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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 이야기

    가족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 이야기

    처음에는 그저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어떻게 일하셨는지 정리해 보고 싶었고, 잊고 싶지 않은 깨달음들을 글로 남겨 두고 싶었습니다.

    살다 보면 분명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이 희미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참 귀한 깨달음이라고 생각했는데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고, 또 몇 년이 지나면 무엇을 깨달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이런 것을 깨닫게 하셨구나.’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구나.’

    그렇게 하나씩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30개의 글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에 관한 이야기,
    가족에 관한 이야기,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깨달은 이야기,
    어려운 시간을 지나면서 배운 것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에 남았던 생각들이 하나둘씩 글이 되었습니다.

    완성된 글들을 다시 읽어 보니 신기했습니다.

    각각 다른 제목을 가지고 있는 글들이지만 그 안에는 결국 하나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삶을 이끌어 오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돌아본 사람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무언가를 전해 주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다 보니 가장 많이 돌아보게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과거의 일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서운했던 기억도 다시 떠올랐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던 순간도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상대방의 잘못만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보니 나에게도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이 참았는가를 생각하기보다,

    나는 얼마나 사랑했는가?

    나는 얼마나 이해하려고 했는가?

    나는 얼마나 용서했는가?

    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열심 안에 나의 욕심이 섞여 있었던 적도 있었고,

    내가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가족이 따라주기를 바랐던 적도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시간이 단순한 기록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족에게 가장 먼저 이 글들을 전하고 싶은 이유

    그렇다면 왜 이 글들을 다른 사람보다 가족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었을까요?

    가족은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보아 온 사람들이고,

    내가 기뻐할 때 함께 기뻐했고,
    내가 힘들 때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다시 마음을 나누기도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가족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면서도 동시에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대로 듣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말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나중에 이야기하면 되겠지.’

    ‘언젠가는 이해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말하지 않은 마음은 저절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글을 통해서라도 제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답이 아닙니다

    제가 쓰는 글이 가족들에게 어떤 정답을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아직 배워 가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실수하고,
    때로는 마음이 흔들리고,
    어떤 상황에서는 무엇이 옳은지 몰라 고민합니다.

    그러니 이 글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이런 것을 깨달았다.’

    라는 저의 삶의 기록입니다.

    제가 먼저 살아 보면서 경험한 것들을 가족들과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혹시 그 글 가운데 단 한 문장이라도 가족의 마음에 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글에서는 공감할 수도 있고,
    어떤 글에서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생각이 같을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가족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입니다

    30개의 글을 하나씩 돌아보면 결국 제가 가족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단지 교회 안에서만 만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 가운데 계시고,
    기쁜 순간에도 함께하시며,
    힘든 시간을 지날 때에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이해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알 수 없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내가 원하는 방향과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뒤를 돌아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계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일하고 계셨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나를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족들에게도 이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삶이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신 것은 아니라는 것.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실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행복은 왜 돈 만으로 결정되지 않을까?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6935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것은 물질만이 아닙니다

    살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준비합니다.

    가족을 위해 필요한 것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남겨 주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더 안정된 삶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가족에게 정말 남겨 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물질적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물건이나 재산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기준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
    어려움을 만났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마음,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은 평생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글들이 가족들에게 작은 유산과 같은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단한 지혜를 담은 책은 아니지만,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록한 이야기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가족들이 이 글들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 이런 마음으로 살았구나.’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알아갔구나.’

    하고 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가족들이 이 글을 다시 읽는 날

    지금은 제가 직접 가족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우리의 삶도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아이들도 자라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고,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도 지금보다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가 이 글을 다시 읽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이 글을 읽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았던 문장이 나중에는 이해될 수도 있고,

    지금은 별 의미 없이 지나쳤던 이야기가 어느 날 자신의 삶과 맞닿아 마음에 들어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록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은 내가 쓰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다시 읽는 순간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족에게 남기는 기록은 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생각,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내가 겪었던 어려움과 감사,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삶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기록해 놓는 것.

    그것 자체가 가족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소중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엄마, 완벽한 가족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글을 쓰면서 또 하나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좋은 엄마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고,

    좋은 가족이 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기대했던 적도 있었고,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기를 바랐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가족 모두가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 부족하기 때문에 이해하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배워 가며,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다시 사랑하는 것이 가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금씩 변화시켜 가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글들은 완성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빚어 가고 계시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30개의 글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어느새 30개의 글을 썼습니다.

