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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상이 아니라 원인을 보라, 해결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증상이 아니라 원인을 보라, 해결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증상이 아니라 원인을 보라, 해결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얼마 전 새벽, 아이가 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감기에 걸린 것이라 생각하여 감기 약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그렇듯 눈앞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면 가장 먼저 증상을 멈추게 할 방법부터 찾게 됩니다.

    그런데 아들이 “나 천식이야! 감기로 기침하는 거랑 달라!”라고 말하는 순간, 제 머릿속에는  평소보다 창문을 많이 열어 놨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베란다 창문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열려 있었고, 생각보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오랫동안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혹시 찬 공기가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창문을 닫았습니다.

    창문을 하나씩 닫고 실내 온도를 조금 안정시키자 이내 아이의 기침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계속 기침하던 아들은 어느새 편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제 마음에도 하나의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만약 제가 기침이라는 증상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기침약이나 진해제만 먼저 떠올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잠시 멈춰 서서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전혀 다른 해결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제게 중요한 것은 기침이라는 증상이 아니라 그 증상을 만들어 낸 원인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기침이 찬 공기 때문인 것은 아닙니다. 기침은 감염, 알레르기, 천식 등 다양한 원인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증상이 심하거나 지속될 경우에는 반드시 의료진의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경험은 제게 한 가지 중요한 삶의 원리를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마음과 영이 부드러운 사람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현상과 끊임없이 싸웁니다.

    갈등이 생기면 상대방의 말만 문제라고 생각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당장 눈앞의 결과만 바라보며 불안해합니다.

    가정 안에서도 반복되는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말과 행동만 바꾸려 하지만 정작 서로의 상처와 오해라는 뿌리는 들여다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증상만 붙잡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됩니다.

    원인을 발견해야 비로소 해결이 시작됩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의 겉모습보다 중심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이 눈앞의 결과만 바라볼 때 하나님은 그 결과를 만들어 낸 마음과 동기, 그리고 근본 원인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해결 방식은 언제나 근본적인 변화였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현재의 문제를 없애 달라고 요청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보게 해 주십시오.”라고 묻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원인을 보게 되면 불평 대신 배움이 시작되고, 두려움 대신 분별력이 생기며, 감정적인 반응 대신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원리는 사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국민들이 큰 의문이나 갈등을 가지고 있다면 단순히 갈등을 억누르거나 결과만 설명하는 것으로는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부정선거와 관련한 의혹을 제기하는 국민들이 있다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정부와 관련 기관은 객관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의문을 충분히 확인하고 설명함으로써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인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때 사회적 갈등도 비로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벽 창문을 닫자 아이의 기침이 잦아든 경험은 제게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배움이었습니다.

    눈앞의 증상만 바라보면 처방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원인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해결의 길이 보입니다.

    우리 삶의 문제도, 가정의 갈등도, 사회의 어려움도 먼저 ‘왜 이런 일이 일어 났는가’를 차분히 살펴볼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증상에만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원인을 분별하고 지혜롭게 해결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건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신앙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성경적 분별과 시민의 자세

    건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신앙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성경적 분별과 시민의 자세


    부제목

    좋은 지도자는 권력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민을 섬기고 진실을 존중하는 리더십이 건강한 사회를 만듭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은 어떤 자세로 시대를 살아가야 할까요?

    건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사람들은 강한 지도자를 원합니다. 어려운 경제 상황과 갈등, 불안한 국제 정세 속에서 누군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역사와 성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반복해서 가르쳐 줍니다.

    강한 리더십과 건강한 리더십은 결코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권력을 강하게 행사한다고 해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리더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통제하기보다 국민을 섬기고, 공동체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갑니다.

    건강한 리더십은 두려움보다 신뢰를 만들고, 거짓보다 진실을 존중하며, 자신의 명예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반대로 지도자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갈라놓고, 비판을 억압하며, 사실보다 선전을 앞세운다면 그것은 건강한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 속에서 국민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분노만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욱 필요한 것은 분별력과 지혜입니다.


    *진실을 외면하는 삶의 본질, 자기 정당화가 반복될 때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


    *좋은 리더는 무엇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능력보다 중요한 책임의 리더십

    출처 :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1. 사실을 분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보를 접하며 살아갑니다.

