는지도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끝까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믿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의미 없이 제 삶에 이 일을 허락하신 것은 아닐 것이라고.

    지금은 그저 한 걸음씩 걸어가려고 합니다.

    두려우면 두려운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때로는 마음이 흔들리더라도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길의 끝에 서게 되었을 때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는 왜 이런 길을 걷게 하셨는지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하나님께서 제 걸음을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지금 저는
    거대한 KB증권사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제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KB증권사가 아닙니다.

    그보다 크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갑니다.

  •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내 마음을 붙드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내 마음을 붙드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을 걸어오면서 때로는 평탄한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과 긴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2026년 8월 18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1심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재판을 기다렸습니다.

    처음에는 언젠가 이 일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지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자료를 다시 살펴보고, 서류를 준비하고, 재판을 기다리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이 민사소송에 관한 이야기를 이곳에 몇 편의 글로 기록해 왔습니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 민사소송을 시작하다」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민사소송 진행 가운데 가장 크게 얻은 깨달음」

    그리고 그 긴 시간을 지나오며 소송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깨달았는지도 기록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의 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1심 판결입니다.


    판결을 기다리던 시간

    판결을 기다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상당 부분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고,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설명하고,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기다림의 시간이 제게는 또 하나의 믿음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실 수 있다는 것.

    내가 결과를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8월 18일, 판결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그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마음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긴 시간 동안 준비했던 일들이 떠올랐고, 재판을 위해 자료를 하나씩 정리했던 시간도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저 혼자 이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걸어오셨습니다.

    제가 힘들어할 때도 함께 계셨고,

    답을 알 수 없어 기다릴 때도 함께 계셨고,

    마음이 흔들릴 때도 저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민사소송의 길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흔적

    내가 원하는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제가 겪은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랐고, 제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제 마음에 조금씩 다른 질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보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여전히 결과에 대한 마음이 있습니다.

    앞으로 항소라는 또 다른 과정을 지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결과를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보다,

    하나님을 붙들고 결과를 맡기며 걸어가고 싶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8045

    판결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심 판결이 선고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는 앞으로 또 다른 선택과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지금의 마음은 조금 다릅니다.

    처음 소송을 시작했을 때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만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지나가는 저 자신을 변화시키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하셨고,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셨고,

    사람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먼저 구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지나고 보니 은혜였던 길

    아직 이 사건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이 길을 돌아보며 모든 것이 은혜였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일이 있고, 마음에 남아 있는 질문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 길을 지나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저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힘들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셨고,

    포기하고 싶을 때 다시 걸을 수 있도록 하셨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한 걸음씩 내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길의 끝이 어디인지보다,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을 더 바라보려고 합니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딛으려고 합니다.

    1심 판결 이후의 과정도 기록할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길에서는 결과만 바라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길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시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지나게 하시는지,

    그리고 제가 어떤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지를 함께 기록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이 모든 시간이 지나고 뒤를 돌아보게 되는 날,

    저는 이 사건을 이렇게 기억하고 싶습니다.

    “힘들었던 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걸어주셨던 길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고백합니다.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하나님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