    처음에는 30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의 이야기를 기록했을 뿐인데 또 다른 이야기가 떠올랐고,

    그 이야기를 기록하다 보니 또 다른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지나온 삶을 하나씩 꺼내어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30개의 글을 쓰고 나니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기록하지 못한 기억도 있고,
    아직 글로 표현하지 못한 깨달음도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글을 더 쓰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기록을 단순히 블로그에 글을 쌓아 가는 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 편 한 편의 글을 통해 제 삶을 다시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이 언젠가는 가족들에게도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 이야기

    그래서 저는 이 글들을 누구보다 먼저 가족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내가 이런 글을 썼으니 읽어 봐.’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런 것들을 깨달았어.’

    ‘나는 이런 시간을 지나왔어.’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셨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어.’

    그 이야기를 가족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혹시 살아가다가 힘든 시간이 찾아오면,

    ‘엄마도 이런 시간을 지나왔구나.’

    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 오더라도,

    ‘지금 당장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니구나.’

    라고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삶이 평안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힘들 때에도 하나님을 찾고,
    기쁠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결정해야 할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넘어졌을 때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가족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을 남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남기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글로 남기고,

    지나가 버릴 것 같은 기억을 붙잡아 기록하고,

    그 순간에는 설명하지 못했던 깨달음을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꺼내어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들을 쓰면서 가족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더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보다,

    가족에게 나의 마음을 더 잘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고맙다고 말하는 것,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함께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

    어쩌면 이런 평범한 말들이 시간이 지나면 가장 소중한 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늦기 전에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하고 싶습니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이 글들이 가족에게 작은 편지가 되기를

    앞으로도 저는 계속 기록하려고 합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현재의 삶을 바라보고,
    앞으로의 시간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글을 써 내려가려고 합니다.

    어쩌면 이 글들은 지금의 저에게는 블로그의 한 편의 글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글들이 가족에게는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창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어떤 일에 감사했는지,
    어떤 순간에 하나님을 경험했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30개의 글을 쓰고 난 지금,

    저는 또다시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바람은 분명합니다.

    제가 남기는 모든 기록이 결국 하나님을 가리키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가족들이 읽으며

    ‘우리 엄마의 삶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셨구나.’

    ‘우리 가족의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셨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것 같습니다.

    30개의 글은 제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시작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행하신 일을 기록하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이야기를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과 먼저 나누고 싶습니다.

    언젠가 이 글들을 다시 읽게 될 가족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시간이 우연만은 아니었다고.

    기쁜 날도, 힘든 날도,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도,
    기다려야 했던 시간도,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시는 과정이었을 수 있다고.

    그러니 앞으로 어떤 시간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모든 답을 지금 당장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걸어가면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의 모든 순간에 함께 계셨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전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글들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하나씩 기록해 나가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단순히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은혜의 이야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 예배가 살아나니 삶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가 살아나니 삶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은 제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해였습니다.

    요양보호사로 일한 지 어느덧 5년이 되었고, 그동안 정들었던 일을 내려놓아야 할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5년의 시간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제 능력이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고 섬길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5년 동안 제가 만난 어르신들은 스무 분 정도였습니다.

    그중에는 먼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들도 계셨고, 요양원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다는 소식을 전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했던 시간에는 기쁨도 있었고, 때로는 이별의 아픔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정리할 시점이 되어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르신들을 돌보며 일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그분들이 제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고, 식사를 돕고, 몸을 살피고, 이야기를 나누던 일상이 갑자기 끝나게 되니 생각보다 마음이 많이 붙들려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만, 사람에게 지나치게 마음이 매이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시는 분도 주님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하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요양보호사 일을 정리하고 주님을 찾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사회복지사로 근무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제 생각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순종하면 주님이 이루십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제 삶에 또 다른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에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계셨던 것은 직업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키고 계셨던 것은 예배였습니다.


    예배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남편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씩 다루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배는 단순히 정해진 시간에 자리에 앉는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몸은 예배의 자리에 있어도 마음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고, 입술로는 찬양하면서도 마음속에는 해결되지 않은 감정과 갈등이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말씀을 통해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잘못한 것을 인정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서로의 마음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살아 있는 예배는 형식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예배라는 사실입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때로는 용서해야 했고, 때로는 내려놓아야 했고, 때로는 내가 옳다는 생각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보다 앞서 있던 내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예배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배가 살아나기 시작하자 삶도 함께 변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3194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예배가 삶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도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남편도 점점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예배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전보다 더 깊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배가 단순히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시간이 아니라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고, 마음을 어렵게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이 바뀌기 전에 내 마음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기다리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이 기다려졌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실지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믿는 사람에게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배는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말씀으로 우리의 방향을 다시 세우며, 성령님의 다루심을 경험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예배를 단순히 ‘드리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시 세워 가시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예배를 지키는 것도 믿음의 싸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를 향한 영적 전쟁 역시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피곤함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기기도 하고, 마음이 흐트러지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일로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특히 마음에 갈등이 생기면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화해하고, 내려놓고, 다시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하는 믿음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방해하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지치고, 넘어지고,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예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를 변화시킨 것은 우리의 결심이나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예배의 자리로 부르시고, 그 자리에서 우리를 변화시키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삶도 회복됩니다