    뉴스, 유튜브, SNS,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문제는 모든 정보가 사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선택해서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보다 감정이 앞서기 시작하면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워집니다.

    건강한 시민은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라도 잘못한 부분은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반대로 반대편 사람이라도 옳은 부분은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21)

    하나님은 맹목적인 믿음보다 분별하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감정이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는 태도는 건강한 사회를 지키는 첫걸음입니다.


    2. 두려움에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권력을 오래 유지하려는 지도자들은 공통적으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려 했습니다.

    비판하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분위기를 만들고, 침묵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심어 줍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회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위에서 성장합니다.

    물론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적으로 규정하거나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두려움보다 진리를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7)

    신앙인은 권력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3. 평화롭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닙니다.

    국민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주체입니다.

    선거에 참여하고, 사실에 근거한 의견을 나누며, 언론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시민단체 활동이나 공론장에 참여하는 것은 건강한 시민의 책임입니다.

    반면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증오는 더 큰 갈등을 만듭니다.

    진정한 변화는 책임 있는 참여에서 시작됩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평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9)


    4. 사람을 우상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특정 지도자를 절대적인 존재처럼 여기기 시작할 때입니다.

    어떤 정치인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어떤 정당도 절대적인 선이 아닙니다.

    사람을 지나치게 신뢰하면 그의 잘못을 보지 못하게 되고, 결국 진실보다 사람을 지키려 하게 됩니다.

    성경은 인간의 한계를 분명히 말씀합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시편 146:3)

    신앙인의 최종적인 충성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는 존중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 속 선지자들은 권력 앞에서도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권력 앞에서 진리를 말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 왕이 죄를 지었을 때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우상숭배와 불의를 행하던 아합 왕 앞에 담대히 섰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 왕의 죄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다가 결국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행동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말했습니다.

    오늘날 신앙인 역시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권력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적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신앙인의 자세는 진리와 사랑을 함께 붙드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는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이 갈라지고, 친구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세상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말하되 사랑으로 말해야 하며, 정의를 추구하되 증오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증오는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사람을 적으로 만들지만, 사랑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존중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21)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책임 있는 시민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걱정이 분노와 미움으로만 이어진다면 결국 우리 자신도 건강한 판단을 잃게 됩니다.

    신앙인은 진리를 사랑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두려움보다 양심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심을 믿으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지도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진실을 분별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며, 사랑 안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건강한 시민이 함께할 때 비로소 공동체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사형을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사형을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최근 사회를 바라보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정치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비난합니다.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가장 강한 형벌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던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까지도 누군가를 향해 너무 쉽게 사형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죄는 죄입니다. 법을 어겼다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사회의 정의도 반드시 세워져야 합니다. 신앙은 불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세상과 다른 한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는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기에 오늘 우리가 용서받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사람의 생명을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많아졌는데, 왜 우리의 정서는 메말라가고 있을까요?

    *인식이 바뀌면 삶의 의미가 보인다 – 의미는 발견하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출처 :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 앞에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뜻은 죄를 용납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심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돌아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 죄였는지를 압니다. 그리고 그 죄를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았음을 알기에 다른 사람을 향한 말도 신중해집니다.

    죄는 미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인을 향한 긍휼까지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법은 법대로 판단해야 하고, 재판은 증거와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재판관이 아닙니다. 감정과 분노로 누군가의 생명을 쉽게 단정하는 것은 십자가 앞에 선 사람의 태도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긍휼을 말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와 긍휼이 함께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십자가는 죄의 무게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동시에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도 않고, 생명 또한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혹시 오늘 우리의 말 속에는 분노가 은혜를 이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십자가를 깊이 경험한 사람은 사람을 정죄하는 데 앞장서기보다, 먼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정의를 구하면서도 긍휼을 잃지 않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보상은 무엇인가? 예배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성경의 진리」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보상은 무엇인가? 예배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성경의 진리」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주시는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를 묻는다면 사람마다 다양한 대답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응답받기 위해 예배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평안을 얻기 위해, 또 어떤 사람은 축복받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필요를 채우시며,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환난 가운데 건져 주시며, 길을 열어 주시는 수많은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예배자에게 주시는 가장 큰 보상은 우리가 기대하는 물질이나 성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신령과 진리 가운데 예배하는 자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창세기 15장 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세기 15:1)

    이 말씀은 매우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큰 복을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내가 너의 상급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어떤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관계 자체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얻는 시간입니다

    신령과 진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우리를 이끄는 통로입니다.

    예배가 깊어질수록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이것을 주세요.”라고 기도했다면,

    점차 “하나님,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를 묻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만 계시면 충분합니다.”

    라는 고백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가장 아름다운 성장입니다.


    *열정, 그리고 10년의 시간


    *십자가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영적인 감각을 주십니다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은 점점 하나님의 임재를 알아가는 영적 감각이 자라게 됩니다.

    예전에는 좋은 일이 생길 때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눈물이 흐르는 자리에서도,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시간에도,
    길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하신다.”

    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믿음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은 흔들려도 중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배자가 누리는 가장 큰 은혜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십니다

    시편 25편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하나님은 예배자를 단순히 명령만 수행하는 종으로 대하지 않으십니다.

    친구처럼,
    자녀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어떤 길은 막으시는지,

    왜 기다리게 하시는지,

    왜 어떤 고난을 허락하시는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그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삶입니다.


    세상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개의 정보 속에서 살아갑니다.

    진리처럼 들리는 말,
    성공처럼 보이는 길,
    은혜처럼 포장된 가르침들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예배하는 사람은 말씀과 성령 안에서 분별력을 얻게 됩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사람의 욕심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조금씩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분별력은 책을 많이 읽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출처 :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한복음 14:27)

    세상이 주는 평안은 조건이 좋아야 유지됩니다.

    경제가 안정되고,

    건강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만 평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전혀 다릅니다.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문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 때문에 평안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에서도 찬양할 수 있었고,

    다윗은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참된 평강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을 살리는 영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난 사람에게는 특별한 향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화려한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은 지식을 자랑하지 않아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전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예배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혼자 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은혜를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통로가 됩니다.

    낙심한 사람을 일으키고,

    상처 입은 사람을 위로하며,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소망을 전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배자를 통해 이루시는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믿음을 주십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의 길에는 더 깊은 연단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배자는 고난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문제보다 하나님을 크게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이 길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이 믿음은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내고 끝까지 걸어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고난은 예배자를 무너뜨리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 가장 큰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한복음 4:23)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참된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을 찾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을 높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람들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삶,

    세상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소중히 여기는 삶,

    그것이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내 기쁨이다.”라고 말씀하신다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예배의 열매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참된 예배는 예배당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배는 우리의 가정과 일터, 관계와 선택 속에서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점점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사랑이 깊어지고,

    용서가 넓어지며,

    겸손이 자라나고,

    감사가 삶의 습관이 됩니다.

    이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하나님 앞에 꾸준히 머무르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형편이 조금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맺음말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이 받는 보상은 단순히 더 많은 것을 얻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분별력과 지혜를 얻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배우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통로가 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마음 가까이에 머무는 삶으로 인도받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예배자에게 주시는 가장 큰 보상은 어떤 선물이나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을 얻은 사람은 이미 세상이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최고의 보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신령과 진리의 예배자로 살아가며, 하나님과 더욱 깊이 동행하는 은혜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눈치는 사람을 묶고, 겸손은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진정한 자유를 얻는 삶의 비밀

    눈치는 사람을 묶고, 겸손은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진정한 자유를 얻는 삶의 비밀

    얼마 전 오래된 글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2013년 어느 날, 가족 식사 자리에서 큰아이가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였습니다.

    “어릴 때 아빠 눈치를 많이 보며 자랐어요.”

    출처 :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그 말은 짧았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사랑하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늘 조심해야 하는 존재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혹시 혼나지 않을까,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혹시 잘못 보이지 않을까.

    아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기보다 먼저 아버지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눈치를 보는 삶입니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내 의견을 숨긴 채 상대의 반응부터 살피는 상태입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마음은 늘 긴장 상태에 놓여 있게 됩니다.