    돌이켜보면 2020년은 제게 단순히 직업이 바뀐 해가 아니었습니다.

    요양보호사로 5년을 살아온 시간을 내려놓게 하셨고, 새로운 길도 열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제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예배의 회복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만지셨고, 우리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셨으며,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시간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요양보호사로 보냈던 5년의 시간도 감사합니다.

    그동안 만났던 어르신들과 함께했던 시간도 감사합니다.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던 것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그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예배의 자리로 다시 이끌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배가 살아나니 삶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환경이 먼저 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먼저 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이 먼저 변화되기 시작했고, 그 변화가 우리의 삶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마음에 새기고 싶습니다.

    예배가 생명입니다.

    삶이 힘들수록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싶습니다.

    마음이 흔들릴수록 말씀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관계가 어려울수록 하나님 앞에서 먼저 마음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떤 영적 싸움이 찾아오더라도 예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

  • 남편을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남편을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결혼을 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배우자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특히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정을 든든하게 이끌어 주기를 바라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지혜롭게 판단해 주기를 바라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흔들리지 않고 해결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라면 가정을 책임져야 하고, 가장이라면 무엇이든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 다를 때면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왜 저렇게밖에 하지 못할까.

    왜 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까.

    왜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까.

    때로는 이런 생각들이 마음속에 쌓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생활을 오래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도 두려움이 있고, 고민이 있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과 걱정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을 바꾸려고 할 때보다 이해하려고 할 때

    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은 쉽게 보면서도 자신의 부족함은 잘 보지 못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많았지만 정작 나 자신도 완벽한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남편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려고 했을까.

    남편이 나에게 맞춰 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남편의 입장을 얼마나 생각해 보았을까.

    남편의 부족한 모습을 보며 답답해하면서 나는 내 부족함을 얼마나 돌아보았을까.

    이 질문을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 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배우자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배우자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에게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을 무조건 덮어주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배우자의 부족함을 발견했을 때 곧바로 정죄하거나 바꾸려고 하기보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할까?’

    ‘무엇 때문에 저렇게 힘들어할까?’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라고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 작은 차이가 부부 사이의 대화를 바꾸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부를 경쟁자가 아니라 동역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부를 하나로 세우신 것은 서로 누가 더 옳은지를 겨루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남편이 모든 것을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내가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부는 서로 다른 모습과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 채워주기도 하고, 한 사람이 지쳐 있을 때 다른 사람이 그 곁에서 함께 버텨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남편이 아내에게 힘이 되어 주고,

    때로는 아내가 남편에게 힘이 되어 줍니다.

    어떤 때에는 남편이 앞에서 길을 찾고,

    어떤 때에는 아내가 더 지혜로운 생각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요.

    돕는 배필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낮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며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남편을 돕는다는 것은 무조건 남편의 말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남편의 생각을 존중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고,

    때로는 조심스럽게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함께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만든 가족의 자리

    남편의 부족함을 보면서 나의 부족함도 보게 되었습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서로의 부족함을 가까이에서 본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단점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는 하루를 함께 살아갑니다.

    말투도 보고,

    습관도 보고,

    실수도 보고,

    때로는 감추고 싶은 약한 모습까지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배우자의 부족함은 다른 사람의 부족함보다 훨씬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이 나의 부족함을 참아 주고 있다면, 나 역시 남편의 부족함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그때부터 남편의 부족함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오히려 제 자신을 더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너무 쉽게 판단했던 것은 아닌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던 것은 아닌지,

    내 말이 남편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배우자를 이해하려고 했는데 결국 하나님께서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74827

    사랑은 상대를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변하기를 바랍니다.

    조금 더 부지런했으면 좋겠고,

    조금 더 다정했으면 좋겠고,

    조금 더 책임감이 있었으면 좋겠고,

    조금 더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계속 바꾸려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부부 관계가 ‘함께 살아가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고치는 관계’가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고쳐야 하고,

    당신은 나를 고쳐야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기 시작하면 관계가 달라집니다.