    그날 아이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아빠도 지나고 보니 아빠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
    그때는 너무 몰라서 너희들에게 잘못한 것이 많았다.”

    변명도 하지 않았고,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고,
    자신을 정당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권위는 자신을 높이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때 남편이

    “그래도 너를 그렇게 키웠으니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 것 아니냐?”

    라고 말했다면 어떠했을까요?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닫혔을 것입니다.

    사람은 힘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신뢰로 움직입니다.

    권위로 복종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마음까지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인정과 변화는 사람의 마음을 열게 만듭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가정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아빠 역시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야 했던 답답함과 억압감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며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억압으로 변화시키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와 사랑으로 사람의 마음을 만지십니다.


    *좋은 리더는 무엇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능력보다 중요한 책임의 리더십


    *마음과 영이 부드러운 사람



    가정만이 아니라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원리는 가정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도,
    직장도,
    교회도,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건강한 관계는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불이익을 받을까 봐,
    비난을 받을까 봐,

    침묵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공동체는 점점 건강함을 잃어가게 됩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반대 의견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며,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두려움을 만들지 않습니다

    좋은 리더는 사람들에게 눈치를 보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듭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귀를 열어 놓습니다.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비판을 들을 줄 알고,
    다른 의견을 존중할 줄 압니다.

    그런 리더십 앞에서는 사람들이 억지로 따르지 않습니다.

    기꺼이 함께 가게 됩니다.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으로 세워진 권위는 오래가지 못하지만,

    신뢰로 세워진 권위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습니다.


    전도서 4장 12절은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을 묶어 주는 것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억압이 아닙니다.

    신뢰입니다.

    자유로운 말에도 책임이 따릅니다

    물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상대를 존중하는 가운데 사용될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의무도 함께 있습니다.

    내 의견이 소중한 것처럼 상대방의 의견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진실을 말한다는 명분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말하라고 하셨지만, 동시에 사랑 안에서 말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에베소서 4:15)

    건강한 가정도,
    건강한 공동체도,
    건강한 사회도,

    서로 눈치를 보며 침묵하는 곳도 아니고,
    서로를 공격하며 함부로 말하는 곳도 아닙니다.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곳입니다.

    침묵과 무례함 사이에는 건강한 대화라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는 바로 그 길을 걸어가는 공동체일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성숙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 좋은 리더는 무엇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능력보다 중요한 책임의 리더십

    좋은 리더는 무엇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능력보다 중요한 책임의 리더십

    능력이 아니라 책임이 리더를 완성한다

    사람들은 흔히 훌륭한 리더를 떠올릴 때 뛰어난 능력과 강한 추진력을 먼저 생각합니다.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사람,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사람,
    위기 속에서도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

    물론 이러한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뛰어난 능력을 가진 리더가 반드시 좋은 리더였던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처음에는 부족해 보였지만 국민과 조직의 신뢰를 얻었던 리더들도 있었습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결국 리더를 완성하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책임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


    • 출처: ChatGPT(DALL·E)를 활한 AI 이미지용해 제작


    리더의 첫 번째 책임은 문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조직이든 문제는 발생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이고,
    기업도,
    교회도,
    가정도 예외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대하느냐입니다.

    문제를 인정하는 리더는 해결의 첫걸음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부정하는 순간 해결은 멈추게 됩니다.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을 적으로 여기거나,
    비판을 공격으로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리더는 현실보다 자신의 체면을 지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진정한 용기는 실수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줄 아는 리더

    세상에는 완벽한 리더가 없습니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좋은 리더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동역자를 세우며,
    더 좋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배우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성경의 모세 역시 처음부터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하나님께 고백했고,
    하나님은 아론과 장로들을 세워 함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보다
    겸손한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리더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국민의 칭찬도 들어야 하지만,
    비판도 들어야 합니다.

    듣기 좋은 말만 듣는 순간
    리더는 현실과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가장 불편한 목소리 속에
    가장 중요한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국민이 불안해한다면 그 이유를 살펴야 하고,

    국민이 의문을 제기한다면 충분히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뢰는 권위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소통에서 만들어집니다.