    ‘당신이 왜 변하지 않느냐’고 묻기보다,

    ‘나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당신은 왜 이것을 모르느냐’고 말하기보다,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를 더 건강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편을 이해한다는 것이 남편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인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부 사이에도 대화가 필요하고,

    서로 지켜야 할 선이 있으며,

    잘못된 것은 함께 바로잡아 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정죄하기 위한 마음으로 문제를 바라보느냐, 아니면 함께 해결하기 위한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마음의 방향이 다르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당신은 왜 항상 그래?’

    라는 말과

    ‘우리 이 문제를 어떻게 함께 풀어가면 좋을까?’

    라는 말은 비슷한 상황에서 나올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저는 후자의 마음을 배우고 싶습니다.

    결국 가정은 한 사람이 잘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정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남편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아내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부족한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면서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상처받고, 다시 용서하고, 다시 이해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면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나도 부족하고 배우자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면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완벽한 남편을 기대하기보다 하나님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남편을 바라보고, 완벽한 아내가 되기를 요구하기보다 나 자신부터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기를 구하는 것.

    그것이 제가 결혼 생활을 통해 조금씩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을 바꾸려고 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을 때,

    오히려 제 마음이 먼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이 변하니 남편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습니다.

    가정의 모든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부부가 서로를 바꾸려고 애쓰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함께 변화되기를 구할 때, 가정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남편을 바라보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는 남편에게 무엇을 요구하기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삶으로 배워가고 싶습니다.


    한 줄 묵상

    “완벽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품고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배우자의 부족함을 볼 때마다 먼저 나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해주세요.

    남편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고 하기보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때로는 말해야 할 때 말하게 하시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게 하시며,
    무엇보다 우리의 가정이 서로를 향하는 가정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정이 되게 해주세요.

    우리의 부족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를 조금씩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답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답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었습니다

    가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좋아하세요?”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아주 평범한 질문입니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여행하고 싶은 곳이나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없어서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제 마음속에는 늘 다른 질문들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찾기보다 알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많은 책을 갖고 싶었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알고 싶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형이나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물어볼 사람이 있었고, 함께 이야기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싶은 것이 많아도 마음껏 배우고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한편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왜 이렇게 살아갈까?”

    어쩌면 그때부터 저는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보다 알고 이해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제게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쉽게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보다 알고 싶은 것을 찾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질문은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어느 순간 질문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질문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계실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정말 내 마음을 아실까?”

    “내가 혼자 중얼거리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실까?”

    “기도는 꼭 교회에 가서 해야 하는 걸까?”

    “하나님은 정말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까?”

    “순종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진짜 순종일까?”

    “예수님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까?”

    “하나님을 믿는데 왜 내 마음에는 기쁨과 감사가 없는 걸까?”

    이 질문들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 분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설명하는 것만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을 실제 삶에서 만나고 싶었습니다.

    기도가 정말 하나님과의 대화인지 알고 싶었고,

    하나님께서 정말 나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시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순종이 단순히 명령에 따르는 행위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신뢰하며 함께 걸어가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신앙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이 질문이 더 중요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마음속 갈증은 남아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성경도 배웠고, 설교도 들었고, 다른 사람들의 간증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삶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형식은 있는데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었고,

    말씀을 알고 있는데 삶에서는 평안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도하면서도 마음이 답답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교회에 가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을 정말 알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신앙인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질문했습니다.

    “왜 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평안하지 않을까?”

    “왜 말씀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왜 기도하면서도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까?”

    “하나님은 정말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일까?”

    그때의 저는 사람들에게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답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이 믿음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한때는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 자체가 믿음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과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쏟아놓았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자신의 두려움과 고통을 숨기지 않았고,

    욥도 이해되지 않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계속 질문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저도 그것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질문에 즉시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제 모든 질문에 한 번에 답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답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알고 계시다면 왜 바로 알려주시지 않을까?”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실까?”

    “왜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해 주시지 않을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답을 주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답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계셨던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문제의 답을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 문제의 답보다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모두 보여주시기보다 오늘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시기보다 그 시간을 지나가는 동안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제 질문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라고 물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님, 이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신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제가 지금 무엇을 순종해야 합니까?”

    라고 묻게 되었습니다.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질문의 방향이 달라진 것입니다.


    답을 찾는 사람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으로

    저에게 가장 큰 변화는 이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답을 얻어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이유를 알아야 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아야 했으며,

    기도하면 어떤 방식으로 응답될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조금씩 쌓이면서 한 가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모든 계획을 이해하지 못해도 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답보다 하나님을 더 찾고 싶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을 기다리기보다,

    문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만을 바라기보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질문 속에서도 우리를 만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질문하시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모르셔서 물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질문을 통해 아담이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생각을 모르셔서 질문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질문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던지시는 질문도 다르게 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도록 질문하시는 분입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느냐?”

    “무엇을 의지하고 있느냐?”

    “정말 나를 신뢰하고 있느냐?”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런 질문 앞에 서다 보면 내가 하나님보다 문제를 더 크게 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평가를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응답 자체를 하나님보다 더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질문은 때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데려갑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4541

    기도의 응답보다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처음 배울 때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건강을 구하고,

    문제의 해결을 구하고,

    필요한 것을 구하고,

    원하는 결과를 구합니다.

    물론 그것도 기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기도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이것을 주세요.”

    에서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로,

    그리고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로 조금씩 나아가게 됩니다.

    기도의 목적이 단순히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응답이 늦어도 하나님을 놓지 않게 됩니다.

    응답이 아직 보이지 않아도 기도를 계속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하나님께 다시 묻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응답만이 아니라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하나님과 친밀해진다는 것이 특별한 신비한 경험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평범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일 앞에서도 하나님께 묻고,

    마음이 흔들릴 때 하나님께 나아가고,

    잘못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말씀을 통해 내 생각을 돌아보고,

    순종해야 할 것을 깨달았을 때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 내 뜻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하나님과 함께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순간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기도하는 시간에도 계시고,

    일하는 자리에도 계시고,

    혼자 있는 시간에도 계시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함께 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직도 저는 질문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께 묻고 싶은 것들도 많습니다.

    때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기도했는데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답을 얻지 못하면 불안했습니다.

    지금도 불안할 때가 있지만, 그 불안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것을 이해해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문제의 해결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지금은 문제의 해결뿐 아니라 그 문제를 지나가는 동안 하나님을 놓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제가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믿음입니다.


    모든 답을 알지 못해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답을 찾습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누구와 결혼할지,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우리가 끝까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모든 질문에 답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는 이제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모든 답을 알아야 평안한 것이 아니라, 답을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 평안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일을 알지 못해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내가 앞으로의 길을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내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붙드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질문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도 질문 때문에 무너지지는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답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참 많은 질문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이 옳은지 알고 싶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었으며,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보다 삶의 의미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질문에 완벽한 답을 얻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질문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답을 얻었다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답을 얻지 못했을 때도 하나님을 찾고 싶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보일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싶습니다.

    길이 선명할 때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밖에 보이지 않을 때도 하나님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모든 답을 알게 되었다.”

    라고 말하기보다,

    “나는 많은 질문을 가지고 살았지만, 그 질문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갔다.”

    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제 마음에는 여전히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질문들이 반드시 두려움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은 기도가 될 수 있고,

    기다림은 믿음이 될 수 있으며,

    알 수 없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하나님 앞에 머뭅니다.

    답보다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합니다.

    문제의 해결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더 원합니다.

    내가 원하는 길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걷기 원합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모든 질문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답을 찾기보다 하나님을 찾고 싶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 주어진 한 걸음을 하나님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답보다 하나님을 찾는 삶.

    어쩌면 이것이 제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수많은 질문들이 결국 저를 데려온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하나님을 더 알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모든 답을 알게 해달라는 것보다 주님을 더 알게 해주세요.”

    그것이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기도입니다.

  • 영적 전쟁 ② : 하나님이 다루시는 전쟁

    영적 전쟁 ② : 하나님이 다루시는 전쟁

    영적 전쟁은 실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적 전쟁을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한 현상이나 사탄의 공격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서도 갈등이 발생하고, 때로는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시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불완전한 인격이 반응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충돌과 갈등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의 문제만 바라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 속에서 상대방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함께 다루고 계십니다.


    *지금 하나님은 무엇을 보고 계실까?


    사실 많은 갈등은 돈과 관련된 문제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또한 자존심, 인정받고 싶은 마음, 소유욕과 같은 인간의 욕망이 갈등의 뿌리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겉으로는 다른 이유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상황을 통해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영적 전쟁은 결국 눈에 보이는 문제 뒤에 있는 인간의 욕망과 인격의 문제를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부분을 다루십니다.

    갈등이 생길 때 우리는 상대방을 바꾸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마음을 살피게 하십니다. 억울한 상황 속에서는 교만이 드러나고, 상처받은 상황 속에서는 두려움과 연약함이 드러납니다. 또한 손해를 보는 상황 속에서는 돈과 물질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빚어 가십니다.