    권력은 특권이 아니라 맡겨진 책임입니다

    권력은 오래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이 맡긴 권한이며,
    언젠가는 다시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권력을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수단으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을 섬기는 도구로 사용할 것인가는
    리더 자신의 선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리더십은 지배가 아니라 섬김입니다.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모든 시대에는 다양한 의혹과 갈등이 존재합니다.

    이럴 때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면
    투명하게 설명하고,

    필요한 검증이 있다면
    성실하게 협조하며,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진실은 감춘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불신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신앙인이 바라보는 리더

    성경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리더는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책임을 지는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웃시야 왕은 교만으로 인해 넘어졌고,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리더를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권한이 클수록 책임도 커진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 줍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며,

    권력보다 진실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기대해야 할 리더

    국민은 완벽한 리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람,

    권력을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그리고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기대합니다.

    능력은 시간이 지나며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책임감은 하루하루의 선택 속에서 드러납니다.

    결국 좋은 리더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맡겨진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큰 능력보다 더 큰 책임을 가진 리더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겸손과 진실, 그리고 책임을 붙드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 잘하던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방법이 아닌 중심을 새롭게 빚으십니다

    잘하던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방법이 아닌 중심을 새롭게 빚으십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먼저 보신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잘되던 일이 어느 날부터 잘되지 않습니다.
    늘 사용하던 방법이 더 이상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같은 열심으로 섬기는데도 이전과 같은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당황합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걸까?”
    “내 믿음이 식은 걸까?”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신 걸까?”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도 모든 것이 막혀 버린 듯한 답답함을 경험합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부족한 부분보다 잘하던 부분을 먼저 다루시는 것처럼 보일 때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는 시간 | 문제 속에서 만나는 사랑과 지혜의 하나님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잘 못하는 부분을 고쳐 주시면 되는 것 아닌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시면 더 좋은 사람이 될 텐데 왜 잘하던 것까지 막히는 걸까?”

    그래서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잘 못하던 것은 여전히 부족한 것 같고,
    잘하던 것마저 예전처럼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우리의 시선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엇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성공했는지,
    얼마나 인정받았는지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과보다 그 결과를 만들어 내는 마음과 과정을 먼저 보십니다.

    우리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 속에 자리 잡은 의지와 습관,
    그리고 우리도 미처 깨닫지 못한 교만까지 보고 계십니다.

    사람은 실패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쉽게 인정합니다.

    실패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도움을 구하게 되고,
    기도하게 되며,
    겸손해집니다.

    그러나 성공은 다릅니다.

    성공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보다 자신의 경험을 더 신뢰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시작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익숙함이 생깁니다.

    기도보다 경험을 먼저 찾고,
    말씀보다 노하우를 먼저 생각하며,
    하나님의 인도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믿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능력과 경험이 삶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조심스럽게 다루시는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영역을 만지십니다.

    가장 익숙한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하시고,
    가장 자신 있던 능력이 이전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있던 대상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놓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사람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능력을 바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게 하셨습니다.

    세상은 그의 능력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능력을 없애신 것이 아니라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을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고기를 잡아 온 어부였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선택했고,
    그 순종을 통해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기술을 없애신 것이 아니라,
    기술보다 말씀을 먼저 의지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잘하던 것이 갑자기 막힐 때,
    하나님은 일을 빼앗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우리의 중심을 새롭게 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더 잘하게 해 주세요.”
    “더 큰 능력을 주세요.”
    “더 좋은 결과를 주세요.”

    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네가 무엇을 의지하며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먼저 보자.”

    신앙은 단순히 능력이 커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더욱 깊이 깨닫는 과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이 말씀은 우리가 아무 능력도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가지가 아무리 건강해 보여도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머물 때 비로소 참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시기에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능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보다 경험을 먼저 찾던 사람이
    다시 하나님을 먼저 찾게 되고,

    방법을 의지하던 사람이
    말씀을 의지하게 되며,

    결과를 붙잡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이 변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답답하고,
    더 느리며,
    더 힘든 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보이지 않는 중심을 먼저 새롭게 빚으십니다.