    더 겸손한 사람으로.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더 주님을 찾는 사람으로.


    영적 전쟁의 목적은 단순히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연단하시고 변화시키십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의 승리는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하며, 더욱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 상황 속에서 우리의 인격을 다루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은 영적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빚어 가십니다.

    더 겸손하게.

    더 하나님을 찾게 하시며.

    더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말입니다.📚🙂💕🍀

  • 영적 전쟁이란 영적 전쟁의 본질

    영적 전쟁이란 영적 전쟁의 본질

    영적 전쟁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한 싸움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영적 전쟁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일어납니다.

    영적 전쟁은 문제의 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항상 문제만 바라보는 사람은 억압에 갇혀 살아갑니다. 문제의 크기가 문제가 되기보다 문제 자체가 없어져야 안심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잠시 평안을 얻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다시 불안해집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동안은 문제가 없을 수 있어도 문제가 전혀 없는 삶은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가정의 문제, 건강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직장의 문제 등 다양한 어려움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돈에 대한 염려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진실을 외면하는 삶의 본질, 자기 정당화가 반복될 때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


    생활비에 대한 걱정, 자녀 교육에 대한 부담, 미래에 대한 불안, 노후에 대한 염려 등 우리가 겪는 수많은 고민의 중심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돈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만큼 돈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돈 자체보다 돈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말씀합니다.

    돈이 부족하면 불안해지고, 돈이 많아도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돈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돈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우리의 마음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그 문제 앞에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느냐입니다.


    문제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주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적 전쟁이 시작됩니다.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한 사람은 계속 문제를 바라봅니다. 반면 또 다른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환경은 같지만 마음의 방향은 전혀 다릅니다.


    영적 전쟁은 눈에 보이는 싸움이 아니라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 싸움입니다.

    문제가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특히 돈에 대한 염려는 우리의 생각을 끊임없이 붙잡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돈이 있어야만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하나님보다 현실의 문제를 더 크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은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돈에 대한 염려가 하나님을 향한 신뢰보다 더 커질 때 시작되는 믿음의 싸움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해서 염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두려워할 수 있고, 걱정할 수 있으며,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염려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염려 가운데서도 다시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은 자라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아 가는 만큼 믿음도 함께 성장합니다.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알아 갈 때 우리의 믿음은 조금씩 자라나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문제가 믿음의 성장을 위한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통해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조금씩 알아 가게 됩니다.

    반대로 문제만 바라보며 문제 해결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점점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려는 마음도 약해지게 됩니다.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우리의 시선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은 거창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의 생각과 마음속에서, 문제를 바라볼 것인가 하나님을 바라볼 것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일어나는 믿음의 싸움입니다.

    문제가 사라져야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때 참된 평안이 찾아옵니다.

    영적 전쟁의 승패는 문제의 크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문제를 만났는가보다, 그 문제 앞에서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자라나고,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가게 됩니다.

    영적 전쟁은 결국 문제와의 싸움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 가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

  •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2018년 요양보호사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하며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기도 제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를 드리고, 봉사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가정 안에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부부가 서로 존중하며,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는 일.

    이것은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 역시 많은 기회를 놓치며 살아왔고,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도 말씀이 지식으로만 머무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2018년, 제가 방문하던 한 어르신 가정에서도 그런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 가정은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가정이었습니다.

    가족 모두 하나님을 믿고 있었고, 교회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갈등이 생겼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자녀 교육 문제와 앞으로의 삶을 위해 미국으로 잠시 나가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사실 그 자체는 특별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정에는 한 가지 중요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경추 장애로 인해 오랜 세월 침상 생활을 하고 계셨고, 돌봄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어머님의 입장에서는

    “결국 나를 두고 떠나는구나.”

    라는 서운함과 외로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자녀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며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입장이 너무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상대방이 아닌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한 가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에 가느냐, 가지 않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님의 마음이 충분히 존중받고 있지 않다고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옳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상대방의 마음은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해보다 주장,
    배려보다 판단,
    사랑보다 서운함이 자리 잡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믿는 가정도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어느 날 며느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미국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머님의 마음이 존중받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자녀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서운함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녀들을 축복하며 보내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물론 저는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그 가정 가운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조금씩 정리되었습니다.

    어머님 명의로 임대 아파트를 마련하게 되었고,

    아드님은 한국에 남아 어머님과 함께 생활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의 계획은 무엇을 기준으로 세워져야 할까요?

    그리고 진정한 믿음은 언제 드러나는 것일까요?