    그 중심이 변화될 때,
    하나님은 이전보다 더 깊고 넓은 사명을 맡기실 준비를 시키십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의 능력을 미워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 능력이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하는 사람으로 남는 것보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잘하던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간을 단순한 슬럼프나 실패로만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는 시간이 아니라,
    더 깊은 믿음으로 초대하시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에 조용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가 하던 일을 내려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네가 의지하던 방법을 내려놓아라.
    내가 너를 통해 일하기를 원한다.”

    신앙의 성장은 더 뛰어난 사람이 되는 과정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할 때 가장 온전한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익숙했던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면 낙심하기보다 하나님께 먼저 물어보십시오.

    “주님, 지금 제 능력을 막으시는 것이 아니라 제 중심을 새롭게 빚고 계시는 것입니까?”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이전보다 더 깊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자라가게 될 것입니다.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한 번씩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 잘하던 일이 갑자기 막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하나님은 왜 우리의 강점을 먼저 다루실까요?
    • 신앙에서 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질문하실까요?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질문하실까요?

    우리는 하나님께 질문하는 데 익숙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왜 기도 응답이 더딥니까?”

    “왜 제 삶은 이렇게 힘듭니까?”

    하지만 성경을 읽다 보면 의외의 장면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질문하는 분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왜 사람들에게 질문하실까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사람을 심문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우리를 정죄하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기 위한 초대에 가깝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9)

    하나님께서 아담의 위치를 모르셔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질문은 아담이 자신의 영적 상태를 보도록 하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죄는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숨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숨어 있는 인간을 다시 하나님 앞으로 부르시는 음성이었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도 하나님은 질문하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창세기 4:9)

    하나님은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질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심판 이전에 주어지는 마지막 은혜일 때가 많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장)

    주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모르셔서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 질문은 실패한 제자를 회복시키기 위한 사랑의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회개하는 죄인과 끝까지 악을 붙드는 사람의 차이



    오늘도 하나님은 질문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질문하고 계십니다.

    “정말 나를 신뢰하느냐?”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느냐?”

    “내 뜻보다 네 생각을 앞세우고 있지는 않느냐?”

    “지금도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의 질문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더 깊은 믿음으로 이끄시기 위한 질문입니다.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게 됩니다.

    맺음말

    우리는 늘 하나님께 답을 구합니다.

    하지만 신앙의 성장은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던지시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 속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묻고 계십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우리를 하나님께로 부르고 있습니다.🍀📚

  • 옳은 일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르지만, 그 끝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옳은 일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르지만, 그 끝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최근 국제사회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갈등이 이어지고,
    국가들은 서로를 비난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악을 막기 위해서는 강한 조치가 필요하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수많은 사람들과 생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한쪽의 말만 쉽게 맞다고 하기도 어렵고,
    반대로 틀렸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현실은 복잡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바라보며 한 가지 분명하게 떠오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반드시 옳은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옳은 일을 망설이는가?

    사실 사람들은 대부분 무엇이 옳은지 전혀 몰라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옳은 일을 선택했을 때 따라올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말하면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정의를 세우려 하면 반발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면 관계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종종 진리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그 진리를 외면할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나 하나 행동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그렇게 합리화가 시작됩니다.

    합리화는 우리의 마음을 잠시 편안하게 만들지만,
    진실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하나님 그분이 인식되어지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출처 : AI 창작 이미지 | ChatGPT(DALL·E) 활용 제작


    대가가 두렵다고 진리를 포기할 수 있는가?

    성경 속 하나님의 사람들은 늘 이 질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노아는 조롱을 감수해야 했고,

    모세는 바로와 맞서야 했으며,

    다니엘은 사자굴의 위협 앞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조차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그 길은 가장 옳은 길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큰 대가를 요구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단순히 옳은 것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옳은 것을 위해 어떤 대가를 감당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공의를 말하면서 생명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균형을 배워야 합니다.

    때로 사람들은 공의를 이야기하면서
    그 과정에서 상처 입는 사람들의 아픔을 너무 쉽게 지나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피해와 고통만 바라보다가
    결국 불의에 대한 판단 자체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분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죄라고 말씀하시지만,
    동시에 죄인 한 사람의 생명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것을 보여 줍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있습니다.

    죄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동시에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죄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그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타협이 반복될 때 하나님의 공의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많은 사람들은 묻습니다.

    “타협하며 살아도 당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나타난다고 말씀합니다.

    다만 그것이 언제나 즉각적인 심판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무서운 일은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이 있었지만,

    합리화가 반복되면 양심이 무뎌지고,

    양심이 무뎌지면 결국 자신이 옳다고 믿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스스로를 속이는 가장 위험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심은 것은 결국 거두게 됩니다.

    진리를 외면한 선택 역시 언젠가 그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보다 정직한 사람을 찾으신다

    다행인 것은 하나님께서 완벽한 사람만 찾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대가가 부담스러워 진리를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지만 다시 일어섰고,

    다윗은 큰 죄를 범했지만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회개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무리

    세상에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습니다.

    전쟁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우리의 일상 속 선택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옳은 일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릅니다.

    그 대가가 두렵다고 진리를 포기하면 결국 타협이 시작됩니다.

    반대로 공의를 말하면서 사람의 아픔과 생명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대가가 두렵더라도,
    합리화로 진리를 포기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옳은 길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모든 것을 공의롭게 판단하시며 동시에 사랑으로 품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

  • 문제를 피하지 않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납니다

    문제를 피하지 않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를 만납니다.

    가정의 문제, 건강의 문제, 관계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마음 깊은 곳의 고민들까지 삶은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먼저 문제를 피하려고 합니다.

    변명을 하기도 하고, 상황을 합리화하기도 하며,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를 외면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려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문제를 허락하실까요?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해결책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문제를 통해 우리를 더 깊은 자리로 이끄십니다.

    문제가 없을 때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 앞에서는 인간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내 지혜로도 안 되고,
    내 경험으로도 안 되고,
    내 능력으로도 안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문제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자 하는 것은 문제 자체보다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엄마도 몰라서 하나님께 묻는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리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면 될 것 같고,
    조금 더 버티면 괜찮아질 것 같고,
    조금 더 지혜를 짜내면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정직해질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이 고백은 패배의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강함을 자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변명과 합리화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보다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환경 때문이라고 말하고,
    상황 때문이라고 말하며,
    누군가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그런 이유들이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설명을 늘어놓아도 문제의 본질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변명은 문제를 가려 줄 수는 있어도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합리화는 잠시 마음을 편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우리를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벽한 사람이라서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사람이라서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변명보다 진실한 고백이 더 중요합니다.


    서로 네 탓을 하는 자세도 답이 아닙니다

    문제가 생기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책임질 사람을 찾습니다.

    가정에서는 배우자를 탓하고,
    직장에서는 동료를 탓하며,
    사회에서는 상대방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서로를 향한 비난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상처를 더 깊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이것은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도 죄를 지은 후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셨을 때 아담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보다 하와를 가리켰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와 역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보다 뱀을 가리켰습니다.

    결국 죄는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 아니라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찾으셨던 것은 변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위치를 묻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라는 초청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 사람 때문입니다.”

    라는 말보다

    “주님, 제 안에 무엇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묻는 사람이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종종 문제를 통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광야가 없었다면 모세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수 없었고,
    폭풍이 없었다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생의 어려움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의 교만을 내려놓게 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게 하며,
    하나님을 더욱 찾게 만드는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문제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입니다.


    간절히 주님 알기를 열망하십시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알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보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선물보다 하나님을,
    문제 해결보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더 갈망했습니다.

    간절함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엽니다.

    주님을 알고 싶고,
    주님의 뜻을 깨닫고 싶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싶은 갈망이 있을 때 신앙은 이론을 넘어 실제가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손길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맺음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면 문제를 피하지 마십시오.

    변명과 합리화 뒤에 숨지 마십시오.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책임만 돌리지도 마십시오.

    오히려 문제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십시오.

    “주님, 저는 부족합니다.

    주님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더 알기 원합니다.”

    그 고백이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무능이 끝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됩니다.

    문제를 피하는 사람은 문제만 보게 됩니다.

    남을 탓하는 사람은 사람만 보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문제 너머에서 일하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