    믿음은 예배당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과 선택의 순간 속에서 드러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도,
    자녀를 이해하는 일도,
    서로를 존중하는 일도,

    모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열매일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종종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교회보다 먼저 우리의 가정을 다스려 주십시오.

    말씀을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가정이 되게 하십시오.

    우리의 생각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시고,

    우리의 주장보다
    주님의 사랑이 먼저 흘러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

  • 관계는 작은 배려 속에서 자라납니다

    관계는 작은 배려 속에서 자라납니다

    2018년의 일입니다.

    둘째가 운전면허를 취득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당분간은 형의 차를 번갈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근무 파트가 달라
    출퇴근 시간이 서로 겹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부모의 마음은 늘 같습니다.

    혹시나 늦지는 않을까,
    차량 이용에 불편함은 없을까,

    남편과 저는 아직도 노파심에
    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둘째를 걱정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 몸에 열이 많고 추위를 잘 타지 않는 남편과 달리,
    아이들은 저를 닮아 추위를 많이 타는 편입니다.

    아이들이 거실 온도를 조금 높여 놓았는데,
    남편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말투도 평소보다 부드럽지 못했고,
    아이들은 그런 분위기를 금방 느꼈습니다.


    사실 가족은 그렇습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에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그 일이 오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질문하실까요?

    다음 날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어제 저녁에 거실이 너무 펄펄 끓어서
    내가 순간적으로 마음이 안 좋았나 봐.”

    신의 감정을 인정하며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저는 답장으로 이렇게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당신의 표정과 말투에 민감하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러자 남편은 짧지만 진심이 담긴 답을 보냈습니다.

    “알았시유~~”

    그 한마디가 참 고마웠습니다.

    변명하지 않고,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관계란
    서로 실수하지 않는 관계가 아닙니다.

    서운함이 생겼을 때
    다시 돌아와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

    잘못을 깨달았을 때
    겸손하게 인정할 수 있는 관계,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대해 주십니다.

    실수하고 넘어질 때마다 정죄하기보다,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시고
    회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가정 안에서도 조금씩 용서하고,
    조금씩 이해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날의 작은 일상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관계는 거창한 사건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돌아보는 작은 배려와
    진심 어린 한마디가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금씩 성숙해져 가는 것임을 말입니다. 😊🙏🏻

  •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2018년도, 예영이가 중학교 2학년 무렵 친구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기억하다가 문득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갑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참 길게 느껴졌는데, 어느덧 여러 해가 지나고 그 시절을 조금은 객관적인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그 일이 왜 우리 아이에게 일어나야 했는지, 왜 하필 그 시기에 그런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는지,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선생님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혹시 혼자 힘들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모는 늘 마음 한구석으로 염려하게 됩니다.

    요즘은 한 학급의 인원도 예전보다 적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학교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학교는 단순히 공부만 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친구를 만나고, 관계를 배우고, 때로는 갈등을 경험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때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예영이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을 좋아했고, 나름대로 학교생활에도 열심이었습니다.

    학교에 가는 것을 즐거워 했고,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비교적 밝게 지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밝게 인사를 해서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중학교에 진학하고 2학년이 되었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운 시간이 찾아왔을 때, 저 역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듣고 있으면 부모로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 주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아이가 이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을까?’

    ‘혹시 이 일로 아이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남으면 어떻게 하지?’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힘들어하면 대신 그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어집니다.

    아이 대신 싸워 주고 싶기도 하고, 아이를 힘들게 하는 상황을 당장 없애 주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모든 관계를 대신해 줄 수도 없고,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모든 어려움을 부모가 대신 경험해 줄 수도 없습니다.

    결국 아이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관계를 만나고, 어떤 어려움을 통과하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 가는지를 지켜보아야 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내가 대신 아파 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도 아이의 인생에서 필요한 시간이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물론 어려움을 겪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당연한 것도 아니며, 잘못된 관계를 무조건 참고 견뎌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지나온 모든 시간이 반드시 편안하고 순탄해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힘든 시간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때로는 관계의 소중함을 알게 되며,
    때로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욥,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10668


    그리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도 알게 되고, 반대로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도 배우게 됩니다.

    어쩌면 그것이 성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좋은 일만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일을 통과하면서도 조금씩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예영이에게는 그 시간이 참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저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돌아보니 그 시간 속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고,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그때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구나.’
    하는 고백이 나옵니다.


    우리의 삶에는 그때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시간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상황이 금방 달라지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도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나를 다듬고 계셨다는 것,
    내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아이를 지켜보고 계셨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우리 가족에게도 새로운 것을 가르치고 계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지나간 그 시간을 생각하며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힘들었다고 해서 헛된 시간이 아니었고,
    눈물이 있었다고 해서 실패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이었고,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조금 더 관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조금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인 저 자신도 많이 배웠습니다.

    아이의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부터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조금씩 배워 갔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고, 들어주고, 기도하고, 필요한 때에 손을 내미는 것까지일 수 있습니다.

    그 너머의 삶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부모인 내가 세운 계획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자녀를 바라보며 걱정하고 있는 부모님들이 계실 것입니다.

    아이에게 친구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고, 학교생활이 힘들 수도 있으며,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너무 쉽게
    ‘이 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어려움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흘리는 눈물이 언제 어떤 열매가 될지 알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도 일하십니다.

    그리고 언젠가 뒤돌아보게 될 때,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그 시간도 헛되지 않았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자녀의 삶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아이의 삶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며 기도합니다.

    그 시간도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시간 역시
    하나님 안에서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생각해 봅니다.

    특별히 자녀가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을 떠올리면
    부모로서 마음이 아팠던 순간들이 생각납니다.

    아이 대신 아파 주고 싶었고,
    아이 대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었으며,
    힘든 상황에서 아이를 당장 꺼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고백합니다.

    부모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자녀의 모든 삶을 제가 책임질 수 없으며,
    자녀의 인생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가 지나온 힘든 시간들을 돌아볼 때
    그 시간 때문에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그 안에서도 일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당장 눈앞의 상황만 바라보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더 큰 그림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가면서
    좋은 관계도 만나게 하시고,
    때로 어려운 관계를 만날 때에도
    그 속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지혜와
    자신을 지키는 지혜를 배우게 하옵소서.

    상처를 받았다고 마음을 닫지 않게 하시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도 되지 않게 하옵소서.

    어려움을 통해 더욱 성숙하게 하시고,
    사람의 인정에 흔들리기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정체성을 붙들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부모들에게도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자녀의 삶을 내 힘으로 붙들려고 하기보다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기도해도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때에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게 하옵소서.

    지나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믿게 하시고,
    지금 지나고 있는 시간도 헛되지 않음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의 눈에는 실패처럼 보이는 시간도
    하나님께서는 성장의 시간으로 사용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상처로만 보이는 시간도
    하나님께서 회복과 성숙의 통로로 사용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의 자녀들을 우리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립니다.

    그들의 학교생활을 지켜 주시고,
    그들의 관계를 지켜 주시며,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옵소서.

    그리고 부모인 우리에게
    자녀를 사랑하되 지나치게 붙들지 않는 지혜를 주시고,
    필요할 때는 기다리고,
    필요할 때는 말해 주며,
    필요할 때는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지나온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고백합니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지나갈 시간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자녀와 가정을 선하게 인도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부모도 연약한 사람입니다

    부모도 연약한 사람입니다

    몇 년 전, 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하며 있었던 일입니다.

    그 어르신은 오랜 세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기신 분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술은 끊으셨지만, 통풍과 치매까지 찾아와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어느 날 어르신의 두 아드님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은 자녀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해 겪었던 아픔,
    가정 안에서 경험했던 수많은 상처,
    실망과 분노의 기억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아버지가 연약해지고 병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쉽게 이해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며 제 마음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부모도 결국 연약한 사람일 뿐이구나.’


    *하나님은 먼저 상대방이 아닌 나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를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부모는 강해야 하고,
    부모는 책임져야 하고,
    부모는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알게 됩니다.

    부모도 부족한 사람이었고,
    부모도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고,
    부모도 자신의 연약함과 싸우며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가 상처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해는 용서의 문을 열어 주고,
    용서는 우리의 마음을 자유롭게 해 줍니다.

    그날 한 아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코 변화되시길 기대하는 마음은 없고, 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찾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오랜 세월의 아픔과 갈등, 그리고 자녀로서의 책임감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어쩌면 가족 관계의 회복은 상대방이 완전히 변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사랑의 몫을 다시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되는지 모릅니다.

    그날 대화를 마친 후 저는 오히려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 앞에서 수없이 결심하고 약속했지만 넘어졌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주님께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했지만 결국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상대방의 잘못만 바라보면 마음은 점점 굳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미워하던 사람 속에서도 연약함을 보게 되고, 정죄하던 사람 속에서도 긍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날 저는 어르신의 아드님들보다 오히려 제 자신의 마음을 더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종종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얼마나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려 주신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기다려 줄 수 있는가?